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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떡에 설 쇤다_남의 덕택으로 거저 이익을 보게 된다

by noksan2023 202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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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떡에 설 쇤다

 

 

남의 떡에 설 쇤다

 

 

 

설을 쇠려면 당연히 설음식을 마련해야 한다. 설음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떡국이다. 떡국은 가래떡을 주재료로 한다. 가래떡이 준비되어야 떡국을 끓여 조상님께 올릴 수 있다. 그런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래떡을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남의 집에서 만든 가래떡을 얻어서 설을 쇨 수밖에 없다. 남의 가래떡을 얻어서 설을 쇠듯, 남의 덕택으로 거저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을 빗대어“남의 떡에 설 쇤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남의 불에 게 잡는다.”,

“남 켠 횃불 에 조개 잡듯”,

“남이 켠 불에 게 잡기”,

“남의 바지 입고새(풀) 벤다.”,

“남의 팔매에 밤 줍는다.”,

“지나는 불에 밥 익히기”

 

등의 속담과 의미가 같다.

 

 

1. 설날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원일·원단·정조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의례, 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설날 추석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국의 명절로, 음력 1월 1일이다. 이라고도 불린다. 현대 한국에서 새해는 대부분 양력 1월 1일인 새해 첫날에 기념하고, 일가 친척들이 만나는 전통 명절 기념은 음력설에 한다.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 것이 한민족 고유의 풍습이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을 지새우기도 한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 날을 즐겼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1년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 안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며 나쁜 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설날은 음력설 당일을 기준으로 전날과 다음날을 포함해 총 3일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4년부터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 공휴일이 되었고 이에 따라 설날이 4일 연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날을 원일(元日) · 원단(元旦) · 원정(元正) · 원신(元新) · 원조(元朝) · 정조(正朝) · 세수(歲首) · 세초(歲初) · 연두(年頭) · 연수(年首) · 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신일(愼日) · 달도(怛忉)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밖에 설을 양력 1월 1일 신정(新正)의 상대적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에는 설을 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 씩 더 먹는다. 설을 한 번 쇠면 1년이며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이밖에도 설이 새해 첫 달의 첫 날, 그래서 아직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 등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설을 설명절이라고도 하거니와 설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설을 설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다. 그 중에서 설날과 보름명절을 크게 여겼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 날로서 중요하며 보름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다. 곧 농경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다. 보름명절 가운데서도 정월 보름과 8월 보름 추석은 또한 각별하다. 정월 보름은 첫 보름이라는 점에서 보다 중시되어 대보름명절이라고 한다. 8월 보름명절은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국가에서 여름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시기로 수확을 앞둔 명절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한다.

 

1) 명칭

 

설날은 해(年)의 한 간지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는 날로,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등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 본래의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화력(和曆)을 양력으로 바꿀 때 음력 설을 구정(旧正)이라고 부르면서 만든 말이다.

 

2) 유래와 역사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볼 수 있다. 『수서(隋書)』와 『당서(唐書)』 신라에 대한 기록은 왕권국가다운 설날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즉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 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은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이 분명하게 보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설명절이 역법체계에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3세기에 나온 중국의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을 통해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가령 은 정월(殷 正月), 그리고 5월과 10월의 농공시필기 등과 같은 표현은 당시 역법(曆法)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은 정월은 은나라의 역법을 지칭하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음력 섣달에 해당된다. 이처럼 당시 부족국가들이 역법을 사용했다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역법을 통해 각 달을 가늠하고 세수(歲首)인 설이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다만 나라에 따라 설을, 또는 정월을 언제로 설정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우리 문헌에도 설명절의 연원과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 궁주(宮主)와 중의 간통사건이 있어 이들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 해마다 상해(上亥) · 상자(上子) · 상오(上午)일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하여 달도(怛忉)라 했다. 달도는 설의 이칭이기도 하므로 설의 유래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상해 · 상자 · 상오일은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에 해당되는 날로 이때의 금기를 비롯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상사(上巳, 후에 삼짇날이 됨),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중구(重九), 팔관(八關), 동지(冬至)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원단 · 한식 · 단오 ·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전 시대보다 세시명절과 그 무렵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다양했다. 그런데 설이란 말이 설날 이외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아세(亞歲) 곧, ‘작은 설’이라 불리는 동지이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면서 전통명절인데, 설날 떡국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고 하듯이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작은 설로 여기는 까닭은 중국 후한시대(22∼220)에 동지를 세수(歲首)로 삼았던 데에서 근거한다. 사실상 24절기는 동지를 0으로 하고 첫 기번(氣番)으로 소한, 두 번째 기번은 대한으로 하며 입춘은 3번이 된다. 동지 기번을 0으로 한 까닭은 역(曆) 계산의 출발을 동지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열두 띠로 일컬어지는 십이지를 말할 때 첫 달인 자월(子月)은 정월이 아니라 음력 동짓달이 된다. 그 후 섣달은 축월(丑月), 정월은 인월(寅月), 2월은 묘월(卯月)… … 등의 순으로 불린다.

