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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너무_쓰임새

by noksan2023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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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_쓰임새

 

 

완전 vs 매우 무척 너무

 

 

 

 

6월 말 주말 방송의 프로그램은 월드컵 대회에서 거둔 성과를 총정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축구 전문가, 각계의 유명 인사(人士), 일반 시민 들이 모인 대담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하는 발언 내용도 어느 방송사나 거의 비슷했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너무 기쁩니다."
"히딩크 오빠, 너무 사랑해요.", "히딩크 감독님, 너무 멋있어요."
"월드컵을 너무 잘 치른 것 같아 너무 좋아요."
"대한민국 사람인 게 너무 감격스러워요."

그리고 특집 프로그램을 마치며 진행자는 속삭인다.

"너무나 행복했던 6월."

 

7월 들어 월드컵 대회에 관련한 프로그램이 아닌 데서도 '너무'가 넘쳐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지(奧地)에 다녀온 출연자에게 프로그램 진행자가 한마디 한다.

 

"아기를 안은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전국 노래 자랑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여성이 수상 소감을 밝힌다.

"엄마, 아빠, 친구들, 너무 고마워요."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결과적으로 원하지 않은 현상이 일어날 경우에 쓰는 말이다. '너무' 늦어 밤길을 가기가 어렵다든지, '너무' 어려워 문제를 풀지 못한다든지, '너무' 추워 얼어 버릴 것 같다든지, '너무' 멀어 찾아갈 길이 막연하다든지, '너무' 먹어 몸이 뚱뚱하다든지 하는 경우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너무' 고맙고 좋아서,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고 행복해서, '너무' 멋있고 잘 어울려서, '너무' 사랑해서, '너무' 잘하고 잘 치르고 자랑스러워서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생겼다는 것인가.


 '너무'는 "일정한 기준, 정도 따위를 벗어나 지나다."라는 '넘다'에서 온 말이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거니와 우리는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기에 지나치게 보살피는 과권(過眷)이나 지나치게 칭찬하는 과포(過褒)를 경계하였으며, 다복(多福)을 탐하기보다는 지금 누리는 복을 살뜰히 아끼는 석복(惜福)을 취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도 '너무'만 쓰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제창(齊唱)하듯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너무'를 쓰는 것, 이것 너무하는 것 아닌가. '매우, 아주, 꽤, 참, 참으로, 퍽, 썩, 대단히, 상당히, 정말......' 이런 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 말들은 이제 아예 쓰지 않을 참인가. 이젠 '부정적'인 데에 한하여 쓰이던 '너무'가 '긍정적'인 데에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게끔 의미 영역이 확대된 것일까. 제헌절에 텔레비전 뉴스에서 부산 해운대에 온 외국인들이 "The beach is very clean and beautiful."라고 말한 걸 "해변이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워요."라고 통역한 자막을 보일 정도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세월과 함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게 언어의 역사성이라고는 하지만 이렇듯 '너무' 하나로 심하게 쏠림을 보게 되니, '매우, 아주, 꽤, 참, 참으로, 퍽, 썩, 대단히, 상당히, 정말......' 등 유의어 무리는 돌아보는 이 없이 내팽개쳐져 점차 제 설 자리를 잃고 그저 국어사전 한 귀퉁이에서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한 호텔 종업원이 유명 선수가 투숙했던 방의 침대 밑에서 선수가 신던 양말 한 켤레를 발견하자

 

"기분이 아주 좋아요."

 

하며 쑥스러워할 때, 그리고 한 포르투갈 교민이 대한민국 팀이 이기자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정말 기뻐요."

 

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일 때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나뿐이었을까?

 

 

 

 

매우 아주 몹시 쓰임의 차이점

 

 

아주 굉장히 매우

 

 

 

'매우''아주''몹시'는 모두 정도를 나타내지만 그 쓰임에는 차이가 있다.

① "그녀는 아름답다."

② "그녀는 매우 아름답다."

③ "그녀는 아주 아름답다."

