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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두문자

편두_가야 문화의 특징?

by noksan2023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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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_가야 문화의 특징?

 

 

 

편두

 

 

 

중국의 역사책 「삼국지」의 「위서동이전」에는

 

"어린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의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을 통해 경남 김해 예안리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처럼 당시 한반도 남부 지역에 편두 풍습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편두란 머리를 인위적으로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편두는 신체가 자라는 유년 시절에 나무틀을 머리뼈에 씌우는 방식으로 머리 형태를 바꿔 신분과 집단을 나타내는 문화 행위였다. 일반적으로 태어난 직후부터 생후 2년 동안 이루어졌다. 인위적으로 머리뻐를 변형하는 풍습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종교 의식과 관련된 고대 이집트 조각에 등장하는 여인도 편두인데, 김해 예안리 고분의 인골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면 가야인들은 왜 편두를 했을까? 아직 학게에서 일치된 의견은 없다. 편두가 일부 계층에만 나타나는 사실을 통해 샤면(제사장)과 같은 신분 표시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고대 사람들은 보통 의복, 장신구, 문신 또는 거대한 건축물로 자신의 지위를 표현하였다. 편두 역시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표현하는 주요한 도구였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특권적인 지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편두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나 수메를 문명의 그림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은 대부분 삭발하고 머리는 달걀처럼 뾰족하게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마야인은 영적인 능력을 높이기 위해 편두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편두 일골이 출토된 김해 예안리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은 하나깥이 빈약하다. 이를 근거로 김해 예안리 무덤에 묻힌 편두를 한 인물은 고위 신분이거나 재력가, 종교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편두를 한 사람들은 노예이거나 편두 풍속을 이어간 가야 지역 내의 소수 민족이라는 것이다. 

 

반면 편두가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미의 기준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기의 머리를 눌러 머리 모양을 변형시키는 행위는 오늘날에도 행해진다. 부모들이 아이의 머리 모양을 예쁘게 하려고 갓난아기를 엎어 재우거나 손으로 만져 주는 것이 그것인다. 가야인들의 편두 풍습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편두는 갓난아이 시절에만 만들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특권 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세습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고대에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던 편두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욕망을 표출한 풍습이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비싼 차, 옷, 귀금속 등을 사들여 자신을 꾸민다.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그 욕망은 비슷한 것 같다. 

 

 

편두 (扁頭)

 

 

 

편두

 

 

 

 

원시사회에서 행해졌던 두개변형(頭蓋變形)의 일종이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풍습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20세기 초까지 행해지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진한(辰韓)이나 변한(弁韓)지역에서 행해져 신라와 가야시기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 전해지는 진한의 풍습으로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의 진한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고고학 자료로는 경상남도 김해시 예안리(禮安里)에서 발견된 가야고분군으로 4세기대의 목곽묘인 예안리 85호와 99호 고분에서 10 예(例)의 변형 두개골이 보고되었다. 모두 일반 여성으로 추정되며, 앞이마가 후퇴해 있는 현상을 보여주어 앞이마를 돌로 눌러 편두를 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들 두개골의 머리둘레는 50㎝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의 정상적인 머리둘레인 57.5㎝보다 매우 작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아직 뼈가 무른 갓난아기 때 머리를 천이나 노끈으로 감든지, 또는 작은 목판 같은 것으로 압축하여 두개골을 변형시킨다. 우리나라는 문헌기록에 따르면 머리를 돌로 눌러 압축하여 두개골을 변형시켰다고 한다. 이는 미용이나, 권위, 민족적 동질감 등을 나타내기 위한 발치나, 신체 일부의 절단, 문신 등과 같은 신체 변형 풍습과 유사한 형태이다.

 

편두의 풍습이 변한지역인 김해 예안리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진한지역 이외에도 변한지역까지 유행하였던 풍습으로 해석되고 있다.

 

 

 

가야인의 ‘편두’, 죽음을 무릅쓴 성형이었을까

 

 

 

편두풍습 = 외계인

 

 

 

 

독일에서 발굴된 두개골은 먼 옛날 지구에 살았던 외계인 존재의 증거인 것만 같다. 머리 꼭대기가 산처럼 길게 솟아 있어 사람의 그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고대 동유럽에서 유행했던 두개골 변형의 증거다. ‘편두’(褊頭)라고 불리는 풍속. 유아기 때 나무나 돌, 천 등을 머리에 둘러 두개골을 인공적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헝가리, 독일 등에서 발견되는 편두는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일대에 거주했던 훈족이 4세기경 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확산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기괴할 하지만 편두는 먼 옛날 세계 각지에서 유행한 풍속이었고, 고대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편평하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의 진한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편평하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문헌의 기록으로만 전하던 이런 사실은 1970년대 경남 김해의 예안리 고분(사적 261호)에서 인골이 출토되면서 실물로 확인됐다. 212기의 묘지가 확인된 예안리 고분군 인골은 210개체. 이 중 10개체가 편두이거나 혹은 편두의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김해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가야 사람 풍습: 편두(2019 가야학술제전 학술총서)’는 편두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며 흥미로운 내용을 담았다.  

