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객, 그리고 나그네 어휘 자료
남의 집에 찾아와 임시로 묵는 사람, 또는 초청을 받아 주인을 찾아온 사람을 '손'이라고 한다. 주로 높임 접미사 '-님'을 붙여 '손님'의 형태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안에서 손을 맞아 대접하는 것을 '손겪이'라고 하고, '손을 겪는다'고 표현한다. 이 때 겪는다는 말은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는 말이다.
"말로 온 동네를 다 겪는다."
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직접 음식을 대접하지 않고 말로 때우고 만다는 말이다. '손을 치르다'도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말인데, 대체로 겪다에 비해서 공식적인 맛을 풍긴다. 즉 겪다는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대접함을 의미하지만, '치르다'는 날짜를 잡아서 손님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는 자기를 찾아와서 묵거나 최소한 자리에 앉아 무슨 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럴 작정으로 주인을 찾아온 사람을 '손'이라고 했다. 즉 주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손'이 되는 필요조건인 셈이다. 만일 그가 주인과 그런 관계를 맺지 않고 그냥 들어왔다가 나가려 했다면 '손'이라고 하지 않고 특별히 '지닐손' 또는 '과객(科客)'이라고 했다. '지닐손'은 그야말로 지나가는 나그네이거나 주인에게 물을 한 잔 얻어먹고 가는 정도의 나그네를 가리킨다.
'손'을 한자어로 '객(客)'이라고도 한다. '객이 찾아왔다'와 '손이 찾아왔다'는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용법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 그 차이란 주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관한 것인데, '객'은 나와 관계없이 우연히 찾아온 사람일 경우에 쓰이고(이 경우의 '객'은 나그네에 가깝다.) '손'은 내가 대접해야 할 사람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손님'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음식점에 음식을 사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이나 편의점에 물품을 사러 들어온 사람은 '손님'이지 '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객'이 '손'보다 좀 헐하게 다루어질 만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고, '객'은 끝까지 당사자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구경꾼'의 자리에 있게 되는 면이 있다.
'손'과 구별해셔 써야 할 낱말로 '나그네'가 있다. 나그네는 자기 집을 떠나 일시적으로 객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객지에 머물러 사는 사람뿐 아니라 객지에서 객지로 며칠씩 묵고 다니는 사람도 나그네이고, 집을 떠나 일정한 곳을 향하여 가는 사람도 나그네이다. 따라서 여행자, 업무로 출장을 간 사람은 다 나그네에 해당한다. 나그네가 자기에게 다가오면 그 시점에서 자기가 맞아야 할 '손'이 된다. 나그네 가운데에서 먼 길을 가는 나그네를 특별히 '길손'이라고 한다. 해남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이 대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그는 나그네이면서 길손이다. 그러나 그가 목적지인 서울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나그네'라고 해야지 '길손'이라고 하면 안 된다. 길손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지점을 향해 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이 사람이 아닌 귀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로 민간에서 '손 없는 날'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는데, 이사나 여행을 방해하는 귀신(이것이 손이다)이 있는 방향으로 이사나 여행을 하면 화를 당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사나 여행 전에 움직이려는 방향에 손이 있는지 없는지 점을 쳐서 확인한다. 보통 손은 초하룻날과 초이틀날에 동쪽에 있고, 사흗날과 나흗날은 남쪽에 있고,닷샛날과 엿샛날은 서쪽, 이렛날과 여드렛날은 북쪽에 있고, 아흐렛날과 열흘날이 되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서 각 방향으로 이사하려는 사람은 가려는 방향에 손이 있는 날을 피한다.
마지막으로 '손'이 조사로도 쓰인다. 주로 추측이나 가정의 의미를 보태기 위해서 보조사로 쓰이는데
"사정이 아무리 위급했다손 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처럼 '손'은 뒤에 '치더라도'와 호응되어 사용되는 보조사다. 이런 '손'이 사람의 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우연히 형태가 같아지게 되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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