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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쁘다 어원 자료

by noksan2023 2025.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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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어원 자료

 

 

바쁘다 바빠

 

 

 

‘바쁘다'는 그 뜻이 여러 가지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① 일이 많거나 또는 서둘러서 해야 할 일로 딴 겨를이 없다

② 몹시급하다 

③ 어떤 행동이 끝나자마자 곧의 뜻을 나타낸다(~하기 바쁘게)

④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

 

의 네 가지 뜻이 있다. ④는 주로 북한과 중국에서 쓰이는 뜻이다. ‘요즈음 놀기 바쁘다'란 말을 들은 남한 사람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지만, 북한 사람이나 중국의 우리 동포들은 ‘노는 일이 힘들다'는 뜻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일에 열중하니 힘들다'라고 해석되어서 남한에서는 그 단어의 바쁜 상태를, 북한에서는 바쁜 결과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비쁘다'의 ‘바쁘'는 언뜻 보아 더 이상 분석이 되지 않을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숨이) 가쁘다, 기쁘다, 나쁘다, 미쁘다, 어여쁘다, 예쁘다' 등을 연상하면 어기에 접미사 ‘-쁘'가 통합된 것으로 연상할 수 았을 것이다. 그러나 접미사는 ‘-쁘'가 아니라 '-브'였다. 어기의 말음에 ‘ㅅ' 등이 있어서 ‘ㅅ-브다'가 ‘-쁘다'로 된 것이다. 그러니 ‘바쁘다'는 ‘밧'에 ‘-브다'가 붙어서 ‘밧브다'가 되었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바쁘다'가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世間앳 밧바디 아니한 이랄 한대 니르디 아니할씨오<1459월인석보, 10, 21a> 

이우즐 사괴면 밧븐 제 이셔도 서르 구완하리라<1518정속언해, 13a> 

밧발 망(忙)<1576신증유합, 下, 7a>

바빨 망(忙)<1700영장사판유합, 21b>

밧빤 제 이 약 업거든 병 업산 아희 똥을 살아 꿀믈에 빠 머기라<1608언해두창집요, 하, 32a>

 

그렇다면 ‘밧'은 무엇일까? ‘밧-'은 원래는 ‘밫-'이었다. ‘바차, 바차시니' 등으로 활용하였지만, 주로 ‘바차'형으로 사용되었다. ‘밫다'는 여기에 대응되는 한자가 ‘忙'이어서 ‘밫다'는 ‘바삐하다'란 뜻이었다. 그래서 ‘바차'는 오늘날의 ‘바쁘게 하여, 바빠서'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간 ‘밫-'에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의 사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그 이유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東南門 노나샤매 늘그니 病하니랄 보시고 마삼을 내시니 西北門 노니샤매 주그니 比丘僧을 보시고 더욱 바차시니<1447월인천강지곡, 상, 16a> 

셔방님꾀 마차 유무 보듸 답장 몯하노라<1565순천김씨언간>

바차 말오 저희야 공부 드려 다으게 하라(不要忙)<1517번역박통사, 상, 10b> 

안직 말 타디 말라 바차 므슴 할다(休且休上馬 忙)<1517번역박통사, 상, 39a>

 

‘밫다'는 15세기와 16세기 문헌에 등장하지만, 17세기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16세기 자료인 「번역박통사」(1517)의 ‘바차 말오'와 ‘바차 므슴 할다'가 「박통사언해」(1677)에는 각각 ‘밧바 말고'와 ‘밧바 므섯하리오'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즉 ‘바차'가  ‘밧바'로 변한 것이다.

 

이 ‘밫다'의 어간 ‘밫-'에 접미사 ‘-바 /-브'가 연결되면 ‘밫-'은 ‘밧-'으로 표기되어 ‘밧바다 / 밧브다'로 쓰였다. 이것이 어중에서 된소리로 되어 ‘바빠다 / 바쁘다(또는 ‘밧빠다 / 밧쓰다)'로 표기되고 현대국어에 와서 이것이 ‘비쁘다'가 된 것이다.

