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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두문자

석가탑_불국사 3층 석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품은

by noksan2023 2025.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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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_불국사 3층 석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품은

 

 

 

불국사 3층 석탑 발굴 현장

 

 

 

"복원 공사하다 석가탑 망가뜨려, 3층 탑신 세 동강, 해체하다 2층 옥개석 떨쳐 기단 갑석도 조각나, 구경하던 주민들 분노"

 

1966년 10월 14일에 실린 「경향신문」기사 제목이다. 도대체 경주 불국사 3층 석탑, 일명 석가탑에 무슨 일이 었었던 것일까? 1966년 9월 균형을 잃어 기울어진 탑신 때문에 석가탑에 금이 갔다는 기사가 실렸고, 그 원인을 자연적인 것으로 추측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며칠 후 이는 석가탑의 유물을 훔치려던 도굴꾼들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도굴꾼들은 석가탑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이들은 9월 3일 밤 실행에 옮겨 1층 옥개석(탑신 위에 지붕처런 덮어 얹는 돌)을 들어 올리려다 장비(잭)의 힘이 약해서 실패했다. 이튿날 대구에서 더 큰 장비를 가져와 1층 옥개석을 들어 올렸으나 유물을 찾지 못했다. 9월 5일 밤에도 제일 위층인 3층 옥개석을 들어 올렸으나, 유물을 찾지 못해 실패했다.

 

문화재 위원회는 경주 불국사 3층 석탑 복원하기 위해 문화재 보수단을 편성해 10월 13일부터 석가탑 해체 공사를 시작했다. 탑 위층부터 차례대로 해체하던 중 2층 옥개석을 들었을 때 2층 탑신석의 사리공 안에서 사리 장치를 발견하였다. 도굴꾼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이었다. 그때 2층 옥개석을 들어 올린 장비가 부러지면서 2층 옥개석이 미리 내려놓은 3층 탑신 위에 떨어졌다. 3층 탑신은 세 조각으로 부서졌고, 아찔한 사고에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과 관광객들은 문화재 위원들에 항의하였다. 사고 직후 사리 장엄구 등 유물을 무사히 수습하였다. 나무로 만든 작은 탑, 구리 거울, 구슬, 순금 종이를 감싼 진신사리가 들어 있는 은항아리 등이 천여 년이 넘게 그곳에 있다가 발견된 것이다. 또한, 전체 길이가 6.2M에 달하는 현존하는 세게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비단에 싸인 채 발견되었다.

 

한편, 사리함 아래에 한지로 된 종이 뭉치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2005년에 판독되었다. 판독 결과 고려 시대인 1024년과 1038년 지진 등으로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이 훼손되어 보수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낙뢰로 탑의 가장 위쪽 장식물인 상륜부가 떨어져 나갔다. 현재의 경주 불국사 3층 석탑 상륜부는 1972년 남원 실상사 3층 석탑을 본떠 만든 것이다. 

 

석가탑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6년 11월 석가탑에서 나온 유물 중 사리 46개가 담겨 있던 녹색 유리 사리병을 한 스님이 옮기다 떨어뜨려 깨뜨린 것이다. 이후 깨진 유리 사리병은 수리해 보관 중이다. 더 이상 경주 불국사 3층 석탑, 나아가 소중한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慶州 佛國寺 三層石塔)

 

 

 

석가탑 부분별 훼손 현황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각 10.75m, 10.29m로 비슷하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慶州 佛國寺 三層石塔)

 

 

경주 불국사 석가탑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마주서 있는 석탑 가운데 서탑으로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하는데, 석가탑은 동탑인 다보탑(多寶塔)에 대칭되는 호칭이다.

이러한 호칭은 『법화경』에 이른바 다보여래(多寶如來)와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나란히 앉아 하나는 설법하고 하나는 증명하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보탑은 다보여래상주증명(多寶如來常住證明)의 탑이요, 석가탑은 곧 석가여래상주설법(釋迦如來常住說法)의 탑이다.

