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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學而)_1

by noksan2023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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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學而)_1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언해>

子 ㅣ 갈아샤대 學하고 時로 習하면 또한 깃브디 아니하랴

벗이 遠方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디 아니하랴

사람이 아디 몯하야도 慍티 아니하면 또한 군자ㅣ 아니랴

 

 

<직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자해>

子 : 선생님. <논어>에서의 자는 공자를 가리킴. 

習 : 새가 자주 나는 모양.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마치 새가 자주 나느 것과 같이 하는 것.

悅 : 기뻐함慍 : 노여움을 품은

君子 : 덕을 완성한 이의 명칭

 

 

<의해>

배운다는 것은 배워서 알고, 안 뒤에는 행하는 것을 겸하여야 함을 말한다. 배울 학(學) 한 글자에 포함된 뜻이 크고 넓다. 넓게 배우고 자세히 묻고, 삼가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고, 힘써 행함이 모두 배우는 일이다. 배운다는 것은 옛 성현이 한 일과 천하만물의 이치를 배운다는 말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에 하늘이 부여한 성품은 다 같이 착하지만 기운과 바탕은 모두 같지 않아서, 기운에는 맑고 흐린 것이 있고 바탕은 정수하고 조잡한 것이 있기 때문에 기운이 맑고 바탕이 정수한 사람은 천하의 이치에 대하여 선각자가 되고, 기운이 흐리고 바탕이 조잡한 사람은 후각자가 된다. 그러므로 시간상으로 먼저 되고 뒤에 됨이 있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알지 못하고 할 수 없어서 선각자가 알고 할 수 있는 것을 본받아 행하면 이것이 곧 본래 착한 성품을 회복하는 길이다. 그러나 배운 것을 항상 거듭 익히지 않으면 진실로 아는 경지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배운뒤에는 익혀 점차 아는 것과, 안 뒤에 행하는 일이 마음에 익숙해져서 통달하게 되면 천하의 모든 이치가 내 음과 서로 통하여 아는 것이 더욱 정밀하고, 몸소 행하는 일이 당연함을 따라 편안하게 되어 능한 것이 더욱 확고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무슨 물건을 물에 담가두면 처음에는 겉만 젖지만 오래 담가두면 속까지 젖는 것과 같으니, 그때에 마음 속에서 자연히 유쾌한 마음이 솟아나서 무엇이라고 할 수 없이 나오는 깊은 맛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천하의 이치를 배워서 아는 것은 사람마다 다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비록 천하의 이치를 모두 알아 내 마음이 기쁘다고 해도 천하의 마음에 통하지 못하여 나를 쫓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이는 곧 나 혼자 배워서 나 혼자 기쁜 것일 따름이다. 비유하자면, 열 사람이 같이 먹는데 나 혼자는 배가 부르지만 아홉 사람은 먹지 못하여 굶주린 것과 같으니, 나 혼자는 비록 기쁘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기쁘지 못함이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가령 내가 배운 것이 충분히 남아게 미칠 만해서 먼 지방에서 친구가 와 내가 배운 것을 배우고 내가 익힌 것을 익히며, 내가 아는 것을 친구도 알고 내가 능한 것을 저 친구도 능하게 되니, 먼 지방에서 이와 같이 오면 가까운 지방은 물론이다. 나를 믿고 좇는 친구가 이와 같이 많으면 즐거운 마음이 극진하여 오음(五音)과 육률(六律)을 갖추어 음악을 즐기더라도 이 즐거움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일은 내게 있는 일이요, 배운 뒤에 나의 학문을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것은 남이 알아줄 만한 학문하기를 구할 것이요, 남이 나를 알지 못함을 병으로 여기지 않으니 비유해서 말하면 밥을 먹는데 내가 배부른 것만 신경쓰고 배가 부른 뒤에는 내가 배부른 것을 남이 알고 모르는 것이 관계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은 대개 누구든지 한 가지 잘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남이 알아주어야 유쾌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불평이 있다. 그러나 나의 학문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이 태연하여 털끝만큼의 불평이 없는 것은 진실로 학문이 내 몸을 위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남이 알아주는 것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는 것이 밝고 행하는 것이 지극하여 덕을 이룬 군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 

