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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색시 _ 어원 자료

by noksan2023 202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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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 _ 어원 자료

 

 

색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색시'를

 

① ‘새색시'와 같은 말,

②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젊은 여자,

③ 술집 따위의 접대부를 이르는 말,

④ 예전에, 젊은 아내를 부르거나 이르던 말

 

의 네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색시(또는 ‘색씨')'란 단어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초인데, 이때에도 다음 예문에서 보듯이 이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리 게집들은 색시 구경하기와 직조 구경하기에 절망 골하여 <19xx소강절, 29>(①의 뜻)

조선 안의 그 수탄 색시들 중에 「채영신」 석자만 쳐다보고, 눈을 꿈벅꿈벅하고 기다리는 나 자신이<1936상록수, 372> (②의 뜻)

녀자가 술을 파는 내외 술집이엇다. 「나만 따러 오시우. 내어엽분 색시 구경을 식켜 줄 터이니!」 <1926池亨根, 1>(③의 뜻)

「여보 아즈머니! 우리 집 색시 어듸 갓는지 보앗소?」 <1925물레방아, 8> (④의 뜻)

 

‘색시'는 원래 ‘갓 시집온 젊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뜻으로는 ‘색시'가 쓰이지 않고 ‘새색시'가 쓰이고 있다. 아마도 ‘색시'가 ‘술집 등의 접대부나 창녀'를 일컫는 말이 되면서 ‘색시'는 기피하는 단어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새색시(또는 ‘새색씨')'는 ‘새 + 색시'로 분석되는데, 이 단어도 그 예를 20세기 초의 문헌에서 처음 발견할 수 있다.

 

아모 소리 안이하고 新郞의 얼골만 겻눈으로 흘겨 보는 새색시의 얼골 갓흔 말님의 얼골 빗츨 나는 보기 원합니다<1922젊은이의 시절, 50>

그 건너 집 동산에서는 새색씨의 다홍 치마 자락이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듯 마는 듯 하는데 <1939어머니, 200>

 

그러면 ‘색시'는 어떻게 분석되고 어떤 단어에서 비롯된 것일까? ‘색시'를 ‘섹시(sexy)'에서 찾으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색(色) + 시(氏)'로 분석하려는 사람은 있음직하다. 왜냐하면 19세기 말에 이미 ‘색 쓰다[用色]'는 단어 가 출현하기 때문이다<1895국한회어, 171>. 그러나 ‘색시(또는‘색씨')'는 엉뚱하게도 ‘새악시(또는 ‘새악씨')'가 줄어든 말이다. ‘새악시'는 17세기부터 용례가 출현하다가 20세기 초에 사라지고, 이어서 20세기 초에 ‘색시'가 등징'한다. 19세기 말의 각종 사전에 아직 ‘색시'란 올림말이 없고, 대신에 이에 해당하는 단어로서는 ‘새악시'가 등재되어 있으며, 또 방언형에 ‘샥시'(경기도), ‘시악시'(전남) 등이 보이는 점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추정할 있다. 

 

새악시(女孩兒)<1690역어유해, 상, 41a>

젊은 아해와 어린 새악시랄 몹시 굴어도 능히 그 배교랄 식이지 못하니 <1892성경직해, 8, 18b>

새악씨(新婦)<1880한불자전, 367>

새악씨(處女)<1895국한회어, 171>

김씨 홍졔원 새악씨로셔 애오개에셔 사난 외인 공셔방의게 츌가하엿더니 <1895치명일기, 57a>

뎌 옥 갓한 새악씨랄 뉘 감히 핍박하리오<1905 기해일기, 64b>

그 사람 생각에 뎌 새악시가 무어슬 아나 보다하엿더니 과연 그 이튼날 아참에 청명하던 날이 흐리고 비가 오난지라<1904 대한매일신보, 3>

이놈은 공부도 아직도 못하고 재산도 업는 터에 남의 집 새악시만 그득하게 모이다 노으면 쟝차 엇지한단 말삼이오잇가 하하하<1914금강문, 449>

 

그렇다면 ‘새악시'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새악사는 ‘새 + 악시'로 분석 될 것이 분명한데, 이때의 ‘악시'는 무엇일까? ‘악시'는 ‘각시'다. ‘새각시'의 음운변화로 말미암아 ‘새악시'가 발생한 것이다. 즉 ‘새각시'는 ‘새 + 각시' 로 분석되고 ‘각시'가 ‘아내'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새색시'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였다. ‘각시'가 15세기에 흔히 사용되었으므로 ‘새각시'도 이 시기에 나타날 것 같지만, 실은 ‘새각시'는 17세기에 처음 보인다.

