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_어원 자료
무지개'를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나타내는 반원 모양의 일곱 빛깔의 줄'이라고 사전적 풀이를 하면, '무지개'가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연상이 사라질 정도로 '무지개'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국어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무지개'가 '물'과 '지개'로 분석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언뜻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무지개'는 원래 '물'과 '지개'의 합성어인데, '불지불식(不知不識)'이 '부지불식'이 되듯, 'ᄌ' 앞에서 'ᄅ'이 탈락하여 '무지개'가 되었다고 하면, '물'은 이해가 되겠는데 '지개'는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1103년에 편찬된 『계림유사』에는 '虹曰陸橋'(무지개를 육교라고 한다)라고 하여 '무지개'인 '홍'(虹)의 우리말 발음을 표시하지 않고 그 뜻을 한자어로만 표시하고 있어서 '무지개'에 대한 12세기 초의 형태를 알 길이 없다. 처음 보이는 형태는 '므지게'인데 15세기의 『용비어천가』나 『석보상절』과 같은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문헌에 등장한다.
西方애 힌 므지게 열 둘히 南北으로 여 잇더니 <석보상절(1447년)>
내 百姓 어엿비 너기샤 長湍 건너싫제 힌 므지게 예 니이다 <용비어천가(1447년)>
'므지게'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물'(水)의 15세기 형태인 '믈'에 '지게'가 합쳐진 것인데, '지게'의 'ᄌ' 앞에서 '믈'의 'ᄅ'이 탈락한 것이다. '무지개'에 '물'이 관계되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게'는 등에 짐을 질 때 사용되는 '지게'는 아니다. '지게'는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제주 지역에서 '지게문'('노형, 조수, 인성, 서홍, 김녕' 지역) 또는 '구들셋문'('가시' 지역)이라고 말하는, '짝문'(오른쪽과 왼쪽의 두 문짝으로 이루어진 문)을 뜻한다. 한자로는 '문'(門)이나 '호'(戶)를 '지게'라고 하였지만, '門'보다는 '戶'를 지칭하는 것에 많이 쓰이었다.
문 호(戶) <신증유합(1576년)>
지게 호(戶) <석봉천자문(1583년)>
지게 문(門) <백련초해 중간본(17세기)>
'문'(門)은 '대문이나 정문' 등의 문을 뜻하지만, '호'(戶)는 이보다는 작은 문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문의 윗부분이 대개 무지개의 윗부분처럼 둥근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무지개를 '물로 된 문'으로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므지게'가 음운변화를 겪은 결과로 '무지게, 므지개, 무지개' 등의 형태가 생겼다. '므지게'에서 '므'의 'ᅳ'가 원순모음화를 겪어 '무지게'가 된 것은 17세기이다.
큰 믈이 급히 드러와 동대문 길히 막히고 무지게 엇더라<산성일기(1636년)>
무지게() <몽유편(1768년)>
무지게(虹) <방언유석(1778년)>
빗츨 게 샹셰 이에 녕고의 무지게 흐르던 졀의 이시니 <윤음(1784년)>
'무지게'에 보이는 '게'의 '에' 모음이 어두음절이 아닌 곳에서 중화되어 '에'가 '애'로 변화해서 오늘날의 형태인 '무지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무지개 홍(虹) <정몽류어(1884년)>
무지개 홍(虹) <부별천자문(1913년)>
무지개 홍(虹) <통학경편(1916년)>
결국 '믈(水) + 지게(戶)'가 합쳐져서 '믈지게'가 되었던 것이 'ᄌ' 앞에서 'ᄅ'이 탈락하여 '므지게'가 되고(15세기에 이미 나타난다) 이것이 원순모음화를 일으켜 '무지게'가 되고(17세기), 이것이 다시 '에'와 '애'의 중화 현상으로 '무지개'가 된 것이다(19세기).
대기 중의 많은 물방울에 햇빛 · 달빛 등이 굴절 · 반사 또는 간섭되어 생기는 광학현상을 무지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비가 그쳤을 때 태양의 반대쪽에서 7색(色)의 광륜(光輪)으로 나타나는데, 관측자를 중심으로 태양과 반대쪽에 비가 내리고 있을 경우 그 물방울에 비친 태양광선이 물방울 안에서 반사, 굴절되어 최소편각으로 다시 나옴으로써 생성된다.
무지개는 인공적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태양을 등지고 입에 머금었던 물을 안개처럼 뿜어내면 그 물방울들로부터 무지개가 생긴다. 무지개는 물방울 안에서 빛이 몇 번이나 반사되었는가에 따라 1차무지개 · 2차무지개 · 3차무지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차무지개는 빛이 물방울 안으로 굴절, 입사(入射)되어 그 안에서 1회 반사한 뒤 굴절, 출사(出射)될 때 생성되는 것으로 우리들이 자주 볼 수 있다. 이때의 색배열은 무지개의 바깥쪽에 파장이 긴 적색, 안쪽에 파장이 짧은 청색으로 된다.
2차무지개는 빛이 물방울 안에서 2회 반사될 때 생성되는 것으로 1차무지개의 바깥쪽에 나타난다. 즉, 2차무지개는 쌍무지개를 만드는 현상으로서 2차무지개에서의 색배열은 1차무지개와 정반대를 이룬다. 3차무지개는 3회 반사하는 경우로서 이 경우 하나 더 생기는 무지개는 간섭현상 때문에 볼 수가 없다.
