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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두문자

청동기 특징 두문자 : 전 사 계 군 선 정

by noksan2023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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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사회 특징
청동기 사회 특징

 

청동기 특징 : 전 사 계 군 선 정

 

전 : 문화

사 : 유재산 발생

계 : 급 발생

군 : 장 사회

선 : 민사상

정 : 복전쟁

 

1. 문화 

 

일의 전문화와 분업의 발생 : 고유한 일을 담당하는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움집 내에서도 용도에 따라 공간을 나누어 활용하기 시작했다. 침실, 부엌, 창고 등으로 용도 구분한 주거형태 나타나기 시작했다.

 

2. 유재산 발생

생산력이 전 시대인 신석기 시대보다 월등히 좋아짐에 따라 잉여생산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적소유가 등장했으며, 이에 따라 계급이 발생으로 불평등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 계급의 분화는 죽은 뒤까지도 영향을 끼쳐 무덤의 크기와 껴묻거리의 내용에 반영되었다.

 

정착이 점점 발달하였고, 넓은 지역에 밀집취락, 방어를 위한 목책, 환호, 토성 등의 시설을 설치했다. 울산 검단리 유적에서 발견된 환호의 흔적은 마을 단위의 영역 계획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환호란 마을을 둘러서 판 수로 형태의 시설을 의미하는데 이는 마을의 경계이면서 방어시설이다. 환호라는 방어시술을 갖춘 마을의 등장은 잉여생산물의 집적에 따른 계급 발생과 집단 간 분쟁의 심화를 반영한 것이다. 사유 재산의 발생으로 결국 외부의 적에 대한 방어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것이다. 

 

3. 급 발생

세게에서 가장 많은, 한국 전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계급 발생의 증거물로 볼 수 있다. 거대한 암석 덩어리를 개인 혼자의 힘으로, 대화와 타협으로 만들어질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리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거 동원할 수 있어야 하고 강제력이 존재할 때에나 고인돌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고창, 화순, 강화 등지에서 널리 발견되었으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인돌은 크게 탁자식(한강 이북, 북방식) 고인돌,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 개석식(전국 분포) 고인돌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탁자식 고인돌은 4개의 굄돌과 뚜껑돌이 있는 형태로서 그 안에 돌방(석실)을 만드는 구조로 된 고인돌이다. 주로 한강 이북에서만 발견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5~6개의 받침돌이 있기는 하나 매우 작으며 묘방이 지하에 위치한다. 개석식 고인돌은 굄돌이 아예 없고 덮개돌만 있다. 당연히 묘방은 지하에 묻혀 있다. 

 

 

 

김해 구산동 고인돌

 

 

 

"엥? 이게 고인돌이야?"

 

김해 구산동 고인돌 사진을 처음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인돌은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두 개의 큰 돌이 기둥처럼 서 있고, 그 위에 평평한 덮개돌이 있는 이른바 탁자식 고인돌이다. 아니면 큰 기둥 대신에  4~5개의 받침돌로 덮개돌을 고여 놓은 바둑판식 고인돌이다('고인돌'이라는 이름도 죽은 사람을 뜻하는 '故人'이 아니라 '고여 놓은 돌'에서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고인돌은 탁자식도 바둑판식도 아닌, 사진처럼 바위 하나만 달랑 있는 덮개돌식(개석식) 고인돌이다. ‘고인' 돌이 없는고인돌인 셈이다.

 

이 고인돌은 진짜 무덤이 맞기는 할까? 답은 저 육중한 덮개돌 아래에 있다. 2021 년에 고인돌 아래를 발굴해 보니 널무덤(목관묘)의 흔적이 나와 무덤이었음이 분명해졌다. 그동안 다른 고인돌 유적에서도 여러 번 사람 뼈가 나온 적이 있어, 고인돌이 대체로 무덤이었다는 것은 정설이다.

 

그렇다면 고인돌은 누구의 무덤 일까?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려면 많은 노동력을 원해야 했고, 고인돌 유적에서 당시 귀했을 청동 무기와 장신구 등도 출토되고 있어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그런데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북 고창 에만 2천 개 가까운 고인돌이 있다. 고창에 지배자가 이렇게나 많았을까? 그래서 학자 중에는 고인돌이 지배자만의 무덤이 아니라 그 가족 전체의 무덤이거나, 부족의 공동 묘지 또는 전사자의 무덤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하기도 한다.

