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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두문자

어린이날 제정(1923. 5. 1.)_방정환, 천도교(동학)

by noksan2023 202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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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제정(1923. 5. 1.)_방정환, 천도교

 

 

 

 

 

 

1923년 5월 1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소년 운동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어린이를 윤리적 억압에서 해방하고 그들을 완전히 인격적으로 예우하라.

어린이를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유무상 노동을 폐지하라.

어린이들이 조용히 배우고 즐겁게 놀기에 충분한 가정과 사회 시설을 만들어라.

 

어린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이 잘 배우고 잘 놀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들은 애 녀석, 아해(아이) 놈이라 불렸다. 장유유서 등의 유교 윤리에 따라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어린이 운동을 이끈 방정환어린이라는 호칭은 젊은이, 늙은이와 동격이고, 어린이들도 인격을 지닌 존재로 높이자고 하였다. 

 

"잘 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

"새 조선의 일꾼은 어린이"

 

등 어린이는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존재라는 구호가 어린이날 포스터나 안내지에 등장하였다.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바뀐 데에는 천도교(동학)와 3·1 운동의 영향이 컸다. 

 

동학 2대 교 주인 최시형은 

 

"아이를 때리지 말라. 이는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

 

라며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라고 하였다. 이런 인간 존중 사상을 이어받은 천도교 소년 운동 지도자인 방정환은 

 

"어린이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기성 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들도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고, 그 자체로 독특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3·1운동은 식민지 한국인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와 신분, 성별의 차이를 넘어서 모두가 자유로운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 나갔다. 이에 청년 운동, 여성 운동, 형평 운동 등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천도교 소년회가 조직되어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동시에 민주주의가 싹트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천도교는 교단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위해 1인 1표제를 도입하였고, 독립운동의 지향점을 민주주의로 정하였다. 방정환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주체적이고 민주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어린이날

 

 

 

방정환

 

 

 

어린이날(영어: Children's Day)은 어린이들을 기리기 위한 연례 기념일로 여러 나라에서 기념일로 정하고 있으나, 날짜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롭고 씩씩하고 밝고 건강하고 예쁜 마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5월 5일이며, 초여름 날씨이다.

 

1. 역사

 

어린이날은 1857년 6월 둘째주 일요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첼시에 있는 보편주의 교회의 목사였던 찰스 레너드에 의해 시작되었다.

레너드 목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예배를 열었다. 레너드는 이 날을 "장미의 날"(Rose Day)이라고 명명했지만, 나중에 "꽃의 일요일"(Flower Sunday)로 이름을 바꾼 후 어린이날(Children's Day)로 명명했다.

어린이날은 1920년 튀르키예 공화국에서 4월 23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처음 선포되었다. 어린이날은 1920년부터 정부와 당시 신문이 어린이를 위한 날로 선호하면서 전국적으로 기념되었다. 그러나 이 기념일을 명확히 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공식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1929년 튀르키예 공화국의 설립자이자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국가적으로 공식 기념일로 선언했다.

 

2. 국제 기념일

 

여러 나라에서 국제 어린이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을 기념한다. 이는 19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아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World Conference for the Well-being of Children)에서 제정된 것이다. 6월 1일에 어린이 날을 기념하는 곳은 보통 공산주의 국가였고, 서유럽 등 대부분의 다른 국가는 다른 날에 어린이 날을 기념했기 때문에 국제 어린이 날은 공산주의 진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1954년부터 유엔하고 유네스코는 11월 20일을 세계 어린이날(World Children's Day, Universal Children's Day)로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3. 각국의 어린이날

 

아시아

 

대만

 

1931년 상하이시 정부는 중화자유협회에 4월 4일을 어린이날로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출하고,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승인을 받아 '사사아동절'을 제정했다. 1949년 국공 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대륙의 어린이날은 1950년부터 원래 4월 4일에서 국제 어린이날을 따라 6월 1일로 변경되었다.

