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 관서 관북_철령관의 동쪽, 서쪽, 북쪽
참 뜻 : 관동지방이란 명칭은 고려 때부터 강원도 지방을 부르던 이름이다. 고려 때에 지금의 철령에 철령관이라는 관문(關門)을 두고 서울을 지키는 한편 변방에 대한 단속을 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그 동쪽을 관동(關東), 서쪽은 관서 (關西), 북쪽은 관북(關北)이라 했다.
바뀐뜻 : 관동은 지금의 강원도를 가리키고, 관서는 평안도, 관북은 함경도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예를 들어,
- 강원도의 절경인 금강산과 동해안의 풍광을 읊은 문학 작품으로는 정철의 「관동별곡」이 유명하지 않은가?
팔도
팔도가 뭐야?
‘팔도’라는 말을 들어 봤니?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거야. 그럼 팔도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팔도(八道)는 조선 시대 행정 구역을 이르는 말이야. 1413년 조선의 태종 임금이 한반도를 여덟 개의 도(道)로 나누었어. 바로 강원도ㆍ경기도ㆍ경상도ㆍ전라도ㆍ충청도ㆍ평안도ㆍ함경도ㆍ황해도이지. 그리고 1896년에 고종 임금은 다섯 개의 도를 다시 남과 북으로 나누었고, 1946년 전라남도의 관할이었던 제주도가 도로 승격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열네 개의 도가 있어. 하지만 ‘팔도’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나라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니? 재미있게도 당시 가장 번성했던 도시의 앞 글자를 따서 도의 이름을 지었어. 물론 예외도 있지.
경기도
경기도(京畿道) = 서울 경(京) + 경기 기(畿)
경기도는 도시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 아니야. ‘경기’는 ‘서울을 둘러싼 문지방’이라는 뜻이래. 즉, 서울 주변 지역을 말하지. ‘경기’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인 1018년(현종 9년)에 처음 사용되었어. 경기도를 나타내는 다른 이름은 ‘기전(畿甸)’인데, 두 글자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500리 안의 땅을 뜻해.
강원도
강원도(江原道) = 강릉(江陵) + 원주(原州)
조선 시대인 1395년(태조 4년)에 ‘강원’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어. 팔도는 각각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강원도는 ‘영동(嶺東)’ 또는 ‘영서(嶺西)’라고 불러. 이때의 ‘영’은 강원도에 있는 높은 고개인 대관령(大關嶺)의 ‘산봉우리 영(嶺)’ 자에서 가져온 말이야. 영동과 영서는 글자 그대로 대관령의 동쪽 또는 서쪽에 있다는 뜻이지.
충청도
충청도(忠淸道) = 충주(忠州) + 청주(淸州)
고려 시대인 1106년(예종 1년)에 정한 행정 구역인 ‘양광충청주도’에서 처음으로 ‘충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어. 양광충청주도에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 강원도 일부, 충청도 대부분의 지역이 포함되어 있어. 충청도를 나타내는 다른 이름은 ‘호서(湖西)’인데, 호서의 ‘호’는 ‘호강(湖江)’에서 가져온 말이야.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를 흐르는 금강의 옛 이름이 바로 호강이지. 그러니 호서란 금강의 서쪽에 있다는 뜻이야.
평안도
평안도(平安道) = 평양(平壤) + 안주(安州)
조선 시대인 1413년(태종 13년)에 ‘평안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평안도는 다른 이름으로 ‘관서(關西)’라고 불렸는데, 철령관(鐵嶺關)의 서쪽을 뜻해. 철령관은 철령이라는 높은 고개에 있는 ‘관(關)’인데, 관은 군사적 요충지에 세우는 요새를 말해.
함경도
함경도(咸鏡道) = 함흥(咸興) + 경성(鏡城)
함길도, 영길도, 영안도 등으로 불리던 지역이 1509년(중종 4년)에 ‘함경도’로 바뀌었어. 다른 이름으로 ‘관북(關北)’으로 불렸는데, 관서처럼 철령관의 ‘관(關)’ 자를 따온 말이야.
전라도
전라도(全羅道) = 전주(全州) + 나주(羅州)
고려 시대인 1018년(현종 9년)에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어. 그전에는 강남도, 해양도라고 불렀고, 조선 영조 임금 때는 전광도라고도 불렀어.
전라도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은 ‘호남(湖南)’이야. 호서와 마찬가지로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에서 따온 말로, 금강의 남쪽을 뜻해.
황해도
황해도(黃海道) = 황주(黃州) + 해주(海州)
조선 시대인 1417년(태종 17년)에 ‘황해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어. 광해군 때 황연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황해도가 되었지. 황해도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은 ‘해서(海西)’야. 해(海)’가 해주를 뜻한다는 말도 있고 예성강 하구를 뜻한다는 말도 있는데, 예성강 하구라는 쪽이 더 유력하대. 바다와 만나는 예성강 하구 서쪽에 있다는 뜻이지.
경상도
경상도(慶尙道) = 경주(慶州) + 상주(尙州)
고려 시대인 1106년(예종 1년)에 정한 행정 구역인 ’경상진주도’에서 처음 ‘경상’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어. 그러다 1314년에 ‘경상도’가 되었고, 1407년에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좌도, 서쪽을 우도라고 했대. 경상도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은 ‘영남(嶺南)’이야. ‘조령(鳥嶺)’의 남쪽에 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지. 조령은 우리말 ‘새재’의 한자어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야. 그만큼 높다는 얘기지.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 사이에 있는 문경 새재를 말해.
