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결심, 이재명 尹심판 野 단일대오, 한 석보다 중요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참배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준연동형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10 총선에서 현행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는 대신 민주 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치개혁의 '명분'을 지키는 동시에 윤석열 심판론으로 야권 단일대오 구도를 만들어 '절반의 실리'를 챙기려는 고육책이다. 다만 '표의 등가성'이라는 연동형제 취지를 훼손하는 '준(準)위성정당'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꼼수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동형제 반대를 고수한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위성정당 창당 절차에 착수했다. 22대 총선에서도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공식화하면서, 이들의 폐해를 막기 위한 '룰'은 또다시 뒷걸음질치게 됐다.
尹 심판할 '우군' 확보, '현금' 대신 '어음' 택한 이재명
이 대표는 5일 광주 국립5·18 민주묘지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서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걸음"이라며 준연동형제 유지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이 대표지만, 두 달여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병립형 회귀 시, 의석 확보에 유리하다는 게 그간 민주당 지도부 판단이었다. 실제 "다리를 불사른 결단"이라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올 정도로, 한 석이 아쉬운 이 대표 입장에서 연동형 유지로 방향을 튼 배경에는 그 이상의 절박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윤석열 정부 심판론 구도를 선명히 해야 하는 이 대표에게 '야권 단일대오'는 무너뜨릴 수 없는 전략적 선택지였다. 연동형 사수를 촉구한 민주당 바깥의 진보 정당과 야권 시민사회 요구를 이 대표가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다. 전날 이 대표를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도 민주당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제3의 세력과 연대 필요성을 언급하며 연동형제 '엄호'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권 위임, 주말 사이 나홀로 숙고... 전날 밤 칼 빼들어
이 대표 결단은 전날 밤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이 대표는 주말 동안 장고 끝에 연동형제 유지로 결심을 세웠다고 한다. 당 대표실 관계자는 "양쪽의 객관적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한번 결단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재명식 의사결정 스타일"이라 설명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 등 내부 절차를 거쳐 준연동형제 유지를 추인할 방침이다. 연동형제를 주장해온 우원식 의원은 "병립형으로 비례의석을 많이 얻는 건 눈앞에 보이는 '현금'이지만, 야권 시민세력과 연합해서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한다면 윤석열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어음'은 더 많아지는 것"이라 평가했다. 이 대표 역시 "지역구 포함 비례선거까지 협력하는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통해 마지막 단 한 표까지 끌어올려 멋지게 이기겠다"고 강조했다.
"내가 책임진다" 위성정당 비판에 9번 고개 숙인 이재명
약속은 지켰지만, 위성정당 논란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 대표는 당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설득과 사과에 공을 들였다. 이날도 "반칙을 막아설 방법이 없다. 저쪽에선 칼을 들고 덤비는데 최소한 냄비뚜껑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위성정당 창당의 불가피성을 "정당방위"라고 역설하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기자회견과 백브리핑(현장 질의응답) 동안 총 9번이나 대국민 사과의 뜻도 밝혔다. 사과 메시지는 이 대표가 현장에서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형 비례정당을 두고 소수정당을 배제하지 않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연합 플랫폼이라고 설명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표현에도 빗댔다. 다만 이 대표는 "범야권 맏형으로 책임에 맞는 권한을 갖겠다"고 거듭 밝히며 민주당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과 기존 여야 정당에서 탈당한 신당 세력들은 이 대표의 결정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논리적 근거도 없는 제도"라고 비판하며 병립형 회귀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도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대화하는 망국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물리적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 것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연동형’ 택한 이재명 “정권 심판 세력과 통합 비례정당 추진”
고개 숙인 지도부 “위성정당 반칙 가능하도록 불완전한 입법한 것 사과”
4·10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를 두고, 연립형과 병립형 비례대표 중 고심을 이어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연동형’으로 입장을 굳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당을 겨냥,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을 향해서는 “반칙이 가능하도록 불완전한 입법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래는 이 대표 기자회견문 전문.
