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맑은 물에 고기 안 논다_너무 청렴, 깨끗하면 사람 재물이 따르지 않는다.

by noksan2023 2025. 2. 24.
반응형

맑은 물에 고기 안 논다

                                 [속담] 사람이 너무 청렴하거나 깔끔하면 사람이나 재물이 따르지 아니한다는 말

 

 

 

맑은 물에 고기 안 논다

 

 

 

 

산천어(山川魚)와 같은 물고기는 맑은 물에서만 산다. 그런데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맑은 물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아 물고기가 꼬이지 않기 때문이다. 맑은 물에 물고기가 꼬이지 않듯,너무 깨끗하고 깔끔한 사람, 너무 청렴한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지나지게 엄격하고 까다로워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부를 축척할 수 있는기회도 적어진다. 이렇듯 너무 깔끔하고 청렴하면 사람이나 재물이 따르지 않는 것을 비유하여

 

“맑은 물에 고기가 안 논다.”

 

고 표현한다.

 

“모든 것을 도덕 규범의 잣대로만 재면 곤란하다. 맑은 물에 고기가 안 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와 같이 쓸 수 있다.

 

 

 

맑은 물엔 고기가 없다 

 

 

 

맑은 물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논다. 물도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사람도 너무 청렴하게 굴면 재물이 따르지 않는다는 속담이다. 뇌물이나 촌지를 꼿꼿이 거절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비꼬는 의미로 써왔던 이 말은 그러나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 수질에 따른 생태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민물고기를 보자. 바닥에 깔려있는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은 얼핏 보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바닥의 돌을 들었을때 하루살이의 애벌레가 우글거리고 버들치가 표면층.중간층.바닥층을 가리지 않고 헤엄친다.

버들치에 비해 비늘이 잔 버들개도 1급수에서만 산다. 상수원수 1급수는 환경부가 정한 기준으로 수질은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 (BOD) 이 1ℓ당 1㎎이하. 여과등 간이정수 처리를 한 후에 마실수 있는 물이다. 1급수보다 약간 더러워진 2급수 (BOD 3㎎/ℓ 이하)에서는 갈겨니가 산다. 갈겨니는 피라미와 색깔 모양이 비슷하지만 비늘이 잘고 눈이 크며 검은 물고기. 이보다 약간 탁한 물에는 피라미가 노닌다. 버들치와 갈겨니와 피라미가 같은 개울에서 살땐 버들치가 최상류, 갈겨니가 다음, 피라미가 가장 하류쪽으로 몰리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 피라미가 흔한 이유는 수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보.저수지.댐등으로 물살을 막아 물살이 약한 긴 개울에서만 살 수 있는 피라미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준 탓이다. 사람들이 흔히 잡아 요리하는 민물고기들은 상수원수 3급수에서 산다. 3급수는 전처리등 고도 정수처리를 해야 마실 수 있는 물이다. 붕어와 잉어가 BOD 6㎎/ℓ이하인 3급수에서 사는 물고기다. 이외에 메기.몰게등도 3급수에 산다. 맑은 물에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긴 까닭은 요리에 흔히 쓰이는 붕어.잉어.메기 따위의 물고기가 비교적 흙탕물에서 살기 때문. 맑은 물에서 주로 사는 버들치.버들개.갈겨니등은 맛이 별로라 요리어종으로는 사랑을 받지 못해왔다.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BOD등을 측정하지 않고서도 물에 사는 물고기종류만으로도 누구나 수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할까

 

 

 

맑은 물

 

 

 

“맑은 물에 고기 안 논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아니 모인다.”

 

과연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할까? 이 말은 과학적으로 엉터리다. 우리 속담처럼 가어(家語)에서도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라는 말에 상응한 비유로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라고 씌어 있다. 이 말이 진리일까?

 

우리나라는 물을 1~4급수로 나누어 관리한다. 가장 맑은 물은 1급수다. 가장 더러운 물이 4급수다. 과학적으로 1~3급수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만, 가장 더러운 4급수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현대 과학으로 살펴보면, 얼토당토않은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수자원 관리 기준을 보면, 1급수 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식수(마시는 물)로 관리하므로 수영을 금지한다. 2급수 물은 마실 수는 없지만, 수영은 할 수 있다. 3급수 물은 흙, 모래, 자갈 등이 섞여 물이 탁하다. 4급수 물은 오염이 심해 썩은 냄새가 나며 물고기가 살 수 없다.

