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백화점(미쓰코시 백화점)_근대 소비 문화의 정점

새로 지은 화신에는 승강기(엘리베이터)가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있었다. 사야 할 물건이 없어도, 승강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건물에는 옥상이 있었다. 6층 지붕 위인데, 여기서 내려다보면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신기했다. 옥상에는 정원을 꾸몄던 것 같다.
아동 문학가 어효선은 어릴 때 가본 화신 백화점을 이렇게 기억하였다. 개항과 함께 들어온 근대 문물은 도시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백 가지 물건을 판매한다는 뜻을 가진 백화점은 화려한 도시 문화의 정점이었다.
1906년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혼마치(오늘날 명동)에 국내 최초로 백화점이 들어섰다. 일본에 본점을 두고 있던 미쓰코시 백화점은 1930년 건물을 신축하면서 조선 최고의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여러 일본 백화점이 따라 들어섰다. 백화점에는 최신 설비가 갖춰져 있었고, 층마다 없는 게 없을 만큼 물건이 가득하였다. 미쓰코시 백화점의 옥상 카페는 명소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 백화점은 한국인에게는 부러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백화점들도 나타났다. 종이 사업으로 성공한 20대의 사업가 박흥식은 1931년 화신 상회를 인수하고 증축하여 화신 백화점을 열었다. 화신 백화점은 민족을 마케팅에 이용하였다. 화신 백화점 광고에는 조선 백화점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1935년 화재 이후 1937년 새로 완공된 건물은 민족의 자존심을 염두에 두고 크게 신축된 것이다.
화신 백화점은 지하 1층에서 옥상까지 다채롭게 매장을 구성하였다. 지하 1층에는 식료품부, 1층에는 양품부와 화장품부, 2층에는 신사양품부, 침구부, 귀금품부 등, 3층에는 완구부와 수공품부 등, 4층에는 서적부, 신사양복부 등, 5층에는 식당가, 6층에는 그랜드 홀, 스포츠랜드, 가구부 등, 옥상에는 화랑, 미용실, 옥상 정원 등이 자리하였다. 6층 스포츠랜드에서는 각종 운동 기구와 오락 기구를 체험할 수 있었고, 옥상 정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주변에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화신 백화점을 민족 백화점이라고 강조했던 박흥식은 비행기를 만들어 일제에 헌납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민 특위 1호로 체포되는 불명예도 안았다. 1970년대 이후 화신 백화점의 모기업 화신 그룹의 경영이 악화되자 1987년 화신 백화점도 문을 닫았다. 현재 그 자리에 삼성이 세운 종로타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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