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없다
본 뜻
가차(假借)는 한문 글자구성의 여섯 가지 방법 중의 하나로서, 어떤 말을 나타내는 적당한 글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서 쓰는 방법이다.
독일(獨逸), 불란서(佛蘭西) 등이 그 좋은 예로 주로 외국어를 힌차로 표기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경우, 빌려다 쓴 한자는 단지 외국어를 비슷하게 소리내기 위한 것일 뿐 한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은 없다. 그러므로 '가차없다'는 임시로 빌려다 쓰는 것도 안될 정도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일의 주도권을 가진 쪽에서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 또는 용서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 기 글
- 자신의 태도에 가차없는 판단을 내려봐라
- 이번에 실수하면 가차없다는데 잘해 봅시다.
육서: 한자의 조자원리
한자의 조자원리에는 예로부터 육서라는 것이 있었다. 『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여덟 살이면 소학에 들어가고, 보씨가 국자(國子:公卿大夫의 孫)를 가르치되, 먼저 육서로써 한다〔八歲入小學 保氏敎國子 先以六書〕.”
고 하였고, 유흠(劉歆)의 『칠략(七略)』,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등이 이에 대한 언급을 한 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서(敍)에도 역시 이를 인용하고 그 명목을 지사(指事) · 상형(象形) · 형성(形聲) · 회의(會意) · 전주(轉注) · 가차(假借)로 정하여, 15자씩으로 설명하였다. 이들 육서의 명칭과 차례는 학자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른 이설을 세우기도 하나, 대체로 허신의 것을 따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유흠 · 반고(班固) 등은 ‘상형 · 상사(象事) · 상의(象意) · 상성(象聲) · 전주 · 가차’라 하였으며, 정중(鄭衆) · 가공언(賈公彦) 등은 ‘상형 · 회의 · 전주 · 처사(處事) · 가차 · 해성(諧聲)’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통설은 ‘상형 · 지사 · 회의 · 형성’을 가지고 그 구성의 원리로 보고, ‘전주 · 가차’를 따로 운용의 원리로 보기도 하나, 크게 보아 조자의 원리로 묶어도 무방한 것이다.
상형
상형(象形)이라는 말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물형(物形)을 그린다.’로 해석할 수 있으니, 대개 그 원리가 회화(繪畫)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지간의 물형을 그려내, 그것으로 글자를 삼는 방법이니 육서 중에서도 기본적인 방법이라 할 만하다. 더구나 한자 어느 글자를 보더라도 다소간은 회화적 성질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이 상형의 방법은 육서의 원천이라 할 만하니 한자를 상형문자라고도 부르고 있음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상형만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송나라 정초(鄭樵)의 통계에 의하면, 그가 분류한 문자 총수 2만 4235자 중 상형자는 608자에 불과한 것으로 나와 있다. 상형이 육서의 기본이기는 하나 상형만으로 모든 글자를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상형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면, ‘日 · 月 · 山 · 川 · 水 · 艸 · 木 · 人 · 目 · 馬 · 鳥 · 魚 · 弓 · 門’ 등과 같다.
지사
상사(象事) 혹은 처사(處事)라고도 하나 그 뜻은 같다. ‘지사(指事)’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일을 가리킨다.’가 되나,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이다. 상형은 바로 그려낼 수 있는 실물이 있으나, 지사는 바로 그려낼 수 있는 실물이 없다. 상형은 형상을 본떠야 하므로 그 형상이 일정하게 일종(一種) · 일류(一類) 물상에서 나오는 것이지마는, 지사는 일정한 사상(事象)을 그려내야 하므로, 그와 같은 사상을 드러내는 물상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에 걸쳐 있다. 이때에 이 여러 가지에서 나타나는 사상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사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사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몇 글자를 예로 들면 ‘上 · 下 · 一 · 二 · 三 · 五 · ㅣ’ 등과 같다. 一조(條) 위에 일점(一點)을 획(劃)하여 ‘ᅟㆍㅡ(上)’을 지으니, 이는 어떠한 것이 어떠한 것 ‘위’에 있음을 가리킨다.