책에 따르면 두개골 변형은 신생아일 때 시작된다. 세계 각지 편두의 분석 결과를 보면 생후 5∼7개월, 심지어 1개월도 안된 영아의 두개골에서도 머리를 감쌌던 붕대의 흔적이 확인됐다. 뼈가 자리를 잡기 전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1주일에서 3개월 정도 10∼20회 정도 반복했다고 한다.   

한국의 편두 연구에 단초를 제공한 예안리 고분의 10개체 편두 인골 혹은 편두 의심 인골은 4세기 대의 것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2개체, 여성이 8개체(유아 1개체, 10대 1개체, 20∼30대 2개체, 40∼50대 4개체)이다. 

 

이 중 편두가 확실한 것은 85호, 99호분에서 나온 2개체이다. 모두 머리 앞부분에 압박을 가해 편평하게 한 형태다. 책은 “예안리의 편두 방식은 전두부에 집중되어 시행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전두부에 납작한 돌이나 평편한 판을 올려서 압박을 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경우는 아무런 고정 장치 없이 돌을 올려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시행 가능한 시점은 아기의 활동이 많지 않은 출생 후 1개월 전후로 짧은 시간 동안 수차례 반복하며 만들어낸 결과물로 생각할 수 있다

 

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편두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각지의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해도 분명한 답을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고대 한반도의 경우에는 확인된 편두 사례가 매우 적어 더욱 그렇다. 다만 몇 가지의 추론은 제시된다. 

우선 성형의 일종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편두 인골이 여성의 것이 많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차별화된 신분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야 테페 고분군에서는 변형된 두기골 위에 화려한 금관을 쓴 상태인 20대 여성의 뼈가 출토된바 있다. 금관 외에도 허리띠와 금제 장신구 일체를 착용한 상태였다. 그러나 편두가 나온 예안리의 고분에서는 특수한 신분이나 지위를 상징할 만한 부장품, 착장품이 확인되지 않았다. 주술이나 의례를 위한 것이라는 추론도 제기된다.  

 

 

‘외계인 머리’를 한 유목민 전사의 비밀

 

 

편두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온 외계인을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는가? 보통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이나 머리가 길쭉한 대머리 같은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이제까지 외계인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계인으로 뾰족한 대머리 형태를 한 생명체를 떠올린다. 이런 이미지는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는 2천년 전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흥한 유목민 흉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나긴 역사를 가진 이미지다. 우리나라의 가야와 신라에서 저 멀리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목문화의 흐름, 특권을 대물림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이 바로 이 편두에 숨어 있다.

 

편두(artificial skull deformation)는 신체가 자라는 유년 시절에 두개골에 나무틀을 씌우는 방식으로 머리통의 형태를 바꿔 신분과 집단을 나타내는 문화 행위를 말한다. 한반도에서는 약 2천년 전 변한의 사람들이 편두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야인들의 귀족 무덤에서도 편두가 많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편두의 풍습은 그보다 한참 전인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8천년 전 유적인 두만강의 한-러 국경 지역 보이스만 패총에서 발굴된 40대 여성의 머리가 바로 편두였다. 이 여인은 당시 평균 수명인 20대 중반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같이 묻힌 유물들도 제사와 관련된 것이어서, 학자들은 그를 샤먼으로 본다. ‘하늘의 대리인’이라는 특권이 편두로 표현된 것이다.

 

 

신분의 상징이 된 편두

 

 

 

8천년 전 아무르(흑룡강)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편두를 한 여신상.

 

 

 

 

아무르(흑룡강) 유역의 약 7천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아무르의 비너스’라는 별명의 여신상이 발견되었다. 이 여신상의 눈·코·입은 요즘의 동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했는데, 특이하게도 이마는 뒤로 심하게 꺾여 있었다. 이마를 납작하게 누른 편두를 한 것이었다. 함경북도의 6천년 전 신석기시대 서포항 유적지에서 발견된 인면상에서도 비슷한 편두 형태의 토제 인형이 발견되었다. 수천년 전 동해안에 살던 사람들은 편두를 하늘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숭배했던 것 같다. 어디 한국뿐인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도 편두를 신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네번째 편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편두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두는 인간의 진화로 인해 가능했다. 현생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하는 두개골의 용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인간의 출산은 목숨을 건 위험한 과정이 되었다. 지나치게 두개골이 커져 태어날 때 어머니의 좁은 산도(産道)를 나오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인간 태아는 아직 붙지 않은 두개골이 서로 흩어져 길쭉한 형태로 산도를 통과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그 덕택에 인간은 태어나서 몇년간은 두개골이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로 살았고, 사람들은 나무나 헝겊을 이용해 머리 형태를 바꾸게 되었다.

