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_고구려 사람들의 스카이 맵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이름이다. 천상은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와 천문 현상을 뜻하고, 열차는 적도를 따라서 하늘의 구역을 12차로 나누어 차례대로 배열한 것을, 분야는 하늘의 별자리 영역을 지상의 각 영역과 서로 대응해서 나누어 놓은 것을 말한다.
유교에서 제왕의 으뜸 임무는 하늘의 모습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시간과 절기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옛사람들은 하늘의 현상이 땅에 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지상 세계와 별자리를 연계해 생각하였다. 그래서 별과 별자리에 역할과 의미를 부여하고 관찰하였다. 왕은 하늘의 뜻을 살펴서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로 보았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이런 왕의 역할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었다.
왕의 역할을 상실했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또한 자연스레 잊혀졌다. 1960년대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창경궁 안에 방치되었고, 소풍에 온 사람들이 그 위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였다. 이를 목격한 한국의 과학사 전공자들이 중국에 이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라는 사실과 우리 민족의 천문 기술을 증명하는 문화재라는 것을 강조하여 198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태조 이성계가 고구려의 천문도를 원본으로 하여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주장은 각석에 새겨진 당대의 학자 권근의 글을 근거로 삼는다.

원본이 고구려의 천문도라는 설명은 글 어디에도 없다. 이를 고구려 것이라고 해석한 사람은 1907년 한국을 방문한 서양 천문학자 루퍼스였다. 그의 주장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인용하고, 이를 한국의 과학사 전공자들이 다시 인용하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은 고구려의 천문도라는 해석이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글을 그대로 해석하면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에는 고구려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천문도를 만들었다는 애국주의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과학이 민족적 자긍심을 위해 증거를 외면한다면 그 설득력을 잃게 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통해 현대인이 알 수 있는 것은 옛사람들의 과학 기술과 그 속에 담은 생각이다. 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자세가 과학과 역사를 대하는 태도여야 하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1395년(태조 4)에 권근 등 12명의 천문학자들이 만든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각천문도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대리석의 앞면 윗부분에는 길이 141㎝, 폭 85㎝로 직사각형의 테두리가 있고 그 속에 지름 76㎝의 천문도 원이 그려져 있다. 상단의 천문도 원 안에는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하단에는 천문도의 명칭, 권근의 발문, 우주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동아시아의 전통 시대에 제작된 석각천문도를 대표한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석각(石刻)은 조선 태조 4년에 태조의 명에 따라 권근(權近) 등 12인의 천문학자들이 수년간 노력으로 천문도(天文圖)를 완성하고 이를 대리석 돌판에 새긴 것으로서,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1247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상단의 천문도 원 안에는 모두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天象列次分野之圖(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의 명칭과 권근의 발문과 우주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석각(石刻)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리석에 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석각천문도이다. 대리석의 앞면 윗부분에는 길이 141㎝, 폭 85㎝로 직사각형의 테두리가 있고 그 속에 지름 76㎝의 천문도 원이 그려져 있다.
천문도 원의 중앙에는 북극이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총 1,467개의 별들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 별자리의 이름이 해당되는 위치에 새겨져 있다. 이들 별들은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여 새겨져 있다. 또한 이 천문도에는 북극을 둘러싼 주극원(週極圓)과 28수(宿)를 구획한 경선(經線), 적도(赤道)와 황도(黃道), 은하수(銀河水) 등이 그려져 있다.
천문도의 방향은 마주 보았을 때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 위쪽이 북쪽, 아래쪽이 남쪽이다. 따라서 천문도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선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별자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천문도 안쪽의 주극원(週極圓)의 범위는 한양의 위도에 맞도록 설정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아랫 부분에는 상단 천문도 부분과 46㎝의 간격을 두고 ‘天象列次分野之圖(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의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다. 또한 그 아래에는 다시 2단으로 구분하여 윗단에는 우주론에 대한 기사와 28수 각각의 거극분도(去極分度, 즉 90도-적위)가 기록되어 있고, 아랫단에는 이 천문도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경과, 그리고 유방택(柳方澤, 1320∼1402)을 비롯한 제작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 성명 등이 적혀 있다.
