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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두문자

삼한 두문자 : 삼 저 분 소 계 두 독

by noksan2023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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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 마한 변한 진한

 

삼한 : 삼 저 분 소 계 두 독

삼 : 

저 : 수지 축조

분 : 제정

소 : 

계 : 5월 10월 절제

두 : 

독 : 무덤 널무덤

 

 

1. 

고조선 남쪽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이 성장하고 있었다. 진은 기원전 2세기경에 고조선의 방해로 중국과의 교통이 저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에는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에 의하여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어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사회가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났다. 마한은 천안⋅익산⋅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10여만 호였다. 그 중에서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변한은 김해⋅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진한은 대구⋅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변한과 진한은 각기 12개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4만~5만 호였다. 그 중에서 큰 나라는 4000~5000호, 작은 나라는 600∼700호였다. 삼한 중에서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을 이루고 있는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삼한의 지배자 중에서 세력이 큰 것은 신지, 작은 것은 읍차 등으로 불렸다.

 

삼한 사회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 사회였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경이 발달하였고, 벼농사를 지었다. 특히,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 왜 등에 수출하였다. 철은 교역에서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철기 시대 후기의 문화 발전은 삼한 사회의 변동을 가져왔다. 지금의 한강 유역에서는 백제국이 성장하면서 마한 지역을 통합해 갔다. 또, 낙동강 유역에서는 구야국이, 그 동쪽에서는 사로국이 성장하여 중앙 집권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각각 가야 연맹체와 신라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2. 수지 축조

 

제천 의림지 전경(삼한 때 축조된 저수지)
제천 의림지 전경(삼한 때 축조된 저수지)

 

삼한시대 저수지로 추정되는 밀양 수산제는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제천의 의림지(義林池)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저수지의 하나로서, 고대 관개 수리시설과 농업시설의 발달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삼한(三韓)은 마한, 진한, 변한으로 이루어진 연맹왕국으로, 오늘날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에 해당한다. 평야지대가 발달하여 일찍이 벼농사가 널리 행하여 졌으며, 이로인해 저수지가 많이 만들어 졌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저수지는 아래와 같다.

 

김제 벽골제는 전라남도 김제시 부량면에 있는 삼한시대 저수지 터,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농경 유적이다. 밀양 수산제는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있는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원래는 저수지였으나, 조선시대에 경작지로 바뀌었다. 제천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저수지로,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 중 유일하게 현존하며 관개 기능을 수행하는 유일한 저수지이다. 

 

 

삼한 : 제정분리 사회
삼한 : 제정분리 사회

 

3. 제정

삼한사회가 제정분리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시작하는 것은 철기문화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중남부지역 초기철기문화단계의 토착적인 지배자는 일반적으로 제정을 겸하는 존재로 파악된다. 청동거울·청동방울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청동제 의식용구들이 무기와 함께 지배자 분묘의 중요한 부장품이 되고 있으며, 청동기 일괄유물군의 상당부분이 의식용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기전 2세기 이후 정치적 지배기능을 우선적으로 행사하는 새로운 성격의 지배자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서기전 1세기 이후에는 철기문화의 유입과 유이민의 이주라는 정치·문화적인 영향으로 이러한 성격의 지배자가 수적으로 크게 증가되고, 그들의 정치·사회적 비중이 증대되면서 삼한사회의 주도적인 지배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철기가 다량 반출(伴出)되는 단계에 이르면 지배자가 소유하는 금속기의 대부분은 무기류로 구성되고, 의식용구를 가지는 일괄유물군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다. 이러한 변화는 철기문화의 보급을 배경으로 단위집단 지배자로서 제사장의 기능보다 정치·군사적 통솔자로서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전반적인 발전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사장의 기능이 특정인에게 위임되면서 삼한사회가 점차 제정분리의 사회체제로 전환되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4. 

≪삼국지≫ 동이전에 각 소국에는 별읍(別邑)이 있어, 이를 소도(蘇塗)라고 하고 그곳에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겼다는 기록이 있다. 소도에 대해서는 동네 어귀에 있는 경계 표지 또는 신성지역(神聖地域)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철기문화가 성립시키고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대비되는 재래적인 신앙활동의 중심지로 파악되기도 한다. 또는 제사장인 천군이 농경의례·축제 등을 거행하던 장소로서, 민무늬토기시대 이래 생활 근거지였던 야산이나 구릉지대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소도는 국읍의 정치기능과 관련해 삼한사회의 문화성격을 반영하는 중요자료로 주목된다.

 

 

법성포 단오제 : 삼한의 계절제 흔적
법성포 단오제 : 삼한의 계절제 흔적

 

5. 5월 10월 절제

경제적으로 이 지역은 농사가 아주 잘 되는 지역이었어요. 가장 남부에 위치한 변한에서는 철도 아주 많이 생산되었다. 그래서 여기선 일본이나 다른 곳에 수출도 많이 했다고 한다. 농사가 잘되니까 제천행사도 두 번 지냈다. 씨를 뿌리는 5월에 한 번, 곡식을 거두는 10월에 한 번 지낸 거죠. 이를 일컬어 수릿날과 계절제라고 하는데, 이게 오늘날 단오 추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두레
두레

 

6. 

농촌에서는 모내기나 김매기, 가을걷이 등이 있을 때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풍습은 일찍부터 있었다. 특히 이웃에게 일손이 필요할 때 도와주면, 나중에 그 이웃이 일을 해 주어 갚는 방식을 ‘품앗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레는 품앗이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품앗이는 개인적으로 노동을 주고받는 일이지만, 두레는 마을 단위로 조직을 만든 뒤 마을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필요한 일을 하는 조직이었다. 두레와 같은 마을 조직은 고대부터 있었으며,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점차 체계화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여러 사람의 일손이 필요한 모내기가 보급되면서 두레가 발달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소작농이 늘어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두레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두레를 이끄는 사람은 ‘행수’라고 불렀고, 행수를 돕는 사람을 ‘도감’이라고 했다. 행수와 도감은 인품이나 덕망을 갖춘 사람을 뽑았지만, 그 밖의 임원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맡았으므로 머슴이나 소작농인 경우도 흔했다. 그만큼 두레는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한 조직이었다. 또한 신분 질서를 바탕으로 양반이 이끌며 마을의 일을 처리하는 향약과는 달리, 두레는 능력에 따라 일을 나누되 서로 평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항아리 무덤 독무덤
항아리 무덤 독무덤

 

7. 무덤 널무덤

흙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안에 나무로 된 널을 댄 다음 그 안에 시신을 묻는 널무덤이나 항아리를 관으로 이용한 독무덤이 삼한에서의 주된 장례문화이다. 널무덤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넓적한 나무널로 사각형 벽을 만들어 그 안에 시신을 넣는 방법이다.  그 위에는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렸을 것이라 추측된다. 널무덤은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다가 남부 지역으로 퍼져 나갔는데, 특히 낙동강 유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널무덤에서는 검, 거울, 옥 등 다양한 껴묻거리도 발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토기를 붙여서 만든 독무덤있는데 독무덤은 큰 항아리 속에 시체를 넣어 만든 무덤이다. 토기 하나를 사용해 묻기도 하고, 두 개를 붙여서 사용한다. 발견된 독무덤에서는 껴묻거리로 화살촉, 도끼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독무덤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 독무덤은 다른 지방의 것들과는 달리 독자성이 뚜렷하고 매우 뛰어난 토기 제작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대형 독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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