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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싯돌_어원 자료

by noksan2023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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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싯돌_어원 자료

 

 

부싯돌

 

 

 

인류가 ‘불'을 채화하는 수단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번개'로 알려져 있다. ‘번개'에 의해 채화된 불을 꺼뜨리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었다. 원시인들 사이에서 불을 만드는 방법으로 널리 퍼져 있던 것은 마찰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단단한 막대기를 뾰족하게 만들어 이보다 무른 나무에 낸 조그만 구멍에 이 막대기를 넣고 손바닥 사이에 이 막대기를 끼워 회전시켜서 불꽃을 만드는 방법인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 부삿돌황철석에 우연히 부딪혔을 때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부시'를 만들어 내었는데, 이 부싯돌은 1827년 성냥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불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은 주로 라이터를 이용하지만 그것도 1세기 전인 1906년 이후였다. 지금은 전자 방식으로 바뀌어 손잡이만 찰칵 돌리면 불꽃이 쉽게 만들어지는 시대이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허리춤에 ‘부시'와 ‘부싯돌'과 ‘부삿깃'이 들어있는 ‘부시쌈지'를 차고 다니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쇳조각으로 되어 있는 ‘부시'를 석영(주로 차돌을 깨뜨려 뾰족하게 해서 사용하였다) 등으로 되어 있는 ‘부싯돌'에 쳐서 말린 쑥잎 따위로 되어 있는 ‘부싯깃'에 불을 붙이게 된다. 쇳조각을 차돌맹이에 여러 번 치면 불똥이 일어나고 그 불똥을 쑥잎 등을 말려서 곱게 비벼 만든 ‘부싯깃'에 붙여 불을 붙이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것을 ‘부시(를) 친다'고 하였다.


'부싯돌'이나 ‘부싯깃'은 모두 ‘부시 + ㅅ + 돌, 부시 + ㅅ + 깃'으로 분석되는데, 이때의 ‘부시'는 어디서 왔을까?


부시'에 대한 어원은 그 견해가 분분하다. 일반인들은 ‘불[花] + 씨[種子]'로 구성된 ‘불씨'의 ‘불'이 ‘ㅆ' 앞에서 ‘ㄹ'이 탈락하여 ‘부씨'가 되고 이 ‘부씨'가 변하여 ‘부시'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불'의 옛 어
형 ‘븟'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라고 주장하고, ‘붓이'가 ‘부시'로 되어 ‘불을 일구는 물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 해석은 그럴듯할지는 몰라도, 불의 옛 어형이 ‘븟'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 ‘블'이 ‘븟'이 되려면 ‘블'에 사이시옷인 ‘ㅅ'이 붙어서 ‘븘'이 되고 여기에서 ‘ㅅ'이 탈락하고, 다시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와야 한다. 그러나 접미사 ‘-이'가 통합될 때에는 ‘블'에 사이시옷인 ‘ㅅ'이 연결될 리가 없다.

 

‘부시'란 의미를 가진 단어는 옛 문헌에서는 ‘부쇠'란 형태로 17세기에 처음 보인다. 이 ‘부쇠'가 18세기를 거쳐 20세기 초까지 계속 사용되었었다. 19세기 말에 ‘부시'가 발생하여, ‘부쇠'와 함께 쓰이다가 20세기의 30년 대부터 ‘부시'가 세력을 넓혀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부쇠'는 원래 ‘불쇠'이다. 즉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라는 뜻이다. ‘불쇠'는 문헌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ㅅ' 앞에서 ‘ㄹ'이 탈락하기 때문이다. ‘말'과 ‘쇼'가 결합되면 ‘말쇼'가 아니라 ‘마쇼[馬牛]'가 되며, ‘둘'과 ‘서'가 결합하면 ‘두서[二三]'가 되며 ‘플과 ‘서리'가 결합되면 ‘프서리[草間]'가 되는 것들이 그러한 현상의 하나이다. ‘부쇠'라는 단어는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火鎌 부쇠 火石 부쇳돌 火絨 부쇳깃 火繩 부쇳깃<1690역어유해, 하, 18a> 