 

 

<檮注>

"子日"이라는 표현은 「논어」에서 모두 예외없이 "공자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이때 "子"라는 것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높여 부른 말이다. 이것 또한 매우 특이한 용법이다. 아마도 孔子이전에는 "子"라는 것은, 특별한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었을 것이다. 孔子의 제자들의 字의 첫 글자가 "子"로 시작하는 예가 많은데, 아마 그것도 그런 과거의 신분적 유습이 보편화된 특수한 상황으로 여겨진다. 「논어」로부터 "子"의 의미가, 본격적으로 오늘날의 "master", "teacher"의 뜻을 갖는 맥락으로 통용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다음 구절의 "有子日"과 같은 표현도 그것은 有若의 제자들이 그를 선생님으로 모시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다. "子日"(孔子日)과 구분키 위하여 "有子日"이라고 한 것이다.

 

「논어」의 冠을 차지하는 이 말은 얼핏 생각하면 매우 진부하게 들린다. "배워서 예습 복습 잘 하니 기쁘다"는 얘기가 뭐 그다지도 위대한가? "太初에 말씀이 계셨다"는 요한의 말이나, "太初에 하나님이 天地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는 「창세기」의 말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하고 비속하고 진부하고, 너무 일상적인 瑣事(쇄사)로 들린다. 여기에 우리는 해석학적 인식의 지평의 문제를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공자 전기작가들이 이 세마디의 함축적인 공자의 말을 공자의 청년시절, 그러니까 왕성하게 공부하려고 하던 시절의 의욕이 넘치는 언급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은 공자의 전생애를 압축시킨 공자말년의 達人的 회상으로 풀이한다. 大哲人이 죽기전에 그의 생애에 대해 남긴 매우 함축적인 언사였을 것이다. 이 언급이 바로 有子(36세 혹은 43세 연하)니 曾子(46세 연하)니 하는 孔子말년의 어린 제자들의 말과 같이 편집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준다.

 

여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孔子의 "學"의 의미는 반드시 일차적으로 孔子라는 발신자(S1)와 수신자인 그 제자들(R1) 사이에서 통용된 이해구조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우리말로 "공부하고 예습 복습 잘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발신자(S2)와 오늘날의 수신자(R2) 사이에서 일어난 이해의 구조속에서 해석된 것이다. 단순히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고 하는 현재의 우리말의 메세지(M2)가 의미하는 바는 모두 우리 현존재의 일상적 체험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학교에 가고, 학교에 가서 영어 수학 공부하고, 집에 와서 예습 복습 잘 하다가 언뜻 뭔 뜻인지 깨달음이 올 때, 즐거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옆의 친구나 엄마에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를 외친다면 과연 그것이 정당한 「논어」의 이해가 될 것인가?

 

오늘 나의 「논어」 이해는 분명 나의 체험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체험의 의미체계는 반드시 공자와 공자제자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즉 M1과 R1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어떤 상황에 맥락적으로 상응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공자는 분명 나처럼 학교에 다니고 학점을 따고 입시를 걱정하고 박사학위를 딸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아닌 것이다. 공자는 기존의 어떤 커리큐럼이 존재하고 그 커리큐럼이 규정하는 제도권 내에서 배움을 지향한 사람이 아니다. 공자가 말하는 "學"이란 바로 "學"이라는 의미의 창출 그 자체인 것이다. 孔子에게 있어서의 學이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그리고 그가 "十有五而志于學"이라 했을 때 의 "學"은 분명히 구체적인 "禮"라는 미지의 대상을 갖는 것이었다. 과연 "禮"가 무엇이냐? 禮! 그것을 알아보자!

