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어휘 자료
‘기저귀'란 ‘어린 아이의 똥오줌을 받아 내기 위하여 다리 사이에 채우는 천'을 말한다. 그러나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나와 말하는 어느 젊은 연예인의 말을 듣고 ‘기저귀'의 뜻이 바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연예인은 부모가 가출하여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손자들을 혼자 키우시는 할머니 댁을 방문하고 나서 ‘기저귀는 보이지 않고 헝겊으로 만든 천들만 빨래 줄에 많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종이로 만든 1회용 기저귀만을 ‘기저귀'로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기저귀'의 어원을 알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저귀'는 언뜻 보아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단어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기저귀'는 ‘깆 + -어귀'로 분석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깆'은 올림말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주로 ‘옷깆'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에 그
러한 대우를 한 것 같다. ‘깆'은 ‘옷깆'으로만 출현하지만, 18세기부터는 ‘옷깃'으로 나타나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領은 옷기지라<1465원각경언해, 3, 상-1, 2:76a>
馬融의 덧소리 든논 듯하며 仲宣의 옷기잘 지엿난 닷호라<1481 두시언해(초간본), 3, 14a>
小人의 옷깃슬 트러 잡고 百般 티고 욕호되<1765박통사신석언해, 3, 52b>
或 옷깃살 잡아다 이저시면 곳 喉下에 옷깃 痕跡 검은 빗치 잇나니 <1792증수무원록언해, 2, 21b>
‘옷깆' 또는 ‘옷깃'은 ‘옷'이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깆'이나 ‘깃'은 별도의 의미를 갖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현대국어에서 ‘깃'은 ‘옷깃'과 같은 뜻이어서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 또는 ‘양복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깃'은 ‘아이 옷'을 말하는 것이었다. 「훈몽자회」에 ‘석(褯)'을 ‘깃 챠 俗呼補子'라 하고 있어서, ‘석(褯)' 즉 ‘깃'은 원래 ‘어린아이의 옷'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성통해」에도 ‘小兒被卽合繃子 깃'이란 기록에서, 어린아이가 입는 옷인 ‘붕자(繃子)'를 ‘깃'이라고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기저귀'는 ‘어린 아이의 옷'이란 뜻을 가진 ‘깆'에 접미사 ‘-어귀'가 붙어서 된 말이다. 접미사 ‘-어귀'는 여러 단어에 나타난다. 옛날에는 ‘주먹'을 ‘주머귀'라고 했는데, 이것도 ‘줌+-어귀'로 된 것이고, 역시 ‘손아
귀'의 ‘-아귀'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저귀'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기저귀'란 단어는 19세기에 처음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기저귀'가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기저귀'란 단어가 있기 전에는 ‘기저귀'를 ‘삿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그 기록이 보인다.
尿布 샷깃 卽 기저귀 <18xx광채물보, 인도, 2b>
尿補子 삿깃 尿布<1715역어유해보, 22b>
尿補子 삿깃 <1778방언유석, 서부방언, 2a>
이때의 ‘삿깃(또는 ‘샷깃')'은 ‘사타구니'의 뜻을 가진 ‘샅'에 ‘깃'이 통합된 형태이다. 즉 ‘사타구니에 댄 깃'이란 뜻이다. 즉 오늘날의 ‘기저귀'와 동일한 뜻이다. 그래서 ‘샷깃 卽 기저귀'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러한 기능을 가진 ‘기저귀'의 실체가 생겼을까? 추측컨대 16세기에는 ‘기저귀'가 없었던 것 같다. 16세기에 간행된 「번역박통사」의 기록이 그러한 기능성을 보여 준다.
갓 아기 싯기기 맛고 머리 갓고 아기랄다가 달고지예 엿나니라 술위 사다가 미틔 지줅 쌀오 또 젼툐 쌀오 우희 두서 깃 쌀오 아기를 누이고 우희 제 옷 둡고 보로기로 동이고 오좀 바들 박을 그 굼긔 바라 노코 분지를다가 미틔 노코 아기 울어든 보고 달고지를 이아면 믄득 그치나니라<1517번역박통사, 상, 56b>
(갓 낳은 아기를 씻기고 머리를 깎과 아기를 달구지(흔들차, 搖車)에 넣고 수레를 사다가 밑에 지줅(욍골자리)을 깔고, 또 전초(氈條, 보료) 깔고, 위에 두어 깃(어린이 옷 같은 얇은 천) 깔고 아기를 누이고 아기 옷을 덮고 보로기(아기 옷을 동이는 끈)로 동이고 오줌을 받을 바가지를 그 구멍에 바로 놓고 분지(糞池, 똥 받을 그릇)를 밑에 놓고 아기 울거든 흔들차를 흔들면 문득 울음을 그치니라)
이 기록을 보면 오줌을 받을 바기지를 애기의 잠지 아래에 놓는다고 하였으니, ‘기저귀'는 없었던 것 같다. ‘삿깃'이 18세기에 보이는 것을 보면 늦어도 18세기부터 ‘기저귀'의 기능을 가진 천이 있었고, ‘기저귀'란 단어
는 19세기에 생겨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과연 ‘기저귀'를 1회용 기저귀로만 인식하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기저귀
기저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아이나 환자의 똥오줌을 받아 내기 위해 다리 사이에 채우는 물건이다. 천 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로 구분한다. 국내에서는 무명, 가제(소창), 플란넬 등을 천 기저귀 소재로 사용하다가 198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고, 일회용 기저귀가 저렴해지고 사용하기에도 편해지면서 일회용 기저귀 소비량이 증가하였다. 최근에는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아기 기저귀 시장보다 성인 기저귀 시장이 커지고 있다.