다시 一조 아래에 일점을 획하여 ‘⨪(下)’를 지으니, 이는 어떠한 것이 어떠한 것 ‘아래’에 있음을 뜻한다. 이 때에 어떠한 것이란 땅이라도 좋고 하늘이라도 좋고 산이라도 좋고 물이라도 좋은 것이니, 그 어떠한 것이란 일정한 한 가지 물체에 매인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물체가 다 어떠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지사’는 여러 가지 것에 걸쳐서 드러나는 일이나 상태를 가리킨다. 한 획을 가로로 그어 ‘一’을 지으니, 천지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물건이 개별적으로 드러난 일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크거나 작거나 관계없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집 한 채, 차 한 대, 바위 한 덩어리가 다 같이 따로따로 있을 때 그것은 하나가 아닌 것이 없다. 이때의 하나가 존재하는 양상은 일정하지가 않으니, 어느 것의 구체적인 모양을 그려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결국 이 모든 것들의 개별적임을 뜻하기 위하여 ‘一’조를 획하여 ‘一’의 글자를 지으니, 그것이 ‘一’이라는 글자이다. ‘二, 三’은 ‘一’자를 거듭한 것이니, 이들 글자를 만든 이치는 같은 것이고, ‘四 · 五’자도 아주 옛날에는 ‘一’자를 네번 거듭하거나, 다섯번 거듭하여 ‘𝍣 · 𝍤’와 같이 쓴 일이 있으니, 이치는 또한 한가지이다.
세로로 그은 一조는 독음(讀音)이 둘이 있고 뜻도 둘이 있으니, 아래에서 위로 그어 올리면 음(音)이 ‘진(進)’이요 뜻도 ‘진(進)’이며,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으면, 음이 ‘퇴(退)’요 뜻도 ‘퇴(退)’가 되니, 글자를 이와 같이 만들어 내는 것이 지사이다. 이러한 지사자는 만들기가 어려워서인지, 글자가 많지 않다.
회의
이미 이루어진 두세 글자의 뜻을 모아, 또 다른 한 뜻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회의(會意)’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뜻을 모은다.’이니, 『설문해자』에서 ‘비류합의(比類合誼)’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이류(二類) · 삼류(三類)의 이미 이루어진 글자를 배비(配比)하여 그 뜻을 모아 한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아지는 글자는 상형 · 지사 · 회의 · 형성의 어느 글자라도 좋다. ‘武 · 信’은 대표적인 회의자의 예로 알려진 글자이다.
‘武’는 ‘戈’와 ‘止’의 뜻을 합한 것으로 간과(干戈)를 중지하여 천하를 태평으로 이끈다는 것이 본의(本義)이다.
여기서 ‘戈’와 ‘止’는 다같이 상형자인 것이다. ‘信’은 ‘人’과 ‘言’의 뜻을 합한 것으로 사람의 말은 서로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서 ‘信’의 뜻을 드러낸다. 여기서 ‘人’은 상형자요 ‘言’은 형성자이다.
이와 같이 회의자의 분류는 그 구성요소로 쓰인 글자가 육서 중의 어떤 것들과 합쳐졌느냐에 따를 수도 있고, 또 이들 구성요소들의 동이(同異)를 준하여 동체회의(同體會意 · 同文會意) · 이체회의(異體會意 · 異文會意) · 변체회의(變體會意) · 겸성회의(兼聲會意)로 나눌 수도 있다.
동체회의란 그 구성요소들이 같은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예를 들면 ‘林 · 姦 · 轟’ 등과 같은 것이다. 이체회의란 구성요소들이 서로 다른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예를 들면 ‘位 · 看 · 易 · 鳴 · 好’ 등과 같은 것이다.
변체회의는 혹 ‘성체회의(省體會意)’라고도 하는데, 구성요소들의 자획에 가감이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老’와 ‘子’에서 ‘孝’를 만들고, ‘寢’과 ‘未’에서 ‘寐’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겸성회의란 구성요소 중의 하나가 의미와 음성을 겸하여 가지고 있는 경우인데, 예를 들면 ‘仕:學也, 从人士, 士亦聲’, ‘叛:半反也, 从半反, 半亦聲’, ‘否:不也, 从口不, 不亦聲’, ‘娶:取婦也, 从女人取, 取亦聲’ 등과 같은 것이다.