 

어쩌케 하얏스면 아모도 모르게, 아모도 모르는 동안에, 하로 바삐, 이 新式 三層 洋屋을 지어서 世上 사람들을 놀래 보일가!<1921표본실의 청개구리, 119> 

어데 가시나요. 바뿌시겟지요. 나도 나왓든 길에, 좀 갈 데가 잇스니까. <1922제야, 43>

한참 바쁜 농시방극에 뭘 바라고 오느냐고 다가튼 질문이다.<1933총각과맹꽁이, 16> 

앞으로 꼭구라지기가 바뿌게 몸체 풍덩 빠져 버렸다. <1936모밀꽃필무렵, 301> 

학교 당국은 하로 바삐,성의 있고 책임 있는 태도로 돌아가는 동시에,약속한 바 의무를 충실히 이행을 하여야 할 것이다. <1948도야지, 7>

저무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바뻐진다. 여러 가지 내음새가 나기 시작한다. <1949날개, 15>

 

물론 15세기와 16세기에 ‘밫다'와 ‘밧바다 / 밧브다'는 동시에 사용되었다. ‘밫다'의 뜻이나 ‘밧바다 / 밧브다'의 뜻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서 ‘밫다'가 오래전부터 쓰였는데, ‘밧바다 / 밧브다'가 만들어진 이후 그 세력이 약해져 17세기에 그 자리를 ‘밧바다'에 넘겨 준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바다 / -브다' 접미사가 붙은 어기들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미 그 흔적이 님아 있지 않은 것들도 있다.

 

‘(숨이) 가쁘다'는 ‘갃- + -브 + -다'로 분석되는데, 이것은 15세기에 ‘갓바다 / 갓브다'로 나타난다. ‘힘들이다, 애쓰다'란 뜻의 ‘갃다'는 ‘갓가, 갓갈' 등으로 쓰였지만 17세기 이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쁘다'도 ‘갃- +
-브 + -다로 분석되는데, 이것은 ‘깃브다'로 표기되었다. ‘긳다(기뻐하다)'도 ‘깃거, 깃글' 등으로 쓰였는데 이 단어는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다. ‘미쁘다'도 ‘믿- + -브 + -다'로 분석되는데, ‘믿다'는 15세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활발히 사용되는 단어다. 그러나 ‘어여쁘다'는 ‘어앗- + -브 + -다'로 분석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15세기에도 ‘낟바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쁘다' 역시 15세기에 ‘낟바다'로 나타나기 때문에, ‘낟-+ 바 /-브 +-다'로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같은 뜻을 가진 ‘낟다'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단어가 단일어로 생겨나서, 그 이후에 약간의 의미를 가감 또는 변화시켜 파생어를 만든 후, 두 단어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치열한 것으로 보인다. 뜻이 같아지면 둘 중에 하나는 사라지는 운명에 놓이고, 조금이라도 의미차이가 생겨 둘이 사이좋게 생명을 유지하는 단어의 생태를 보면 신비로울 뿐이다.

 

 

김연아 바쁘다 바빠

 

 

 

“배우가 먼저 웃으면서 관중에게 웃음을 강요하면 웃기도 바쁘거니와 웃는 경우에도 그것은 면구한 웃음으로밖에 될수 없다.”(조선말대사전)

 

‘바쁘다’는 남북이 같이 쓰는 말로 ‘겨를이 없다’ 혹은 ‘매우 급하다’, ‘어떤 일이 끝나자마자 곧’의 뜻이다. 보기에서 ‘바쁘다’는 ‘웃을 겨를이 없거나 웃기에는 급한 상황’이 아니라, ‘웃기에 그 상황이 매우 딱하다’는 뜻이다. 북녘에서는 ‘바쁘다’를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는 뜻과 ‘매우 딱하다’란 뜻으로도 쓴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안 해서 대학 가기 바쁩니다”라고 하면, ‘대학 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흘 동안에는 좀 바쁘겠는데”라고 하면, ‘사흘 동안에는 좀 어렵다’는 뜻이다.