그러나 이 탑에서 나온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無垢淨光塔重修記)」는 1024년(현종 15)에 불국사 무구정광탑을 중수하면서 남긴 기록인데, 1038년(정종 4)에 다시 옮겨 적은 것으로, 이 탑(혹은 다보탑)을 무구정광탑으로 지칭하고 있어 고려시대에는 불국사의 두 탑이 석가탑이나 다보탑으로 불려지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불국사고금역대기』에 의해서 석가탑 창건을 751년으로 보았으나, 묵서지편에서 나온 두 종류의 중수기 기록으로 다보탑과 석가탑 모두 대성각간(大城角干)의 주도하에 불국사 쌍탑으로 신라 경덕왕 원년(742)에 창건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내용

이 석탑은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相輪部)를 조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높이는 10.4m이다. 기단부는 여러 개의 큰 돌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상하 기단은 각각 여러 개의 석재로 짜여 있다.

하층기단은 기대(基臺)에 높직한 굽이 돌려져 있고, 중석(中石)에는 우주(隅柱: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받침기둥) 2주씩이 각 면에 모각(模刻)되어 있다. 갑석(甲石)은 4매로 되어 있으며, 윗면에는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활모양의 2단 굄이 있다.

상층기단은 하층기단보다 높고 우주와 탱주가 2주씩 있다. 갑석에는 밑에 부연(副椽: 탑의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약간의 경사가 있으며, 중앙에는 각형의 2단 탑신(塔身) 굄이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층 탑신에는 4개의 우주가 있다. 각 층 옥개석은 조성수법과 형태가 같다. 옥개받침은 5단씩이고 위에는 각형 탑신받침이 있다. 낙수면(落水面)은 평평하고 얇으며 4면의 합각(合閣)은 예리하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만 남았으나 1973년에 실상사삼층석탑(實相寺三層石塔)의 상륜부를 본떠서 복원하였다.

탑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연꽃을 조각한 탑구(塔區)가 있는데, 이것을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라 한다. 이것은 탑의 정역(淨域)을 구별한 것으로, 연꽃 1송이에 1보살씩 8보살의 정좌라고도 하고, 또는 석탑에 직접 조각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팔방금강좌는 특별한 착상인 동시에 탑의 장엄을 한층 더하여 주는 희귀한 유구(遺構)로 주목되고 있다.

 

특징

이 석탑은 창건 이후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왔으나, 1966년 9월 도굴범에 의한 훼손사건이 발생하여 손상됨에 따라 1966년 10월에 탑신부의 해체수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해 12월에 완전하게 복원되었다.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의 상면 중앙에 있는 네모난 사리공(舍利孔)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莊嚴具) 및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이 다라니경은 당나라의 측천무후자(則天武后字)를 사용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서 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1967년 국보로 일괄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또한 이 탑에는 백제의 공인(工人)인 아사달과 그를 찾아온 부인 아사녀의 애화가 전해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석탑은 기단부나 탑신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결하고 장중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워 전체의 균형도 알맞고 극히 안정된 느낌을 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목조탑파 형식을 답습하였던 신라 초기의 석탑에서 발전하여 완전한 신라식 석탑의 정형(定型)을 확립하였다. 이후 건립되는 우리나라 석탑들은 대부분 이 석가탑을 모범으로 삼아 건립된다.

 

 

석가탑 ‘완벽한 아름다움’ 비결은 ‘황금비율’

 

 

석가탑 해체 복원

 

 

 

‘삼층석탑의 형식은 거기에서 최고의 완성을 보게 된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는 정제된 아름다움, 단아한 기품과 고귀한 덕성, 빼어난 미모를 갖춘 조화적 이상미의 전형이 거기에 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불국사 석가탑을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답안”이라고 표현했다.

통일신라시대의 걸작 유산인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사진)이 지닌 ‘정제된 아름다움’의 비밀이 풀리게 됐다. 석가탑이 황금비율 원리에 따라 건설되면서 탑 구석구석에 ‘황금분할’은 물론 ‘황금구형’, ‘황금사선’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황금분할은 1:1.618의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분할 비율로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고대부터 세계적으로 건축·미술 등에 응용됐다. ‘신의 비율’로도 불리는 황금분할은 지금도 명함·신용카드·담뱃갑·컴퓨터 모니터 등의 가로·세로 비율에 적용되고 있다. 황금구형은 두 변이 황금비율을 이루는 직사각형을, 황금사선은 석탑의 지붕돌(옥개석) 등에 나타나는 사선의 경사도를 직삼각형의 빗변으로 간주할 경우 밑변과 높이의 비율로 표시할 수 있는데 이 비율이 황금비율인 사선을 말한다.

