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마쿠우치 히데오(幕內秀夫)가 지은 <粗食の 勸誘>를 김욱송 씨가 2003년 번역하여 출판한 『초라한 밥상』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서구의 영양학에 근거를 둔 식단에 경종을 울리며, 쌀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소박한 식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 번역서의 제목에 들어 있는 ‘초라한’이란 말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잘못된 번역인 것 같다. 우리말의 ‘초라하다’는 ‘호졸근하고 궁상스럽다’거나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몰골이 초라하다. 초라한 옷차림. 효진은 문득 자기 존재가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홍성원 지음, 『육이오』)
자신은 사흘 동안 낯도 한 번 씻지 못한 형편이었다. 그런 자신의 몰골이 점례의 눈에 얼마나 가난하고 초라하게 보일 것인가.(조정래 지음, 『태백산맥』).
저자 마쿠우치 히데오(幕內秀夫)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부정적은 뜻은 아닐 것이다. 번역서 15쪽에는 ‘초라한 밥상’에 대립되는 말로 ‘풍부한 식생활’이 쓰여 있고, 128쪽과 129쪽에는 ‘초라한 식사’와 같은 뜻으로 ‘소박한 식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거창하고, 풍성한’ 밥상에 대립되는, ‘소박하고, 단촐한’ 그런 밥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뜻을 나타내는 우리말로는 ‘조촐하다’는 낱말이 있다. ‘조촐하다’는 ‘초라하다’와 뜻이 비슷하지만,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이 말은 ‘아담하다, 깔끔하다, 말쑥하다’는 뜻과 함께 ‘단촐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말이 산막이지 구석구석 손질이 잘 되어 조촐했고, …(박경리 지음, 『토지』),
김시민도 논개의 조촐하고 똑똑하고, 깨끗한 것을 알게 되었다.(박종화 지음,『임진왜란』)
그녀의 조촐하고 침착한 표정에 휩싸여 차라리 웬 신비스러움으로 느껴졌다.(이호철 지음, 『소시민』)
앞의 ‘초라하다’보다 더 부정적인 뜻은 지닌 말로는 ‘누추하다’가 있다. 이 말은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 차림은 누추하고 몰골은 온갖 풍상에 찌들어 있었다.(윤흥길 지음, 『완장』).
위 세 낱말은 동일한 문맥에서도 사용되기도 하는데, 동일한 문맥에서 사용된 이들을 대조해 보면 이들 낱말들의 의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촐한, 초라한, 누추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조촐한(작지만 아담한), 초라한(보잘것없고 변변찮은),누추한(더럽고 지저분한) 집에 살고 있다.
1. 연말은 조촐하게
나이가 지천명을 지나가자 연말[세밑]을 차분하다 못해 착잡하게 지낸다. 거기에 돌림병 코로나19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연말 기분이 나질 않는다. 최근 몇 년 간은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조용히 보내거나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보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연말을 이렇게 조촐하고 차분하게 보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2. 조촐하다의 의미
여기서 조촐하다는 '호젓하고 단출하다'의 의미이다. '조촐한 모임, 조촐한 자리' 등에 쓰인 '조촐하다'가 그러한 의미로 쓰인 것이다. 소박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런데 '조촐하다'가 본래부터 이러한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며, 또한 현재 이와 같은 의미로만 쓰이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조금 깊게 화두를 던져 보고자 한다.
3. 조촐하다의 어원
조촐하다는 15세기 문헌에 '조찰하다'로 보인다. 15세기의 조찰하다는 깨끗하다의 뜻이다. 이 시기에 깨끗하다의 뜻으로는 '좋다'가 있다. 물론 오늘날 좋다는 '둏다'가 담당하고 있었다. 현대국어 '좋다(호(好))는 중세국어에서 둏다였기에 중세국어 좋다와 현대국어 좋다를 같은 단어로 보면 안 된다.