 

‘겨를이 없다’와 ‘어렵다’는 의미적 관련이 있다. ‘겨를’은 ‘시간적인 여유’를 뜻하고,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는 ‘능력의 여유나 인내심의 여유가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뜻은 ‘여유가 없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일을 며칠 내에 하기 바쁘다’라고 하면 ‘며칠 내에 할 시간 여유나 능력의 여유가 없다’는 뜻도 되고, 그래서 ‘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대학 가기 바쁜 것’은 ‘대학 갈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고 ‘대학 갈 실력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바쁘다’는 ‘여유가 없다’는 기본적인 뜻을 지니고, ‘-기(가) 바쁘게’의 꼴로 쓰여서 ‘곧’의 뜻을 나타내며, 북녘말에서 ‘매우 딱하다’의 뜻을 가진다고 하겠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아마도 '바쁘다'일 것이다. 바쁜 사람은 인생을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다른 사람보다 더 길게 살 것이라 생각하나 정말 그럴까? 바쁜 사람은 이렇게 바쁜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늘 말하곤 한다. 곧 이 일을 그만둘 것이라 말하고, 은퇴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상도 많다.

실제로 교외에 땅을 사기도 하고, 전원주택을 매입하기도 하고, 텃밭을 가꾸고 하며 미리 자신을 단련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바쁘게 사는 것은 인생을 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짧게 사는 것이다. 물론 게으르게 살아야 한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유훈으로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네카 선생의 말처럼 은퇴 이후의 설계는 어쩌면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확신일 수 있다. 그때까지 산다고 누가 보장을 하는가? 오래 사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길어진다.

'바쁘다'는 우리말은 인생을 길게 살기 위한 방법을 역으로 보여준다. 바쁘다는 말은 밭다와 '브'가 합쳐진 말로 보인다. 밭다는 말은 잦다 혹은 짧다는 의미의 단어다. 기침을 밭게 한다고 하면 자주 한다는 의미다. 밭은 기침소리라는 표현도 한다. 어떤 일을 계속 자주 해야 한다면 바쁠 수밖에 없다. 잦은 업무, 잦은 만남, 잦은 회식, 잦은 외출, 잦은 술자리는 우리 모두를 바쁘게 한다.


'바투'라는 부사는 '밭다'와 관련이 있는데 짧다는 뜻이다. 줄을 바투 잡았다는 말을 줄을 짧게 잡았다는 뜻이다. 늘 시간을 짧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바쁘게 만든다. 바쁘면 많은 일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짧게 만드는 일이다. 시간이 짧게 느껴지니 바쁠 수밖에 없다. 짧은 휴식, 짧은 명상, 짧은 기도는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우리는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한다. '빠르다'는 말도 바쁘다와 관계가 있다. 고어에서는 빠르다는 말이 조급해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시간이 빨리 가니 조급할 수도 있겠다. 빠듯하다는 말도 바쁘다와 관련이 있다. 된소리는 후대에 생긴 말이다. 원래 빠르다는 바르다, 빠듯하다는 '바듯하다'였다.

'바로'라는 말도 '바르다'에서 왔다. 바르다는 물론 빠르다와 관련이 된다.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답답함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가 '곧'이라는 말과 바꿔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바르다는 말과 곧다는 말이 유의어이기 때문이다. 바른 것이나 곧은 것이 왜 나쁘겠는가? 단지 참지 못하고 조급해 하는 마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바싹'이나 '바짝'도 '바쁘다'와 관계가 있는 단어로 보인다. 바싹이나 바짝은 짧다는 의미와 관계가 있다. 짧게, 가깝게 만드는 것이 바싹이고, 바짝이다.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이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바짝 말라버린 논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뭐든지 빠른 게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빨리 지나가는 시간은 보지 못한다. 시간을, 인생을,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생은 짧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숨이 찰 수밖에 없다. 잠깐의 틈이라도 나면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길다. 미루지 않아야 인생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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