 

인천대 김효율 교수(60·무역학)는 최근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의 ‘신라문화’에 발표한 논문 <석가탑의 황금비율>에서 “석가탑 각 부위에는 황금분할, 황금구형, 황금사선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석가탑의 황금분할·황금구형·황금사선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석가탑 각 층의 몸돌(옥신) 높이와 지붕돌 높이는 황금분할이다. 1층의 경우 지붕돌 높이는 843㎜, 몸돌 높이는 1364㎜로 양측 비율은 1 대 1.168의 정확한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3층은 몸돌 높이 424㎜, 지붕돌 높이 685㎜로 1 대 1.616, 2층은 1 대 1.684를 보여 황금비율에 부합한다.

 

석가탑의 황금분할은 3개층 각 층은 물론 탑 머리장식(상륜부)인 스투파(노반·복발)·앙화, 탑의 기단부에서도 확인된다. 김 교수는 “수직적 분할로 볼 때 석가탑은 모두 6개의 황금분할로 이뤄져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층의 경우 오차는 사리공 설치로 인한 특수 구조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실제 1966년 12월 당국은 도굴꾼들의 석탑 훼손에 따라 석가탑 해체 복원공사를 벌였고, 2층 사리공에서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등이 발견됐다.

 

 

 

석가탑 황금분할

 

 

 

석가탑에서는 기단부부터 상륜부까지 황금구형도 곳곳에 응용됐다. 폭과 높이의 비율에서 볼 때 기단부는 물론 각 층, 상륜부에서 황금구형이 확인된다. 황금사선도 찾아진다. 각 층의 지붕돌 윗부분의 사선인 6개의 우동, 지붕돌 받침 하단에서 지붕돌 처마의 하단을 바라보는 앙각의 선인 6개의 ‘앙선’이 바로 황금사선이다. 김 교수는 “석가탑의 우동, 앙선들이 황금사선인 데다 층별로 변화까지 수용하고 있어 관람객이 보기에 탑을 더 생동감있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은 또 석가탑의 수직적 기본구도가 6개의 정사각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이번 논문은 석가탑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들고, 이미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황금비율이 적용됐음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교수는 “관람객들이 석가탑에서 황금비율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더 수준 높은 감상이 가능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장 출신인 김 교수는 “개인적 관심으로 꽤 오래 연구를 해왔는데, 석가탑에 적용된 선조들의 정밀과학 수준에 저도 놀랐다”며 “앞으로 불국사의 황금비율 등도 연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석가탑은 불국사가 세워질 때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감은사탑, 고선사탑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걸작으로 꼽힌다. 석가탑은 탑을 만든 석공인 백제의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전설이 얽힌 ‘무영탑’으로도 유명하다.

 

 

불국사의 비밀 "석가탑은 왜 그림자가 없을까?" 

 

“석가탑은 왜 그림자가 없을까?”

신라는 종교적 지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한마디로 ‘불교의 나라’였습니다. 신라 수도였던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 이름도 ‘불국사(佛國寺)’입니다. ‘불국’은 ‘부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신라 왕들의 명칭에도 ‘법흥왕(法興王)’이나 ‘진흥왕(眞興王)’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일으키고, 진리를 일으키자는 뜻입니다. 그러니 신라의 국가적 지향점은 이 땅에 불국토(佛國土)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왕비의 이름에도 ‘마야 부인’(제26대 진평왕의 부인)이 있었을까요. 마야는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인도식 발음을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늘 이런 지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발을 딛고 선 이 땅에 이상향을 건설하는 일 말입니다.