무지개는 태양과 달에서 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빛에 의해서도 생기며, 또 빗방울 뿐 아니라 안개나 튄 물방울(spray)에서도 볼 수 있다. 물방울이 빗방울에 비하여 작으면 무지개빛이 희미하여 흰 무지개[백홍(白虹)]가 나타나는데, 이 흰 무지개는 안개 또는 구름에서 볼 수 있다.
해가 지기 전 5∼10분 동안 무지개의 붉은 색을 제외하고 다른 색이 희미하게 되면 결국 붉은 색만 남게 되어 붉은 무지개[적홍]가 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해가 진 뒤 약 10분 동안 붉은 무지개가 계속되기도 한다. 무지개와 관련된 [전설이나 속담은 수없이 많다. 구름을 보고 비의 유무(有無)를 예상하던 운점(雲占)이 있듯이, 무지개 현상을 보고 홍수를 예상하는 홍점(虹占)이 조선시대에 성행하였는데 “서쪽에 무지개가 서면 소를 강가에 매지 말라”는 속담이 그 일례이다.
이 속담은 비록 경험에 의한 이야기이지만 이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으로 서쪽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서쪽에 비가 오고 있음을 말하고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일기의 변화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비가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지개에 얽힌 우리나라의 전설은 선녀와 많은 연관이 있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선녀들이 깊은 산속 맑은 계곡에 목욕하기 위하여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고 생각하였다.
옛날의 기록 중 신라 · 고려 · 조선시대의 것들은 있으나 백제시대의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라시대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631년(진평왕 53) 7월 궁궐 우물에서 흰 무지개가 뻗었다.
② 725년(성덕왕 24) 정월 흰 무지개가 나타났다.
③ 738년 4월 ‘백홍관일(白虹貫日)’
④ 761년 1월 ‘홍관일(虹貫日)’, ‘일유이(日有珥).’
고려시대의 기록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1028년 11월 갑진일(甲辰日) ‘홍견동북(虹見東北)’
② 1083년(문종 37) 12월 1일 신미(辛未)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③ 1130년(인종 8) 8월 병신(丙申)에 흰 무지개가 서쪽에서 일어나 북쪽을 향하여 나타났는데, 10월에도 무자(戊子) 이경(22시 전후)에 흰 무지개가 서북쪽 · 서남쪽으로 상충(相衝)하여 땅에 이르러 나타나 보이다가 삼경(자정 전후)에 곧 없어졌다. 이 무지개는 밤에 나타났다. 그런데 달빛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1139년 8월 병신에 오색 무지개가 남북으로 형성되어 나타났다.
④ 1188년(명종 18) 5월 계축(癸丑)에 흰 무지개가 서북쪽에 나타났다. 1190년 정월 경오(庚午)에 흰 무지개가 하늘에 닿았는데 그 모양이 연포(練布) 같았다.
⑤ 1198년(신종 1) 4월 계미(癸未)에 흰 무지개가 서북쪽에 나타났다.
⑥ 1217년(고종 4) 3월 정해(丁亥)에 흰 무지개가 북두(北斗)의 제5성(星)을 꿰뚫었다. 1227년 6월 계축에 붉은 무지개가 하늘에 그 머리와 끝을 땅에 드리우고 형성하였다.
⑦ 1264년(원종 5) 6월 병오(丙午)에 흰 무지개가 남북쪽에 나타났는데 신해(辛亥)밤에는 또 서남쪽에 나타났다.
⑧ 1277년(충렬왕 3) 4월 병인(丙寅)에 백기(白氣)가 무지개 같았는데 북두성을 꿰뚫었다. 1296년 5월 계미에 흰 무지개가 북두성을 꿰뚫었다. 1307년 6월 기유(己酉)에 흰 무지개가 자미성(紫微星)과 북두성을 꿰뚫었다.
⑨ 1316년(충숙왕 3) 12월 을해(乙亥)에 흰 무지개가 서북쪽에 나타났다.
⑩ 1347년(충목왕 3) 7월 병오 밤에 하늘의 무지개(天霓)가 동쪽에서 일어나 남산(南山)으로 떨어졌는데 잠시 후 다시 일어나 둘로 나누어져 남북으로 향하였다.
⑪ 1362년(공민왕 11) 11월 을사(乙巳)와 갑인(甲寅)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1367년 2월 을해(乙亥) 오시(午時)에 흰 무지개가 남쪽에 나타났다.
조선시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① 1394년(태조 3) 8월 임오(壬午)에 흰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계미와 갑신(甲申)에도 또한 그와 동일하였다. ② 1524년(중종 19) 7월 임진(壬辰)에 평안도에 붉고 흰 여섯 개의 무지개가 있었는데 서로 둘러싸이기도 하고 등이 서로 붙기도 하였다. 이것은 햇무리[일훈(日暈)]를 보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③ 1592년(선조 25) 4월 임인(壬寅)에 푸른 무지개가 궁궐의 우물에서 일어나 상궁(上躬)주1에 가까이 다가와서 몸을 따라 이전하다가 한참 만에 사라졌다.
④ 1807년(순조 7) 11월 을유(乙酉)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⑤ 1899년 정월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이상의 기록들에서 살펴보면 무지개의 색상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흰색으로 18회, 다음은 색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4회, 청색 · 적백색 · 적색 · 오색이 각각 1회씩으로 되어 있으며, 천예라는 독특한 표현도 있다.
무지개의 색상은 물방울의 지름의 크기에 따라 좌우되며, 지름이 약 0.06㎜ 미만의 작은 물방울일 때는 흰색이 된다. 따라서 흰색 무지개가 가장 많은 것은 작은 빛방울 또는 안개 물방울에서 생긴 무지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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