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_ It is the equivalent of the Mona Lisa

"이건 모나리자와 맞먹는다(It is the equivalent of the Mona Lisa)"
2003년 「고려 왕조: 한국의 계몽 시대」라는 주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 전시된 고려 불화 한 점을 두고 「뉴욕 타임스」가 쓴 표현이다. 이 고려 불화는 고려 후기 충선왕 때 김우문 등이 그린 「수월관음도」로, 세로 길이 4m가 넘는 대형 불화이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로 고려 불화의 예술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국내의 관심도 높아졌다. 고려 부로하는 700년 전에도 "섬세하고 화려하다!"라는 중국 측의 찬사를 받았으며, 일본 사찰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왜 고려 불화가 낯설까? 현재 전하는 고려 불화는 160여 점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일본에 있고, 국내에는 10여 점밖에 없어 직접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고려 불화가 일본에 많이 있는 까닭은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로 도난당하기도 했고, 조선 초 억불 정책 속에서 일본에 외교 답례품으로 전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 「수월관음도」 역시 일본의 가가미 신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사가현립박물관에서 1년에 한 달 정도만 일반에 공개한다. 이 「수월관음도」가 우리 땅을 잠시 밟은 적도 있었다. 일본 측과 힘겨운 교섭 끝에 2009년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40일간 특별전을 한 것이다. 약 700년 만의 귀향이었던 셈이다.
고려 불화는 종교 회화인 만큼 불경 속 부처와 보살의 이야기가 주된 소재이다. 특히 관음보살은 그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기만 해도 현실의 고통을 없애 주고 극락세계로 이끌어 준다고 하여 미래불인 아미타 부처와 함께 가장 인기가 있다. 그래서 흔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 외운다.
고려 불화는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 우아하고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여기에는 고려만의 독특한 비법이 있다. 바로 배채법이라는 기술이다. 바탕천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안료가 앞면으로 배어나게 한 후 앞면에 다시 색을 보강하는 기법이다. 「수월관음도」에서 관음보살의 붉은 옷 위에 걸쳐진 흰 비단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도 이 배채법 때문이다. 「수월관음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통비단 위에 그려졌다는 것이다. 보통 존선 불화나 일본, 중국의 불화는 40cm 정도 폭으로 이어 붙인 바탕천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수월관음도」는 어디에도 이어 붙인 흔적이 없다. 일반 천의 10배 가까운 크기의 통비단을 만들었던 고려의 수준 높은 직조 기술을 짐작하게 한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40여 점의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중 국내에는 사립 박물관에만 5점이 있었다. 그러던 중 2016년 한 기업가가 일본에서 「수월관음도」를 구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로써 국립박물관에서도 「수월관음도」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고려 불화의 귀향을 기대해 본다.
수월관음보살도 (水月觀音菩薩圖)

관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살이다. 가로 53㎝, 세로 86㎝ 크기의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중앙에 표현한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80여 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4∼5점만이 전한다. 이 수월관음도는 섬세하고 화려하면서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파도치는 물결 위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앉아 있습니다. 짙은 청색의 천의(天衣)를 걸치고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의 뒤로는 초록색 두광(頭光,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장식물)과 찬란한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내비치는 빛)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화면 옆쪽에는 두 손을 뻗은 채 보살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동자가 있습니다. 우아한 자태의 관음보살이 그려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기나긴 여정 가운데 한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가르침을 얻기 위해 선재동자가 찾아간 보살의 정토, 보타락가산
관음보살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고난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관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부름에 응해 중생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자비의 상징이기도 한 관음보살은 인도 남쪽 바다 건너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진리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53명의 스승을 만났던 선재동자의 구법(求法) 여행이 적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재동자가 찾아간 스물여덟 번째 스승이 바로 관음보살이었습니다. 선재동자가 도착한 보타락가산의 서쪽 산골짜기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나무숲이 우거져 있었으며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으로 찬란하게 장엄되어 있었습니다. 관음보살은 암석 위에 앉아 여러 보살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선재동자는 보살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수월관음도>는 경전에 나온 이 장면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가르침을 전하는 보살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보살로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구법 여행을 담은 수월관음도는 중국 당나라의 궁정화가 주방(周坊)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험준한 바위에 앉아 가르침을 구하러 온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구도의 수월관음도는 중국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그려졌습니다. 당나라의 장언원(張彦遠)이 서화에 대한 자료를 모아 저술한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는 주방의 수월관음도에 표현된 보살의 원광(圓光)과 대나무가 언급되어 있으며, 이는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서도 확인됩니다. 이처럼 수월관음도는 동북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한 관음신앙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도상(圖像)은 조선시대로 계승되었고,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도상도 등장하게 됩니다. 관음보살 옆에 나타나는 정병 형태의 변화, 새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관음보살 옆에는 물줄기가 나오는 입구와 손잡이가 달린 라마교식 정병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 있으며, 주위에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일본 다이도쿠지[大德寺] 소장 <수월관음도>처럼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도 새가 나타나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새는 정병과 함께 화면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됩니다.