조찰하다는 그 동의어인 '좋다'와 형태상 아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조찰하다를 좋다를 통해 만들어진 단어로 보기도 한다. 좋다의 어간 '좋-'에 접미사 '-잘'이 붙어 '조찰'이라는 어근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이것에 접미사 '-하다'가 결합해 '조찰하다'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찰하다가 좋다를 포함하는 단어이기에 좋다와 같이 깨끗하다는 의미를 띠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15세기의 조찰하다는 조촐하다로 이어졌다. 그 사이에 의미도 상당부분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깨끗하다에서 외모나 모습이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로, 이어서 행동이나 행실이 깔끔하고 얌전하다로 변했다. 이들 의미는 물리적인 깨끗함이 외모와 행동에 적용되어 생성된 것이다. 이어서 호젓하고 단출하다는 비유적 의미로까지 발전했는데, 이는 말끔하고, 깔끔한 결과로서 파생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4. 현대국어에서의 조촐하다의 의미변화
현대국어 조촐하다는 깨끗하다를 비롯하여 이들 여러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는 호젓하고 단출하다는 의미이다. 현대사전에 조촐하다의 동의어로 조하다를 연결해 놓고 있는 점이 다소 특이하다. 조하다는 당시의 좋다와 같은 의미로 현재 조하다는 조촐하다에 밀려나 거의 쓰이지 않는다. 조촐하다는 작아서 양에 차지 않은 상태인 듯하나, 실제로는 소박하여 도리어 만족스럽다.
5. 조촐하다의 바른 쓰임
요즘 사람들 가운데 낱말을 아무렇게 쓰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특히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에게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기에 내심 조심스럽다. 비근한 예로, 회갑연(回甲宴)이나 축하연(祝賀宴) 같은 행사에 초대를 하면서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부디 오셔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인사말을 주고 받는다. 여기서 ‘조촐하다’는 표현은 칭찬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축의 자리를 마련하는 당사자가 쓸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조촐하다’는 단어는 본래 ‘아담하고 깨끗하다.’, ‘행실이나 행동이 깔끔하고 얌전하다.’, ‘외모가 맑고 맵시가 있다’ 등의 뜻이었습니다. 이 말이 오늘날에는 ‘변변치 못하다’는 겸양의 의미로 잘못 쓰이고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낮추려고 의도한 표현이 오히려 자신을 높여버리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조촐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예문을 들자면,
“영희네 집에서 차린 음식은 깔끔하고 조촐했으며 집안의 사는 풍모를 엿보게 했다.”
“삼수는 비록 하인의 신분이지만 조촐한 용모에 말씨 또한 예의를 갖추었다.”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손님이 主人 칭찬할 때 사용 「아주 아담하고 깨끗하다」 뜻
우리는 초대하는 사람 스스로가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사오니···」들로 쓴 초대장을 보기도 하고 손님이 주인에게 초대연의 훌륭함을 칭찬하면서 「조촐하게 차렸습니다」로 답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조촐하다」란 말은 초대자 스스로는 쓸 수가 없는 말이다. 이 말은 국어사전의 풀이로 보면 「아주 아담하고 깨끗하다/(행실이나 행동이)깔끔하고 얌전하다/ (외모가)맑고 맵시있다」로 되어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 말을 겸양의 표현 쯤으로 더러 잘못 알고 쓰고 있다.
북향의 국어사전을 보아도 이 말이 「(행동이나 성품이)깔끔하고 얌전하다/ 말쑥하고 맵시있거나 아담하다/아담하고 깨끗하다」로 되어있음을 볼 때 「조촐한 자리」의 「조촐한」은 「아주 아담하고 깨끗한」의 뜻이니 결코 스스로가 손님에게 쓸 수가 없는 말이다.
말의 의미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 「조촐하다」는 남북한 표준어에서 모두 본래의 의미대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일반 언중들 가운데 상당수가 겸양의 뜻으로 쓰고 있다 하여도 이는 올바른 말이라 할 수가 없다. 손님이 주인에게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로 칭찬할 때. 「과찬의 말씀입니다/변변찮은 자리입니다」로 함이 올바른 겸양의 표현이라 하겠다.
‘조촐하다’는 본래 뜻이 아담하고 깨끗하다. 행실이나 행동이 깔끔하고 얌전하다. 외모가 맑고 맵시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말이 ‘변변치 못하다’는 겸양의 뜻으로 쓰이고 있어 그 의미가 걸맞는 말은 아니다. 흔히 회갑연(回甲宴)이나 축하연(祝賀宴) 같은 자리를 마련하면서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부디 오셔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인사말을 하는데 자리를 마련하는 당사자가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예시문 : 조촐하게 차려 입고 나온 그녀의 모습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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