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암각화 : 울동 고기동 천동기법
울 : 울주 반구대
동 : 동물그림
고 : 고령 양전동 알터
기 : 기하학 무늬
동 : 동심원(태양상징)
천 : 천전리 암각화
동 : 동물 모양
기 : 기하학 무늬
법 : 신라 법흥왕이 기록
1. 울주 반구대 : 동물그림
높이 4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2. 고령 양전동 알터 : 기하학 + 동심원(태양상징)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은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람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십자형은 가로 15㎝, 세로 12㎝의 불분명한 사각형안에 그려져 있어 전(田) 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현한 듯하다. 가면모양은 가로 22∼30㎝, 세로 20∼40㎝로 머리카락과 수염 같은 털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안에 이목구비를 파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의미로 새긴 듯하다.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금산령 석기 유적과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되는 석기와 토기를 통해 청동기시대 후기(B.C. 300∼0)에 만들어진 암각화로 짐작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과 사회생활 등 선사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조각사와 회화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3. 천전리 암각화
울주 천전리 각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조각·그림·명문 등이 새겨진 암각화이다. 1970년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이 발견했고 197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과 각종 동물상 및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선각화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눠진다. 상부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문양을 이어받은 것으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부는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는데 명문에 신라 화랑의 이름과 관직 등이 있어서 신라사 연구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명문 중 확인된 글자는 800자가 넘는다. 상부 오른편의 원명(原銘)과 그 왼편의 추명(追銘)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밖에 제명(題銘)이 다량 보인다. 원명이 새겨진 기사년은 법흥왕 12년(525), 추명에 새겨진 기미년은 법흥왕 26년(539)으로 추정된다. 뒤의 추명은 왕과 왕비가 이곳을 찾은 것을 기념해 기록했음을 밝히고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명문 중에는 사탁부(沙啄部)라는 부명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이곳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탁부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임을 뜻한다. 이곳은 사탁부의 고유 종교의식이 행해지던 성지(聖地)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밖에도 제명에는 여러 화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시 많은 화랑이 이곳을 찾아 도량(道場)으로 삼았음을 전해준다. 이들 각석 하부의 명문과 각종 선각화는 신라 6부 체제의 발전 · 변화과정과 내용을 규명해 나가는데 주요한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는 태화강 상류 지역으로 울산에서 경주를 와는 길목에 있으며, 예로부터 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이곳 계곡의 어느 큰 바위에는 다양한 무늬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울주 천전리 각석이다.
각석의 위쪽에는 선사인들이 새긴 기하학무늬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 가장 많고 다양한 형태는 마름모꼴이다. 겹 마름모는 땅을, 동심원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름모와 동심원이 서로 뒤섞여 그려져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신라인들은 이전 시대 사람들이 남긴 그림을 피해서 아래쪽에 그림과 글을 남겼다. 이를 통해 상상해 보면 신라인들도 이전 시대 사람들이 남긴 기하학무늬 등을 신성하게 생각했던 듯싶다. 유명하고 멋진 곳에 가면 "000 왔다 감."과 같은 흔적을 종종 볼 수 있다. 가끔은 그 위에 자신도 따라서 흔적을 새기기도 한다. 울주 천전리 각석을 보면 ‘신라인들도 마찬가지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쪽에 남겨 진 글 중 인물상과 동물상을 지운 후 새긴 두 개의 글이 인상적이다. 왼쪽 것은 신라 사부지 갈문왕이 525년에 이곳에 놀러 와 새긴 것이다. 오른쪽 것은 그가 죽은 후에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을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부지 갈문왕은 누구일까?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 갈문왕은 진흥왕의 아버지이다. 즉 위의 "어린 아들"이 후에 진흥왕이다. 그리고 사부지 갈문왕의 부인인 지몰시혜는 법흥왕의 딸이다. 신라 왕족들은 친족끼리 결혼하는 근친혼을 많이 했다. 지몰시혜도 삼촌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 법흥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시부지 갈문왕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진흥왕이다.
왕족들만 울주 천전리를 다녀갔을까? 각석에는 양산을 받쳐 든 말 탄 주인공이 행차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뒤에도 말을 탄 사람들이 보이며, 사이사이에는 시종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 그림 위에는 ‘한 귀족이 그 부인과 함께 놀러 와서 쓰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 밖에 용이나 뱀, 새, 돛대를 달고 있는 배 그림도 있고, 사람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도 여럿 된다. 이를 통해 왕족, 귀족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이곳에 다녀갔음을알 수 있다. 이외에 울주 천전리 각석에 남아 있는 여러 흔척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천여 년 전의 사람들이 새긴 ‘낙서장'. 천전리 각석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타임캡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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