 

뎌 새각시 얼굴이 가장 고아 쥰슈홈이 觀音菩薩 갓고<1677박통사언해, 상, 41b>

올해 갓 十六歲니 自然이 새긱지라 언머 財禮랄 드리더뇨<1765박통사신석언해, 1, 44a>

 

‘새각시'도 17세기에 이미 ‘새악시(또는 ‘새악씨')'로 변하여 나타난다. ‘새 각시'의 ‘새'와 ‘각시' 사이에서 ‘ㄱ'이 탈락한 것이다. ‘새삼'이 ‘새암'이 되는 것과 유사한 음운변회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초까지도 쓰였다. 방언형에서는 아직도 ‘새각시(또는 ‘새각씨')'가 ‘새악시'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새각시'를 무엇이라고 불랐을까? 앞에서 예를 든 「박통사언해」와 「‘박통사신석언해」와 계통을 같이 하는 16세기의 「번역박통사」에서는 이들을 ‘숟갇나해'라고 하였다. 아래의 예문에서 ‘숟갇나해'와 ‘니믈리기[後婚女]'가 대립되며, 이의 후대본인 「박통사언해」(1677)와 「박통사신석언해」(1765)에서는 ‘새각시'로 대응되어서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숟갇나해가 니믈리기가(女孩兒那後婚) 올히 갓 열여스신 숟갇나해라(合年線十六歲的女孩兒)<1517번역박통사, 상, 45a>

새각시러냐 니믈리기러냐 올해 갓 十六 歲엣 새 각시러라<1677박통사언해, 상, 40b>

이 새각시러냐 당시롱 뎌니 물리기러냐 올해 갓 六歲니 自然이 새 각시라<1765박통사신석인해, 1, 43b>

 

결국 ‘각시'와 ‘숟갇나해'가 쓰이다가 ‘각시'에 ‘새'리는 접사가 붙은 ‘새각시'로 대치된 뒤에 ‘새악시'로 음운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이 축약되어 ‘색시'(새각시 > 새악시 > 색시) 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색시'에 다시 ‘새'를 붙여 ‘새색시'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새색시'는 ‘새 + (새 + 각시)'로 분석되어서 ‘새[新]'가 이중으로 들어간 희한한 단어인 셈이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에는 ‘색씨'를 ‘새색씨'의 준말이라고 했고 조선어학회의 「큰사전」(1950)에도 ‘색시'를 ‘새색시'의 준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사전」(1920)에는 ‘색씨'가 ‘미혼의 여자'로만 기술되어 있고, ‘신부(新婦)'의 뜻으로는 ‘새아기씨'와 ‘새아씨'가 실려 있다.

 

이 ‘새색시'와 뜻이 매우 비슷한 말로 지금 ‘새댁'이 흔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새댁'은 원뜻은 ‘사람이 아닌 ‘집'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댁'이라고 표기되었고, 또 그 뜻도 신랑집에서 신부집을 말할 때 쓰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색시'와 같은 뜻으로 전이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상쟈의 옷 새댁의셔 하여 왓다<1636병자일기, 250>

새댁(新宅)<180 한불자전, 367>

새댁 新婦<1895국한회어, 171>

갓 잡아온 새댁 모양으로 씻는 감자나 씻을 뿐 잠잣고 잇섯다<1934소낙비, 23>

두 눈구녁만 남기고는 탈박아지처럼 분을 하얗게 뒤집어 쓴 새댁네도 섞였다.<1936상록수, 239>

 

‘젊은 아내' 즉 ‘갓 혼인한 여자'를 ‘새각시'라고 하였다. ‘각시'가 ‘아내'를 뜻하므로 ‘새 각시'란 ‘새로 시집온 젊은 여자'란 뜻이다. 이것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새악시'가 되고 다시 축약되어 ‘색시'가 된 것이다. 이전에는 ‘숟 갇나해'라고도 했지만, ‘새각시'에 밀려 사라지고 ‘새각시'의 변화형인 ‘색시'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색시'에 대한 어원의식이 사라지면서 갓 혼인한 젊은 여자를 ‘새색시'라고 하게 되었다. 대신 20세기에 와서 ‘색시'는 술집 따위에서 일하는 접대부를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지 시작하면서 ‘색시'가 마치 ‘시집가지 않은 젊은 여자란 뜻을 가진 말로 변화하였다. 엉뚱하게도 ‘혼인한 여자가 ‘혼인하지 않은 여자로 그 의미를 둔갑시킨 것이 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색시'란 결혼하였든 결혼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젊은 여자'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새댁'이 ‘새색시'의 자리를 점유한 것으로 보인다.

