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_어원 자료
요즈음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려면 '정육점'(精肉店)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는 '푸줏간'으로 가야 했다. '정육점'이란 어휘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 '푸줏간'은 '쇠고기, 돼지고기 따위의 고기를 파는 가게'로, 그리고 '정육점'도 '쇠고기, 돼지고기 따위를 파는 가게'로 풀이되어 있다. 그래서 '정육점'과 '푸줏간'은 유의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푸줏간'이 '정육점'으로 대치되어 쓰이게 됨으로써, 이제 '푸줏간'은 사라질 위험에 처한 단어가 되었다.
'푸줏간'이 '푸주 + ᄉ + 간(間)'으로 분석될 것이라는 것쯤은 '방앗간, 기찻간, 마굿간' 등의 단어 구조를 떠올리면 금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ᄉ'과 '간(間)'은 설명이 필요 없다.
'푸줏간'의 '푸주'는 원래 한자어였다. 15세기에 한자 '포주(廚)'로 쓰이었다. 그 한자음은 '포듀'이었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그러한 용례가 보인다.
브섭 예 廚의 머로 알리로라 <두시언해 초간본(1481년)>
廚 : 飮食 달오 집 (역어유해<1690년>)
그런데 이때의 '포듀'는 오늘날의 '고기 파는 가게'를 뜻하지 않고, '소나 돼지를 잡아 요리하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포듀'는 앞의 예문에서 보듯이 '포듀부억'으로도 사용되었다. '포'()는 '소나 돼지 등을 도살하는 곳', '듀'(廚)는 '도살한 고기를 요리하는 곳'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포듀'는 '고기를 잡아 요리하는 곳'이었다. 『소학언해』에 보이는 ''와 '廚'의 주석문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庖포 [즘승 죽이 히라]과 廚듀 [음식 닉이 히라] (소학언해<1586년>) ([ ] 안은 주석문임)
오늘날에는 가축을 도살하는 곳인 '도살장'과, 이를 사다가 요리하는 곳인 '음식점'이 따로 있는데, 예전에는 그것이 분업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처럼 고기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란 뜻으로 쓰인 예는 19세기에 와서야 보인다.
포주 廚, 푸주 廚 <국한회어(1895년)>
소 쳐 발원되 푸쥬의 파디 말고 헐 갑스로 농인의게 팔니라여 <태상감응편도설언해(1852년)>
푸쥬 포 <초학요선(1918년)>
이 '포듀'(廚)가 구개음화를 일으켜 '포쥬'가 되었다. 그리고 '포쥬'의 '쥬'가 '주'로 변화함으로써 '포주'로도 사용되었고, 한편으로는 '포'의 음이 '푸'로 변화하여 '푸쥬' 또는 '푸주'로도 쓰이었다. '포'가 '푸'로 변화하는 시기는 19세기 말인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에 '포주'와 '푸주'가 동시에 쓰이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골목마다 작은 쳔 쇽에 더러온 물건들이 썩어셔 악 나게 것이 포쥬 집 대문 밧 길가에다 쇼들을 여 오즘의 악 것이 모도 사의 위에 크게 가 되고 젼염 병을 이릇키 근본이라고 더라 <독립신문(1899년 8월 7일)>
쇼 잡 공젼을 밧은 후에 그 푸쥬 쥬인의게 젼 야 주고 <독립신문(1896년 10월 29일)>
이처럼 한때 '포'가 '푸'로 쓰인 예로는 한자 '鋪'가 있다. 이 '포'는 '점포'의 '포'인데, 아마도 중국음으로 '푸'로 읽혔을 것으로 보인다.(鋪 역 푸 <훈몽자회(1527년)>) 결과적으로 15세기의 '포듀'가 오늘날 '푸주'로 어형이 바뀌었고, 그 뜻도 '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로 변하였다.
그런데 이 '푸줏간'이 언제부터 '정육점'(精肉店)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20세기 초기의 국어사전에는 '정육점'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1960년대의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바로 직전에 일본에서 들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일본어에서는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파는 곳을 ‘정육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의 장노년층은 정육점보다 ‘푸줏간’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푸줏간’, 어디서 유래한 말일까? 정육점은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단어 중간에 ‘고기 肉’(육) 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오늘 문제 ‘푸줏간’에는 조금은 어렵다. 고기를 뜻하는 음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뜻보면 순우리말처럼 보이나 그렇지는 않다.
어문학자들에 따르면 ‘푸줏간’은 ‘푸주’와 ‘간’이 결합된 단어이다. 두 명사가 결합되다 보니 ‘ㅅ’받침이 관형격으로 사용됐다. 이중 ‘ㅅ+간’ 형태의 단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언뜻 생각해도 기찻간, 마굿간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물론 이때의 ‘간’은 한자 ‘사이 間’으로 좁은 실내공간을 의미한다.
문제는 앞말 ‘푸주’가 어디서 왔느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국어사전이 답을 해주고 있다. 사전에서 ‘푸줏간’이라는 단어를 찾으면 한자 ‘부엌 포’(庠자 안 羊대신 包가 들어간 글자)와 역시 ‘부엌 廚’(주) 자를 만날 수 있다. 1차적인 훈은 이러하지만 학자들은 전자는 소내 돼지를 도살하는 곳, 후자는 도살한 고기를 요리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과거의 푸줏간은 고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요리해 주는 기능도 함께 지닌 곳이 많았다. 이런 관습은 지금의 정육점에 어느정도 남아 있다. 상당수 정육점은 고기만 팔지만 일부는 정육점은 고기 음식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이런 곳은 고기 신선도가 높다.
어문학자들에 따르면 ‘푸줏간’은 과거에는 ‘포쥬간’>‘포듀간’으로 불렸다. 이후 언어 유통 과정에서 발음하기 좋게 지금의 ‘푸줏간’으로 변했다. 참고로 ‘정육점’은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식 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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