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어원 자료
요즈음 젊은이들에게서 ‘오 마이 갓!(Oh, My God!)' 하는 말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쩌다 감탄사까지도 수입해서 쓰게 되었나 하고 씁쓸해 하면서도, 이 말을 우리말로는 무엇이라고 할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머나'나 ‘어머'로 번역하면 여성들만이 쓰는 감탄사로, ‘어라'로 번역하면 충청도 방언의 감탄사로 해석 할 것 같은데, 외국 영화의 번역 사막에서는 ‘아이구, 저런!(또는 ‘이런')'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구 저런'은 어처구니없는 남의 일을 보았을 때, 그리고 '아이구 이런'은 그런 일을 내가 당했을 때 내는 감탄사 같아서 아무래도 그 번역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이구, 맙소사!' 또는 ‘하느님, 맙소사!'였다.
‘맙소사'는 분명히 감탄사다. 그런데 감탄사는 그 단어를 더 이상 분석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인데, ‘맙소사'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맙소사'는 어떻게 분석되는 것일까? ‘맙- + -소사'나 ‘마- + -ㅂ소사' 중의 하나일 텐데, ‘-소사'와 같은 어미는 없고, ‘-ㅂ소사'는 ‘줍소사, 오십소사' 등에서처럼 쓰여 결국 ‘마- + -ㅂ소사'로 분석될 것 같다. 그렇다면 ‘마-'는 무엇일까? ‘마- '는 ‘-ㅂ소사'와 통합되는 것이니까 동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마다'라는 동사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마다'는 원래 ‘마다'가 아니라 ‘말다'에서 ‘ㄹ'이 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
‘말다'는 매우 특이한 동사이다. ‘않다'와 함께 ‘부정' 또는 ‘그만두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두 동사는 그 사용 환경이 서로 상보적이다. 즉 ‘않다'가 쓰이는 곳에는 ‘말다'가 쓰이지 아니하고 ‘말다'가 쓰이는 곳에는 ‘않다'가 쓰이지 않는다. 서술형, 의문형, 감탄형 등에는 ‘않다, 않느냐?, 않는구나!'가, 그리고 명령형, 청유형에는 ‘않아라, 않자'가 쓰이지 않고 오히려 ‘말라, 말자'가 쓰인다.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여서 ‘말다, 마느냐?, 마는구나' 등은 쓰이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명령이나 청유에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에는 어휘 선택에 신중하였던 것일까? '먹지 않는다(*말다), 먹지 않느냐(*마느냐)?, 먹지 않는구나( * 마는구나), 먹지 말아라(*않아라, 먹지 말자(*않자)'처럼 쓰여서 ‘많다'와 ‘말다'가 서로 맡은 기능을 분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말다'의 명령형에는 높임법의 여러 단계가 있다. 해라체, 하게체, 하오체, 합쇼체, 하소서체에 따라 ‘말라, 말게, 마오, 맙소서' 등이 쓰였다. 특히 하오체 이상을 보면 ‘마르쇼셔(마르쇼서, 마르소서) / 말으쇼셔, 마로쇼셔, 마라쇼셔 / 말아쇼셔, 마시오, 맙시오, 맙소, 마소, 마오' 등이 쓰였다. 그런데 ‘말라, 말게' 등은 동사의 뒤에 통합되어 ‘하지 말라, 하지 말게' 등으로 쓰이는데 비하여 존칭에서는 ‘하지 마오, 하지 맙소서'처럼 동사의 뒤에 붙어 쓰일 뿐만 아니라 ‘하오, 맙소서'처럼 동사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것이 동사의 명령형인 ‘마오, 맙소서' 등이 감탄사로 변화하게 된 동기가 된다.