 

음력설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에 내주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40여 년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특히,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사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하였고, 양력설에 차례를 지낼 것을 권장하여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그러나, 대부분 가정에서는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러한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3) 풍습

 

- 차례 및 세배

 

집안에 따라 종교나 가풍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지만, 보통 설날 아침에는 전통적으로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차례를 지내고 난 후에는 친척이나 이웃 웃어른들에 세배를 한다. 세배는 웃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답례로 세뱃돈이나 덕담을 해준다.

 

- 설빔

 

설날에 남자·여자·늙은이·젊은이·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갈아입은 새옷을 설빔이라고 하며, '세장'이라고도 한다. 설빔은 섣달 그믐 이전에, 색깔이 있는 화려한 옷으로 마련하여 대체로 대보름까지 입는다.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한다. 『경도잡지』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 『열양세시기』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廕)이라 기록되어 있다.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여자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노랑이나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는 오늘날까지도 설에 어린이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인 옷이다.

 

- 설 음식

 

 

 

떡꾹

 

 

 

설날 차리는 음식은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날이 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세배하러 온 손님에게도 대접하는데, 이때 반드시 떡국을 차린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설날 아침 제사지낼 때 제물(祭物)로 차리거나 손님에게 차려 내는데, 새해 때마다 떡국을 먹으므로 아이들이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설날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듯하다. 설날에는 떡국외에도 쇠고기 산적, 떡갈비, 식혜, 수정과등을 먹는다.

 

설에 먹는 명절식으로 우선 꼽히는 것은 떡국이다. 떡국의 기본 재료는 쌀로 만든 가래떡이다. 요즘에는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해오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에도 떡국을 시장에서 팔았다는 내용이 『동국세시기』기록되어 있어 흥미를 끈다. 떡국에는 만두를 빚어 넣기도 한다.

 

설에 먹는 음식인 세찬(歲饌)은 차례상에 오르고 명절식으로 시식한다. 세찬에는 가래떡을 넣어 끓인 떡국 외에 시루떡도 있다. 고사를 지낼 때의 시루떡은 붉은 팥시루떡을 쓰지만 차례를 지내는 시루떡은 붉은 팥시루떡은 금하기 때문에 거피를 한 팥을 사용하여 떡을 찐다. 이밖에 인절미 · 전유어 · 빈대떡 · 강정류 · 식혜 · 수정과 등도 세찬으로 장만한다. 세주는 맑은 청주이며 역시 차례상에 오르고 산뜻한 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함께 마신다.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나물이 대표적인 명절식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오곡밥을 찰밥이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정월 열나흗날 지어 보름날, 또는 그 이후까지 먹는다.