火鎌 부쇠 火石 부쇠ㅅ돌 火絨 부쇠ㅅ깃<1768몽어유해, 상, 37a>
火鎌 부쇠 火石 부쇠ㅅ돌 火絨 부쇠ㅅ깃<1778방언유석, 성부방언, 12b>
打火鎌 부쇠 치다<1778방언유석, 해부방언, 10a>

火刀 부쇠<18xx광재물, 火, 1a>

부쇠 火鐵<1895국한회어, 513>

봄과 가을은 물 흐람 갓고 쌔와 날은 부쇠불 갓하야 셰샹이 잠간이오니 조심하샤 쥬명을 기다리쇼셔<1906경향보감, 1,  229>

죠판셔의 완고한 사싱에 틔끌만한 혐의가 잇난 사람도 부쇠 쌈지 속에 젹어 너어 두고 력력히 잇지 안이하난 터이러니<1911원앙도, 6>

부쇠<1920조선어사전, 409>

 

이 ‘부쇠'는 ‘불쇠'에서 왔으니, 그 이전 형태는 아마도 ‘브쇠'였을 것이다. ‘불'의 고형은 원순모음화되기 이전의 형태인 ‘블'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헌상에서 ‘브쇠'란 형태는 찾기 힘들다. ‘부쇠'가 처음 보이는 17세기 이전의 문헌은 물론 17세기 이후의 문헌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부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는 17세기 이전에는 ‘부쇠'에 해당하는 어휘 자체가 없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둘째는 자료상의 제약으로 우연히 문헌상에 ‘브쇠'란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17세기 이후에도 ‘부쇠'의 역표기 형태로 ‘브쇠'가 보일 법도 한데, 나타나지 않는 것은 ‘부쇠'를 ‘불'과 연관시켜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그 셋째다. 이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부쇠'는 19세기 말에 대뜸 ‘부시'로 변화하여 나타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부시 火鐵 부시돌 火石 부시깃 火鐵巢<1895국한회어, 152> 

부시 火鐵<1897한영자전, 453>

부시 <1920조선어사전, 409>

병기는 담배를 담았다. 그리고 부시 쌈지를 얻으려고 허리춤을 만졌다. 그러매 최장의가 영외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뛰어 들어와서 어느 틈에 꺼내었는지 자기의 부싯돌로 쑥에 불을 일으켰다.<1933운현궁의봄, 308> 

김자원은 부싯돌을 쳐, 불을 일으킨 뒤에 불붙은 부싯깃을 개비성냥에 댔다.<1936-금삼의피, 320> 

부싯돌을 처서 부싯깃에 불을 붙인 뒤에 골통 위에 꼭 눌렀다. <1940전야, 188>

노랑 수염 사내가 조용히 낡은 무명 조끼 주머니에서 담뱃대를 꺼냈다. 부싯돌도 꺼냈다. 그러면서 조용 조
용 말을 건니었다.<1954카인의후예, 46>

 

‘부쇠'가 ‘부시'로 변화하려면 ‘부쇠'가 ‘부세'로 변화한 후에 ‘부세'가 다시 ‘부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일 터인데, 이러한 과정을 보이는 ‘부세'란 형태도 옛 문헌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방언형에 ‘부세와 ‘부새'형이 보이므로 옛 문헌상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된다.

 

“내 부셋돌(부싯돌)하고 바꾸세." 그 부셋돌이라 카는 것이 불탁 치는 것이지요.<한국구비문학대계6-4, 578>

담배 쌈지 그늠하고, 부새(부싯돌) 쳐가 불타는 그넘하고, 대하고 마 여다<한국구비문학대계7-2, 303>

그래 예전에 이래 치는 부새(부시) 아제(알지)? "부새 사고 이래 가주고 가서 그 담배를 피우라"<한국구비문학대계7-10, 606>

 

그렇다면 ‘부시 '는 어떻게 이용하는 것일까? 문헌상에 ‘부시'를 이용해서 불을 붙이는 장면을 표현한 글은 그리 흔하지 않다.