또한, 자신을 찾아온 선재동자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고려시대 수월관음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관음보살에게 공경을 표하고 있는 화면 바깥의 예배자를 바라보는 듯한 정면관(正面觀)으로 많이 그려집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월관음도 속 관음보살은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자비롭게 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구도 때문에 예배자는 마주한 관음보살이 직접 자신을 내려다보고 자비를 건네고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 불화승(佛畫僧), 의겸(義謙)의 관음보살
하단의 붉은 화기(畫記)에는 1730년에 불화를 조성했다는 기록과 시주자들, 그리고 실제 그림을 그린 5명의 승려, 의겸ㆍ진행(陳行)ㆍ행종(幸宗)ㆍ채인(采仁)ㆍ석인(釋仁)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승려이면서 동시에 장인이었던 승장(僧匠)이 활동한 시대였습니다. 절의 불상과 불화는 승려로 구성된 집단이 제작했고, 스승과 제자 관계가 형성되며 유파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수월관음도> 역시 승장이 그린 작품입니다.
참여한 5명 가운데 불화 제작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의겸입니다. 의겸은 18세기 전반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불화승입니다. 의겸은 ‘호선(毫仙, 붓의 신선)’, ‘존숙(尊宿, 덕이 높고 수행이 뛰어난 승려)’, ‘대정경(大正經, 크고 올바른 도리)’ 등의 존칭을 얻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던 화승입니다.
<진주 청곡사 괘불>(1722), <고성 운흥사 괘불>(1730)을 비롯해 고성 운흥사와 공주 갑사의 불사(佛事)를 지휘했고, 순천 송광사 응진당, 여수 흥국사 응진당의 주요 불화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불화뿐만 아니라 의겸이 조성한 관음보살상도 남아 있습니다. 의겸의 작품을 통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기량을 펼쳤던 조선시대 승려 장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이름이 남아 있는 행종, 채인 등은 의겸의 다른 불화에서도 확인되어, 이들의 사승(師承)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의겸이 그린 수월관음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를 비롯해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1723), <고성 운흥사 수월관음도>(1730) 등 세 점이 남아 있습니다. 세 점 모두 관음보살의 자세와 화면 구성 요소가 거의 비슷하며, 대나무ㆍ정병ㆍ선재동자의 배치, 천의 표현, 용왕과 용녀 등 공양자 유무 정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 점을 비교해 보면 의겸이 한 가지 도상을 나름대로 바꾸어 차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먹으로 윤곽선 그린 유일한 고려불화… 700년 만에 돌아왔다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최상급 고려불화 두 점이 고국에 돌아왔다. 먹으로 윤곽선을 그린 유일한 수묵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관음보살·지장보살이 나란히 서 있는 ‘관음·지장보살 병립도(竝立圖)’다. 국내 개인 컬렉터가 수년 전 일본인 소장가에게서 두 점을 구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두 작품 모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30일 개막하는 특별전 ‘불이(不二)- 깨달음과 아름다움’에서 700년 만에 공개된다.
