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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낭떠러지 vs 벼랑의 어원자료

by noksan2023 2025.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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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vs 벼랑

 

‘낭떠러지' ‘벼랑' 경사가 심한 ‘언덕'이나 ‘비탈'을 뜻하는 단어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낭떠러지'는 ‘깎아지른 듯한 언덕', ‘벼랑'은 ‘낭떠러지의 험하고 가파른 언덕'이라 풀이되어 있어서, 언뜻 보아 두 단어가 모두 '언덕'을 뜻하지만 ‘낭떠러지' 중에서 험하고 가파른 곳을 특별히 ‘벼랑'이라고 지칭하는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직괸에 의하면 ‘낭떠러지'나 ‘벼랑'이나 그 경사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낭떠러지

 

 

낭떠러지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낭떠러지'는 ‘낭'과 ‘떠러지'로 분석됨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떠러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다'의 뜻을 가진 ‘떨어지다'의 어간 ‘떨어지'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표기가 ‘떨어지'가 아닌 ‘떠러지'로 되었을 뿐이다. ‘낭'은 그 자체로서 ‘낭떠러지'를 뜻하는 자립형태소여서 ‘떠러지'와 통합되지 않은 단독 형태로도 사용되었었다.

 

변치 혼자 어린 자식 업고 묏 가온대 피하여 수멋다가 도적의 핍박한 배 되여 자식을 업고 낭의 떠러뎌 주그니라<1617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열녀도, 6, 31b>
랑(崖) <영한사전> <1895국한회어, 92>

 

이처럼 ‘낭' 자체가 ‘낭떠러지'의 뜻으로 사용된 시기는 대체로 19세기 말까지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에도 일부 방언형에도 남아 있기는 하다(황해도 평산 등지).

 

그런데 처음에는 ‘낭'에 ‘떨어지다'의 어간인 ‘떨어지-'를 붙여 만든 것이 아니라, ‘떨어지다'의 명사형인 ‘떨어지기'를 붙여 복합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동사 어간 자체가 복합어의 후행요소로 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
이다. 그래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낭떠러지'의 구조도 보이지만 ‘낭떠러지기'의 구조가 더 일반적이었다. 물론 이때의 ‘낭'은 ‘랑'이나 ‘넝' 등으로도 표기되었다. ‘낭떠러지기, 낭떠러지긔, 낭떨어지기, 낭떠러지기'
등의 표기가 보인다.

 

갑쇠가 팔매질 하며 좃차가다가 낭떠러지기에 떠러지던 모냥이 보히난 듯하고<1908귀의성, 下, 58> 

그 곳이 엇더케 된 곳인지 낭떠러지기로 한 발을 헛드듸며 내리 굴러 떠러진다<1908치악산, 상, 146>

길순이를 부르고 도라 든니다가 낭셔러지긔 깁흔골에 쑥떠러저 니리 굴럿터라<1908귀의성, 下, 63> 

자기의 앞길을 가로채고 낭떠러지기로 떠러트린 자는 누구일까?<1933고향, 353> 

돌을 딛고 올라서서 담 넘어로 넘겨다 보면 담밖은 비루 낭떠러지기어서 까마케 내려다 보이는 저 밑에 검푸른 강물이 출렁거리는 것이엇다.<1938창랑정, 2>

술상을 잘 차려 낼께 이 다음에는 사돈어른을 낭떠러지기에 떠나 박질르지나 마오<1939임거정, 258> 

바위로부터 그네터까지 아래가 모두 낭떨어지기 아니면 비탈이라<1939임거정, 481>

 

‘낭떠러지기'의 ‘-기'가 생략되어 ‘낭떠러지'가 된 셈인데, 이것은 한 단어의 음절이 길어서 음절수를 줄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떠러지'가 ‘-이' 모음으로 끝나서 마치 ‘-이' 접미사가 붙은 것과 동일한 음상을 가
지기 때문에 ‘-기'의 생략이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낭떠러지, 랑떠러지, 낭썰어지, 낭떨어지' 등의 다양한 표기가 보인다.