형성
한 자〔一字〕를 이루는 구성요소의 한쪽이 의미를 지시하고, 나머지 한쪽이 음성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를 상성(象聲) 혹은 해성(諧聲)이라 부르기도 하나 지시하는 바는 같은 것이다. 형성(形聲)은 한자 구성법 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으로 문자 총수의 8∼9할이 이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부수(部首)로 글자를 찾아보는 자전(字典)인, 이른바 옥편(玉篇) 같은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부수 아래 많은 글자가 모여 있는 것이다. 이들 부수는 대개 의미를 나타내는 요소, 즉 형부(形符)이기도 한데, 여기에 음성을 나타내는 요소, 즉 성부(聲符)가 결합되어 한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江 · 河’와 같은 것은 왼쪽의 수부(水部)가 형부이며, 바른쪽의 ‘工 · 可’가 성부로 되어 있으니, 좌형우성(左形右聲)으로 결합된 글자이며, 같은 이치로 ‘鳩 · 鴨’과 같은 것은 우형좌성(右形左聲)이요, ‘草 · 藻’와 같은 것은 상형하성(上形下聲)이요, ‘婆 · 娑’와 같은 것은 상성하형(上聲下形)이요, ‘圃 · 國’과 같은 것은 외형내성(外形內聲)이요, ‘問 · 聞’과 같은 것은 외성내형(外聲內形)이라 할 만하다. 같은 형부와 같은 성부가 언제나 꼭 같은 의미와 음성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같은 형부는 대개 공통으로 관련된 의미를 지시하며, 같은 성부는 대개 공통 자질을 가진 비슷한 음성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목부(木部) 아래 수록된 글자는 대개 나무와 관련된 글자이며, 공(工)을 성부로 가진 글자는 그 음성이 공(工)과 같거나 가까운 것이다. ‘松 · 柏 · 枾 · 梨’는 나무 이름이요, ‘江 · 紅 · 貢 · 空’은 음성이 서로 비슷하다.
전주
전주(轉注)에 대한 해석은 고래로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로 두 가지 설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전주를 ‘구성’ 즉 조자법(造字法)으로 보느냐 혹은 ‘운용(運用)’ 즉 용자법(用字法)으로 보느냐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주를 문자 구성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견해는 청나라 때의 강성(江聲)에 의하여 대표될 수 있다. 강성의 『육서설(六書說)』은 『설문해자』 서설(敍說)의 설명을 기반으로 전개된 것이다. 즉, “轉注者 建類一首 同意相受 考老是也”에서 ‘一首’의 뜻을 한 부수와 같이 해석하고 ‘同意相受’는 그 일부수(一部首)에 의하여 숫자(數字)의 의미가 같은 것으로 된다고 보는 것이다. ‘考 · 耋 · 耄 · 耆’ 등은 ‘老’라는 일수(一首)를 취하여 같은 유(類)가 되니, 그 뜻도 ‘老’로 더불어 같은 뜻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설문해자』 일서(一書)에는 이와 같은 부수가 ‘一’에서 시작하여 ‘亥’에서 끝나고 있으니, 무릇 540부가 된다. 그러니까 이 540부의 하나하나가 이른바 일수(一首)가 되고, ‘凡某之屬 皆从某’하여 한 부류(部類)에 속한 여러 글자가 어떠한 부수를 좇아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인 것은 바로 ‘同意相受’ 즉 같은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강성의 이 같은 견해는 『설문해자』의 서를 근거로 출서(出敍)한 것이므로 이 설의 정당성은 『설문해자』 서와 그 540부수가 먼저 정당한 것이 되고 나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육서의 설(說)은 『설문해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부수의 수가 언제나 540은 아니다. 이 점이 바로 이 견해의 약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를 문자 운용의 한 방법으로 해석하는 견해는 단옥재(段玉裁)에 의하여 대표된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한자가 한 사람에 의하여 한 곳에서 일시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같은 뜻을 지시하면서 그 자형(字形)과 자음(字音)이 꼭 같지는 않더라도 대동소이한 문자가 둘 이상 있을 수 있다.
이른바 ‘이자동의(異字同意)’의 글자나, ‘일의수문(一義數文)’의 글자들이 그러한 것이다. 둘 이상 있는 이러한 동의(同意)의 제자(諸字)들은 그 뜻을 기준하여 일류(一類)로 묶을 수 있으니, 이것이 『설문해자』에서 이른바 ‘建類一首’가 되는 것이고, 이때에 이들 동의를 드러내는 제자들은 ‘호훈(互訓)’이 가능하니, 이 ‘호훈’이 또한 『설문해자』에서 이른바 ‘同意相受’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考’와 ‘老’ 두 글자는 각각 ‘考 老也’, ‘老 考也’와 같이 ‘호상위훈(互相爲訓)’할 수 있는 운용관계를 갖는데, 이러한 것을 전주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전주는 『이아(爾雅)』의 훈석(訓釋) 등에서 일찍부터 쓰여 오던 방법이니, 전주를 이와 같은 운용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알려져 있다.