 

孔子의 일생을 통해 추구한 學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wissenschaft)이 아닌, "禮 . 樂 . 射 . 御 . 書 . 數" 로 통칭되는 六藝를 말한 것이다. 그것이 文 武의 區分이 전혀 없는 매우 실용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이미 「禱序」에서 詳說한 바와 같다. 이러한 六藝를 전제로 다음의 구절이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學而時習之"라 할때, 우선 갈之자가 정확하게 學을 반복하여 목적으로 받은 지시대명사가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口語의 리듬에서 발생한(「논어」의 문체는 당대의 口語였다) 막연한 조사에 불과한 것이다. "習"은 學과 병치되는 독립된 개념이다. "習"(익힌다)이라는 것은, 學이 미지의 세계로의 던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천은 반드시 "때"(時)를 갖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피상적으로 읽어,"時習之"를 "때때로 익힌다"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서 "時"란 "때때로"(occasionally)의 뜻이 아니라 "때로" "때 에 맞추어"(timely)의 뜻이다. 율곡이 이를 훈하여 이르기를

 

자가라샤대 학하야 시로 습하면 또한 열홉디아니라!

 

율곡이 "시로 습하면"이라 한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茶山은 "때에 맞추어"로 해석한 皇侃의 疏를 駁하여 "줄곧 계속하여 익힌다"(時時習之)의 뜻으로 새기고 있으나, 내가 생각컨대 茶山이 틀린 것이다. 皇侃의 說이 더 적확하다. 茶山의 「古今注」는 때로 發明하는 바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너무 사소한 문제에 구애되고 있고 大體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애석한 일이다. 文武가 통합된 六藝를 익히는 과정이란 반드시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書 數를 할 수는 있으나 射 御를 할 수는 없다. 장년이 되어도 여름의 맑은 날씨에 말달리고 활을 쏠 수는 있으나 추운 겨울날씨에 빙판에서 말달리는 일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皇侃은 身中時, 年中時, 日中時의 三時를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배움의 익힘이란 내 몸의 상태, 즉 幼 弱 壯 强 艾 耆 등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익힘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요(身中時), 또 계절의 형태에 따라(年中時), 또 하루 중에서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日中時) 익힘이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中庸의 가르침이요, 易의 가르침이요, 老子가 "動善時"라 말한 바요, 孟子가 "聖之時"라 한 뜻의 時일 것이다. 때를 잘못 타서 배우고 익히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이다. 孔子는 평생을 통해 때를 맞추어 끊임 없이 정진하여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뜻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 한 뜻이 어찌 요즈음 어린 수험생들의 학습(學習)에 비유할 수 있으랴!

 

"不亦說乎"라 한 구문에서 "亦"의 뜻도, 딴 즐거움도 있는데 이것 "또한" 즐겁다라는 식으로 새기면 안된다. 여기서 "亦"이란 자기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고 남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강조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亦"이 아니라 기쁨의 절대적 경지를 구가하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구문의 "不亦樂乎"의 "樂"과 첫 구문의 "說"은 어떻게 다른가? 반드시 명료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說(열) = 悅"은 나의 실존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뜻이요, "樂"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로 보아야 한다. 說은 卽自的이요, 樂은 對自的이다.

 

"有朋自遠方來"라 할 때, "有朋"의 有는 잘 해석이 되질 않는다."友朋"이라고 한 텍스트도 있음으로 아마도 友朋으로 고쳐 읽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필사과정에서 자형상 "有"와 "友"는 쉽게 혼동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하면, 「시경」의 "有夏" "有周"의 용법처럼 별 의미 없는 접두어일 수도 있 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朋"의 해석이다. 이 구문의 뜻 또한 S2-R2 간의 좁은 인식체계에서 해석될 수 없다. S2-R2의 오리지날한 인식체계로 환원시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孔子의 삶의 전체의 조망이다. 여기서 孔子는 "친구가 먼곳에서 찾아오니 즐겁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만에 타지에 가 있는 동창생이 찾아와서 그날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야"하고 고달픈 세파를 안위하는 그런 자위의 탄성이 아닌 것이다.

