有子曰
其爲人也孝弟요 而好犯上者鮮矣니
不好犯上이요 而好作亂者未之有也니라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언해>
有子ㅣ 갈오대 그 사람이론디 孝하며 弟하고 上을 犯함을 好할 자ㅣ 적으니 上을 犯함을 好치 아니하고 亂을 作함을 好할 자ㅣ잇지 아니하니라 君子는 本을 힘쓸지니 本이 셤애 道ㅣ 生하나니 孝弟난 그 仁할 本이저
<직역>
유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으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할 자가 적으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바로 서면 도가 생기니 효성과 우애는 인(仁)을 행하는 근본인 것 같다."
<자해>
有子 : 공자의 제자. 이름은 약(若)
孝 : 부모를 잘 섬김
弟 : 형과 어른을 잘 섬김
犯上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범함
鮮 : 적음
作亂 : 어기고 거스르며 다투고 싸우는 일
務 : 힘을 전일하게 함
本 : 근본
仁 : 사랑의 이치와 마음의 덕
爲仁 : 인을 행함
與 : 의문사 겸손하여 감히 질정하여 말하지 못하는 것
<의해>
천하에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효도와 공손이다. 그 사람됨이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하고 형을 섬김에 공손하면 그 마음이 온전히 화순하여 윗사람을 범함이 적다. 범이라는 것은 불순을 이른다. 따라서 작은 불순이라도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치에 어긋나고 윤리에 거스르는 등 크게 불순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효성스럽고 공손한 사람은 윗사람을 범하지 않고 어지러움을 일으킴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효도와 공손이 가장 중한 것이니, 사람으로서 마땅히 힘써야 한다. 군자가 모든 일에 근본을 힘써서 그 근본이 서면 일과 물건에 대하여 각각 마땅함을 얻어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하는 도가 이로부터 나올 것이다. 근본을 마땅히 힘쓰는 것이 이와 같으니, 효도와 공손하면 마음속이 모두 화순함으로 가득하여 백성을 어질게 하고 만물을 사랑함이 이로부터 미루어 나올 것이니, 배우는 사람이 여기에 힘쓰면 인도가 여기에서 나올 것이다.
<檮注>
이것은 孔子의 말이 아니라 有若의 말이다. 有若이라 하지 않고 "有子"(Master You)라고 한 것은 有若을 스승으로 모시는 집단에 의하여 그렇게 기록되었음을 말해준다. 程子를 비롯한 많은 주석가들이 그 많은 중니의 제자들을 칭함에 유독 曾參과 有若만을 "子"로 존칭했다는 사실을 들어 「논어」 자체의 편집이 曾子와 有子 계열의 제자들 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說을 펴지만 그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아마도 曾參과 有若만이 공자 사후에 강력한 敎團을 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곧 전체 「논어」 편찬의 주체세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有若은 孔子보다, 13세 연하, 33세 연하, 36세 연하(「공자가어」), 43세 연하(「중니제자열전」)라는 제설이 분분하나, 나는 36세 연하라는 「가어」의 설을 취한다. 「가어」에는 그가 기억력이 뛰어났으며(爲人强識), 古道를 숭상하였다(好古道)라고 말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 그런데 有若은 원래 魯나라 사람이며 武人출신이었다. 유약은 BC 487년(魯哀公 8년) 吳나라가 魯나라를 침공했을 때 노나라의 결사대 3백명 중의 한사람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유약은 이때만해도 공자를 만나지도 못했고 아직 제자가 아니었다. 유약은 아마도 뒤늦게 子游를 통하여 孔子門下에 들어갔을 것이다.
孔子가 죽었을 때, 남은 어린 제자들은 어쩔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子夏, 子張, 子游 등 중추를 이루고 있던 제자들이 제안을 했다. 아마도 유약은 공자처럼 키가 컸고 덩치가 좋았고 武將의 기품이 서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공자와 비슷하게 생긴 有若을 孔子를 대했던 예로써 대하여 孔子집단을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有若을 스승대리로 모시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소꼽장난 같은 발상이었다. 공자의 말년제자들의 발상의 유치함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그러자 曾參이 버럭 화를 냈다.
"안될 일이다! 우리 공자선생님의 덕성은 저 맑은 한 강과도 같고, 저 푸른 가을하늘의 태양과도 같다. 거기에 뭘 구질구질하게 덧붙이겠다는 거냐!"
이것은 「孟子」 「膝文公」 上4의 기록이다. 이것은 아마 孔子 死後, 孔子교단의 리더십의 계승을 놓고 有若과 曾參이 갈등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고사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魯나라 사람이었던 有若은 孔門집단을 어느 기간동안 리드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사마천의 「제자열전」에는 유약의 제자가 유약에게 교묘한 질문을 던졌는데, 유약이 대답을 못하고 어물쭈물하는 궁색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자 그 제자가 분연히 일어나,
"有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시요! 그 자리는 그대가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요!"(有子避之,此非子之座也。)
라고 성토하는 장면이 매우 소상히 그려져 있다. 이 일화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유약은 내가 생각하기에 力不足의 인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유약의 말이 이 「학이」편에만 세번 나온다. 모두 규범적인 "禮"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禮의 스페시 알리스트였다. 그래서 같은 유파인 曾參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을지 모른다. 이 「학이」편 두째번 장에 나오는 유약의 생각은 孔子의 仁의 사상이 매우 규범윤리화된 후대의 타락상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다. 孔子의 사상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져 있다.