 

라주집은 전황(全璜) 담배합을 가벼웁게 당기여 뚝게를 벗겼다. 머리털같은 반붉겅이 서초(西草)를 엄지 식지 중지 세 손가락으 떼여 내서 동글동글 비비다가 오목(島木)설대 은수복 골통에 넌짓이 담었다. 하이얀손이 가벼웁게 부시돌을 갈기자 줄불 하나가 부싯깃으로 똑 떠러졌다. 파란 연기가 포르르 향을 뿜으며 일어난다. 라합은 날렵하게 담배통 우에 부시깃을 꼭 찔은 뒤에 옥물뿌리를 빡금빡금 빨다가 침 무든 자리를 저고리 고름으로 잽새게 씻은 뒤에 대감 입술로 갔다가 물려준다. <1940전야, 80>

 

이 글은 담뱃대에 담배를 넣어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부시로 부싯돌을 갈기자 거기에서 줄불이 생기고 그 줄불이 부싯깃에 떨어진다. 부싯깃에서 파란 연기가 피어오르자 담배통 위에 갖다 대고 물부
리를 빠니까 담뱃불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음 글은 섶단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불을 질러라, 섶에!" 의병들은 감히 이정암이 타고 앉은 나무단 위에 불을 지르지 못한다. 이정암은 섶단 아래로 뛰어 내려 주머니 속에서 부싯돌을 꺼내서 손수 돌을 친다. 부싯돌에 줄불이 쫘악쫘악 해지며  반짝반짝 일어나다가 이내 깃으로 옮아 붙었다. 파란 연기가 가늘게 일어나면서 깃은 빨갛게 불이 붙었다. 이정암은 빨갛게 피어나는 부시 깃을 섶단에 질러 버리고 성큼 섶단으로 을라가 누워 버린다. 마른 섶단은 삽시간에 연기를  뿜으며 불길이 활활 일어나기 시작한다.<1958임진왜란, 361>

 

부시로 부싯돌을 지니 줄불이 일어나다가 부싯깃으로 옮아 붙고, 옮아 붙은 불은 빨갛게 되고 이러한 부싯깃을 섶단에 옮겨 붙이는 것이다.

 

다음의 예문은 초기의 발화도구로서는 부싯돌을 사용하고, 이것을 옮겨서 그 불씨를 유지하는 데 ‘유황 성냥'을 사용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자기의 부싯돌로 쑥에 불을 일으켰다. 쑥에 붙었던 불은 유황 성냥으로 옮아갔다. 그 불을 최장의는 양손으로 읍하고 길다란 병기의 담뱃대 끝에 달린 대통에 내었다.<1933운현궁의봄, 307>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부시'와 ‘부싯돌'과 ‘부싯깃'이 필요하고 이것들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 ‘부시쌈지'가 필요하였다. ‘부싯돌'은 ‘불 + 쇠'로부터 온 단어인 ‘부시'에 ‘사시시옷(ㅅ)'과 ‘돌'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
어이다. ‘부시 +-ㅅ + 깃'으로 분석되는 ‘부싯깃'은 ‘부시'를 치는 데 불똥이 박혀서 불이 붙도록 부싯돌에 대는 물건을 말한다. 곧 수리취, 쑥잎 따위를 불에 볶아 곱게 비벼서 만들기도 하고, 흰 종이나 솜 따위에 잿물을 여
러 번 묻혀서 만들기도 한다. 이때의 ‘깃'은 ‘옷깃'의 ‘깃'으로 보인다. ‘부시 쌈지'는‘부시'와 ‘부싯깃'과 ‘부싯돌'을 넣는 쌈지를 말한다.

 

‘부시'와 ‘부싯돌'과 ‘부싯깃'은 개인이 만들기도 하지만 부싯돌 공장에서 생산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의 독립신문에 영국의 부싯돌 공장에서 ‘부싯돌'을 만드는 법과 스페인과 이태리에서 성냥값이 비싸서 아직도 부싯돌을 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볼 수 있다.