<이재명>
존경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오월 영령 앞에서 국민과 국가를,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단 한 번도 저절로 온 적이 없습니다. 국민의 피와 생명을 바쳐 만들고 지켜온 것입니다.
우리에겐 믿음이 있습니다. ‘국민은 언제나 옳았고, 더디지만 역사는 진보한다.’ 바로 그 믿음입니다. 국민과 역사에 대한 이 신념은 어떠한 난관도 헤쳐나온 민주당 정신의 정수입니다.
이번 총선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무능하고 무도하며 무책임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민생과 경제를 되살려야 합니다. 국가의 품격과 따스함을, 희망과 미래를 되살려야 합니다. 국정을 감시하고 국가 법질서를 창조 변화시키는 국회는 민주 공화정의 최후 보루입니다.
2년도 안 돼 나라를 이렇게 망친 정권이 국회까지 장악하면 국가 시스템까지 망가뜨릴까 걱정됩니다.
이번 총선에 적용할 비례 선출제도가 논란입니다. 지난 총선부터 병립형을 준연동형으로 바꾸었지만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창당하고, 민주당이 맞대응 함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위성정당을 금지시키라는 국민적 요구에 따라, 민주당은 위성정당 금지 입법에 노력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실패했습니다.
거대양당 한쪽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패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맞은 편 역시 대응책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될 위성정당 논란을 없애고, 준연동제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는 이 악순환을 피하려면 위성정당을 반드시 금지시켜야 하지만, 여당이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병립형 회귀를 우리 민주당이 수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제3의 길을 추진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병립형 비례를 채택하되, 민주당의 오랜 당론인 권역별 비례에 이중 등록을 허용하고,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소수정당 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수정당을 위한 의석 30% 할당 또는 권역별 최소 득표율 3%에 1석을 우선 배정하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3개 권역에 3%씩 고루 득표하는 소수정당은 3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정당 배제 문제는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여당은 소수정당 보호 그리고 민주당이 요구한 이중 등록을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이제 민주당은 권역별 병립형으로 회귀하거나, 준연동제하에서 여당의 반칙에 대응책을 마련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권역별 병립형은 지역주의 완화 그리고 민주당에 유리하지만 소수정당이 피해를 입습니다.
여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맞대응해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것은 반칙에 반칙으로 대응하는 것이어서 정당방위지만 준연동제가 껍데기만 남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국민이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준연동제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한걸음 진척된 소중한 성취입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습니다. 깨어 행동하는 국민들께서 ‘멋지게 이기는 길’을 제시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위성정당 금지법을 거부한 여당은 이미 아시는 것처럼 위성정당을 창당하고 총선승리를 탈취하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여당의 이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정권 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습니다.
‘민주개혁 선거 대연합’을 구축해서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이끌어 내겠습니다. 민주개혁 세력의 맏형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이행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반칙이 가능하도록 불완전한 입법을 한 것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국민께 약속드렸더린 위성정당 금지 입법을 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결국 위성정당에 준하는 준(準)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이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어떤 결정도 모두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대의를 따라, 국민만을 믿고 가겠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민주개혁 세력의 총단결로 대한민국의 퇴행을 막고, 총선승리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재명, 병립형 등 넉달 갈팡질팡… 총선 65일앞 도로 “준연동 유지”
[또 위성정당 총선]
이재명, 당초 ‘병립형 회귀’ 추진
야권 원로-현역 80명 반발 이어지자… ‘범야권 결속 더 중요’ 판단한 듯
與도 시간만 끌다 위성정당 창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부터 선거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4개월간 오락가락 행보를 반복해 왔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위성정당을 금지하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통한 다당제 실현”을 공약했던 그는 현행 ‘준연동형’ 유지와 과거 ‘병립형’ 회귀 사이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갈팡질팡 행보를 보여 왔다. 이 대표가 결심하지 못하자 친명(친이재명)계 지도부는 선거제 결정을 위한 전(全) 당원 투표를 시도하다 당 안팎에서 “무책임하다”는 거센 반발이 일자 철회하고 2일 당론 결정을 이 대표에게 위임했다. 이 대표는 결국 총선을 65일 앞둔 5일에야 현행 유지 방침을 확정했다. 국민의힘도 “병립형으로 회귀하지 않는다면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나서면서 결국 거대 양당이 시간만 끌다가 선거에 임박해서야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30일 선거제 관련 첫 입장을 밝히며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당시 사실상 ‘병립형 회귀’를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연동형’을 촉구하던 김부겸, 정세균 전 총리 등 야권 원로들과 현역 의원 80여 명의 반발이 이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연말연초 이낙연 전 대표와 비명(비이재명)계 탈당이 이어지면서 이 대표로서도 더 이상의 야권 분열은 어렵다는 판단에 다시 준연동형으로 기우는 듯했다”고 했다.