 

 

 

경북 경주의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서 있다. 불교의 핵심적 메시지가 이 두 탑에 녹아 있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는 탑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석가탑, 또 하나는 다보탑입니다. 석가탑은 무척 간결하고, 다보탑은 아주 화려합니다. 저는 불국사 뜰에 설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왜 대웅전 앞뜰에 저런 탑을 세웠을까.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나, 전혀 다른 양식의 탑들을 세웠을까.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니, 이 탑들에도 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다가 영축산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독수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영축산입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뒷산 이름도 ‘영축산’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그리 부릅니다. 인도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꽃을 들자 제자 가섭만 빙긋이 웃었다는 ‘염화미소’일화의 현장입니다.

부처님은 거기서 ‘묘법연화경(법화경)’을 설했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땅을 뚫고 탑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를 ‘석가여래’라고 부르고, 땅에서 올라온 탑을 ‘다보여래’라고 부릅니다. 이게 석가탑과 다보탑에 얽힌 불교적 전승입니다.

 

이제 다시 물음이 올라옵니다. 그럼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불국사 대웅전 앞뜰의 두 탑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석가탑에는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설화가 담겨 있습니다. 때는 신라 시대입니다. 아사달과 아사녀는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백제의 후손인 아사달은 당대 최고의 석공이었습니다. 아사녀는 남편 아사달이 석가탑을 완성하는 날만 기다립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갔습니다. 그래도 소식이 없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아사녀는 불국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탑이 완성되면 불국사 근처의 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아사녀는 못에 탑 그림자가 비치기만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남편의 탑 만드는 작업이 끝날 날을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못에는 탑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습니다. 지친 아사녀는 결국 못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탑을 완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석가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명 ‘무영탑(無影塔)’으로도 불립니다. ‘그림자가 없는 탑’이란 뜻입니다.

 

 

 

불국사 석탑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석가탑. 이 일화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석가탑에는 그림자가 없을까요. 그래서 무영탑으로 불리는 걸까요. 석가탑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석가탑은 다름 아닌 ‘공(空)’을 의미합니다. ‘공(空)’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림자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탑은 붓다의 자리, 진리의 자리, 깨달음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걸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거기서 세상 만물이 창조됩니다.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생기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생깁니다. 그처럼 공(空)의 자리에서 색(色)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공(空)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허무한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한창조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자리입니다. 세상 만물이 창조되는 바탕 없는 바탕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자 탑이 솟는 겁니다. 공의 자리에서 색이 ‘툭!’ 튀어나오는 겁니다.

찬찬히 살펴보세요. 비단 불국사에만 그런 탑이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에 그런 탑들이 있느냐고요? 다름 아닌 우리의 일상입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수시로 탑이 솟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바탕에서 생각이 툭 나올 때 탑이 솟는 겁니다. 내가 던지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창밖에 내리는 비, 나무를 흔드는 바람,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도 모두 솟아나는 탑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 이 우주에는 그런 탑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 탑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보물인가요. 그래서 ‘다보(多寶)’입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다보탑이고, 이 우주가 거대한 ‘탑림(塔林ㆍ탑의 숲)’입니다. 

 

불국사 대웅전의 붓다가 설합니다. “석가탑(空)과 다보탑(色), 둘을 동시에 보라. 거기에 불국토가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보탑만 천지입니다. 그런데 석가탑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둘을 동시에 볼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눈에는 다보탑만 보이는데 말입니다. 석가탑을 찾아야 불국토를 볼 텐데 말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궁리해 볼까요. 석가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다보탑 안에 석가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의 일상에서는 수시로 짜증이 올라옵니다. 그 짜증이 영원한가요? 아닙니다. 짜증은 잠시 작동했다가 사라집니다. 시간과 함께 사라지죠. 왜 그럴까요. 짜증의 속성이 공(空)하니까요. 바로 그 짜증(色)이 다보탑입니다. 공(空)함이 석가탑입니다. 둘을 동시에 보면 어떻게 될까요. 짜증이 녹고 불국토가 드러납니다. 그러니 다보탑 안에 석가탑이 있고, 석가탑 안에 다보탑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묘한 비밀이고, 어찌 보면 놀라운 과학입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에 담긴 이 이치를 꿰뚫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루,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부처님 나라를 살 수 있게 되지요. 해가 지는 서쪽 끝에만 있는 줄 알았던 서방정토가 바로 이 자리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좋은 날,
내일도 좋은 날,
날마다 좋은 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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