◇수묵화 같은 유일한 수월관음도
적갈색 비단 바탕 위에 수묵선묘(水墨線描)의 조화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수월관음도’는 고려불화의 역사를 바꿔 써야 할 희귀한 작품이다.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한 일반적인 고려불화와 달리, 윤곽과 옷 주름을 먹선만으로 그리고 내부도 먹으로 칠했다. 구성도 독특하다. 기존에 알려진 ‘수월관음도’는 달빛 아래 관음보살이 물가에 반가좌(半跏坐)로 앉아 있고, 화면 아래쪽에 배치된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구도다. 반면 이번 작품은 관음보살이 꽃가지 위에 앉아 있고, 두 손은 앞으로 모으고 두 다리는 결가부좌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가운데 화불(化佛)을 얹은 보관을 썼고, 보관에서부터 온몸을 감싼 옷자락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관음보살의 왼쪽 무릎 옆에는 투명한 용기가 있고 그 위에 버드나무로 보이는 나뭇가지가 놓였다. 작품 크기는 세로 99cm, 가로 55cm.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일본 교토의 유명한 골동상이자 컬렉터인 야나기 다카시가 소장했던 작품”이라며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수년 전 국내로 들여왔다”고 했다. 고려불화 연구자인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는 “수월관음도의 범위를 확장시킨 혁신적인 작품”이라며 “화려한 채색불화가 아니라 수묵으로 관음 전체를 표현한 유일한 고려불화다. 의복 문양에 금니(金泥)를 사용했고 보관에 약간의 채색을 했을 뿐 그 외는 모두 먹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도상은 희귀하지만 얼굴 표현, 문양, 보관, 목걸이 등 화면 구성 요소나 표현은 고려불화의 기본적인 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며 “놀라울 만큼 당초 형상이 잘 남아있고 보관 상태도 좋다”고 극찬했다.
마치 물 위에 뜬 둥근 원 안에서 명상에 잠긴 듯한 관음보살을 묘사한 수작이다. 옷 주름선에도 비교적 굵은 먹선을 사용했고, 관음보살 아래 흐르는 물결도 모두 먹선이다. 정 교수는 “관음보살의 자세는 선종(禪宗) 불화, 특히 달마대사 도상과 유사하고, 채색을 절제하고 수묵 선묘를 적극 활용한 것도 선종계 도상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했다. 얼굴 묘사 양식과 목걸이, 옷에 그려진 연화당초무늬 등을 종합해 볼 때, 14세기 전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엔 관음, 왼쪽엔 지장보살 나란히
또 다른 고려불화인 ‘관음·지장보살 병립도’도 주목된다. 오른쪽엔 관음보살, 왼쪽엔 지장보살이 나란히 서 있는 구도다.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병립하는 형식은 중국·일본 불화에서는 없고, 고려와 조선 초기 불화에만 등장하는 독자적 양식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관음·지장보살 병립도’는 총 세 점뿐이며, 나머지 두 점은 일본에 있다. 2008년 정우택 교수가 일본 내 고려불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존재가 처음 확인됐고, 수년 전 국내로 돌아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일반적으로 고려불화의 관음보살은 반투명한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지만, 이 작품의 관음보살은 연화당초무늬를 수놓은 백색 천의를 머리부터 늘어뜨려 온 몸을 덮고 있다. 정우택 교수는 “이러한 백의관음(白衣觀音) 도상은 지금까지 1476년 제작된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전의 ‘백의관음도’가 가장 이른 예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작품으로 그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같은 도상이 존재했다는 게 밝혀졌다”고 했다. 가나아트센터 전시는 6월 29일까지. 관람료 성인 3000원.
달빛 아래 물가 바위에 반가좌(半跏坐)로 앉은 관음보살이 진리를 찾는 공양자들에게 불법(佛法)을 일깨우는 모습을 그린 그림. 동아시아 예술사에서 독보적 가치를 인정받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현존 고려불화 170여 점 중 수월관음도는 50여 점. 대다수가 일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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