17세기 중한 사전 『역어유해(譯語類解)』(1690) 보(補)권 잉산(孕産)조에서 중국어 '尿褯子'의 번역으로 한국어 '삿깃[尿布]'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19세기 『한불자전』(1880)에서는 '기져귀[襁褓]'가 발견된다. '삿깃'과 유사한 방언으로 강화, 김포 지역의 ‘새낏’, ‘샛끼저구’, 경남 지역의 ‘사빠’, ‘사파’, ‘사찌기’, '사칫'이 있으며, '기저귀'와 유사한 방언으로 경기, 경남, 강원, 충북, 전남 등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기저기’, ‘기저구’, ‘지저기’ 등이 있다.
기저귀는 천 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로 구분된다. 천 기저귀 소재로는 자극성이 적고, 흡습성이 좋으며, 세탁하기 쉬운 무명, 가제(소창), 플란넬이 사용되었다. 1936년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조선식’ 기저귀는 좁은 폭 무명 또는 소창을 일자접기 하여 샅에 채우고 허리에 끈으로 고정시키는 형태이다. 한편, ‘서양식’ 기저귀는 일자접기에서 대변이 새어 나올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한 삼각접기를 기저귀 접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 기저귀는 엉덩이 밑에서 다리 사이로 돌려 배까지 올라오게 하고, 허리 밑에서 끈 또는 고무줄으로 매어 고정시키거나, 고무 또는 나일론 재질의 방수되는 기저귀 커버를 별도로 사용하여 허리에 고정시켰다. 단추 지퍼를 대용하는 벨크로가 개발되기 전에는 기저귀를 고정하기 위해 기저귀용 안전핀이 주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일회용 기저귀는 1940년 후반 스웨덴의 존슨앤존슨사에서 개발하였다. 이 기저귀는 일자형 흡수체와 방수 커버로 구성되었다. 당시 일회용 기저귀는 외출할 때나 장거리 여행을 할 때에만 사용하는 사치품으로 인식되었다. 1980년경에 개발된 일회용 기저귀에는 펄프와 고흡수성 수지(SAP, Super Absorbent Polymer)가 적용되었고, 가격도 저렴해졌다. 흡수량이 뛰어난 고분자를 적용한 기술로 기저귀의 두께가 얇아져 통기성이 좋아지고, 장시간 기저귀를 착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피부 발진 등이 줄어들었다.
국내에서는 1969년 무궁화위생화장지공업사에서 종이 기저귀를 처음으로 출시하였다. 1983년 유한킴벌리에서는 미국 킴벌리클라크와 기술 제휴하여 팬티처럼 입을 수 있으며, 종이 옷 원단 및 신축성 있는 특수 고무줄, 두꺼운 흡수지를 사용한 아기 기저귀를 개발하여 출시하였다. 유한킴벌리는 2010년대 후반까지 유아 기저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천 기저귀일 경우에는 배설물의 식별과 세탁 및 살균 소독이 용이하도록 흰색 천을 사용하였다. 한편, 천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아기들의 기저귀를 많이 장만할 수가 없었으므로 오래된 성인 무명 옷을 잘라 삶아 소독하여 기저귀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애기구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애기구덕은 오줌을 싸면 밑으로 스며 빠지고, 대변을 봤을 때는 짚을 걷어내고 새것으로 갈아줄 수 있는 구유를 말한다. 산모에게는 산달 1, 2개월 전에 친정에서 강보(기저귀) 또는 배내옷 감으로 무명 및 면포류를 보내기도 하였다.