 

孔子는 인생을 통하여 學에 대한 자각의 念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자기 삶의 현세적 의미를 철저히 추구하였다. 공자에게서 그 실존의 추구가 역사속에서 위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공자 개인의 내면의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集團的으로 추구되었다는데 있는 것이다. 바로 공자의 敎團은 "學을 위한 최초와 자발적 집단"이었다. 이것이 바로 士의 전형을 정립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朋"이란 우리말의 단순한 "친구"(Friend)가 아니다. 朋이란 古今의 注疏가 다 지적하고 있듯이 "朋黨"이요, "同門"이요, "同志". 그것은 개인적 친구가 아니라, 學을 위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孔子에게 있어서 "朋"이란 실제로 그의 학단을 구성한 제자들 이었다. 孔子에게 있어서 朋이라는 의미는 "친구"와 "제자"의 명료한 구분이 없었다. 子路는 제자이자 친구였다.어린 顔回도 제자이자, 그에게 무한한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벗이었다. 그런 동지들이 큰 뜻을 위하여, 배움을 위하여, 정치적 개혁을 위하여 사방에서 모여든다!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으랴! 그런데 문제는 "遠方"의 해석에 있다. 여기서 "遠方"(먼 곳)이란, 魯나라 都城內의 사람들만이 아닌 먼나라 사람들까지 찾아온다는 뜻 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孔子의 제자들은 衛나라, 宋나라, 齊나라,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나 "遠方"의 더 중요한 의미는 國과 國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國을 벗어난 鄙野의 세계, 즉 편벽한 庶人의 세계까지를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즉 子路와 같은 卞의 野人들도 찾아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孔子의 "有敎無類"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을 위하여 배움을 같이 하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것, 공자의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人不知而不慍"에서 "人"은 "남"(他人)의 뜻이다. 옛말에서는 人은 己(자기)와 대비되는 말이다. "不知"는 단순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孔子의 人生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해줄 名君을 만나기 위하여 周遊한 삶이었다. 결국 "人不知"란 뜻은 자신의 人生을 회고할 때, 정치적으로 등용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된 素人으로서 마감한다는 뜻이다. "愠"이란 단순히 "부끄러움"의 뜻이 아니라, 何晏의 말대로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隘, 怒也), 일본말로 "우라미", 우리말로 "한"에 해당 되는 말이다. 나는 평생을 통해 나의 이상의 현세적 실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여한이 없다! 왜냐? 바로 君子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는 이러한 맥락에서 了解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과 君子라고 하는 도덕적 이상과의 갈등 사이에서 궁극적으로 孔子는 君子라는 도덕적 이상을 선택 한 것이다.이 마지막 구문을 역설적으로 뒤집는다면, 孔子의 일생은 분노와 한에 찬 인생이었다.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최후의 위안은 바로 자신이 君子요 大人儒라고 하는 자부감, 즉 小人으로부터의 탈출의 기쁨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본다면 이 세 병치되는 탄성처럼 공자의 인생의 토탈리티를 그려내는 명구는 없다. 후속되는 「학이」편의 내용이 제자들의 졸한 언급임에도 불구하고 「학이」편이 「논어」를 冠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세마디 때문일 것이다.

 

 

 

<깨달음>

  

이 1장 학이(學而)편은 온전히 학문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준 것이다. 모두 배울 학(學)자로 주장하였으니, 첫 문장은 배움이 몸에 익도록 함을 말한 것이고 둘째 문장은 배움을 나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쳐서 다 같이 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며, 셋째 문장은 배우는 자는 결국 자기 몸을 위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공부는 때때로 익히는 데 요점이 있다.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자연히 얻는 것이 있어서 기쁘고, 자연히 벗이 와서 즐거우며, 자연히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도 성내는 뜻이 없어서 군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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