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vs 상점
'가게'는 원래 한자말 '가가(假家)'로부터 온 말이다. '가가'는 글자 그대로 '임시로 지은 집'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말엽 종로 거리에 임시로 허름하게 집을 짓고 물건을 팔았던 게 가게의 효시다. 일제강점기에는 '가개' 또는 '가게'로 발음되다가 1936년 출판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 '가게'로 확정되었다.
18세기의 가게는 위에 천막을 치고 아래에 멍석을 깐 게 시설의 전부였다. 일반인들에게도 물건을 팔았지만 주로 관청에 물자를 공급했으며, 조선 후기부터 서서히 소매상으로 변화했다. 구한말 갖가지 일용 잡화를 늘어놓고 파는 가게를 '만물상(萬物商)'이라고 했는데, 여기서의 '상(商)'은 상나라와 관계가 있다.
무왕이 은을 멸망시키고 주를 세우자, 전답을 몰수당한 은나라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시 아무 기반이 없던 그들은 장사로 연명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히 그들은 장사하는 솜씨가 뛰어났고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물건을 팔았다. 은은 상이라고도 했기에 장사하는 사람들을 상인(商人), 그들이 차린 점포를 '상점(商店)'이라 불렀다.
즉 '만물상'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가게를 가리킨 셈이며, 비슷한 맥락에서 '잡화상(雜貨商)'이라고도 불렀다. 만물상은 별의별 것을 갖다 놓고 팔지만 물건 가짓수가 100가지를 넘지 않았다. 주요 상품은 소쿠리, 바구니, 멍석, 키 등 농가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소도구와 광주리, 그릇 등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오늘날의 백화점처럼 인식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물건 파는 곳이 활성화되었는데, 특정 상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에서 '상점'이라는 상호를 애용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상점'은 규모를 갖춘 판매점에 많이 쓰였고, '가게'는 동네에 있는 거주지 겸용 판매점이나 작은 규모의 특정 품목 판매점을 가리키게 되었다. 여기에 '구멍가게'라는 말이 그런 미묘한 차이를 확실히 굳혔다.
6-25전쟁 직후에는 여기저기 작은 규모의 가게가 생겼는데, 대부분 방이 딸린 한쪽에 물건을 진열해놓고 파는 구조였다. 주인은 방문 한쪽에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수시로 밖을 내다보면서 손님이 오는지 확인했으며, 여기에서 '구멍가게'라는 말이 생겼다. 일설에는 강도를 막기 위해 창문 사이에 작은 구멍을 내어 거래한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출입구가 구멍처럼 작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하지만 어떤 설이 옳든 오늘날 구멍가게는 '조그맣게 벌인 판매점', '동네에 있는 작은 판매점'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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