조선 팔도 사람을 평하라
조선을 세운 태조 임금 이성계가 하루는 학자인 정도전에게 조선 팔도사람에 대해 평해 보라고 했어. 그러자 정도전은 이렇게 말했어.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이고,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하고,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이며,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하고, 강원도는 암하노불(巖下老佛)하고,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입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경기도는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고, 충청도는 맑은 바람 속 밝은 달과 같으며, 전라도는 바람 앞의 가는 버들과 같고, 경상도는 소나무나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를 가졌으며, 강원도는 바위 아래의 늙은 부처와 같고, 황해도는 봄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하고, 평안도는 숲속의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는 뜻이야.
그러나 이성계가 태어난 곳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함경도에 관해서도 말해 보라고 재촉했지. 정도전은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어.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의 얼굴이 벌게진 것을 보고, 눈치 빠른 정도전이 말을 이었어.
“함경도는 또한 석전경우(石田耕牛)이옵니다.”
그제야 이성계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정도전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해. ‘이전투구’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강인한 함경도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 말이야. 반면, ‘석전경우’는 ‘자갈밭을 가는 소’라는 뜻으로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라는 의미가 있어. 이성계가 왜 좋아했는지 알겠지?
관서, 관동지방을 나누는 '관(關)'은 어디를 의미할까요?
흔히 우리나라 수능시험에서 장기간 수험생들을 괴롭힌 조선시대 가사문학 작품으로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이 꼽히곤 한다. 여기서 관동은 강원도를 뜻하는 말로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돼 금강산 및 관동팔경이라 꼽히는 명승지를 두루 유람한 뒤, 소감을 쓴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에는 관동지역만 있는게 아니라 관서지역도 있다. 지금은 북한지역인 평안남북도 일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관북지역도 있는데, 함경남북도 일대를 관북이라 칭해왔다. 한자 뜻 그대로 해당지역들이 각각 관(關)의 동쪽, 서쪽, 북쪽에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관은 한국사의 주요 분기점마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요충지, '철령관(鐵嶺關)'을 의미한다. 요새를 뜻하는 관이란 단어가 붙은 대표적인 곳으로 남부지역의 '조령관(鳥嶺關)'도 있다. 이 조령관의 경우, 경상도 지역을 의미하는 '영남(嶺南)'이란 말이 만들어진 배경이 됐다.
상대적으로 우리에겐 덜 알려진 '철령'은 오늘날 북한 강원도 회양군과 고산군 사이에 위치한 해발 685m에 이르는 고개를 뜻한다. 예로부터 중부지방과 관서, 관북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이름이 나있는 지역이라 요충지의 수비 요새 기능을 위한 '관'이 일찍부터 세워졌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의 왕조교체기에는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됐다.
고려는 1259년, 몽골제국과의 오랜 전쟁 끝에 화의하고 오늘날의 관서지역과 관북지역 일대를 모두 몽골에 할양했다가 관서지역은 90여년 뒤에 반환됐고, 관북지역은 공민왕 때 무력으로 되찾았다. 이때 관북 일대 영흥지역인 쌍성총관부 일대를 관할하던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가문이 원(元)나라에서 고려로 내투해 고려의 장군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387년,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내쫓고 중국의 새 주인이 된 명(明)나라는 과거 원나라에 속했던 영토를 자국 영토로 귀속시키겠다고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듬해인 1388년, 요동 일대에 철령위(鐵嶺衛)라는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고려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압록강 일대에 경비병을 보내고 양국 국경지대에 포고문을 내걸고 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명한 '철령위 문제'의 시작이다.
이에 당시 고려의 집권자였던 수시중 최영은 크게 분노하여 멋대로 월경한 명나라 경비병 21명을 죽이고 5명을 현지에 붙잡았다. 양국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최영은 당시 임금인 우왕의 명을 받아 요동정벌 계획을 발표했다. 이성계의 반대에도 불가하고 강행된 요동정벌에는 좌·우군 3만8000여명, 수송부대 1만1000여명을 포함해 약 5만의 병력이 동원됐다.
당시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좋지않은 고려 입장에서는 전 국력을 동원한 정벌이었지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따라 고려군은 국경을 넘지도 않고 돌아왔고, 오히려 개경에서 최영의 수비부대와 교전을 벌이게 됐다. 약 8000여명의 병력으로 수비에 나섰던 최영은 중과부적으로 참패했으며, 시가전까지 벌인 결과, 고려의 수도와 궁궐은 회군한 요동정벌군에 함락됐다.
이성계의 회군이 성공하고, 새로 고려의 조정이 재편되자 명나라는 곧바로 오늘날의 외교부격인 예부(禮部)를 통해 철령위 설치를 중지하겠다는 표문을 고려 사신에게 보낸다. 회군 당시 이성계 일파 및 일족들의 일사분란했던 움직임 등을 고려해, 오늘날에는 위화도 회군이 명나라 측과도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관(關)에 얽힌 이야기라면, 중국과 일본에도 관과 얽힌 지역들의 이야기는 많이 전한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안(長安)성이 위치한 '관중(關中)' 지역은 북쪽의 소관(蕭關), 남쪽의 무관(武關), 서쪽의 대산관(大散關), 동쪽의 함곡관(函谷關) 등 4개 관으로 둘러싸여있다고 해서 관중이라 불린다. 일본 본토 역시 크게 간사이(關西), 간토(關東) 두 지방으로 나뉘며, 기준이 되는 지점은 세키가하라(?ヶ原) 지역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직후 도요토미 계열인 서(西)군과 도쿠가와 계열인 동(東)군이 대규모 교전을 벌인 지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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