孝는 분명 부모와 자식간의 덕목이다. 그것은 종적(vertical)이다. 弟는 형제간의 덕목이다. 그것은 횡적(horizontal)이다. 弟는 횡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공손함"(Fraternal submission, Legge 역)을 나타내는 일반적 덕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유가의 생각은 바로 이러한 혈연적 관계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느낌을 모든 인륜의 덕성의 근본(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까운 인간에 대한 善意를 확충해나가는 것이 모든 도리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本立而道生"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道는 노자가 말하는 우주론적 근본원리로서의 道가 아니라, "인륜의 길"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犯上"이니 "作亂"이니 하는 따위의 논리맥락에 꿰어 맞춘 것은 별로 현명치 못하다. 有若은 머리가 좀 아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鮮矣"라고 할 때의 "矣"는 강한 단정을 나타내는 조사이다. 그에 반해 제일 마지막 구절의 "其爲仁之本與"의 "與"는 단정을 주저시키는 조사이다. "...라고나 할까?" 정도의 의문을 내포하는 서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孝弟也者"라고 할 때의 "也者"의 용법은 주어를 한번 객관화시키면서 무게를 실리게 하는 조사이다. 우리말의 "...라고 하는 것은" 정도에 해당되 는 語氣를 나타낸다. 그리고 "未之有也"는 "未有之也"의 之를 동사앞으로 도치시킨 것이다. 이것은 未라는 부정사를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제일 마지막 구문,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에 관한 宋儒들의 재미있는 논의가 있다. 문제는 이 부분이 딴 판본에 "孝弟也者, 其仁之本與"라고 되어 있어 발단되는 것인데, 이러한 他本의 논리를 따른다면 孝弟라는 덕목이 곧 仁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즉 효제 그 자체와 仁의 뿌리(本)와 가치상으로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효제"라는 것은 구체적인, 개별적인 덕목에 불가하다. 그렇다면 仁의 핵심적 가치가 "효제"의 레벨로 格下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가 程子에게 묻는다.
효제가 곧 인의 근본이라면, 이것은 곧 효제를 통하여 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孝弟爲仁之本。 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
이에 程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럴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爲"라는 글자이다. 그것은 실천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이 효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했을 따름이다. 효제는 인의 한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고 말하면 되어도, 막바로 "인의 근본"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대저 인은 性이요 體다. 효제는 用이다. 性중에는 인의예지 사단밖에는 없다. 性중에 효제라는 덕목은 따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은 사랑(愛)을 주로 하고, 사랑이란 가까운 사람(혈연)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효제 라고 하는 것은 인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라고 유자가 말한 것이다.
非也。 謂行仁自孝弟始。 孝弟, 是仁之一事, 謂之行仁之 本則可, 謂是仁之本則不可。 蓋仁, 是性也; 孝弟, 是用 也。‘陞中, 只有箇仁義禮智四端而已。 曷嘗有孝弟來? 然 仁主於愛, 愛莫大於愛親。
故日: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
이미 宋儒들도 有若의 언급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仁" 그 자체가 아니라 "爲仁"이라는 표현에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이다. 孔子에게 있어서 仁이란 결코 후대의 유자가 말하는 바 구체적 덕목을 고정적으로, 실체적으로 지적한 바가 없다. 孔子에게 있어서 仁이란 정의불가능한 것(the Undefinable)이며, 한정불가능한 것(the Unconditioned)이며, 오직 삶의 유동적 현실속에서만 끊임없이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모스(nomos)적 울타리에 갇힐 수 없는 것이 다.(노모스[vouos]의 원 뜻에는 가죽을 사육하는 장소라는 뜻이 있다).
宋儒나 기타 주석가들의 문제는 바로 「논어」의 권위를 절대시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논어」의 권위를 인정해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오직 "인간"의 권위만을 인정해야 한다. 이 有若의 언급은 근본적으로 孔子사상을 잘못 이해한 공자의 아류, 어린 제자의 인식구조를 나타내는 저급한 언어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有若류의 인식구조가 「論語」와 공자를 형해화한 노모스적 세계로 몰고 갔고, 그 궁극점에 있는 것이 곧 「禮記」의 「曲禮」인 것이다. 그것은 莊子가 혐기하는 바 "一曲之士"의 曲禮(세세한 예의 덕목의 나열)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지 못한 송유는 이를 "體用論"으로 바꾸어 도식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어찌 딱한 일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仁"을 孟子가 말하는 四端의 一端으로 논의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한 논변이 아니리오? 孔子가 말하는 "仁"은 孟子가 楊墨에 대하여 아폴로제틱하게 설정한 四端 즉 인의예지의 한 덕목으로서의 "인"이 아니다. 그것은 四端을 초월하는 개념이며, 四端을 총괄하는 개념이며, 그것은 人性論的인 개념이자 곧 宇宙論的 개념인 것이다. 어찌 性속에 仁義禮智만 있고 孝弟는 없다하는 구차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 인간의 性이라는게 무슨 인터넷 사이트와도 같은 것이래서 그 속을 검색해보니 무엇은 있고 무엇은 없다라는 식으로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참으로 유치하고 어리석고 졸열한 것이 宋儒의 주석이다!