‘마오'를 감탄사로 독립된 올림말로 등재시킨 사전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 옛 문헌에서는 ‘마오'가 감탄사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춘향전에서 향단이가 거지가 되어 온 이몽룡을 보고 박대하는 월매에게
"앗씨 앗씨 큰 앗씨 마오 마오 그리 마호 멀고 먼 쳘이질의 뉘 보랴고 와겨관듸 이 괄셰가 웬 이리요"
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는데 , 이때의 ‘마오 마오 그리 마오'는 ‘마오'가 독립적으로 쓰이고 또한 ‘그만두다의 뜻을 가지면서도 감탄사의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원래 ‘않다'와 ‘말다'는 ‘-하지 않다, -하지 말라' 등으로 쓰이지만, ‘-하다'를 가진 동사들은 대부분이 ‘하지'를 빼고도 어근만을 사용하여 문맥이 이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염려(원망, 말씀, 재촉 등) 하지 않는다(말아라)'는 모두 ‘염려(원망, 말씀, 재촉 등) 않는다(말아라)'로도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몇몇은 관용어처럼 쓰여서 뜻을 변화시키고 있다. ‘말씀 마세요'는 ‘말씀을 하지 마세요'란 뜻 이외에 ‘놀라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하여튼 ‘말다'는 극존칭의 명령형에 ‘맙소서'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원래 ‘말 - + -읍(옵) - + -쇼셔'로 분석되는 형태가 통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읍'은 공손법의 선어말어미이고, ‘-쇼셔'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명령법 어미이다. 그래서 ‘말+ 압쇼셔'는 ‘말-'의 ‘ㄹ'이 탈락하여 ‘마압쇼셔'로 나타나고, 이들의 다른 표기들로서, ‘마압쇼셔, 마옵쇼셔, 마옵소서, 마옵쇼서' 등이 나타난다. "말- + -압(옵)쇼셔 > 마압(옵)쇼셔 > 맙쇼셔 > 맙소서 > 맙소사" 등으로 변화한 것이다.
자내네씌 어려올 쟉시면 아모리 할지라도 됴토록 하올 거시니 념녀 마압쇼셔<1748개수첩해신어, 10, 하, 8a>
비록 제가 교만한 말을 할지라도 부디 노호여 마압쇼셔<1790인어대방, 1, 18a>
드되여 예수씌간 구하기를 밋 업난 구렁으로 드러가라 하시지마압쇼셔 하더니<1900신약전서, 눅8,31>
회생하시리니 너무 과도히 슬허 마옵쇼셔<18xx당틔죵젼, 6a>
이번만 엿자옵나니 혹 거긔셔 십인을 맛나겟삽나이다<1901신학월보, 권1, 409>
이러한 ‘마압쇼셔'가 감탄사처럼 쓰이지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와서의 일이다.
마압쇼셔 마압쇼셔 하나님도 이다지도 무심하신가 애고 애고 엇지하면 됴탄말가?<1913약산동듸, 85>
마압쇼셔 하나님, 어린 빙옥 무삼 죄로 구슈죄인 되단말가?<1913약산동듸, 167>
그리고 ‘맙시사'나 ‘맙소사 / 맙소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와서의 일이다.
맙시사 맙시사 그리랄 마시샤 감사도 사람이지 남의 돈을 빼서 먹으려고 무죄한 사람을 잡아다가 가진 악형을 다 하더니 돈을 아니 쥰다고 사람을 엇지 죽인단 말이냐<1906은세계, 63>
에구 하나님 맙시사 하며 씌아진 좌판조각을 쥬셤쥬셤 집어 둘너 메히더니 손의 가졋던 돈으로 팟쥭 한 그릇을 사셔 들고 궤 딱지만한 쓰러져 가난 오막살이 초가집으로 들어가며 <1907빈상설, 3>
하나님 맙시사 내가 이 산즁에 와셔 이 몹슬 놈의게 이 욕을 보고 죽게 하신단 말이오<1908치악산, 상 135>
가뜩이나 엄살을 부리는데다 더 흉측을 떨며 ‘어이쿠! 어이쿠! 하나님 맙시사!'<1937따라지, 292>
"아하! 하느님 맙소사” 이 긴 탄식 한 소리에 돈의 얼굴엔 눈물이 주루루 흘렀다.<1937다정불심, 224>
"조런 요망하고 쓸개자루 큰 것이 어디 있어. 아이구 하느님 맙소서 이런 변괴가.....” 말끝을 아우르지 못하고 안절부절을 못했다 <1936금삼의피, 55>
앗가 銃소리, 그 馬賦놈, 에그 하느님 맙소서! 江녁에션 또 어름팡이 깔닌다<1924국경의밤 119>
그렇다면 ‘마압쇼셔'가 단독으로 사용되어 감탄사처럼 쓰이면서 동시에 윗사람에게 ‘그만둘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 윗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것은 ‘신'일 것이다. 따라서 ‘맙소사'는 ‘신이여!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란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압쇼셔'나 ‘맙소서' 등의 앞이나 뒤에 오는 지원의 대상은 ‘하나님, 하느님'이다. 그러니 ‘오 마이 갓'보다는 더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 마이 갓'보다는 ‘하느님 맙소사!'가 더 맞을 것 같은데, 젊은이들에게 ‘오 마이 갓' 대신에 ‘하느님, 맙소사'를 쓰자고 제안하면 또 한 번 젊은이들 입에서 ‘오 마이 갓'하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아님 꼰대라는 입 삐죽이 소리를 들을 것임이 틀림없다.