천 기저귀 소재로 소창을 주로 사용하는데, 소창은 강화도가 주산지이다. 폭에 따라 대(19인치), 중(17인치), 소(12~13인치)로 나뉘는데, 기저귀감과 19인치가 사용된다. 소창과 관련하여 '살아서 한 필, 죽어서 한 필'이라는 말이 있다. 어린아이 기저귀감으로 반드시 써야 하는 한 필, 죽어서 한 필, 관빠(관끈)로 반드시 써야 하는 한 필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고, 1983년 출시된 SAP와 펄프를 사용한 일회용 기저귀의 품질과 가격이 소비자를 만족시키면서 세탁과 함께 살균, 건조, 빨래 개기가 동반되어야 하는 천 기저귀보다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의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회용 기저귀의 소비량이 현저히 늘어난 1990년대에는 '천 기저귀'에 환경 마크를 부여하며 천 기저귀 사용을 독려하였으며, 언론은 일회용 기저귀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오염에 대해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에 천 기저귀는 1997년 외환 위기 시기에 사용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으며, 일회용 기저귀의 환경 오염 가능성이 꾸준이 제기되자 일회용 기저귀에 사용된 고흡수성 폴리머 소재를 추출하여 포스트잇 같은 메모지나 의료용 밴드에 사용되는 접착제로 재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현재 기저귀는 인간의 건강과 환경 문제를 모두 고려하면서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기저귀, 노년층 · 환자들을 위한 성인용 기저귀, 옥수수의 단백질과 섬유소, 비타민 등으로 제작된 친환경 기저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아기 기저귀 시장보다 성인 기저귀 시장이 커지고 있다.
신생아의 기저귀는 임신 후기에 산모産母나 아기의 친·외할머니가 미리 장만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지만, 형편에 따라 산후産後에 마련하기도 했다. 대소변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기저귓감을 두툼하게 직사각형으로 접어 샅에 채우고 허리에 끈을 묶어 고정했다.
기저귓감으로는 흡수성이 좋고 부드러운 옷감이 선택되었으며, 여러 옷감 중에서 무명이 주로 사용되었다. 개항 이후에는 옥양목과 일본 광목[日木]이 선호되었다. 간혹 광목 또는 무명 사이에 솜을 얇게 두고 촘촘하게 누벼서 내구성을 높인 기저귀를 볼 수 있으나 흔한 예는 아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고 터울이 적은 아이 여럿을 키우는 경우에는 기저귓감의 색깔이나 재질에 상관없이 무명 등을 짜고 남은 옷감 자투리와 입던 옷을 얻어서 기저귀를 만들기도 하였다.
장수長壽한 남자 어른이 입던 무명옷을 잘라 기저귀를 만들어 채우면 아기가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전한다. 장수라는 의미를 덧붙이긴 했으나 실제로는 낡은 옷을 재활용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명분이었다. 오랫동안 입어 낡은 옷은 부드러워서 연약한 아기의 피부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 아기에게 여자 어른이 입던 옷 조각을 잘라 기저귀로 쓴 예는 없으며, 이는 남아선호사상 강했던 당시의 전반적인 경향으로 볼 수 있다.
1938년 『동아일보』에는 “오랫동안 튼튼하게 쓰기 위하여 두터운 광목을 기저귀로 쓰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기저귀의 의무를 잘하지 못합니다. 두터운 감은 오줌을 잘 빨아들이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내리며, 또 부드럽지 못합니다. 새것으로 장만하는 것보다 차라리 헌 옷을 뜯어서 쓰는 것이 좋고 새것을 쓰려면 일목이 제일]입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어서 헌 옷을 재활용한 기저귀 만들기가 이때까지 꾸준히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에는 직사각형 기저귀 이외에 서양식 삼각기저귀와 고무기저귀가 사용되었다. 1936년의 기저귀 관련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접어서 샅에 채우고 허리에 끈으로 매어두는 기저귀는 ‘조선식’으로 명명되었다. 조선식 기저귀의 단점은 대소변을 보았을 때 양편으로 흘러내린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기사에는 생후 2개월 동안은 일본 광목 한 폭을 접어서 만든 조선식 기저귀를 쓰게 하고 이후로는 아이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서양식 삼각기저귀를 쓰라는 권고가 포함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용한 고무기저귀는 고무로 만들어 기존의 조선식 기저귀 위에 덧입힌 덧기저귀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1937년 『동아일보』 기사에 통풍이 잘 되지 않으니 가급적 외출할 때 사용하라는 언급이 있고 1939년 기사에는 “고무기저귀 속에서 오줌이 살이 데고 고무가 더워지면서 발산을 못 시키게 되나니” 긴 시간 채우면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후 국내에 일회용 종이기저귀가 나온 것은 1968년의 일이다. 무궁화 위생화장지공업사에서 출시한 종이기저귀 하나의 크기는 가로 35, 세로 16였다. 상품은 폴리에틸렌에 열 장씩 넣어 한 다발 단위로 판매되었고 가격은 9백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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