국부천대로 정부를 대만으로 이전한 후, 대만은 계속해서 사사아동절을 기념했다. 제정된 지 60년이 지나서야 1991년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국정공휴일로 편입되어 "부녀절, 아동절 통합 휴가"(婦女節、兒童節合併假期)로 개칭되었다. 즉, 국제 여성의 날(3월 8일)과 어린이날(가끔 청명절과 겹침)을 4월 4일과 같은 날로 통합한다는 뜻이다. 1998년 이후에는 격주 5일제 시행으로 공휴일 지정이 취소되었다. 2011년부터는 다시 공휴일로 돌아와 하루를 쉬게 되었다. 2012년에 다시 법이 개정되어 청명절과 같은 날이면 전날인 4월 3일, 목요일이면 그 다음날이 휴일이 된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념일과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어른으로부터 '아이들, 애, 애들, 계집애' 등으로 불리던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 향상을 위하면서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 사상을 앙양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어린이날은 일제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학생들과 독립운동 지도자들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다. 1921년 방정환, 김기전 등에 의해 천도교소년회가 조직되었고, 천도교소년회가 1922년 5월 1일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경성 시내에서 '어린이의 날' 가두 선전을 한 것이 어린이날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듬해인 1923년 4월 17일에는 천도교소년회 주도로 조선소년군, 불교소년회 등 각 소년운동 단체들이 참여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결성되었으며, 이 조선소년운동협회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공식 채택하여 매년 행사를 열기로 하였다. 1923년 5월 1일은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주최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개최하기 시작한 제1회 어린이날이다. 한국의 어린이 인권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이 발표된 것도 이때다. 이날 방정환을 비롯한 일본 유학생들도 소년운동 활성화를 돕기 위하여 도쿄에서 색동회를 창립하였다. 5월 1일은 노동절하고 겹쳐서 일본 당국으로부터 감시와 탄압을 많이 받았다. 1927년에는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게 되고, 이듬해인 1928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에 행사를 진행했다. 일제의 탄압이 있던 1938년부터 중단되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살리기 위해 1946년 5월 5일에 다시 부활되었다. 1961년에 제정·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이후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5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베트남

 

베트남에서는 6월 1일 국제 어린이날과 음력 8월 15일 중추절을 어린이날로 기념한다.

 

인도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권리, 보호 및 교육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인도 전역에서 기념되고 있다.[23] 매년 11월 14일에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에게 경의를 표한다.[24] 아이들 사이에서 "차차 (삼촌) 네루"로 사랑받는 그는 어린이들에게 충실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장했다. 이 날에는 인도 전역에서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많은 교육 및 동기 부여 프로그램이 개최된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서는 7월 23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한다. 1984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일본

 

일본도 5월 5일이 단고노셋쿠(端午の節句) 즉, 단오이자 어린이날 (일본어: こどもの日 고도모노히[*], 남자 어린이의 날)로서 공휴일로 정해져 있다. 그 외에 3월 3일은 히나마쓰리(ひなまつり)로 여자 어린이의 날이지만 공휴일은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에 6월 1일이 국제아동절로 명명되어 지정되었으나, 공휴일은 아니다.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어린이날은 6월 1일이며, 한자로 아동절(중국어 간체자: 儿童节, 정체자: 兒童節, 병음: èrtóngjié 얼통지에[*])이라 한다. 원래는 1932년 4월 4일을 제 1회 어린이날로 지정하였으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탄생하던 그해 12월 23일 중국의 어린이날을 국제 어린이날과 통합하도록 하여 6월 1일이 되었다. 또한 중앙인민정부 교육부는 발표문에서 어린이날 날짜 변경 이유와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 날에는 부모와 어린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고, 상으로 공책, 연필 등을 시상하거나 각지에서 열리는 활동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낸다. 또한 ‘핀둬둬’(拼多多)‘가 공개한 중국 아동절(儿童节) 소비 데이터에 따르면 아동절 전 15일 동안 아동절 관련 상품을 구입한 성인 및 20세 이하 청소년은 전기대비 각각 317% 및 137% 증가한다.

 

태국

 

태국의 어린이날(태국어: วันเด็กแห่งชาติ)은 매년 1월 두 번째 토요일로, 총리가 보통 각각의 어린이날의 모토로 성명을 발표한다.

 

튀르키예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는 1920년 4월 23일에 설립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21년부터 4월 23일이 공휴일로 선포되었다. 1927년부터 4월 23일이 어린이날(튀르키예어: Ulusal Egemenlik ve Çocuk Bayramı, "국가 주권과 어린이의 휴일")이 되었으며, 이 날은 튀르키예와 (1979년부터)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식 휴일이다.

튀르키예에서는 경기장 공연 등 다양한 국내 기념 행사를 개최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터키 가정집에서 머물며 축제에 참여하는 "TRT 국제 어린이 어린이 축제"도 개최한다.

 

홍콩

 

영국령 홍콩에서는 1949년 이후에도 중화민국을 정통으로 여겼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의 "6월 1일" 어린이날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4월 4일"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이 관행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홍콩에서 4월 4일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종종 공휴일인 청명절과 같은 날이 된다.