영어에는 ‘오 마이 갓(Oh my gosh/Oh my God)’이라는 감탄사가 있다. 이는 꽤 보편적인 감탄사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감탄사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God’이 들어가므로 ‘신이시여’, 혹은 ‘세상에’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마 어감상 제일 적절한 번역은 ‘세상에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라고 하겠다.
‘맙소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거나 당할 때 탄식조로 내는 소리다. 이는 ‘맙소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하느님 맙소사’와 같이 관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맙소사’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사극에서 우리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대사를 자주 만난다. 이 ‘주시옵소서’의 ‘-ㅂ소서’에서 바로 ‘맙소사’의 어원을 추측할 수 있다. (새국어소식 2004년 6월호)
명령어의 높임법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가장 낮은 것이 ‘해라’, 그다음이 하게체, 하오체, 합쇼체, 하소서체의 순이다. 상대가 낮은 사람이라면 ‘해라’, 혹은 ‘하게’로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경우에 명령문을 쓴다면 ‘합쇼’, ‘하소서’ 등으로 사용된다. ‘소서’는 ‘하소서’의 옛 형태다. 이는 주로 ‘-쇼셔’의 형태로 발견된다.
‘맙소사’의 ‘ㅂ소사’의 의미는 밝혀졌다. 그렇다면 ‘맙소사’의 마’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평소에도 ‘하지 마라’라는 말을 사용해 ‘마-’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말다’의 원래 형태가 ‘말다’, ‘말게’, ‘말자’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다.
‘마-’는 ‘말다’의 어근이다. ‘말다’는 명령형, 청유형 부정문에 ‘않’의 역할을 한다. ‘말라’, ‘말자’와 같이 말이다. ‘먹지 말아라’에서는 ‘않아라’라고 하지 않는다. ‘먹지 말자’라는 문장 역시 ‘않자’라고 바꾸면 어색하게 보인다.
‘말다’는 옛 국어에서 명령형 높임법으로 ‘마르쇼서’, ‘마르소서’, ‘말으쇼셔’ 등으로 활용되어 쓰였다. 이것이 존칭에서는 ‘하지 마오’, ‘하지 맙소서’의 형태로 동사 뒤에 붙었다. 극존칭 명령어 ‘맙소서’의 경우는 ‘말다’의 어근 ‘말-’에 공손법 선어말어미 ‘-ᄋᆞᆸ-’(옵)이 붙은 형태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의 ‘옵’이라고 보면 편하다.
결론적으로 ‘말-+ᄋᆞᆸ+쇼셔’가 통합된 형태가 바로 ‘맙쇼셔’, 즉 ‘맙소사’의 어근이다. 이는 ‘맙쇼셔’, ‘맙소서’, ‘맙소사’ 등으로 변화한 것이다. ‘맙소서’는 동사의 명령형이었으나 동사와 상관 없이 독립적으로 사용되어 감탄사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는 19세기의 일이다.
‘마ᄋᆞᆸ쇼셔’의 변형으로 ‘맙시사’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20세기에 와서인데, 소설가 김유정의 ‘따라기’에는 ‘하나님 맙시사!’라는 감탄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맙소서’가 ‘맙소사’로 바뀐 것 역시 20세기에 와서인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새국어소식 2004년 06월호, 홍윤표)
‘마ᄋᆞᆸ쇼셔’, 즉 ‘맙소사’는 감탄사로 사용되는 동시에 윗사람에게 ‘그만둘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놀랐을 때 누구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일까? 아마 ‘신’일 것이다. ‘맙소사’는 ‘신이여,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정도의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서양의 ‘오 마이 갓’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니 이 역시 굉장히 재밌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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