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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오솔길의 맛과 멋

by noksan2023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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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의 맛과 멋

 

오솔길

 

 

 

우리말 ‘오솔길’은 참 정감이 가는 말이다. 어감도 매우 좋다. 어디서 온 말일까. 길을 나타내는 우리말은 그 앞에 수식어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골목길, 산길, 뱃길 등에서 이같은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앞말 수식어만 봐도 길의 용도나 성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오솔길은 이같은 예를 벗어나 있다. 어떤 사람은 ‘다섯그루 소나무가 있는 길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농담이다. 국어사전은 오솔길에 대해 ‘폭이 좁고 호젓한 길’이라고 적고 있다. 위 논리대로라면 ‘오솔’ 두 글자에 ‘폭이 좁고 호젓하다’는 뜻이 들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지 지금부터 살펴보겠다.


우리말은 ‘하나’라는 존재를 나타낼 때, 그 접두어로 ‘외’ 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외아들, 외기러기, 외나무다리, 외통 등에서 이런 단어를 만날 수 있다. 국어학자들은 이 ‘외’ 자에서 오솔길의 앞말 ‘오’ 자가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뒷말 ‘솔’ 자는 우리 어머니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바느질이 많았던 우리 어머니들은 저고리 어깨선이 좁을 때 ‘어깨가 솔다’라고, 그리고 소매가 좁을 때는 ‘소매가 솔다’라는 표현을 쓴다. ‘솔’ 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학자들은 오솔길의 ‘솔’ 자도 여기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바느질에서와 같이 ‘가늘고 좁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오솔길의 어원풀이가 거의 끝났다. ‘오’와 ‘솔’ 자의 뜻풀이를 합치면 된다. 국어사전에 나오고 있는 것과 같이 ‘폭이 좁고 호젓한 길’이라는 뜻을 만날 수 있다. 학자들은 송곳의 ‘송’ 자도 ‘솔’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송곳도 오솔길과 같이 좁고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무위자연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숭상하면서도 삶의 기본이나 생활 방식은 어디까지나 노자(老子) 풍에 더 가까웠다. 인위(人爲)나 인공적인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 방식이 오히려 우리의 체질에 맞았던 탓이다. 서구인들이 자연에 도전하고 개척하려 했다면 동양인, 특히 한국인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그것과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았다.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결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만사를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주어진 운명을 수용한 그 바탕에는 오랜 농경생활에서 체득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인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상으로 여기는 자연주의자요, 주어진 운명을 기꺼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얻게 돈 자유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언어 면에서도 농경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자연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과 스스로 말미암마는 자유(自由)는 근원적으로 같은 개념이다. 다만 이를 수용하고 인식하는 과정이나 방법에서는 동 서양이 차이가 있다. 서구인들이 자유에서 구속(법칙)을 끌어내고 개체에서 전체를 보며, 혼돈 속에서 어떤 격식을 만들어내었다. 이에 반해 동양인 특히 한국인은 법칙에서 자유를 누리고, 전체에서 개체를 보며, 격식에서 파격을 희구했다. 그런 연유로 개개 한국인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멋을 찾는 일은 한국인의 미의식과 함께 자유의식을 찾는 길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한적한 산골에 가면 정겨운 오솔길을 만난다. 오솔길은 한 가닥 좁은 길로 '외[單] + 솔[細] + 길[道]'의 구조로 분석된다. 저절로 형성된 이 오솔길을 통하여 우리는 손쉽게 한국인의 미의식을 만나게 된다. 길은 인간이 서로 교통하는 통로로서 인류 문명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겐 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길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연히 만들어지는 게 길이요, 그것이 길게[長] 보였기에 모두들 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땅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오솔길처럼, 전혀 사람의 손이 가해지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의 자연(自然)에 그대로 합치되지 않는가

 

이 땅의 오솔길은 저절로 만들어진 길이기에 언제 보아도 자연스러운 멋이 넘친다. 멋이란 말은 모음교체로 본래 음식 맛[味]을 나타내는 맛에서 유래한다. 멋이라고 하는 멋진 말이 지금처럼 다양하게 그야말로 제멋대로 넓은 범위에서 쓰이는 예도 드물다. 제멋대로란 말은 자연 그대로란 말과 본질적으로 통하는 말이다. 제멋이라면 말하자면 파격(破格)이라 할까, 어떤 양식이나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상태다.

 

우리 민족은 하던 짓도 멍석을 펴놓으면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자율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스스로 하고 싶어야 하지 남이 시키면 하려던 일도 그만두고 만다. 이런 기질을 모른다면 어느 누구도 한국인을 다스릴 수가 없다. 요는 마음이 내켜야 하는데 여기서 마음이란 신이나 흥이 나야 한다는 뜻이다. 신 또는 신명이 난다는 건 공리적 계산이나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란 말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흥이며, 타인의 힘을 필요치 않는 자발적 행위다. 신바람이 나거나 신명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댓바람에 해치우고 마는 한국인이다. 신이나 흥이야말로 스스로(自) 말미암는(由) 자유 바로 그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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