 

○ (부시돌 졔죠쇼) 영국에 지금도 부시돌 졔죠쇼가 잇스니 그 만드난 법은 돌은 물웁 우에 노코 맛치로 쳐셔 만들며 셔반아 이탈리난 셩양셰가 즁하야 가난한 사람이 셩양을 쓰지 못하난 고로 지금도 부시돌을 쓰난 사람이 만타더라<1898독립신문 9월 8일 목요일 제3권 제134호>

 

우리나라에서도 부싯돌 장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요 속에 부싯돌 장수 이야기가 등장히여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느질 징게질 배울 때는 한양에 낭군을 원혔더니 숭악은(흉악한) 부수숫돌(부싯돌) 장수가 내 낭군일레<한국구비문학대계6-8, 761>

부숫짓이요. 부숫짓? 부시, 부시. 그래 저 쑥 비벼서 인자 독에서 탁탁치면 불 일어나는 것. 그래 한 사람이 서울서 부숫짓 장사를 해.<한국구비문학대계6-5, 433>

천하에 하고 많은 장사에 서푼 짜리 부싯짓 장사를 한다고. 그나마 그것을 저버리지 않하고 꼭 부숫짓 장사를 하냐고. 나는 정말 저만 더 못한 놈이다.<한국구비문학대계6-5, 434>

 

특히 불이 잘 붙는 것으로서 ‘부싯돌'은 ‘안암산(安巖山) 차돌'이, 그리고 ‘부시'는 ‘일본(日本)의 부시'가, 그리고 부싯깃에 쓰는 수리취(풀이름)는 ‘노구산(老狗山) 수리추'가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사설시조에 그러
한 내용이 보인다.

 

寒松亭 쟈긴 솔 베혀 조고만치 배 무어 타고 술이라 按酒 거문고 ㄱ고 穡琴 琵琶 뎌 피리 長鼓 巫鼓 工人과 安巖山 차돌 日本 부쇠 老狗山 垂露취며 螺전듸 辭旨三伊 江陵女妓 三陟酒湯년 다 모아 싯고 달 밝은 밤에 鏡i甫台로 가셔 大醉코 叩柑秉流하야 叢石亭 金蘭窟과 永郞湖 仙遊覃으로 任去來를 하리라<1876가곡원류, 655>

 

이렇게 어렵게 불씨를 만들어 놓은 ‘부싯불'은 잠깐 동안에 일어나는 불이라서 ‘부싯불'이란 단어는 잠깐 동안의 허랑한 것을 비유할 때 쓰곤 하였다. 다음의 예문에서 ‘부싯불'을 그렇게 비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봄과 가을은 물 흐름 갓고 때와 날은 부쇠불 갓하야 셰샹이 잠간이오니 조심하샤 쥬명을 기다리쇼셔<1906경향보감, 1, 229>

 

‘부시'는 ‘불 + 쇠'의 구성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ㅅ' 앞에서 ‘ㄹ'이 탈락하여 ‘부쇠'로 쓰였는데, 17세기 문헌에 처음 보인다. 이 ‘부쇠'란 형태는 20세기 초까지 쓰였으나 곧 19세기 말에 그 변화형 ‘부시'가 등징하여 쓰이자, 20세기의 30년대에 ‘부시'의 세력에 밀려 ‘부쇠'가 사라지게 되었다. ‘부쇠'라고 하면 ‘부시'의 어원을 어느 정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 터인데, ‘부쇠'의 ‘쇠'가 ‘시'가 되면서 ‘쇠'와의 연장이 어렵게 되자 ‘부시'에 대한 어원 의식이 희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부시'란 단어도 성냥, 라이터 등에 밀려 사라지게 되었다. 성냥조차도 사라지는 현대에 ‘부시'나 ‘부싯돌'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선조들의 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 언어가 이렇게 시대에 따라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 인생도 ‘부싯불'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싯돌

 

 

 

부싯돌은 손가락 길이만큼 하며, 주머니칼을 접은 것과 비슷하다. 부싯쇠·부쇠·부수·화도(火刀) 등으로도 불리어진다. 보통 얇은 쇳조각(강철)을 그대로 이용하지만, 상류계급에서는 손잡이를 가죽으로 입히고 여러 가지 장식을 하여 문양을 내고 호화롭게 멋을 부리기도 했다.