茶山 또한 이러한 宋儒의 오류를 근본적으로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나 孔子가 말하는 仁의 가치가 孝弟라는 구체적 덕목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느냐에 관하여 비교적 차분하고 일리있는 말을 하고 있다. 한번 茶山의 말에 귀를 기우려보자!
인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더불어하는 관계에서 생겨 나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스럽다는 것이 곧 인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어버이와 지식간의 두 사람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형을 섬김에 공경스러운 것이 곧 인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형과 아우 사이의 두 사람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임금을 섬김에 충성스러운 것이 곧 인이 되는 것이니, 그것은 임금과 신하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백성을 지도하는데 인자스러운 것이 곧 인이 되는 것이니, 그것은 지도자와 백성 사이의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부부 붕우의 사이로부터 시작하여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 모두 인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효제가 그 근본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仁者, 二人相與也。
事親孝爲仁, 父與子二人也 ; 事兄悌 爲仁, 兄與弟二人也 ; 事君忠爲仁, 君與臣二人也 ; 牧民慈 爲仁, 牧與民二人也。
以至夫婦朋友, 凡二人之間,盡其道 者,皆仁也。
然孝弟爲之根。
정약용은 구구하게 "爲"字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송유의 해석방식을 취하지는 않으나, 그가 말하는 "二人相與"는 "仁" 이라는 字形을 분해하여 "二人"으로 푼 매우 상투적인 글자풀이에 기초하고 있다. 仁의 古자형인 "겉"은 어떠한 경우에도 두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자형으로 풀이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따뜻한 방석 위에 앉은 모습이며, 온화롭고 따뜻한 사람의 모습이다. 仁의 二형태에 두 사람의 뜻이 없다. 그것은 "枉席溫暖"의 뜻이며 그 의미로부터 유교의 최고 덕목으로서 확대 해석되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字解의 논의를 떠나, 仁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茶山의 "관계론적 사유"(Relational Thinking)는 정당하다. 인간을 고립된 존재로 파익하지 않고 間의 존재로 파악히는 것은 동양적 人間論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러나 茶山의 문제점은 그러한 관계론적 사유가 기껏해야 인간중심주의적이고 또 에토스(ethos)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孔子가 말하는 仁은 분명히 관계론적인 것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 인적 관계, 물적 관계, 우주론적 관계의 총상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성격이 윤리적인데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孔子의 仁은 윤리적인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적(ethical)이라기 보다는 감성적(Feeling-oriented)인 것이요, 감성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심미적(esthetical)인 것이다. 그것은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도덕적 요구(postulation)가 아니다. 茶山의 ‘논어.는 너무 지나지게 이성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윤리적인 宋儒의 칠곡을 근원적으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조선유학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孟子가 말하는 惻隱之心도 결국 心의 토탈리티와 관계되는 것이요, 어떤 理나 性적인 측면만을 剔出하여 낸 것이 아니다.
弟 好, 皆去聲。鮮, 上聲。 下同。
有子, 孔子弟子, 名若。
善事父母爲孝, 善事兄長爲弟。
犯上, 謂干犯在上之人。
鮮, 少 也。
作亂, 則爲悖逆爭鬪之事矣。
此言人能孝弟, 則其心不떼頁, 少好 犯上, 必不好作亂也 與, 平聲。
務, 專力也。
本, 猶根也。
仁者, 愛之理, 心之德也。
爲仁, 猶日行仁。
與者, 疑辭, 謙退不敢質言也。
言君子凡事, 專用力於根本。
根本旣立, 則其道自生。
若上文所謂孝弟, 乃是爲仁之 本。
學者務此, 則仁道自此而生也。
程子日: "孝弟, 順德也: 故 不好犯上, 豈復有逆理亂常之事? 德有本。
本立, 則其道充大。
孝 弟行於家, 而後仁愛及於物, 所謂親親而仁民也。
故爲仁, 以孝弟 爲本。
論性則以仁爲孝弟之本。
"或間 : "孝弟爲仁之本, 此是由孝 弟可以至仁否?" 日: "非也。
謂行仁自孝弟始。
孝弟, 是仁之一事, 謂之行仁之本則可, 謂是仁之本則不可。
蓋仁, 是性也; 孝弟, 是用也。
性中, 只有箇仁義禮智四著而己。
曷嘗有孝弟來? 然仁主於愛, 愛莫大於愛親。
故日:‘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깨달음>
이 장은 처음 글에서는 효도와 공손하면 어질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아래 글에서는 효도와 공손함이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 됨을 말하였으며, 비유하자면 인은 곡식의 씨앗과 같고, 효도와 공손은 그 씨에서 나오는 싹과 같다. 따라서 인은 효도와 공손함의 근본이 되고 인을 행함에 있어서는 효도와 공손이 근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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