④ "그녀는 '몹시' 아름답다."

문장 ①보다는 ②가, ②보다는 ③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정도가 더하다. 문장 ④는 어색하다. ②나 ③처럼 써야 옳다.

'매우'는 '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의 뜻으로, '아주'보다는 절제된 표현이다. "일이 매우 급하다"처럼 쓰인다.

'아주'는 '보통 정도와 비교가 안되게 훨씬 더'를 의미하며, '매우'보다 정도가 더 지나침을 나타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적당한 운동은 건강에 아주 좋다"('매우'보다 더 강한 표현)처럼 쓰인다.

'몹시'는 '더할 수 없이 심하게'라는 뜻으로, 대체로 부정적인 정서를 나타낼 때 쓰인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처럼 말이다.

다음 문장 ⑤⑥⑦은 모두 어색하다.

⑤ "한글은 '몹시'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다."(→매우)

⑥ "그는 이제 '매우' 갔다."(→아주) <이때의 '아주'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완전히'의 뜻이다.>

⑦ "그는 아이들을 '아주' 나무랐다."(→몹시)

이라크 전쟁으로 국내외 경제 상황이 몹시 안 좋다. 경제 주체들은 매우 힘든 이 국면을 헤쳐나가기 위해 각오를 아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너무'의 의미 수정 이후

 

 

아이돌의 너무너무너무

 

 

 

‘너무’의 뜻이 바뀌었다. 부사 ‘너무’가 지금까지는 ‘정해진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만 쓸 수 있었지만, 이제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라는 뜻으로. 최근 국립국어원에서 이 단어의 언어 사용 현실을 반영하여 의미를 공식 수정했다고 한다. 이 결정을 많은 사람들이 반기는 모양이다. 그동안에는 이미 입에 익어 상황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면서도 규정 때문에 찜찜하였는데(?), 이제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가 반갑지만은 않다.


언어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의 약속이다. 대중의 언어 사용 현실이 언어 규정에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언어는 그래서 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무’의 의미 수정은 자연스런 언어 역사이다. 그러나 ‘너무’의 뜻이 확장되면서 부사 체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우리말에는 정도를 강조하는 부사가 매우 다양하다. ‘매우, 너무, 꽤, 아주, 참, 정말, 진짜, 몹시, 되게, 되우, 된통, 무척, 지지리, 실컷, 퍽, 엄청, 심히, 상당히, 대단히, 굉장히, 직사하게 등등’에다가, 사투리 ‘겁나게, 억수로’와, 비속어 ‘졸라, 짱’까지, 그 어느 나라의 말보다 많고도 다양하다. 이 단어들은 비슷하면서도 의미와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다. 의미와 쓰임새가 조금씩 다른 단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를 정확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말이 풍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20여년 전부터, 방송 매체의 영향에 따른 현상으로 짐작한다) ‘너무’가,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인 ‘너무’가 다른 모든 유의어 부사를 삼켜버렸다. 원래 자기 몫이 아닌 자리까지 차지하여 우리말의 (정도를 강조하는) 부사 체계를 단순화해 버린 것이다.


‘너무’의 고삐가 풀린 부사 체계는 어떻게 변할까? 나머지 부사들이 점점 더 자리를 잃고 쓰이지 않게 되어, 우리말이 그만큼 빈약해지고, 그만큼 미세한 차이를 정교하게 표현할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싶은 것은 기우일까?


대항마가 없지는 않다. ‘너무’도 이제는 식상해졌는지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방송매체밖에 모르던 구세대나 아직도 ‘너무’에 매달려 만능키인 듯 쓰고 있지만, 인터넷 세대는 다른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졸라, 짱, 개-, 지리게’ 같은 비속어가 인터넷을 타고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속어는 적의 적이 될 수는 있어도 아군이 될 수는 없다. 의사를 정교하게 표현하고, 우리말의 풍성함을 지키기 위해, 의미와 쓰임새에 맞는 어휘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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