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하다 어원 자료_난감하고 머쓱하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는 ‘시방’이나 ‘짠하다’와 같이 사투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표준어인 것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일상 대화에서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뻘쭘하다’라든지 ‘빡세다’ 같은 표현은 과연 어떨까?
먼저 ‘뻘쭘하다’가 사용되는 상황을 보면 대개 뭔가 어색하거나 서먹서먹하고 계면쩍게 느끼는 경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혼자 뻘쭘하게 있다가 왔다.’와 같이 쓰곤 하는데, 이렇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뻘쭘하다’나 ‘뻘춤하다’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비표준어이다. 그래서 공적인 상황에서는 뻘쭘하다를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한다. 대신 '버름하다'로 수정해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언어생활의 모습이다.
그리고 ‘훈련을 빡시게 받는다.’ 또는 ‘일을 빡세게 했다.’와 같이 표현하는 것도 종종 들을 수 있는데요, 이 ‘빡시다’나 ‘빡세다’ 같은 표현은 경상도 지역에서 ‘힘들다, 억세다, 뻑뻑하다’와 같은 뜻으로 주로 쓰이는 말이고, 표준어로 인정된 표현은 아니다.
‘뻘쭘하다’나 ‘빡세다’ 같은 표현들은 주로 인터넷에서 사용되다가 일상적인 말로 굳어져서 일반 대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언어는 주로 구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구어체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여러 지방의 방언도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언어의 오용이라는 면에서 생각한다면 상황에 맞게 잘 가려서 쓰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여 난감할 때, 나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 무안할 때, 자기가 한 일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 멋쩍을 때 '뻘쭘하다'라는 말을 쓴다. 곧 '뻘쭘하다'는 '난감하다, 무안하다, 민망하다, 멋쩍다, 어색하다' 등과 의미가 통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의 '뻘쭘하다'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신문을 검색해보면 '어색하고 민망하다'의 '뻘쭘하다'는 <한국일보 2001년 4월 5일 자> 기사에서 처음 검색된다.
그렇다고 '뻘쭘하다'가 예전에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어형과 의미가 달랐으나 일찍부터 쓰였다. '뻘쭘하다'가 <조선어사전 1938>에 '벌쯤하다'로 보이며, '버름하다(물건의 틈이 꼭 맞지 않다)'로 풀이 되어 있다. '벌쯤하다'에서 변한 '뻘쭘하다'도
"한사코 방문을 뻘쭘하게 열어 놓고 출입하는 아내의 버릇을 매도한다." (김원우, <짐승의 시간> 1985)
에서 보듯 그러한 의미를 딘다. '뻘쭘하다'가 '벌쯤하다'에서 변한 것이므로 그 어원 풀이는 '벌쯤하다'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추정컨대 '벌쯤하다'는 근대국어 '벌즘하다'로, '벌즘하다'는 중세국어 '벌즈슴하다'로 소급하지 않나 한다. '범즘하다, 벌즈슴하다'는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나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형인 '벌즈슴하다'는 동사 어간 '벌-'과 '즈슴하-'가 결합된 구조다. '벌다'는 '틈이 나서 사이가 뜨다'의 뜻이고, '즈슴하다'는 '격(隔)하다'의 뜻이므로 '벌즈슴하다'는 '물건의 사이가 벌어져 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어사전 1938>에 당당히 올라 있던 '벌쯤하다'가 <큰사전 1950> 이후의 사전에는 '버름하다'의 비표준어로 처리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2008>에는 '어색하고 민망하다'를 속되게 이르는 '뻘쭘하다'가 올라 있어 주목된다. '물건의 사이가 벌어져 있다.'는 그 본래의 의미를 배제하고 '어색하고 민망하다'는 새로운 의미를 내세운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버름하다'와 '뻘쭘하다'의 지시 의미가 분명해졌다. 다만 사전이 '뻘쭘하다'에서 그 본래의 의미를 배제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뻘쭘하다'가 새로 얻은 '어색하고 민망하다'는 의미는, '물건의 사이가 벌어져 있다'에서 '사람의 마음이 맞지 않아 사이가 뜨다'로 의미가 변한 뒤에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섬서해지고(서먹해지고) 그러한 관계가 지속되면 민망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뻘쭘하다'를 '얼쯤하다(행동 따위를 주춤거리다)'에서 온 말로 보기도 한다. 물론 이는 잘못으로 보인다. 다만 '얼쯤하다'의 '쯤하다'는 '벌쯤하다'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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