겻불 vs 곁불_얻어 쬐는 불
‘곁불'과 ‘겻불'은 어형이 유사해서 자칫 혼동하기 쉽다. 그런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불이다.
‘곁'은 ‘옆'의 뜻이므로, ‘곁불' 은 본래 ‘옆에 있는불'이라는 뜻이다.
옆에 있는 불은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다.
그리하여 ‘곁불'에 ‘얻어 쬐는 불'이라는 의미가 생겨난다.
“그는 정류장 옆에서 곁불을 쬐며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에 쓰인 ‘곁불'이 그러한 것이다.
한편 ‘겻불' 은 ‘겨(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와 ‘불' 사이에 사이시옷이 개채된 어형으로, ‘기를 태우는 불'이라는 뜻이다. 기를 태우는 겻불은 불기운이 미미하고 매캐한 냄새까지 난다. 이 매캐한 냄새를 ‘겻불내'라고 한다. 불 기운이 약하고 냄새도 매캐하니 점잖은 체면의 양반은 아무리 추워도 겻불을 쬘 수 없었다. 그래서 생긴 속담이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
양반은 아무리 위급한 때를 당하더라도 자기 체면만은 그대로 지니려고 애쓴다는뜻이다.
겻불과 곁불
따뜻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
는 속담과 한뜻이다. 그까짓 체면이 뭐길래, 양반은 체면에 목숨까지 거는 걸까?
‘겻불’은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불’이다.
‘겨’는 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겨를 태운 불은 뭉근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불기운이 약하다.
해서 ‘겻불’에 ‘불기운이 미미하다’란 의미도 있다.
속담 중의 ‘겻불’을 ‘짚불’로 쓰기도 한다. ‘짚불’은 짚을 태운 불을 말한다.
‘겨’나 ‘짚’은 태우면 연기만 많이 날 뿐 불기운은 신통치 않다.
‘겻불’과 ‘짚불’은 불기운이 시원찮기로는 도긴개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데 ‘겻불’을 ‘곁불’로 잘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하여 보는 덕을 말한다. 운 나쁘게 목표물 근처에 있다가 맞는 총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가 받는 재앙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통치 않거나 시원치 않음을 뜻하는 ‘겻불’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겻불과 곁불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하나가 왕겨를 때던 일이다. 건넌방에 약한 불을 지피고 왕겨를 한 말 정도 들이 부어 놓고 풍로(風爐풍구)를 돌린다. 살살 돌려야 하는데 성질 급한 사람은 지나치게 빨리 돌려서 짙은 연기가 나다가 결국은 그 연기가 ‘펑’하고 터져 버렸고, 그 소리에 놀라 정말로 뒤로 자빠지기를 하기도 한다. 물론 얼굴에 옅은 화상도 입었으나 다행히 흉이 지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어른들이 나와서 왕겨를 태우는 법을 알려주고 은은한 그 불길을 즐기는 것을 보았다. 그때가 영동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시절이니 참으로 오랜 기억 속에서 건져낸 이야기다.
흔히 어른들은 “이눔아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쬐는 것이여.”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의 곁에서 불을 쬐면 안 되는가 보다.’라고만 생각했었다. 가끔 어른들의 말씀 중에 “오뉴월 겻불도 쬐다 나면 서운한겨.”라고 하는 말이 뭔 소린지 몰라서 듣고 잊었던 적도 있다. ‘겻불’은 ‘겨를 태우는 불’이다. 주로 왕겨를 태운다. 불기운이 미미하여 더운 맛이 없다. 그런데 왜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고 했을까? 처음에는 남의 곁에서 불을 쬐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왕겨를 태우는 불은 쬐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속담사전에 보면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한 경우라도 체면을 깎는 짓은 하지 아니한다.”고 나타나 있다. 양반의 체면을 중시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양반의 숨은 미의식이 들어 있다. 겨를 태우는 불은 뜨겁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오래 타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반상의 구별이 확실하던 시절 상민들이 주로 겻불을 쬐고 있었는데, 양반이 가면 자리를 비켜주고 그들은 멀리서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양반은 그들을 위한 배려로 겻불을 쬐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양반들의 체면만 중시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내면에는 백성들을 생각했던 멋스런 모습이 들어 있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겻불과 곁불은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위의 글을 죽 읽어 보면 틀림없이 겨를 태운 불이므로 겻불이 맞다.
‘겨 + ㅅ + 불 = 겻불’
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남이 불을 쬐는데 옆에서 불을 쬐는 것이기에 곁불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곁불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곁불’의 사전적 의미는 ‘직접 관계없이 가까이 있다가 받는 영향’<오픈사전>이라고 나타나 있다. 혹은 ‘얻어 쬐는 불’, ‘ 가까이 보는 덕’, ‘ 남이 켰거나 들고 있는 불’과 같이 나타나 있지만 이는 모두 원래의 의미와 조금 거리가 있다. 원래 곁불이라는 뜻은 ‘목표 근처 있다가 맞는 총알’,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가까이 있다가 받는 재앙’이라고 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주로 “유탄 맞았다.”는 표현을 쓴다. 예전에는 총을 쏠 때 화약에 불을 붙여서 사용했다. 그래서 옆에 있다가 총알을 맞기도 했다. 거기서 유래한 말이 ‘곁불 맞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사는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때의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이라는 의미다. 곁불에는 “이익을 추구하려고 권력 주변에서 머물다가 예상치 못한 재앙을 당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겻불이나 곁불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의 관념과 백성을 추위를 배려하는 미덕이 함께 들어 있는 단어이고, 곁불은 이익을 추구하다 뜻밖에 재앙을 당한다는 의미가 강하니 서로 적확(的確)하게 구별해서 활용해야 한다.
겨
겨는 곡식의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곡식의 겉을 벗긴 것은 겉겨,
그 안을 다시 벗긴 비교적 부드러운 부분은 속겨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벼의 겉겨는 특별히 왕겨라고 한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는 표현도 있다.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발개발_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 (2) | 2024.12.06 |
---|---|
곤욕_심한 모욕, 견디기 힘든 일 vs 곤혹 (2) | 2024.12.05 |
갑부_첫째가는 큰 부자 vs 거부 vs 졸부 (2) | 2024.12.03 |
황천으로 보내다_사람을 죽이다 (3) | 2024.12.02 |
파리를 날리다_영업이나 사업 따위가 잘 안되어 한가하다 (1) | 2024.1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