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肺腑)를 찌르다_깊은 감명을 주다

‘폐부(肺腑)'는 다름 아닌 ‘허파'다. 허파는 인체의 아주 깊숙한 곳에 있는 장기(臟器)다. 그리하여 ‘마음의 깊은 속'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의 눈은 사람의 폐부를 꿰뚫 듯 예리했다.”에 쓰인 ‘폐부'가 그러한 것이다. ‘미음의 깊은속'을 찌르는 것은 결국 마음속을 세게 자극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폐부를 찌르다.”는마음의 깊은속을 세게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주다' 라는의미를 띤다.
공직 사회의 폐부를 찌르다…'나라를 위해서 한다는 거짓말'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와 공무원 조직에 관한 폭탄 고발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 문화체육관광부 5급 서시관으로 10년 간 공직에 몸 담았던 저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구름빵·검정고무신 등의 첨예한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이유를 정부와 관료 조직 구성원들의 사적 이익과 생존을 위한 표리부동를 지적하며 그들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심층적으로 비판한다.
한강 작가가 포함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여파, '구름빵'과 '검정고무신' 불공정 계약 사태가 근본적인 창작자 보호 대책으로 연결되지 못한 이유,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윗사람의 심기를 맞추는 데 전적으로 집중된 성과평가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이어 그 시스템을 극복하는 대책으로 만들어진 '조직문화 새로고침(F5)' 같은 공무원식 말장난에 대한 비판까지. 문체부 내외를 입체적으로 넘나드는 작가의 신랄한 공직 세계에 대한 비판은 '국민을 위한 공복'이라는 신뢰를 흔든다.
저자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무능과 무기력을 숨기는 공직사회의 관성과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실제 거기에 질려 공무원의 삶을 때려치웠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저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는 우리 공직사회의 한계와 폐단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햄릿 김강우의 씹어뱉는 듯한 연기, 폐부를 찌르다

고전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원작을 가능한 한 그대로 표현하는 대신 각색을 통해 새로움을 더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원작에 충실했다면 "원작에 비해 감동이 덜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지만, 각색된 작품이라면 "원작이 지닌 메시지를 훼손했다"고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전 중의 고전인 셰익스피어의 명작을 용기있게 손 댄(?) 연극 한 편이 나왔다. 지난 2일 개막한 <햄릿 - 더 플레이> 얘기다.
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연극 <햄릿 - 더 플레이>가 프레스콜을 가졌다. 이날 프레스콜에서는 연극 전막이 시연됐으며 햄릿 역의 김강우와 김동원 등 더블 캐스팅된 배우들이 1, 2막에 나뉘어 출연하는 등 모든 배우가 무대에 올라 연기를 선보였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는 김동연 연출과 지이선 작가가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햄릿 - 더 플레이>의 가장 큰 특징은 원작에 없는 어린 시절의 햄릿과 광대 요릭을 등장시키면서 극 전반에 밝은 분위기를 더한 점이다. 이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관객들에게 있어 원작 '햄릿'은 충격적이고 슬픈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들은 감정적 부분보단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치중하는 편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이 비극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그래서 어린 시절 햄릿이 궁정광대 요릭에게 뭘 배웠을지 상상해 이야기를 채웠다. 이를 통해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을 통해 15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온 배우 김강우의 연기는 베테랑 연극배우 못지 않을 정도다. 특히 극 후반부 햄릿이 연인 오필리어를 잃고 어머니 거투르드와 다투는 장면에서 꼭꼭 씹어 뱉어내는 듯한 강렬한 대사들은 폐부를 깊이 찌른다. 그는 "김동원 연출과 대학 선후배 사이다. 대학 시절 함께 '햄릿'을 공연하고 15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서게 됐다"며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또한 "저는 공연계에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다"라며 "그간 연기활동을 하며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배우로서의 길을 다시 찾게 됐다"고 덧붙였다.
어린 햄릿 역을 맡은 두 아역배우 정재윤과 탕준상은 각각 귀엽고 성숙한 소년 햄릿의 모습을 보여주며 극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들을 편안하게 이끌며 <햄릿 - 더 플레이>에 내재된 희극성을 효과적으로 내보이는 요릭 역의 배우 이현철의 활약은 특히 돋보인다. 그는 "요릭은 원작에서 해골로만 존재한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며 "요릭이 갖고 있던 능력을 어떻게 표현할지 매일 고민했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어린 햄릿과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고, 그 과정이 즐거웠다"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몇몇 조연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 또한 크지 않은 비중에도 인상적으로 남는다. 특히 햄릿의 숙부 역을 맡은 배우 이갑선, 연인 오필리어와 어머니 거투르드 역의 이진희는 극적인 장면에서 흡인력 강한 연기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배우들이 연기 도중 자연스럽게 무대 위 구조물을 옮기면서 중간중간의 암전을 최소화해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 연출, 중세와 현대의 분위기가 묘하게 조화된 모노 톤의 의상 또한 작품의 완성도를 더한다. <햄릿 - 더 플레이>는 오는 10월 1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송곳같이 사회의 폐부를 찌르다