 

오곡밥은 찹쌀 · 차수수 · 차조 · 팥 · 콩 등 각종 곡물을 넣어 지은 밥이다. 대추와 밤 등을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묵은나물류로는 박나물 · 버섯 등을 말린 것과 대두황권(大豆黃卷, 콩나물순을 말린 것) · 순무 · 무우 등을 묵혀둔다. 그밖에 외꼭지 · 가지고지도 묵혀두고 무청을 말려 시래기도 만들어둔다. 대보름이면 이들 나물을 삶아서 무치거나 볶아 나물반찬을 만든다. 이 나물반찬을 대보름에 이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오곡밥과 묵은나물은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받이 집의 밥을 먹어야 좋다고 그래서 백가반(百家飯) 풍속이 있다. 실제로 백집의 오곡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여러 집의 오곡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또 복쌈이라 하여 오곡밥을 참취나물 · 배춧잎 ·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다. 대보름 명절식은 풍년을 기원하면서 예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깬다. 이른 아침, 새벽에 밤 · 호두 · 은행 · 잣 · 무우 등을 깨물면 일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부럼을 작절(嚼癤), 또는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고 한다. 설날에 세주를 마시는 것처럼 대보름에도 아침에 청주 한잔을 마신다. 이 술을 유롱주(牖聾酒), 곧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한다. 약밥도 대보름의 명절식이다. 찹쌀을 쪄서 대추 · 밤 · 기름 · 꿀 · 간장 등을 섞어 함께 찌고 잣을 박은 음식이 약밥[약반=藥飯, 약식이라고도 한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찰밥과 오곡밥, 약밥에 대하여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 요즘도 경상북도 일원에서는 오곡밥을 찰밥이라 하고 경기도와 충청도 · 강원도 · 전라도 등지에서는 오곡밥이라고 한다. 찰밥은 찹쌀 · 팥 · 밤 · 대추 · 곶감 등을 넣어 짓고 오곡밥은 찹쌀 · 팥 · 수수 · 차조(또는 기장) · 콩 등을 넣어 짓는다. 그러나 찰밥과 오곡밥은 실상 같은 것이다. 약밥은 찰밥에서 분화된 음식으로 찰밥에서 다시 발전 변형된 음식이다.

 

 

4) 속신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이 다양한 만큼 속신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설은 사실상 섣달 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설 음식을 세찬이라고 한다.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설날이나 상묘일(上卯日, 첫 토끼날)에는 여자들이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는 속신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키가 작은 사람이 남의 집에 출입을 하면 그 해에 목화가 잘 자라지 않는다하여 금하기도 한다. 복을 끌어 들인다는 복조리 풍속도 속신으로 볼 수 있다.

 

설날 새벽에 밖에 나가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조이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한다. 설날 밤에 야광귀라는 귀신이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 해에 재수가 없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이런 세시를 행하고 또는 열엿새를 귀신날이라 하여 이 날 밤에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놓는다.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체나 키를 지붕에 매달아놓거나 저녁에 고추씨와 목화씨를 태워 독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정초에 여자들은 널을 뛴다. 널을 뛰면 그 해에 발에 좀[무좀]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연날리기는 섣달 그믐 무렵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한다. 대보름이 되면 ‘액연(厄鳶)’이라 하여 연 몸통이나 꼬리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서 멀리 날려 보낸다. 예전에는 만일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으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액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입춘날에는 보리뿌리를 캐보아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그 해 보리농사가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점친다. 이는 농점(農占)으로 점복이면서 또한 속신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정초 십이지일을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눈다. 정월 초하루가 유모일, 곧 털 있는 12지 동물의 날이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무모일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유모일 가운데서도 소 · 토끼 · 호랑이날이 좋다고 한다. 이는 주술적인 사고에 따른 것으로 여기 털을 곡식의 성장에 비유했다.

 

첫 쥐날인 상자일(上子日)에 일을 하면 쥐가 곡식을 축낸다고 하여 금한다. 또 쥐가 쏠고 갉아먹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칼질이나 바느질을 삼간다. 마소를 먹이기 위해서 여물을 썰면 쥐가 벼나락 · 짚 등을 쏠아버린다고 하며 길쌈을 하거나 옷을 지으면 쥐가 옷감을 쏠아 못쓰게 한다고 금한다.