 

 

 

새색시 신세경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불려지고 일컬어지는 호칭과 지칭은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관계가 있다. 그래서 그 속에 녹아 있는 것들을 세세하게 읽어내는 것은 피곤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호칭을 읽어내는 작업은 필요하다. 이것은 조금 더 공평하고 서로가 좋을 수 있는 일상을 지내기 위해서이다.


서로가 서로 간에 관계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호칭은 개인의 정체성, 자존감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위계질서의 차원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 관계망 등이 호칭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듣기에 거북하지 않고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 혹은 꺼려하는 호칭을 강요하지 않는 것 등은 서로를 존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자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시카고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한국계 은행에서의 일이다. 어느 나이 지긋한 남자어른이 은행창구 여직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가씨, 아가씨”를 연발하고 있었다. 이때 그 여직원이 “아가씨 아가씨 하지 마세요. 아가씨 아녜요” 하며 미소 띈 얼굴로 답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아가씨라고 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을 담고 표현하는 말인지를 감을 못 잡고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보통 우리네들은 20대 전후의 젊은 여성들을 존칭해서 부르는 말로 ‘아가씨’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가씨는 시집가기전의 여성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인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아가씨의 말뜻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가’의 씨를 가졌다는 의미를 지닌 호칭이다. 이것을 보면 결코 여성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여성의 존재를 ‘아가’를 통하여 보는 가부장제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투영되어있는 말이다. 거기에 더해 아가씨라는 호칭은 시대를 거듭해오면서 특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남자들에게 아가씨라고 불리는 여성이 누구인가를 찬찬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절대적으로 20대 미만이 아가씨라고 불리는 것도 아니고, 남성의 시각에서 아가씨라고 불릴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30대도, 결혼을 한 여성도 그렇게 불린다. 그 판단 기준은 남성들만이 알 일이다.


최근 한국의 국민의당 국회의원인 이언주의원의 ‘밥하는 아줌마’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의원은 SBS 방송기자와의 통화에서 파업을 벌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친놈들’이라고 표현하고, 급식조리 노동자를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하고 말해 이언주 의원의 개인적인 신뢰도와 지지도 하락은 물론 국민의당은 제보조작사건에 이어 엎친데 덮친격으로 당의 도덕성에 금이 가는 악재가 되어 곤욕을 치루고 있다. 결국은 이의원이 고개 숙여 사과를 했지만 화가 난 아줌마들의 감정과 분노는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지 않다.