화제의 명작 『송곳』(1~3권, 최규석 지음)이 드디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도씨』 『울기엔 좀 애매한』 『지금은 없는 이야기』 등으로 한국 만화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해온 최규석 작가의 장편으로 2013년 12월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작품이다.
외국계 대형 마트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에 대한 대항을 좇는 웹툰 『송곳』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찬사를 받았다. ‘포털에서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한국 만화의 기적이다’라는 등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연재되고 있다. 현실에 굴복하지 못하는 주인공 이수인과 냉철한 조직가 구고신이 대형 마트 ‘푸르미’를 배경으로 등장해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번에 세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분량은 현재까지 연재된 3부까지다.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 최규석 특유의 블랙유머까지 담아 “심각하게 재밌는”(만화가 주호민) 작품이 탄생했다.
세상의 걸림돌 같은 존재: 이수인
작품은 지금부터 약 10여년 전으로 돌아가 프랑스계 대형 마트인 ‘푸르미’를 배경으로 부당해고지시를 받은 주인공 이수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수인은 ‘지켜야 할 규율과 해야 할 일이 명확해서’ 직업군인이 되었지만 군대 내의 부조리와 부패를 견디지 못한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어디서건 입바른 소리를 삼킬 줄 모르고 끝없이 세상과 부딪히고 불화하는 인물로, 우리 주변에서 한명쯤은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다. 군대를 떠나 옮긴 외국계 유통회사에서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가 과장을 맡은 신선식품부의 직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나 걸림돌 같은 존재’인 이수인은 부당해고지시에 ‘그거… 불법입니다’라는 말을 삼키지 못한다.
한평생 세상과 싸워온 생활형 조직가: 구고신
이수인과 함께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또 한 명의 ‘사서 고생하는’ 인물은 노동운동가 구고신이다. ‘떼인 임금 받아드림’이 대표문구인 ‘부진노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구고신은 냉철한 조직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원칙주의자인 이수인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가고, “남의 일 해주고 돈 받으면 임금이고, 일하는 사람한테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있는 겁니다!”라며 권리의식을 일깨워주는, 평생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온 생활형 조직가다.
최규석 작가는 구고신 소장은 취재 중에 만난 여러 조직가들이 모두 합쳐진 인물이라고 말한다. 정의감과 책임감에 짓눌린 이수인의 어깨를 다독이며 “너무 위대해지지 맙시다”라고 말하며 이수인의 뜨거운 머리를 식혀주는 연륜의 활동가다.
인간 대접 받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수인과 구고신은 전형적인 영웅적 캐릭터가 아니다. 쉼없이 속으로 갈등하면서도 한걸음 앞서나갈 줄 아는, 인간미와 현실감이 넘치는 영웅이다. 이들과 함께 『송곳』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들은 작품에 현실감과 생동감을 더한다. 명문대 출신의 이수인을 시기하는 부장 정민철, 직원들에게 두루 신뢰받는 주임 주강민, 소심하고 비겁한 과장 허경식과 그를 형처럼 믿고 따르다 배신당한 황준철… 일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 군상이다.
이들이 좌충우돌하며 불화하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누구나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갈등에 대한 공감까지 얻어낸다. 『송곳』의 인물들은 유달리 반동적이거나 특수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평소에 조직생활에 충실하고,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노동조합’의 ‘노’자도 들어본 적 없는 소심한 시민들이다. 그들이 미세하게 선동되고 움직이는 과정이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다.
만화평론가 김낙호는 “『송곳』은 불쌍한 양민을 흑기사가 나타나 구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민중이 저절로 각성하여 노동해방을 쟁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사회생활 안에서 인간 대접을 받기 위해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말한다.
송곳같이 날카롭게 사회의 폐부를 찌르다
무엇보다 『송곳』의 백미는 스스로를 ‘노골리스트’라고 부르는 최규석 특유의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담은 대사들이다. “가장 혼자 벌어서 네 식구 그럭저럭 먹고살고 애기들 키우고 하던 그런 시절은 다시 안 와요!”처럼 작금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일갈, “합리성을 강요하는 모든 조직은 비합리적 인간성에 기생한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와 같은 대사로 드러내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투시력을 보여준다. 『송곳』이 노사분규를 다루는 르뽀에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폭넓게 호소하는 이유다.
『송곳』의 세심한 디테일과 선명한 현실반영에는 다년간에 걸친 깊이있는 현장 취재와 인터뷰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규석 작가는 이 작품을 2008년부터 준비해왔다. 이수인의 모델인 2007~2008년 한국까르푸-이랜드 사태 당시의 김경욱 일반노조 위원장을 수차례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노동운동가 하종강 교수를 수개월간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며 취재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몇년에 걸쳐 다양한 현장에 찾아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취재에 큰 도움을 주었고 구고신의 실제 모델 중 한명이기도 한 하종강 교수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질문이 예리하고 꼼꼼했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전작보다 훨씬 복잡한 함의와 파급력을 지닌 작품이어서 더욱 심혈을 기울인 취재가 선행할 수밖에 없었다.
『송곳』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하는 권리가 있으며,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려면 강자의 ‘갑질’에 ‘을’들이 함께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부조리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면, 언젠가 당신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
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재 중 댓글난에는 자신의 직장에서 일어난 더 심각한 사연을 토로하는 댓글, 『송곳』을 읽고 받지 못했던 퇴직금을 받았다는 댓글 등이 줄을 이으며 ‘노동상담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감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갔던 부조리함을 다시 짚어보고, 잃어버린 권리를 찾게 하는 역할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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