 

 

 

[역사속 오늘·3.1·삼일절] 

방정환 잡지 ‘어린이’ 창간(1923)·대한항공 민영화(1969)·매주 수요일 ‘무주무육(無酒無肉)의날’ 지정(1950)·일본 만주국 세움(1932)

 

 

 

 

 

 

3월은 오는구나…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나태주 ‘3월

3월 March는 로마 신화의 군신 Mars의 달이라는 뜻. 봄을 나타내는 spring은 약동한다는 뜻

BC 69 박혁거세 태어남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 6부의 우두머리들이…강력한 왕을 옹립하기로 합의하였다. 의논을 마치고 높은 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밑에 이상한 기운이 전광처럼 땅에 비치는데…그 자리에 붉은 알 한 개가 있어 알을 깨자 용모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를 동천에서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지므로 그를 혁거세라 하였다.”-『삼국유사』

1919 기미 독립선언
-정오 서울을 비롯 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지에서 동시에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의 취지 밝히고 일경에 자수, 탑골공원에선 학생들이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시위는 온 나라로 확산 5월까지 지속, 집회 1,542회 참가 2,023,089명 사망 7,509명 부상 15,961명 피검 52,770명 불탄 교회 47 불탄 학교 2 불탄 민가 715(일본 측 발표)
-손병희·최린 등 천도교 측 인사들과 이승훈 등 평안도 기독교계 인사들이 독립선언 계획, 불교계 한용운 등이 참여해 천도교·기독교·불교 3개 교단이 독립선언의 주축이 됨, 독립선언과 일본에 대한 독립청원 병행,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3원칙
-간도·연해주·미국에서도 만세시위, 북간도=3.13 용정독립선언/서간도=3.12 류허현 싼위안푸독립선언/연해주=3.17 대한국민의회 주최 독립

1923 소파 방정환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 창간, 어린이라는 말 처음 사용
1924 소년척후단 조선총연맹(총재 이상재) 발족
1937 외솔 최현배 『우리말본』 간행
1943 일제 징병제 공포
1945 부산-신의주 복선철도 준공
1947 좌익은 남산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3.1절 기념식 충돌
1948 관상대 인천에서 서울로 옮김
1948 하지 주한미군사령관 5월 9일 총선거 실시 발표
1950 매주 수요일을 ‘무주무육(無酒無肉)의 날’로 정함
1953 북진통일촉진대회 유엔총회의장에게 북진통일 결의문 발송
1954 서울신문 연재소설 『자유부인』(정비석 지음) 1차 필화, 황산덕 서울법대 교수가 매카시즘적 공격, 논쟁은 작가가 승리
1960 파고다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기공
1963 쌀막걸리 제조 금지
1969 국토통일원 개원(초대장관 신태환)
1969 대한항공 민영화
1974 독일동포들 유신체제 타도 목표로 민주사회건설협의회 결성, 윤이상 송두율 등 참가
1978 한국의료보험공사 발족
1979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결성
– 재야인사들이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유신철폐와 민주정부 수립위해 싸울 것 다짐하는 ‘3.1민주구국선언’ 발표. 민주주의를 평화적으로 재건, 확립하고 민족통일의 역사적 대업을 민주적으로 이룩하기 위한 자발적이며 초당적인 전체 국민의 조직 천명. 공동의장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중앙위원회 의장 문익환 부의장 고은 함세웅
– 한국인권운동협의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해직교수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청년협의회 NCC인권위원회 등 13개 단체 가입

1980 하와이대학 한국학센터 기공식
1986 경제기획원 1985년 말 현재 외채 467억$라고 발표
1989 새 한글맞춤법 시행
1993 헬무트 콜 독일총리 방한
1995 케이블 TV 20개 채널 개국
2006 일본 북관대첩비를 북한 함북 김책시에 반환
2007 나무위키 등장
2012 서울 시내버스 정류소 전면금연 실시
2013 민통선 안에 있는 평화문화광장(철원)에 국경선 평화학교 개교
2021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받음
2022 화가 김병기(106세) 세상 떠남

 

1562 프랑스 바시에서 위그노(개신교 신자, 칼뱅주의자)들 학살당하면서 프랑스 종교전쟁 시작됨
1932 일본 만주국 세움
1935 자르 지방 주민투표로 독일에 귀속
1947 세계은행 업무 개시
1961 케네디 미대통령 쿠바와 단교
1961 평화봉사단 창설
1982 소련 무인우주선 비너스 3호 금성에서 사상 첫 컬러사진 전송
1995 클린턴 미대통령 200t의 농축 우라늄 플루토늄 제거 지시
1999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오타와 조약) 발효
2013 미국 연방정부 자동지출삭감(시퀘스터) 발효
2014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무장세력 공격 사망 33명 부상 140여명
2017 영국 반핵운동가·급진적 예술운동가 구스타프 메츠거 세상 떠남(90세)

 

 

어린이날의 역사적 과정

 

 

