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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윤동주 유고시집_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4부

by noksan2023 2024.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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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유고시집_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4부

 

 

산울림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윤동주의 산울림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윤동주의 해바라기 얼굴

 

 

 

귀뜨라미와 나와   

 

귀뜨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게도 아르켜 주지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뜨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애기의 새벽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보채어

새벽이 된다.

 

 

윤동주의 애기의 새벽

 

 

햇빛 바람

 

손가락에 침 발러

쏘옥, 쏙, 쏙,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문풍지를

쏘옥, 쏙, 쏙,

 

아침에 햇빛이 반짝,

 

손가락에 침 발러

쏘옥, 쏙, 쏙,

장에 가신 엄마 돌아오나

문풍지를

쏘옥, 쏙, 쏙,

 

저녁에 바람이 솔솔.

 

 

반디불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그믐 밤 반디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둘 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끝없고

하늘도 끝없고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

 

 

거짓부리

 

똑, 똑, 똑,

문 좀 열어 주세요

하루밤 자고 갑시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거 누굴까?

문 열어주고 보니

검둥이의 꼬리가

거짓부리한걸.

 

꼬기요, 꼬기요,

달걀 낳았다.

간난아 어서 집어가거라.

간난이 뛰어가 보니

달걀은 무슨 달걀

고놈의 암탉이

대낮에 새빨간

거짓부리한걸.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참새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로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 밖에는 더 못 쓰는 걸.

 

 

버선 본

 

어머니
누나 쓰다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비선 본 만드는걸.

 

어머니
내가 쓰다 버린 몽당연필은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천 우에다 버선 본 놓고
침 발려 점을 찍곤
내 버선 만드는걸.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숙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우리 애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뜨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무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 가운데서 째앵째앵.

 

 

무얼 먹고 사나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 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어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굴뚝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어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햇비

 

아씨처럼 나린다

보슬보슬 햇비

맞아주자 다같이

옥수숫대처럼 크게

닷자엿자 자라게

햇님이 웃는다

나보고 웃는다.

 

하늘다리 놓였다

알롱알롱 무지개

노래하자 즐겁게

동물들아 이리 오나

다같이 춤을 추자

햇님이 웃는다

즐거워 웃는다

 

 

빗자루

 

요오리조리 베면 저고리 되고

이이렇게 베면 큰 총 되지.

누나하고 나하고

가위로 종이 쏠았더니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누나 하나 나 하나

엉덩이를 때렸소

방바닥이 어지럽다고

 

아아니 아니

고놈의 빗자루가

방바닥 쓸기 싫으니

그랬지 그랬어

괘씸하여 벽장속에 감췄드니

이튿날 아침 빗자루가 없다고

어머니가 야단이지요.

 

 

기왓장 내외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웁니다.

 

대궐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든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럼히 하늘만 쳐다봅니다.

 

 

오줌싸개 지도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윤동주의 오줌싸개 지도

 

 

병아리

 

「뾰, 뾰, 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 꺽, 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 속으로

다 들어갔지요.

 

 

조개껍질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 언니 바닷가에서

주어온 조개껍데기

 

여긴여긴 북쪽 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 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 소리 바닷물 소리

 

 

겨울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달랑달랑

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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