 

사람들은 의복, 장신구, 문신 또는 거대한 건축물로 자신의 지위를 표현한다. 편두 역시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표현하는 주요한 도구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기의 머리를 이상하게 변형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바로 다른 사람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자신만의 특권적인 지위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된 신분증이나 증명이 없었던 시절에 편두는 문신과 함께 각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울 수 없는 상징의 구실을 했다.

문신 같은 다른 상징물과 편두의 가장 큰 차이는 갓난아이 시절에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특권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세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편두는 문명이 발달하고 계급이 세분될수록 고도로 발달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의 그림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은 대부분 삭발을 하고 머리는 달걀처럼 뾰족하게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귀족과 왕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평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고, 그 표시로 특이한 머리 형태를 내세웠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편두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한 데에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초원에서 발흥한 흉노의 역할이 컸다. 흉노와 같은 기마민족이 편두를 더욱 선호한 것은 그들의 생활습관과도 관련이 크다. 모든 것을 말 위에 싣고 달리는 사람들이니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계급을 표시하고, 두개골 형태로 자신의 소속을 표현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삭발을 하고 다닌 것도 머리 형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흉노와 훈족의 독특한 머리 형태는 다른 정착민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상징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흉노의 멸망으로 촉발된 서기 3~5세기 훈족의 대이동 단계에 들어서면서 편두의 역사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서양의 게르만족 이동을 촉발한 훈족의 대이동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에 유라시아 전역으로 황금과 발달한 철제 마구가 널리 확산됐다. 훈족의 문화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편두도 중앙아시아 일대를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다. 최근 스위스 뒬리(Dully)에선 편두를 한 몽골인 계통의 여인이 묻힌 서기 5세기께 무덤이 발견됐다. 훈족의 대이동 시절에 이 지역으로 넘어온 부르군트족이었다. 유럽엔 순수한 ‘유럽인’만 살았던 것으로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는 예상치 않은 발견이라 많은 관심을 끌었다.

 

 

 

최근 스위스 뒬리에서 발견된 서기 5세기께 무덤에서 편두를 한 몽골인 계통 여인의 유골이 발굴됐다. 이를 바탕으로 복원한 생전의 모습.

 

 

 

좁은 머리만 쓸 수 있는 금관


흉노의 영향을 받아 왕족들이 편두를 하는 나라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금관이나 금동관을 쓴다는 점이다. 신라와 가야의 금관은 잘 알려져 있다. 신라의 금관과 유사한 유물이 발견된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테페에서도 편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흑해 연안에 살며 금관을 썼던 사르마트인들도 편두를 했다. 편두와 금관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금관을 쓸 수 있었던 사제(샤먼)는 어릴 때부터 선택되어서 편두를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설사 누군가가 정권을 찬탈하고 금관을 훔쳐간다고 한들 좁은 머리에만 들어가는 금관을 쓸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권력을 세습하기로 약정되어 편두를 한 사람들만 금관을 쓸 수 있다. 영원한 권력 세습의 상징이었다. 박·석·김 세 성씨가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다가 김씨가 독점하던 시기부터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금관이 신라에서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신라 금관의 지름은 17㎝ 내외로 매우 작으며, 금령총 금관처럼 지름이 15㎝밖에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당시 신라와 가야는 부여 계통의 백제나 고구려에 대항하여 국력을 발달시키면서 독자적으로 초원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강력한 유목전사였던 흉노의 상징인 편두도 함께 유행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특권층을 대표하는 금관은 지금까지도 신라와 가야의 왕권과 귀족을 상징한다.

 

과거 유목전사의 상징이었던 편두를 현대에 들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독특한 머리 형태를 한 사제들과 하늘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의 유물을 보고는 ‘고대에 외계인들이 유에프오를 타고 와서 인간들을 통치했다’는 식으로 오해했다. 미국 드라마에서 옥수수 머리(corn-head)를 한 외계인들이 등장했고, 이후 외계인의 상징으로 잘못 알려진 탓도 있다. 현대인들은 외견상으로 기이한 편두를 보며 과거 사람을 미개하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 사람들이 현대인들이 신체에 무리가 가는 신발이나 의복도 서슴지 않고, 치명적일 수도 있는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대에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던 편두는 타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욕망을 표출한 풍습이었다. 편두를 하지 않았을 뿐 그보다 더 기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부를 세습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하는 지금 이 시대의 특권층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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