아랫단에 적힌 권근의 도설(圖說)에 따르면, 옛날 평양성(平壤城)에 고구려의 석각천문도가 있었는데 병화(兵禍)에 의해 강물에 빠져서 잃어버린 것이 오래이며 그 인본(印本)도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태조가 조선을 새롭게 개창하자 그 인본을 가지고 있던 자가 그것을 바쳤고, 태조가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이 천문도를 세차운동에 따라 달라진 별들의 위치와 혼효중성(昏曉中星: 28수 중에서 저녁과 새벽과 정남쪽에 위치하는 별)의 위치를 새롭게 고쳐 만들어 석각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의 뒷면에는 앞면의 천문도와 아래위가 완전히 뒤바뀐 천문도가 별도로 새겨져 있다. 이 뒷면의 천문도는 마모가 심하여 28수의 경선(經線)과 적도, 황도, 은하수 등이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뒷면의 내용 구성은 앞면과 달리 ‘天象列次分野之圖(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제목이 맨 위에 새겨져 있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 그 나머지 내용에서는 모두 앞면과 똑같다. 이처럼 제목을 맨 위에 새긴 구성 방식은 1680년 숙종대에 다시 새긴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보물, 1985년 지정)과 일치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동아시아의 전통 시대에 제작된 석각천문도를 대표한다. 시기적으로는 중국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며, 새겨진 별의 숫자에 있어서는 순우천문도의 1434개를 상회하는 1467개의 별들을 수록하고 있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권근의 도설 등에 의거하여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래 별자리 그림이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며 조선 초기까지의 별자리 이동을 반영하여 새로 개정하여 새긴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 천문도의 별자리를 동정하여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천문도 속 별자리들의 위치를 세밀하게 동정하고 별자리 이동의 도수를 계산하여 천문도가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져 있는 별자리 그림은 구면인 천구(天球)에 나타나는 별자리를 평면에다 일관된 ‘투영법’과 규칙들을 적용하여 투사하여 그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천문도에는 적도와 황도가 모두 정원(正圓)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 결과 황도와 적도의 교차점인 춘분점과 추분점은 실제 위치와 차이가 있다. 나아가 별자리의 전체적인 크기와 상대적 위치 등도 정확히 계산하여 석판에 새겼다기보다는 외적인 형상과 대략적인 위치를 중시하여 새긴 것이다.
따라서 이 석각천문도에 새겨진 별자리의 위치를 가지고서 별자리 그림의 원래 연대를 밝혀내는 작업은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과연 태조 4년(1395)에 새겨진 것이 확실한지를 의심하는 주장들도 있다. 권근의 도설에는 이 천문도가 홍무(洪武) 28년, 즉 태조 4년(1395) 12월에 새겼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권근의 기록을 토대로 그동안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이 태조 4년에 새겨졌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순지(李純之)의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에는 세종 15년(1433)에 칠정(七政)과 28수의 거극분도(距極分度: 적도좌표계에서 북극과 떨어진 도수)를 측정하고 고금의 천문도를 비교 · 검토하고 수치들을 수시력(授時曆)주3을 토대로 수정하여 돌에 새겼다고 전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와 『서운관지』 등에는 이 이순지의 기록을 토대로 세종 15년에 새로운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고 적고 있다. 이런 기록들을 토대로 그동안 태조 4년에 새긴 것으로 알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이 실제로는 세종대에 새겨졌을 것이라고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위에서 소개한 기록들과 더불어 토대로 새로운 왕조가 개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태조 4년에 서운관에서 혼효중성과 별자리의 위치들을 새롭게 관측하여 고치고 이를 반영하여 석각본으로 새길 정도의 물적, 심리적,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정황을 토대로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이 태조 4년에 새겨진 것이라는 일반적 통념에 의심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태조대부터 준비된 천문도의 수정 작업이 세종대에 이르러서야 완료되어 석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추정한다. 이런 추정들을 고려하건대,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이 과연 태조대에 새겨진 것인지 아니면 세종대에 새겨진 것인지, 만약 태조대에 새겨졌다면 세종대의 석각천문도와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앞으로도 면밀히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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