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윤동주 유고 시집_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5부

by noksan2023 2024. 9. 29.
반응형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5부

 

 

식권食券

 

식권은 하루에 세 끼를 준다.

식모는 젊은 아이들에게

한 때 흰 그릇 셋을 준다.

 

대동강 물로 끄린 국,

평안도 쌀로 지은 밥,

조선의 매운 고추장,

 

식권은 우리 배를 부르게.

 

 

종달새

 

종달새는 이른 봄날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더라.

명랑한 봄 하늘,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오날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길로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윤동주의 종달새

 

 

 

이별離別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 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 --- 액 --- 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갑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

더운 손의 맛과 구슬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모란봉에서

 

앙당한 소나무 가지에

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얼음 섞인 대동강물에

한나절 햇발이 미끌어지다.

 

허물어진 성터에서

철모르는여아女兒들이

저도 모를 이국異國말로

재잘대며 뜀을 뛰고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

 

 

오후의 구장球場

 

늦은 봄 기다리던 토요일날

오후 세시 반의 경성행 열차는

석탄 연기를 자욱이 품기고

 

한 몸을 끄을기에 강하던

공이 저력磁力을 잃고

한 모금의 물이

불붙는 목을 축이기에

넉넉하다.

젊은 가슴의 피 순환이 잦고,

두 철각鐵脚이 늘어진다.

 

검은 기차 연기와 함께

푸른 산이

아지랭이 저쪽으로

가라앉는다.

 

 

곡간谷間

 

산들이 두 줄로 줄달음질치고

여울이 소리쳐 목이 잦았다.

한여름의 햇님이 구름을 타고

이 골짜기를 빠르게도 건너려 한다.

 

산등아리에 송아지뿔처럼

울뚝불뚝히 어린 바위가 솟고,

얼룩소의 보드라운 털이

산등서리에 퍼---렇게 자랐다.

 

삼년 만에 고향에 찾아드는

산골 나그네의 발걸음이

타바타박 땅을 고눈다.

벌거숭이 두루미 다리 같이...

 

헌신짝이 지팡이 끝에

모가지를 매달아 늘어지고,

까치가 새끼의 날발을 태우며 날 뿐,

골짝은 나그네의 마음처럼 고요하다.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농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 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갔습니다.

 

 

비애悲哀

 

호젓한 세기世紀의 달을 따라

알듯 모를 듯한 데로 거닐고저!

 

아닌 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쳐

끝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심사는 외로우려니

 

아 --- 이 젊은이는

피라밋처럼 슬프구나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장미 병들어

 

장미 병들어

옮겨 놓을 이웃이 없도다.

 

달랑달랑 외로이 황마차幌馬車 태워 산에 보낼거나

 

뚜 --- 구슬피

화륜선 태워 대양大洋에 보낼거나

푸로페라 소리 요란히

비행기 태워 성층권成層圈에 보낼거나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

 

 

공상空想

 

공상 ---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언과 허영의 천공天空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欲의 수평선을 향하여.

 

 

내일은 없다

             - 어린 마음이 물은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은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

 

 

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 갑북.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가을 밤

 

궃은 비 나리는 가을 밤

벌거숭이 그대로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마루에 쭈구리고 서서

아인 양하고

솨 --- 오좀을 쏘오.

 

 

비행기

 

머리에 푸로페라가

연잣간 풍체보다

더 --- 빨리 돈다.

 

따에서 오를 때보다

하늘에 높이 떠서는

빠르지 못하다

숨결이 찬 모양이야.

 

비행기는 ---

새처럼 나래를

펄럭거리지 못한다

그리고 늘 ---

소리를 지른다.

숨이 찬가봐

 

 

나무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사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채로 송치까지

다아 나눠 먹었소.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하오.

 

 

 

--- 닭은 나래가 커도

     왜, 날잖나요

--- 아마 두엄 파기에

     홀, 잊었나봐.

 

 

할아버지

 

왜떡이 씁은데도

자꼬 달라고 하오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첫개를 뿌렸습니다.

--- 딱 ---

두 개째 뿌렸습니다.

--- 아뿔사 ---

세 개째를 뿌렸습니다.

--- 딱 ---

네 개째 뿌렸습니다.

--- 아뿔사 ---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 딱 ---

 

다섯 개에 세 개 ---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윤동주의 만돌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