 

넝떠러지(岸)<憫0한불자전, 275> 

랑떠러지(絶壁)<1895국한회어, 92>
예수를 잡아가지고 뒤산 꼭대긔에 올나가 오십척 되는 랑떠러지에 밀처 나리치되<1904신학월, 권4, 159>

낭떠러지 안(岸)<1913부별천자문, 4b>

의외에도 낭떠러지 알에에 검은 양복쟁이 둘이 뺀취에 걸터 안젓고<1932백구, 138>

運動場에서 한 길이다 되는 낭떨어지 알에 쓸어저 가는 一角大門이 보이고, <1922E선생, 14> 

병식은 그네들보다 한층 더 살아갈 길이 이득해서 바로 한치 앞이 낭떨어지 같았다.<1933영원의 미소, 17b>솔등을 날여서 비탈길을 밟아가면 작으마한 낭떨어지 아레 초가집 마가리가 파뭇친듯 뇌여 잇섯다. <1933사흘굶은 봄달, 163> 

경구는 일순 천 길 낭떠러지에 굴러 떠러지는 사람 모양으로 두 손으로 얼골을 싸면서 압흐로 곡구라젓다<1937찔레꽃, 263>

 

 

벼랑

 

 

벼랑 끝에 선 사람

 

 

 

‘벼랑'은 아무리 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별 +-앙'으로 분석된다는 시절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의 ‘-앙은 물론 접미사이다. ‘별'은 ‘낭'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현대국어의 ‘벼랑'이란 뜻으
로 사용되었었다. 고려가요인 ‘정석가'와 ‘동동'에 나오는 ‘별헤'와 ‘별해'의 뜻이 ‘벼랑에' 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는 구은 밤 닷 되를 심고이다<15xx악장가사, 정석가>

六月ㅅ 보로매 아으 별해 바룐 빗 다호라<1493악학궤범 동동>

 

‘벼랑'은 문헌상에서는 19세기 말에 보이기 시작한다.

 

벼랑(崖)<1880한불자전, 322>

심히 노하여 닐어 셩 밧게 쫏차 끌고 셩 지은 산 벼랑에 밀치고져 하되 <1887예수셩교젼셔, 눅, 4, 29> 

벼랑을 나리 가기는 올라가기보다 더 힘들었다. <1930광화사 79>

 

이 ‘벼랑'은  가끔 ‘별'에 접미사 ‘-악'이 통합된 ‘벼락'으로도 나타난다. ‘벼락'이 천둥 번개치고 벼락 치는 ‘벼락'이 아니고 ‘벼랑'처럼 ‘깎아지른 듯한 비탈을 뜻하는 단어가 또 있다. 그러나 ‘벼락' 그 자체로 쓰이지 않
고 항상 ‘담'과 복합어를 이루면서 사용되었다. ‘담벼락'은 ‘담+ 벼락'이 합쳐진 말이다. ‘담'의 뜻은 다 잘 아는 것이고, ‘벼락'은 ‘벼랑'과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방언형에서 ‘이 댐벼락(또는 ‘댐부락) 같은 녀석'
이라는 욕도 흔히 들을 수 있는데, 이때의 ‘댐벼락(또는 ‘댐부락)'은 ‘담벼락'에서 음운변화를 겪은 것이다.

 

 

 

낭떠러지 vs 벼랑

 

 

우리는 절벽을 일컫는 말로, ‘낭떠러지’와 ‘벼랑’이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쓴다. 가령 “천길 길 낭떠러지”, 또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 정도가 된다. 낭떠러지와 벼랑, 어떤 차이점이 있고 그 어원은 무엇일까. 언뜻보면 별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 의외지만 오늘 문제의 정답은 앞의 예문에 그대로 들어 있다. 서두에 두 단어에 대한 예문으로 ‘천길 만길 낭떠러지’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잘 살펴보면 전자는 절벽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본 모습이고, 후자는 절벽 끝에서 그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우리가 북한 핵을 거론할 때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하지, ‘낭떠러지 끝 전술’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로 오늘 문제 낭떠러지는 절벽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것이고, 벼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으면 국어사전을 펴보면 된다. 사전은 낭떠러지에 대해 ‘깍아지른 듯 높이 솟은 언덕’이라고 적고 있다. ‘높이 솟은 언덕’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모습이다. 반면 벼랑에 대해서는 ‘험하고 가파른 비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비탈은 위에서 아래로 경사가 급하게 진 모습이다. 여기서는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그건 그렇고 오늘 문제 ‘낭떠러지’와 ‘벼랑’은 어디서 온 말일까. 먼저 전자의 경우 ‘낭’과 ‘떠러지’가 결합된 말로, 이중 ‘낭’은 그 자체로 절벽의 뜻을 지니고 있다. 중세에는 ‘낭’으로 불렸으나 뜻이 불분명하자 뒤에 ‘떠러지’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그렇다면 ‘낭떠러지’는 의미 중첩어가 된다. 후자 벼랑은 절벽을 뜻하는 순우리말 ‘별’에 접미사 ‘앙’이 붙은 후 연음화 현상이 일어났다. ‘낭’과 ‘별’은 지금도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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