 

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하면 밝고 맑은 기상이 넘치는 ‘어린이날’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린이날 노래는 윤석중 작사·윤극영 작곡으로 1948년부터 부르게 되었는데, 1920년대부터 동요창작을 개척하던 작곡가 윤극영이 만주에서 광복된 고국에 돌아와 만든 첫 번째 동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은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2년 3월 16일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1923년 5월 1일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 배포되었는데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방정환은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부탁한 것이다. 첫 번째 어린이날의 구호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

 

1927년에는 5월 1일이 노동절과 겹쳐 어린이날을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이후 1939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1946년 다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196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명시하였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2018년부터 어린이날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그 다음 비공휴일을 대체휴일로 하는 방안이 적용될 예정이다.

 

 

 

 

1957년 선포한「어린이헌장 」, 1988년에 개정

 

1957년 2월 한국동화작가협회의 마해송, 방기환, 강소천, 이종항, 김요백, 임인수, 홍인순 등 7명은 「어린이헌장」을 작성하였고 보건사회부가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심의·보완·수정한 뒤 5월 5일 제35회 어린이날에 발표했다. 기본구상은 제네바 선언, 국제연합 아동헌장에 나타난 사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전문과 9개의 본문으로 구성된 헌장에는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하고, 참된 애정으로 교육해야 하며, 위험한 때에 맨 먼저 구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88년에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을 관계 전문가 30여 명이 수정하여 헌장을 개정하고 제66회 어린이날을 맞아 전문과 11개 조항을 공포했으나 법적인 효력은 없다. 전문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는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어린이상을 구체화’하였다. 개정되면서 2개 항목이 늘어난 11개 조항에는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

“몸이나 마음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빗나간 어린이는 선도되어야 한다”

 

등의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한편, 2015년 5월 전국의 시·​도 교육감이 모여 발표한 「어린이 놀이헌장」도 있는데, “어린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차별 없이 놀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놀 터와 놀 시간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다양한 놀이를 경험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놀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등 5개 항이 담겨 있다. ​

 

어린이는 몇 살?

 

어린이의 나이범위에 대해서는 각각 기준이 다르다. 만 13세 이하의 빠른 생일일 경우에는 중학교 1학년이라 하더라도 어린이가 되지만, 질병 등으로 인한 취학 유예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라도 어린이가 아니라는 정의도 있다. 아동의 신체적·심리적 발달을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에서는 6∼12세·13세까지, 즉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까지를 ‘아동기’라 부르므로, 아동기에 속하는 6세부터 13세까지를 어린이로 본다. 한편,「아동복지」 제3조(정의)에서는 어린이를 일컫는 아동의 연령 범위를 18세 미만인 자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어사전에서는 나이가 적은 아이, 보통 4·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에서는 어린이의 나이를 만 13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으며, 비행기·배·지하철 등 대부분의 여객 운송약관에서는 만 6세 이상 만 13세 미만으로 어린이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영화관·놀이시설 등에서 무료이용의 기준이 되는 어린이 요금의 나이 기준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날 행사도 시대 따라 변해

 

어린이날에는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기념식전에서는 어린이대표가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낭독하고 착한 어린이·청소년 시상 및 체육대회, 웅변대회, 글짓기대회, 가장행렬, 묘기시범,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를 거행한다. 시대에 따라 행사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대통령 내외가 참석하는 국가적 행사가 된 것은 1954년부터이다. 6.25전쟁의 영향으로 당시 대통령의 축하말은 반공 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1957년 어린이날에는 어린이 기자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취재했고, 창경원에서는 6.25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한 운동회가 열렸다. 1950년대에는 서울운동장, 창경원 등에서 기념식, 운동회, 우량아 선발대회가 개최됐다. 1960∼70년대에는 동물의 모습을 한 가장행렬단이 가두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1973년 5월 5일은 서울어린이대공원이 개장된 즐거운 날이었지만, 당시 어린이날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1972년부터 매년 5∼6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구호 아래 전국소년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통해 수영의 최윤희, 역도의 전병관 등 세계적인 선수가 배출되었다. 1980년대 이후 어린이날 행사가 청와대에서도 열려 초청된 어린이들은 대통령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1980∼90년대부터는 가족 단위로 어린이날을 보내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특히 놀이 공원에는 해마다 수 백 만 인파가 몰린다. 대공원 및 동·식물원 등에서는 어린이날 하루 동안 어린이의 무료입장도 실시한다. 1983년 어린이날부터 매년 ‘MBC 창작동요제’가 열렸고, 1987년 어린이날에는 최초의 TV판 한국 애니메이션 ‘떠돌이 까치’와 ‘달려라 호돌이’가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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