 

부시를 쳐서 불을 얻는 데는 필수적으로 부싯돌·부싯깃이 갖추어져야 하며, 그밖에도 부시통이나 부시쌈지가 있어야 한다. 불을 일으킬 때에는 한 손에 부싯돌을 잡고 그 위에 부싯깃을 얹어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잡고 반대편 손에 부시를 들고 내리쳐서 강한 마찰을 일으키면 불이 일어난다.

 

부싯돌은 석영(石英)의 한가지로 차돌이라고도 한다. 몸이 아주 단단하고 백색·회색·갈색·흑색 등 여러 가지 빛깔이 있으며 반투명 또는 불투명하기도 하다. 부싯깃은 수리취·쑥잎 등을 불에 볶아 곱게 비벼서 만든 것도 있고, 솜이나 백지 따위를 잿물에 여러 번 묻혀서 만든 것도 있다. 또 산간지방에서는 칡잎을 비벼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구를 넣어서 지니는 주머니를 부시쌈지라 하고, 또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을 부시통이라 한다.

 

부시는 태고 때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성냥이 등장하면서 차차 생활권에서 밀려나다가 결정적으로는 라이터가 나타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의 농어촌에서는 이 부시가 1950년대까지도 필수품이었다.

 

1906년에 오스트리아에서 철과 세륨의 합금을 발화석(發火石)으로 사용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벤젠류를 사용한 오일라이터가 생겨나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각국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1946년에 프랑스에서 액화석유가스를 연료로 하는 가스라이터를 고안하기에 이르러 오일라이터는 인기를 잃었다. 그 뒤 전자라이터가 발명되어 각 메이커는 전자라이터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인류는 불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발전시켜 왔고 마침내 휴대가 편리한 부시와 부싯돌을 개발했다. 부시는 쇠, 부싯돌은 돌이다. 부시는 수금(燧金), 화도(火刀), 부싯쇠, 부쇠, 부수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부시는 의정부시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부시이다. 부시는 쇠로 된 직사각형 모양이 기본이다. 여기서 조금씩 모양을 내어 다양한 모양들이 있다. 부시를 쳐서 불을 얻는 데는 필수적으로 부시 외에도 부싯돌과 부싯깃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런 여러 도구를 ‘부시쌈지’나 ‘부시통’에 넣어두기도 했다.

 

불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존재였다. 인류는 불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발전시켜 왔고 마침내 휴대가 편리한 부시와 부싯돌을 개발했다. 쇳조각을 돌에 내리치면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며 주변의 나무 덤불에 불이 옮겨붙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부시는 쇠로 되어 있고 부싯돌은 돌로 되어 있다. 이것들이 한 짝이 되어 불을 붙이는 데 사용되었다. 이렇게 부시와 부싯돌을 이용하여 불을 붙일 때는 ‘부시를 치다’라고 표현했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부시의 어원은 ‘부쇠(역해)←불+쇠’이다. 불쇠에서 부쇠가, 다시 부시가 된 것이다. 부시는 수금(燧金), 화도(火刀), 부싯쇠, 부쇠, 부수로도 불린다. 여기서 수금은 쇠로 된 부시(燧, 부싯돌)라는 뜻이고 화도는 불을 일으키는 칼이라는 뜻이다. 부싯돌은 석영의 일종으로 차돌이라고 한다. 재질이 아주 단단하고, 백색·회색·갈색·흑색 등 여러 가지 빛깔이 있으며 반투명 또는 불투명하다. 수석(燧石), 화석(火石), 발화석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부싯돌은 단어 그대로 돌로 된 부싯돌이라는 뜻이고 화석은 불을 일으키는 돌이라는 뜻이다.