그러다 올 초 들어 이 대표는 총선 목표로 “151석, 단독 원내 1당”을 제시하며 다시 병립형 회귀에 힘을 실었다. 야권 연합이 아닌 민주당 단독으로 원내 1당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친명계도 “‘병립형 비례제’를 유지해야 이 대표 중심의 비례대표 공천이 가능하고, 민주당의 총선 승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선거제 퇴행”이란 비판을 고려해 국민의힘과 전국을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 3개 권역으로 나눈 뒤 비례의석을 정당별 비례득표 비율대로 나누는 방안에 대해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려다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공을 넘겨받은 이 대표가 결국 ‘준연동형 유지’를 택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차기 대선까지 바라본 표 계산”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2대 총선에서 원내 입성을 목표로 하는 범야권 세력과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이들과의 연합이 필요한 이 대표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2022년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패했던 만큼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범야권 결속이 더 중요해졌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 전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찾은 이 대표에게 “민주당과 우호적인 제3 세력까지 한데 모아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정치를 바꾸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대선에서도 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풀이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 예방 후 이어진 최고위원들과의 만찬에서 사실상 결론을 내렸음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과거 민주당 주류였던 분들의 생각이 (준연동형 유지) 흐름이었기 때문에 그걸 혼자 (원점으로) 되돌리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9월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우리 당 입장은 대단히 단순하고 선명하다. 왜냐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병립형으로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민주당이 선거제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내내 병립형을 주장한 자신들의 입장을 민주당에 설득하는 정치력을 보이지 못했다. 선거제 문제를 “플랜B”라며 준연동형 유지 시를 대비해 자체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창당을 준비해 왔다.
‘연동형’ 정당 난립[오후여담]
헌법은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다. 목적·조직·활동이 민주적이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도 준다. 1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50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을 필두로 원내 의석을 가진 6개와 원외 정당 43개다. 지난달 25일 창당작업을 완료해 정식 등록한 개혁신당이 막내다. 여기에 통합을 추진 중인 ‘새로운미래’ ‘미래대연합’ 등 창당준비위원회가 10개다. 오는 4·10 총선에서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후보를 낼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 60개다.
총선 참여 정당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폭증했다. 인물·정당의 교차 투표가 가능한 1인 2표제를 처음 도입한 17대 총선(2004년) 15개, 18대 총선 17개, 19대 총선 19개, 20대 총선 25개였는데 21대 총선에선 41개로 늘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때문이다. 비례대표 선거에만 35개 정당이 쏟아져나오면서, 48.1㎝라는 역대 가장 긴 투표용지가 만들어졌다. 현재의 60개 정당·창당준비위 가운데 합당 등 이합집산과 후보 등록 포기로 줄어들어 50개 정당이 후보를 낸다고 쳐도 직전 선거 대비 총선 참여 정당 수가 20% 이상 늘어난다.
사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사표 방지와 소수 정당 원내 진입을 통한 국회 다양화를 명분으로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모방했지만 배경은 정반대다. 독일의 경우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완전 비례대표제의 의회가 군소 정당이 난립해 정국 불안을 야기하자 지역구 선거를 결합했다. 한국은 거꾸로 지역구 선거가 양당 과점 현상을 낳는다는 이유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연동형으로 바꿨다.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인 나라에서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것은 분명히 이상현상이다.