 

첫 소날인 상축일(上丑日)에는 소에게 좋지 않다 하여 도마질을 하지 않으며 쇠붙이 연장도 다루지 않는다. 이 날 연장을 다루면 쟁기의 보습이 부러지고 방아를 찧으면 소가 기침을 한다고 한다. 또 이 날 곡식을 밖으로 퍼내면 소에게 재앙이 온다고 하여 금한다.

 

첫 호랑이날인 상인일(上寅日)에는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 하여 일을 하지 않는다. 또 짐승에 대하여 나쁜 말도 하지 않으며 외출도 삼간다. 이 날 여자들이 외출하여 남의 집에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 가족이 호랑이에게 잡혀간다는 말도 있다.

 

첫 토끼날인 상묘일(上卯日)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출입하면 재수가 없다하여 금한다. 심지어 여자들의 출입을 종일 꺼리기도 한다. 이 날 여자들은 실을 짜거나 옷을 지으면 장수(長壽)한다 하여 베틀에 한 번씩 올라가 베를 짜본다.

 

첫 용날인 상진일(上辰日) 새벽에는 여자들이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온다. 이 날 새벽에 용이 내려와서 알을 쓸어놓고 간다 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물을 길어다 밥을 지으면 그 해 농사가 대풍이 든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이것을 용알뜨기(憦龍卵)이라 하여 대보름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북의 경우 ‘용물뜨기’라 하여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이 날 긴 물건을 다루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는다. 그러면 뱀이 나온다고 하는데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뱀처럼 몸이 길다고 하여 꺼리는 것이다. 반면 머리칼이 잘 자라지 않는 사람은 상진일에 머리를 감아 곱고 길게 잘 자랄 것을 기원한다.

 

첫 뱀날인 상사일(上巳日)에는 머리를 빗거나 이발을 하면 뱀이 나타난다 하여 금한다. 그밖에 빨래도 삼가고 바느질도 하지 않으며 땔 나무를 부엌에 들이지 않는다. 첫 말날인 상오일(上午日)을 제주도에서는 좋은 날로 보아 장을 담근다. 첫 양날인 상미일(上未日)에 제주도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환자라도 약을 먹지 말라고 한다.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 외에는 이 날을 무탈하게 본다.

 

첫 원숭이날인 상신일(上申日)에는 부엌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남자가 일찍 일어나서 비를 들고 부엌의 네 귀퉁이를 쓴다.

 

첫 닭날인 상유일(上酉日)에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하여 금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닭날 장(醬)을 담그면 달다는 말도 있다.

 

개날인 상술일(上戌日)에는 일을 하면 개가 텃밭을 해친다고 금하고 이 날 풀을 쑤면 개가 평소에 잘 토한다 하여 금한다. 첫 돼지날인 상해일(上亥日)에는 팥가루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희어진다고 한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잘 사는 집의 부엌의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년 내내 좋은 소식을 듣는다. 또 더위를 팔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속신도 있다. 오곡밥은 세 집 이상의 타성받이 집의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수가 좋다고 한다.

 

대보름을 무렵에 하는 동제를 전후해서는 각종 금기가 따르는데 이것들을 어기면 부정을 탄다. 이는 속신이라기보다 민속신앙이라는 큰 범주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제의가 끝난 후 제물 진설을 위해 깔았던 백지를 가지고 가서 사용하면 공부를 잘한다고 하고 아들이 없는 가정에서 불종지(기름을 넣고 종이심지를 박아서 켜는 불종지)를 가지고 가면 아들을 본다는 속신도 있다.

 

줄다리기를 위한 줄을 꼬을 때 여성들이 줄을 건너가면 그 쪽 편 줄이 시합 중 끊어진다는 속신이 있고, 상대방 줄을 넘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이긴 편 줄의 짚을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관운이 트고 일이 잘 된다는 속신도 있다.