가차
가차(假借)는 일자수용(一字數用)의 운용방법을 가리킨다. 이 점은 상술한 바 전주가 동일의의(同一意義)에 여러 글자가 있어서 서로 호훈(互訓)의 운용을 보이던 바와 대조적이라 할 만하다. 여러 글자가 동일한 뜻으로 쓰이던 전주에 비하여, 동일한 글자가 몇몇의 동일하지 않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글자가 있기 전에 말이 먼저 있고, 말을 좇아 글자가 만들어졌겠으나, 말만 있고 글자가 미처 만들어지지 아니한 경우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경우 이미 만들어진 글자 중에서 그 말과 음성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를 빌려 쓰는 것이 바로 가차인 것이다.
『설문해자』의 서가 “本無其字 依聲託事”라고 설명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차로 쓰인 글자는 그 글자 본래의 뜻과 가차된 뜻이 따로 있게 된다. 『설문해자』 서에서 ‘令 長 是也’라고 한 것은 ‘令 · 長’이 본래의 뜻이 있으면서, 그 본래의 뜻대로 쓰이지 않고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을 경우를 예시하고 있다. ‘令, 長’의 본래의 뜻은 ‘발호(發號)’와 ‘구원(久遠)’이었다. 이들 글자는 그 본래의 뜻대로 쓰이기도 하지만, 다른 뜻으로 가차되기도 하니, ‘현령(縣令), 현장(縣長)’의 경우가 그러한 것이다.
한인(漢人)은 현의 우두머리를 현령 · 현장으로 부르고 있었으나, 이를 적을 글자가 없어, 이미 있는 영(令) · 장(長)을 빌려서 표기하였던 것이다. ‘조(蚤)’자는 벌레의 이름인 ‘벼룩’을 뜻하는 글자였는데, ‘이르다〔早〕’의 뜻으로 가차되고, ‘혁(革)’은 본래 ‘가죽’을 뜻하나 ‘고쳐 바꾸다’의 뜻으로 가차된다. 무리[群]를 지시하던 ‘붕(朋)’이 ‘벗’의 뜻으로 가차되고, 까마귀를 지시하는 ‘오(烏)’가 감탄의 뜻으로 가차되는 것이다. ‘令 · 長 · 蚤 · 革 · 朋 · 烏’가 그 본래의 뜻대로 쓰이지 않고, 다른 뜻을 지시할 적에 가차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육서란 한자의 네 가지 구성법과 두 가지 운용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차자 문자
이두: 설총이 정리한 차자 문자쳬계
구결: 토씨 등을 한자로 표기
향찰: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 어순에 맞게 우리말 전체를 한자로 표기한 차자문자의 완성형
한자차용표기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전에 향찰(鄕札)·이두(吏讀)·구결(口訣)·고유명사표기라고 구분하여 오던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은 한자의 음과 훈 중 어느 것을 차용하느냐에 따라 ‘음’과 ‘훈’으로 나뉘고, 또 이들을 한자의 본뜻에 맞게 사용하느냐, 본뜻을 버리고 표음적(表音的)으로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讀)’과 ‘가(假)’로 나뉜다. 이 방법이 복합되어 다음과 같은 차자체계(借字體系)가 나온다.
① 음독자(音讀字):한자를 음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② 음가자(音假字):한자를 음으로 읽되 그 본뜻을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
③ 훈독자(訓讀字):한자를 훈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④ 훈가자(訓假字):한자를 훈으로 읽되 그 뜻은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
이는 표의문자적 성격과 표음문자적 성격이 복합된 것으로 표의자로 차용된 차자를 독자(讀字), 표음자로 차용된 차자를 가자(假字)라고도 부른다. 차자 가운데는 독자와 가자의 중간에 드는 것이 있어 독자이되 가자의 성격을 띠는 것을 의독자(擬讀字), 가자이되 독자의 성격을 띠는 것을 의가자(擬假字)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독’과 ‘가’의 원리가 적용된 다음에 수의적(隨意的)으로 적용되는 이차적인 것이다. 음독자와 훈독자는 필요하면 한문에서 언제나 빌려다 쓸 수 있으므로 그 수를 한정할 수 없으나, 음가자와 훈가자는 한정된 수로 이루어진 체계를 가진다. 자주 쓰이는 가자들은 다음과 같다.