어쨌거나‘아기주머니’라는 어원을 가진 아줌마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뽀글뽀글 지져서 만든 파마머리에 촌스럽고 수다스러운 사람들이다. 갓 결혼한 기혼여성은 새색시, 새댁이지만 취학아동을 자녀로 두면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아줌마가 된다. 여성들은 아줌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러한 느낌이나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를 않는다. 그저 익숙할 때까지 부르고 또 부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줌마가 되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경험하여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말하는 아줌마 다음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따로 여성들은 아줌마라고 불렸을 때 기분이 안 좋아지며 발끈하게 된다. 그것은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만들어놓은 아줌마를 고스란히 느끼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나 어느 장소에서 낯모르는 여인과 시비가 붙으면 어김없이 남성의 입에서 감정적으로 튀어나오는 소리가 상대여성의 면상에다 삿대질을 하며 “아니 이 아줌마가” 이다. 여성을 아줌마란 이미지에 가두어 폄하하고 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다. 아가씨, 아줌마 호칭의 문제점은 그 호칭자체가 갖고 있는 비하적인 느낌만이 아니다.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에게는 이들 호칭이 공적 영역에서조차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여성들의 이름과 직함을 사라지게 만든다. 즉 여성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아줌마라는 단어는 항상 비하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친근감이나 늠름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성비하 성 차별의 의미를 담을 수 있으니 개념 있는 언어를 사용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본디 어머니뻘의 여자 친척, 또는 손윗 처남의 부인을 일컫는 ‘아주머니’를 줄여서 부르는 호칭인데 아주머니와 아줌마의 어감은 미묘하게 다르다. 아줌마 보다는 아주머니 쪽이 조금 더 격식을 차린 표현으로 여겨지고, 한편으로는 자식 있는 기혼 여성에게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이래저래 자주 쓰이는 만큼이나 천대받는 호칭이다.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의 양이 줄어들고 반대로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그로 인하여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힘이 강해지고 억세지는 반면 남성들은 여성과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고 여성호르몬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근력은 줄어들고 혈기도 사라진다. 부부싸움에서 대체적으로 남자가 패배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보았을 때, 전혀 이상하거나 잘못된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늙으면서 남자들은 부인 앞에서는 꼬리를 착 내리고 공손하게 지내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아무튼 청년기에 힘이 절정기에 도달하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아줌마라고 일컬어지는 중년기에 이르면 힘이 절정에 도달한다. 신혼 여성들이 이런 억세고 힘 좋은 시어머니를 두려워하는 것 역시도 같은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시어머니들은 단순히 카리스마와 경험만 많은 게 아니라 실제로 완력도 쎄다. 즉 계급장 떼내고 머리끄덩이잡고 한판 붙는다 해도 젊은 새댁쪽이 중년 시어머니의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다. 일방적인 게임 완패다. 그래서 중년세대의 아줌마들을 억세고 넉살좋고 힘 좋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아줌마들에게는 상대하지 말고 몸 사리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70년대까지는 주로 사모님 계층(?)의 사람들이 허드렛일을 하거나 남의 집일을 해주는 가정부를 부르는 말이었다. 자신보다 신분이 낮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아줌마라고 불러왔다. 그러다가 그 뜻이 변질되어 결혼한 부녀자를 가리키는 아주머니의 준말인냥 쓰이고 있다. 또한 아줌마라는 말을 사용할 때와 아주머니라는 호칭을 쓸때에는 그 뉘앙스가 매우 다르다. 전자가 주로 자신보다 신분적으로 낮은 사람을 부를 때 쓴다고 한다면, 후자는 존경감과 아울러 예의를 갖추어서 부를 때 쓴다.


아주머니라고 부른 후에는 흔히 부탁의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지만, 아줌마라는 호칭 뒤에는 심부름을 시키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듯한 말투가 따라오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아줌마, 그들은 우리들의 어머니들이다.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결코 비난받거나 비웃음을 받을 존재가 아니다.


아주머니라는 정식 호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라는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기분좋아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결코 듣는 이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하고 기분 좋게 해주는 용어가 아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서 조심스럽게 ‘아주머니’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그때 산에 간 사람들이 거지반 죽었다든디 떼보 각시는 살어 있다는 말도 있대 자네도 들었능가? 살았재 성님도 들었지라 떼보네 식구들은 토벌 때 다 죽고 떼보 각시만 살아서 포로가 되야가꼬 자응 경찰서에 잽해 있다가 뭐 사연인가 토벌 경찰하고 살게 되얐능갑습디다. 그래이 사람 일을 알 수가 없네이 즈그 서방 자석 죽인 말하자면 웬수라고도 할 수 있는 사나그하고 살 수도 있으까 아이고 성님 좋아서만 산다요.

 

양님네 아짐이 광주 갔다가 장바닥에서 잘팍 부닥쳤다능거여 입은 것은 깨꼼허니 갠찮한디 낯바닥이 노라니 밴함서 주저앉을락 하드랑만 양님네 아짐은 인공 때 저짝 사람들 손에 서방님에 시동상까지 다 학살 당했소안 그때 떼보 각시가 여맹위원장 맡어가꼬 동네서 인공 노래 갈치고 그럴 땡게. 

 

오매 이 사람아 어째 이랑가 못 살 시상에 살아 남었으니 되얐네 그라지 마소 그람서 달갱게 이라고저라고 저 사는 말을 하드라요 살도 못 허고 죽도 못 허고 산다고 눈물바람을 하드랑만. 딸 둘에 아들 하나 낳고 산다는디 잘 살 것이요 새각시 때부터 손도 야물고 부지런항께 그 고샅서 질로 부뚜막이 반들반들허고 누에 칠 때 뽕잎도 질로 많이 따고 안 그랍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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