 

- 놀이

 

 

윷놀이

 

 

 

설의 놀이는 이미 섣달 그믐 무렵부터 즐기기 시작하여 대보름 무렵까지 즐긴다. 연날리기는 섣달 그믐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긴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보낸다. 원래 보름날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는 것이다. 그밖에 설날 무렵 윷놀이 · 널뛰기 · 승경도놀이 · 돈치기 등을 한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집안에서도 하고 밖에서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하는 정초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다. 윷의 종류도 장작윷과 밤윷이 있고 놀이 방법도 다양하다. 윷놀이를 통해 그 해 운수를 점쳐보기도 한다.

 

승경도(陞卿圖)는 승정도(陞政圖) · 종경도(從卿圖) · 종정도(從政圖)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주로 양반 가문의 젊은이들과 여자들이 즐겨 놀던 실내놀이로 관직이나 학업의 등급을 차례로 기입하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끗수대로 승진하거나 후퇴하는 방식으로 논다. 돈치기는 정초에 청소년들이 동전이나 동전 모양의 쇠붙이를 가지고 노는 놀이인데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대보름 편에 기록되어 있다.

 

대보름에는 더욱 많은 놀이들이 행해진다. 지신밟기를 비롯하여 줄다리기 · 고싸움 · 나무쇠싸움 · 동채싸움 · 석전 · 횃불싸움 · 놋다리밟기 · 기와밟기 · 탈놀이 등 다양한 놀이들이 있다. 특히 대보름놀이로는 불과 관련된 횃불싸움이 절정을 이룬다. 쥐불놀이는 첫 쥐날인 상자일에도 하지만 대보름날 밤에 주로 한다. 보름달 아래에서 즐기는 불놀이는 보름달과 불을 관련시키고 이를 성장, 풍요와도 관련시킨다. 대보름 놀이는 불놀이 뿐 아니라 다른 놀이들도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풍요를 기원 · 예축하는 의미가 있다.

 

 

설 관련 속담에 '꿩 대신 닭'?… 무슨 의미일까

 

'꿩 대신 닭'이라는 익숙한 이 속담의 유래는 설날 음식에서 나왔다. 속담은 예로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소중한 언어 유산으로 그 속에 교훈, 삶의 지혜, 풍자, 재치가 담겨있다. 설과 관련된 재미있는 속담과 의미를 알아보자.

 

- 꿩 대신 닭

 

설날의 대표적인 명절 음식 '떡국'. 언제부터 설날에 떡국을 먹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옛 조상들은 떡국을 만들 때 꿩고기를 넣어 끓여 먹었다고 한다. 떡국에 꿩고기를 넣는 이유는 '하늘의 닭'이라 불렸던 꿩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꿩고기를 구하기는 어려운 가정에서는 닭을 대신 떡국에 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

 

'설이 질다'는 설에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이다. '보름이 밝다'는 날씨가 좋아 대보름에 밝은 달이 잘 보인다는 뜻으로 설날 눈이 많이 와야 좋고, 대보름은 밝고 환한 달이 떠야 풍년이 들어서 좋다는 뜻의 속담이다.

 

- 설에도 부모를 모르다니

 

새해 설을 맞으면 객지에 나간 자식은 집에 돌아와서 부모를 모시고 뜻 깊게 지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자식은 불효막심하다는 뜻의 속담이다.

 

- 설을 거꾸로 쇘다

 

동지섣달보다 해동(解凍) 무렵이 더 춥다는 뜻의 속담이다. 설은 양력으로 2월 초, 입춘 무렵이어서 봄에 들어섰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기대한 만큼 날씨가 풀리지 않을 때, 상대적으로 더 춥다고 느끼는 순간에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 처가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가지고 간다

 

처가집 세배는 늦게 가도 된다는 속담이다. 세배는 정초에 하는 것이 상례인데, 처가에서는 이를 이해하고 크게 섭섭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초에 서둘러 처가에 세배 가려는 사람을 조롱할 때나 늦게 처가에 세배 가는 것을 합리화할 때 쓰인다. 비슷한 속담으로 '처가집 세배는 보름 세고 간다', '처가집 세배는 살구꽃 따 가지고 간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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