加(가) 居(거) 去(거) 古(고) 高(고) 果(과) 斤(근) *厼(금) 只(기) 介(개) 乃(나) 那(나) *汝(너) 奴(노, 로) 尼(니) *斤(ᄂᆞᆯ) 多(다) *如(다) *加(더) 丁(뎌, 뎡) 刀(도) 道(도) 豆(두) *置(두) *月(ᄃᆞᆯ) *冬(ᄃᆞᆯ) *等(ᄃᆞᆯ·들) 知(디) 羅(라) 良(라) 老(로) *以(로) 陵(르) 里(리) 立(립) 來(ᄅᆡ) 亇(마) *休(말) *味(맛) 毛(모) 勿(믈) 彌(미, 며) 每(ᄆᆡ) *所(바) 朴(박) 甫(보) 夫(부) *火(블) 非(비) 沙(사) 所(소) 數(수) 示(시) 時(시) 賜(ᄉᆞ) 史(ᄉᆞ) 士(ᄉᆞ) *白(ᄉᆞᆲ〉ᄉᆞᆸ) 參(ᄉᆞᆷ) 阿(아) *良(아) 也(야) 於(어) 余(여) 亦(여, 이) 五(오) 烏(오) 臥(와) 隱(은) 乙(을) 音(음) 邑(읍) 衣(의) 矣(의) 伊(이) 召(조) 之(지) 叱(즐) 齊(졔) 吐(토) 何(하) 乎(호) 屎(히) 兒(ᅀᆞ) 耳(ᅀᅵ)(*표는 훈가자)
이 체계는 시대나 개인 또는 문체에 따라 달라지므로 유동적이다. 가자는 원칙적으로 1음절을 표기하므로, 2음절의 훈을 가진 차자도 훈가자로 쓰일 때에는 1음절을 표기하는 차자로 바뀐다(加의 훈은 ‘더으-’인데 훈가자로서는 ‘더’를 표기함). 그러나 다음의 가자들은 그 모음이 탈락되어 음절말자음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 只(ㄱ) 隱(ㄴ) 乙(ㄹ) 音(ㅁ) 邑(ㅂ) 叱(ㅅ) 應(ㅇ)
차자의 표음은 음독자의 경우 그 시대 우리 나라의 한자음으로 읽히고, 훈독자는 우리말의 어형인 훈(새김)으로 읽힌다. 하나의 차자가 둘 이상의 훈으로 읽힐 수도 있고, 둘 이상의 차자가 하나의 훈으로 읽힐 수도 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서 ‘草’는 ‘플’과 ‘새’로 읽혔고, ‘末’과 ‘粉’은 모두 ‘ᄀᆞᄅᆞ’로 읽혔다.
음가자도 대체로는 그 시대의 한자음으로 읽히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속음(俗音)으로 읽히는 것도 있다. ‘省’이 ‘소’로 읽히는 것이 그것인데, 이는 상대(上代)의 한자음일 가능성이 있다. ‘彌’는 『향약구급방』에서는 ‘미’로도 쓰였지만 전통적으로는 고대의 한자음으로 추정되는 ‘며’로 쓰이고 있다.
차자의 연결법칙은 어절(語節)을 단위로 하여 그 앞부분은 개념을 나타내는 음독자나 훈독자로 표기되고,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뒷부분은 음가자나 훈가자로 표기된다. 즉, ‘독자+가자’의 특징적인 표기구조를 가진다. 이 순서는 문장표기에서 특히 현저하게 지켜진다.
고유명사 표기와 같은 단편적인 단어의 표기에서는 가자만으로 표기되는 예가 많지만, 『향약구급방』의 향명(鄕名) 표기에서는 단편적인 단어의 표기임에도 이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차자의 연결순서에서 또 하나의 현저한 특징은 말음첨기법(末音添記法)이다.