 

이런 부시와 부싯돌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철기시대가 되고 다양한 철기 제품들이 만들어지면서 부시도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부시는 의정부시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부시이다. 이 부시는 길이가 약 9cm이고 너비는 3cm 정도로 구름 모양의 곡선을 띠고 있다. 당시 부시에도 장식적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부싯돌의 경우는 구석기 시기부터 출토되고 있어 처음에는 돌과 돌을 부딪쳐서 불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출토된 가장 이른 시기의 부싯돌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부싯돌들은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구석기 시대의 것이다. 그러다 점차 쇠를 이용하게 된 것이 부시의 탄생이다. 

 

부시는 보통 길이가 7㎝ 내외, 넓이가 2㎝ 내외의 길쭉한 모양이다. 부시는 쇠로 되어 있는데 모양은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이 기본이다. 여기서 조금씩 모양을 내어 다양한 모양들이 있다. 보통 돌과 마찰되는 아랫 부분은 완만한 곡면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에 해당되는 윗부분은 각종 문양을 표현하여 쇠가 말아져 있는 모습이 많다. 어떤 부시는 철사를 구부려 놓은 듯한 것도 있다. 그런데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쇠판 중앙에 구멍을 뚫어 놓든지 아니면 쇠를 구부려 둥그런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부시에 끈을 달아 부시 주머니에 보관하게 편하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보통은 얇은 쇳조각(강철)을 그대로 이용하지만, 상류층에서는 한 면을 손잡이 삼아 가죽으로 입히고 여러 가지 장식을 하여 호화롭게 멋을 부리기도 했다. 용인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부시는 무척 호사스럽다. 이 부시는 가죽 주머니와 부시가 금속판으로 결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가죽 주머니는 여닫을 수 있고, 외면에는 장식용 금속을 달아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부시를 쳐서 불을 얻는 데는 필수적으로 부시 외에도 부싯돌 부싯깃이 갖추어져야 한다. 부싯깃은 수리취·쑥잎 등을 불에 볶아 곱게 비벼서 만든 것도 있고, 솜이나 백지 따위를 잿물에 여러 번 묻혀서 만든 것도 있다. 또 산간지방에서는 칡잎을 비벼서 사용하기도 한다. 불을 일으킬 때에는 한 손에 부싯돌을 잡고 그 위에 부싯깃을 얹어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잡고 반대편 손에 부시를 들고 내리쳐서 강한 마찰을 일으키면 불이 일어난다. 이처럼 불을 일으키기 위한 여러 도구를 휴대하기 편하게 만든 주머니가 ‘부시쌈지’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광복 이후의 부시쌈지를 보면 머리 부분은 삼각형 모양이며, 끈이 두 줄 달려 있다. 반으로 접어서 사용하게끔 손바느질하여 만들었다. 여기에 부시 1개, 부싯돌 6개 외에 동전도 들어 있다. 이런 부시쌈지는 외출할 때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항시 휴대하고 다녔다. 또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을 ‘부시통’이라 한다.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광복 이후 부시통은 높이 약 2cm, 가로 7cm, 세로 5cm 정도의 타원형으로 된 양철 부시통이다. 이런 부시통 안에는 부시와 부싯깃, 부싯돌을 넣어 두었다.

 

우리 옛말에는 ‘부시통에 연풍대 하겠다’는 말이 있다. 이는 좁은 부시통 안에서 연풍대라는 동작이 큰 칼춤도 추겠다는 뜻이다. 즉, 사람됨이 옹졸하여 어떤 일을 하면서 앞일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에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옛말이 생긴 정도로 부시는 우리네 실생활과 무척 밀접한 생활 도구였다. 이후 부시는 성냥과 라이터 등으로 대체되어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다만, 오늘날에는 캠핑 도구(파이어 스틸)의 하나로 캠핑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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