 

물고기 서식을 보면, 1급수 물에서는 산천어, 버들치, 어름치, 금강모치, 가재 등 고급 어종이 산다. 2급수 물에서는 은어, 쉬리, 쏘가리, 피라미 등이 산다. 3급수 물에서는 붕어, 미꾸리, 메기 등이 산다. 4급수 물은 산소가 부족하여 물고기가 살 수 없다. 물고기는 과학적으로 맑은 물에서 더 잘 산다. 4급수 물에서는 살 수가 없다. 

 

간디스토마(간흡혈충)를 보더라도, 맑은 1~2급수 물에 사는 물고기에도 기생하지만, 3급수 물에 사는 물고기에 더 많이 기생한다. 물고기는 물이 맑아야 더 잘 살 수 있다. 더럽고 탁한 물에서는 산소가 부족하여 죽어 버린다. 그렇다면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정상적인 현대인들은 시정잡배 같은 사람보다 반듯한 사람과 사귀려고 한다. 사람은 유유상종, 끼리끼리 어울린다. 

 

사람을 아무나 사귀면 뒤통수를 맞고 낭패를 당할 수도 있고, 나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을 가리고 가려서 사귀어야 훗날 후회하지 않는다.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수지청즉무어(물 수, 이를 지, 맑을 청, 곧 즉, 없을 무, 고기 어)

인지찰즉무도(사람 인, 이를 지, 살필 찰, 곧 즉, 없을 무, 무리 도)

 

공자가어(孔子家語) 입관편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

 

라는 구절

 

 

왜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을까?

 

 

맑은 물

 

 

 

산을 오르면서 맑은 물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쁨이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기도 하고, 지친 발을 담그기도 한다. 산이 좋아 산에 가지만 늘 물이 있어 반갑다. 산에 가면 물이 좋고, 배를 타면 멀리 뭍이 반갑다. 그런 게 인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 산에 오르면서 만난 냇물도 나를 맑게 했다. 그런데 맑은 물속에 물고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각이 났다. 매우 사실적인 속담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속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속담은 지나치게 곧고 깨끗한 사람에게는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그대로 해석해 보자면 곧고 깨끗한 게 잘못이 된다. 정말 그런가?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면 안 된다는 뜻일까?

물론 ‘지나치게’라는 의미가 강조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해는 잘 안 되었다. 속담의 교훈치고는 어딘가 잘 안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다. 속담을 볼 때는 늘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조상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생각해서 속담을 사용하면 안 된다.

맑은 물, 즉 깨끗한 사람의 문제 중 하나는 다른 사람도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끗하지 않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있는 곳의 물을 더럽힌다고 생각해서 밀어내는 것이다. 물고기가 안 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오지 못하게 막고 있기도 하다.

당연히 주변에 사람이 있기 어렵다. 착하게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함이 문제다. 곧게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게 문제다. 타인을 엄밀히 평가는 하지만 감싸 안으려는 마음 없이 밀어내기만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기 어렵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을 기르는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옳지 않은 삶을 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다. 실수나 예상치 못한 잘못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라는 것에 마음이 열려있어야 한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늘 돌봐주고 타일러야 한다. 남의 실수에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과 함께 지내는 건 늘 두렵고 조심스럽다. 아니 답답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럴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고사성어로는 ‘덕불고(德不孤)’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따르는 이가 많아서 외롭지 않다.’는 뜻이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데 왜 덕이 있는 이에게는 따르는 사람이 많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맑은 물의 문제를 알 수 있다. 단순히 맑기만 한 냇물은 덕이 없는 것이다. 덕이 없으면 물고기도 없다.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외롭다.

물이 맑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맑게 살아야 한다. 그러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맑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속담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맑지만 덕이 있어야 한다. 이해심이 있어야 한다. 용서하여야 한다. 실수한 이를 감싸주고, 지친 이의 어깨를 토닥여 줘야 한다.

때로는 같이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외롭지 않다. 외로움의 문제는 단지 상대방의 문제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연결되어 있다. 그가 외로우면 나도 외로워진다. 이제 맑은 물에 자갈도 좀 놓고, 수초로 그늘도 만들고, 모래도 흩뿌려 놓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