‘明期’와 같은 표기는 ‘明’의 훈이 ‘ᄇᆞᆰ’이어서 그 말음에 ‘ㄱ’음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데도 ‘期(긔)’가 이 말음을 중복하여 첨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明期’가 실제로 표기하고 있는 것은 ‘ᄇᆞᆯ긔’인 것이다. 이러한 말음첨기법은 수의적이어서 같은 작품 안에서도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차자표기자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다. 차자의 자체(字體)는 한자의 자체가 그대로 쓰인다.
우리의 독특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畓(논)’, ‘太(콩)’와 같은 우리 나라 한자를 새로 만들어 쓰기도 하지만, 자형상 한자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차자의 자체에서 중요한 것은 약체(略體)이다. 복잡한 자형에서 일부의 획만을 따서 사용한 것이 약체인데, 『균여전』에 쓰인 ‘⺾+廾(菩薩)’로 보아 차자표기뿐만 아니라 한문에도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보편적으로 쓰인 것은 구결의 토(吐) 표기에서이다. 약체는 정자체에서 따는 경우(阿→阝)와 초서체에서 따는 경우(爲→)가 있다.
필순(筆順)으로 보면 본자의 앞부분에서 따는 방법(衣→, 飛→飞)과 뒷부분에서 따는 방법(古→口, 叱→)이 있다. 같은 차자라도 따는 방법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羅’의 약체는 『구역인왕경구결(舊譯仁王經口訣)』에서는 앞부분을 딴 ‘’로 나타나지만, 후대의 구결에서는 그 속자인 ‘’의 뒷부분을 딴 ‘ᄉᆞ’나 ‘’가 주로 쓰였다.
이와 같이 일정한 방법으로 약체를 딴다는 것은 약체가 본자에 의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목적으로 쓸 때에는 주로 약체가 쓰이지만 공적인 문서나 인쇄문헌에서는 원칙적으로 정자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개중에는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오는 과정에서 그 정자와의 인연이 끊어져 약체가 하나의 차자로 굳어진 것이 있다. ‘尸(ㄹ)’과 ‘亇(마)’가 그것으로, 여러 자료에 쓰였지만 그 정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차자표기법은 지명·인명·국명 및 관명(官名) 등을 가자로 표기하는 고유명사 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한문의 가차자(假借字)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온 것이다. 이 표기법은 우리 나라 최고(最古) 기록인 ‘광개토왕비문’에 이미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금석문에 기록된 한문이나 초기 이두문에 나타난 것을 보면 신라·고구려·백제가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중국인들이 그들의 외래어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가차자나 일본의 초기 고유명사 표기자들과 대체로 공통되고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6세기 자료에는 우리의 고유한 용법인 훈가자가 쓰이고 있어서 이 고유명사표기법이 한국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의 차자표기 문장은 속한문(俗漢文) 또는 변체한문(變體漢文)이라고도 불리는 이두문의 초기적인 문체이다. 이 문장에서는 후대의 이두에 해당하는 中(긔), 以(로), 之(이라) 등이 나타나고, 어순이 한문의 어순으로서는 어색하거나 완전히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되었다. 그러나 고유명사나 관명을 제외하고는 가자로 쓰인 토의 용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통일 후인 8세기에 들어와서 토 표기가 나타나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데 가자가 쓰인다. 755년(경덕왕 14)에 기록된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자료로서 차자표기법의 중요한 사실들을 보여준다. 이 문장의 어순은 완전히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되었고, 토 표기가 발달하여 ‘독자+가자’의 표기구조가 나타난다. 또 ‘令只(시기+기→시기)’와 같은 말음첨기법도 보여주고 ‘厼(금)’과 같은 약체도 보여준다. 그러나 국어의 조사나 어미를 충실하게 표기하지 않고 있어서 전후문맥에 의하여 그 문법관계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어의 조사와 어미를 비교적 충실하게 표기한 향찰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있으나, 향찰이 갖추어야 할 표기법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향찰표기법이 이미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는 설총(薛聰)의 시대보다 한 세대쯤 뒤이기 때문에 그와 이 표기법의 발달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차자표기법은 향찰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혼합된 표기법의 단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향찰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후반까지도 사용되었으나 그 사용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다. 이두와 구결, 고유명사 표기도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으나 역시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용되었다. 이 표기법을 통하여 얻은 국어표기의 경험과 전통은 훈민정음 창제의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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