당명을 보면 통일, 자유, 민주, 평화, 미래, 환경, 혁명 등 정치 지향뿐만 아니라 자영업, 농민, 기독, 노인, 여성 등 계층과 직군 대표를 표방한 경우도 있다. 당명이 가장 오래된 정당은 1930년 임시정부 때 창당된 한국독립당으로, 한동안 중단됐다가 2007년에 다시 등록됐다. 민주당은 1955년 창당을 기원으로 삼지만 현재 당명은 2015년 개명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정당은 1834년 창당한 영국의 보수당이다. 우리가 역사 깊은 정당을 갖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선거제 후퇴'는 피했다…민주, '연동형 비례·위성정당 창당' 당론 결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4·10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선거제와 관련해 현행 준연동형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통합형 비례정당'을 설립해 의석 손실을 막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당은 병립형 회귀 요구를 거절한 점에 대해, 제3지대 정당들은 또다시 위성정당 창당을 결정한 것에 대해 각각 비판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걸음"이라며 "과거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이 직접 선택한 정당의 득표율에만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병립형 비례제 회귀가 아닌, 지역구를 포함한 정당의 전국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 방침을 결정한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놓고 현행 준연동형 유지와 병립형 회귀를 두고 전(全) 당원 투표를 검토했으나, 지도부 논의 끝에 모든 결정을 이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한 바 있다. 병립형 회귀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에게, 연동형 유지는 제3정당들에게 보다 유리한 제도로 꼽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선거의 유불리 및 명분 등의 문제를 두고 양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해왔다.
이 대표는 "위성정당금지법을 거부한 여당은 이미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총선승리를 탈취하려 한다"며 "안타깝지만 여당의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인정하겠다"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반칙이 가능하도록 불완전한 입법을 한 것을 사과드린다. 약속드린 위성정당 금지 입법을 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 결국 준(準) 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통합형 비례정당'을 창당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이 연동형 선거제도 우회를 위해 준비 중인 위성정당 '국민의미래'와의 차이를 강조했다. 100% 국민의힘 후보로 구성된 국민의힘 위성정당과 달리 "(민주당 비례정당은) 민주당만 지향하는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이 아닌 준연동형 제도가 추구하고 있는 소수정당들과 소수 정치세력의 후보들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줄곧 '병립형 회귀'를 주장했던 여당은 날선 비판을 내놨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의 준연동형 유지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그(준연동형) 제도는 왜 이렇게 계산돼야만 하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필연적인 근거가 없다"면서 "선거제를 앞두고 왜 한 사람(이 대표)의 의사가 무엇인지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집중해야 하는 건가.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4월 10일 선거에서 이것을 심판하지 못하면 이재명 대표 눈치를 계속 보고 살아야 하는 민주주의의 파탄이 더 심화되고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3정당들도 일단 연동형 유지 사실을 환영하면서도, 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는 "병립형 회귀가 아닌,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주장해온 녹색정의당의 입장으로서는 최악은 피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여긴다"면서 "(현재까지 선거제에 대한) 절충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것은 근원적으로 병립형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한 국민의힘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상임대표는 "(이 대표가 주장하는) '통합형 비례정당'이 2020년 더불어시민당과 같은 형태라면 시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치개혁과 다당제연합정치를 위한 조건은 단순히 정치적 리더의 결단만으로는 부족하고, 선거연합정당의 제도화, 결선투표제의 전면화,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의 제도보장이 동반될 때만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준위성정당 창당은) 기존 양당독점 정치구조와 정치양극화의 폐해를 극대화하는 망국적 발상"이라며 "제3의 정치적 견해마저 양당 카르텔에 편입시켜, 정치적 다양성을 억누르고 정치적 양극화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지금의 양당은 대한민국을 추락의 위기로 몰아넣은 공범"이라며 "그들의 무책임한 적대적 공생의 음모를 국민이 깨뜨려 주셔야 한다. 우리도 국민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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