 

고인돌을 발굴해 보면 매장 흔적이 없는 것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고인돌이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거석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공동체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물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땅을 파서 묻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석기 시대까지는 구덩이에 주검을 묻고 그 위를 크고 작은 돌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0세기쯤부터 고인돌이 생겨나 약 천 년 동안 한반도 전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이때 만들어진 고인돌이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대체로 청동기 시대였다. 청동기 시대에 고인돌이라는 새로운 무덤 양식이 생겼다는 건 청동기 사회가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많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 집단이 청동기 시대에 생겨났다. 이때 한반도에서 생겨난 여러 정치 집단 중 국가로 발전한 것이 바로 우리 역사의 첫 나라, 고조선이다.

 

4. 장 사회

 이전에 역사학계에서는 최초의 국가를 일반적으로 ‘부족국가(部族國家)’라 했고,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성읍국가(城邑國家)’로 고쳐 부르자는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 뒤 미국의 신진화주의(新進化主義) 인류학자들의 국가형성단계론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부족국가 또는 성읍국가 대신 ‘군장국가’로 부르자는 견해가 대두하였다. 이것은 서비스(Service, E. R.), 살린스(Sahlins, M. D.) 등이 국가(state) 바로 이전의 단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한 ‘치프덤(chiefdom)’을 번역한 것인데,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수장사회(首長社會) 또는 족장사회(族長社會)·추장사회(酋長社會)·추방사회(酋邦社會)·군장사회로 번역하는 등 ‘나라[國]’라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은 채 ‘사회’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신진화주의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치프덤’이란 신분의 세습화, 직업의 전문화, 전통적인 족장권(族長權)의 성립, 재분배 경제 등이 이루어지는 단계로서, 한국적인 기준에서 보면 엄연한 국가의 일종이다. 따라서 수장국가·족장국가·추장국가·추방국가·군장국가 중 하나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런데 중국의 정사(正史)인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는 ‘왕(王)’이라는 호칭과 구별해 ‘군장’ 또는 ‘장수(長帥)’, ‘거수(渠帥)’ 등의 호칭을 사용했음이 나타나므로, 왕이 다스리는 연맹왕국(聯盟王國) 이전의 단계를 ‘군장국가’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1987년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국사교육심의회에서 확정한 국정(國定) 한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準據案)에서는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국가 형태를 ‘군장국가’로 통일하도록 하였다.

 

5. 민사상

선민사상은 특정 민족이 신이나 신적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다는 종교사상이다. 선민의식이라고도 한다. 넓게는 다른 집단·민족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세속적인 사상이나 신념도 포함한다. 집단이나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하지만 배타적인 성격이 강할 때는 인류 평화의 위협요소로 작동한다. 고대 건국신화는 대체로 선민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단군신화도 한민족이 천제의 후손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이화세계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어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민사상과는 구별된다.

 

선민사상은 집단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는 보편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옳고 선하다는 교만과 오만의 문화들이 등장하는 사상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특히, 선과 악의 이원론적 인식에 의해 다른 민족이나 집단의 자존권(自存權)을 무시하거나 사악한 무리로 간주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 평화를 위해서도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의 선민사상은 고대 건국신화나 근대에 발생한 민족종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이지만, 민족기원 신화로도 활용되고 있다. 천제(天帝)인 환인의 손자 단군이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한민족은 천제(天帝)의 후손임을 주장함으로써 다른 민족과 구별하였다. 그렇지만 홍익인간의 정신과 이화세계(理化世界)에 대한 이념을 제시하고 있어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민사상과는 구별됨을 알 수 있다.

 

근대에 형성된 동학 · 증산교 · 대종교 · 원불교 · 통일교 등 민족종교들은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창립되었다.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천손(天孫) 민족으로서 민족적 소명의식을 새롭게 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민족은 후천개벽의 주역이고 한반도는 세계의 중심임을 선언하였다. 전 세계 인류의 구원은 이 땅에서 시작되고, 전 세계는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족사회로 통합될 것이며 지상천국도 한반도에서부터 건설될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6. 복전쟁

정복(征服)은 전쟁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영토를 무력으로 완전히 점령하여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복은 무력으로 적을 정복하는 행위이다. 군사 역사는 정복의 많은 예를 제공한다: 영국의 로마 정복,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아대륙의 광활한 지역에 대한 마우리아의 정복, 아즈텍 제국의 스페인 정복 및 다양한 무슬림 정복 등이 있다.

 

노르만족의 영국 정복이 그 예를 제공한다. 그것은 문화적 유대를 기반으로 하여 잉글랜드 왕국을 노르만족의 지배 아래로 예속시켰고 1066년에 정복자 윌리엄을 영국 왕좌에 앉혔다. 정복은 어떤 면에서 식민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앵글로색슨, 바이킹, 프랑코-노르만 식민화와 정복의 단계와 지역을 경험했다. 이러한 정복전쟁의 시작은 청동기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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