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일 것이다. '사흘'이라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어휘가 네이버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 아마도 2020년 7월 23일쯤으로 기억된다. 8월 17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어 결국 사흘 동안을 공휴일로 정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은 후 바로였다. 마치 2023년 5월 27일이 석가탄신일이라 29일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처럼 하루를 공휴일로 얻게 된 기쁨에서였던 것 같다. 주된 내용은 '사흘'을 '4일'로 오해한 일부 네티즌이 왜 '3일을 쉬는데 4일 쉰다고 하느냐'며 따져 묻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쯤으로 보인다.
'사흘'을 '세 날'이 아니라 '네 날'로 여긴 것이니 웃고만 있을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사흘'의 '사'를 한자 사(四)로 착각하고 그렇게 의심할 수는 있다고 백번 양보할 수는 있으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과 같은 日數(일수) 계열어를 알고만 있다면 이러한 어이없는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다.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어휘교육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국어학자로서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다.
'사흘'은 15세기 문헌에 사할'로 나온다. 같은 시기의 문헌에 '사할'과 제2음절의 어두음 또는 모음에서 차이가 나는 사알과 사을도 간혹 보인다. 15세기에는 이들 가운데 '사알'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사알'의 사는 '서(三)'와 모음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서 말, 서 되'의 '서'가 바로 그것인데, '사'와 '서(三)'의 관계는 '나'와 '너(四)'의 관계로 유추된다. '알'은 중세국어 이틀(잍+을), 나알, 열흘(열ㅎ+을) 등에서 확인되는 '알/을'과 같이 일수를 나타내는 단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어휘요소이다. 사할의 할은 알과 형태적으로 차이를 보이지만 그것과 거의 같은 성격이다.
사흘과 나흘에 대해서는 일수를 나타내는 명사 중 애초부터 'ㅎ'을 갖고 있던 열흘(열ㅎ+을)에서 유추되어 형성된 어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열흘'은 '열ㅎ'과 '을'이 결합된 형태로 모음조화를 고려하여 양성모음을 갖는 알이 아니라 을이 선택된 것이다. 물론 사흘과 나흘을 사알과 나알에 'ㅎ'이 첨가된 어형으로 볼 수도 있기는 하다.ㅏ 15세기의 사흘과 사을은 16세기 이후 '아래아 > 으'로 변함에 따라 사알이 사을로 사할이 사흘로 변한 것이다. 이중 사을은 17세기 문헌을 끝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데 18세기 이후 문헌에는 사할과 사흘이 대부분이다. 이 시기에 보이는 사할은 음성적으로 [사흘]이었을 것이다.
중세국어 '사알'은 '사(三)와 알'의 결합으로 보고, 이것이 열흘에 유추되어 사할로 변한 뒤에 사흘이 된 것이다. 사알>사할>사흘로 말이다. 이쯤되면 더 이상 '사흘'을 '4일'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왕 일수 계열어를 살폈으니 조금 더 나아가면 10일을 가리키는 말이 열흘이다. 그리고 '순'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순'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설레발을 하는데 차분히 들어보면 아차 싶다. 5월 초순, 중순, 하순 할 때의 순이다. 초순은 1일부터 10일, 중순은 11일부터 20일, 하순은 21일부터 30일까지를 가리키는 10일 단위의 어휘이다. 참고로 20일을 가리키는 어휘에는 '염간'이란 어휘가 있다. '8월 염간은 승상의 생일이라 10일을 연하여(김만중의 구운몽)'이란 구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30일은 삭, 망, 그믐이라고 한다. 11월은 동짓달, 12월은 섣달, 그러니까 한 해의 마지막날은 섣달(12월) 그믐(30일)인 것이다. 세밑이라고 하고 이 섣달 그믐에는 일찍 자면 눈썹이 새하얗게 변한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한 해의 마지막날은 일찍 자지 말고 밤늦게까지 살아온 한 해를 반성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계획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현대 국어 ‘사흘’의 옛말인 ‘사할’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이 단어는 16세기부터 현재의 어형인 ‘사흘’로 나타나는데 원래 ‘ㅎ’이 없던 ‘사알’에서 ‘사흘’로 ‘ㅎ’이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 국어 시기 ‘ㆍ’의 음가 변동으로 ‘ㆍ’는 둘째음절 이하에서는 ‘으’로 바뀌었다.
15세기 : (사알)
그 後에 家內예 婢 한 아다랄 나하니 사알 몯차셔 말하며 머리 조사 슬피 우러 ≪1459 월석 21:55ㄱ≫
16세기 : (사흘)
김시 졔 남진의 분묘애 달아가 골을 헤여고 사흘밤을 자니라 ≪1581 속삼-중 열:15ㄱ≫
17세기 : (사흘)
쳥냥미 한 말을 쓴 술 한 말의 담가 사흘만의 내여 일백 번 뗘 일백 번 말뢰여 ≪1660 신구 보유:7ㄱ≫
18세기 : (사흘)
古者에 女ㅣ 난디 사흘만애 床下의 뉘여 瓦塼으로 희롱하고 ≪1737 여사 1:2ㄴ≫
19세기 : (사흘)
예수ㅣ 죽으신 지 사흘만에 령혼이 그 육신 잇난 무덤 속으로 들어가샤 ≪1897 주교 상:53ㄴ≫
한동안 사흘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사흘을 ‘4일’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사흘을 4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는데,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좀 놀랐습니다. 사흘의 ‘사’와 4의 혼동이겠네요. 왜 혼동되게 만들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것도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일입니다. 갑자기 병사의 계급 순서를 ‘일병, 이병, 삼병’이라고 했다는 사람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것도 농담이었겠지요.
순우리말 수사와 한자어 수사가 비슷해 보이는 것에는 ‘이틀’도 있습니다. 이틀과 2가 닮아있습니다. 요즘에는 2틀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흘과 4를 더 혼동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흘을 잘못 들어서 4일로 들었다면 이해가 가지만 사흘의 뜻을 ‘4일’로 알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이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국어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한자어 수사는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이십, 삼십, 사십’ 등이지만 순우리말 수사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등으로 전혀 다릅니다. 한국어의 계통을 말할 때 다른 언어와 우리말 수사의 일치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일본어도 수사는 한국어와 전혀 다릅니다. 또한 한국어의 수사는 뒤의 명사를 꾸며줄 때는 모양이 약간씩 바뀌기도 합니다. ‘한, 두, 세, 네, 스무’ 등이 그렇습니다. ‘석, 넉, 닷’ 등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순우리말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은 날짜를 셀 때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등입니다. 하루를 제외하고는 뒤에 ‘흘’이나 ‘새, 에’가 붙어있습니다. 새와 에는 서로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닷’이나 ‘엿’에 ‘애’가 붙은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수를 나타내는 ‘읻, 사, 나, 닷, 엿, 일, 여들, 아흘, 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며칠이라는 말의 어원도 ‘몇 일’이 아니라 ‘몃흘’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일’이라고 쓰지 않고, ‘며칠’이라고 쓰는 겁니다.
순 우리말 수사를 정리해 보면 ‘하루와 하나’ ‘둘과 읻’ ‘셋과 사’ ‘넷과 나’ ‘다섯과 닷’ ‘여섯과 엿’ ‘일곱과 일’ ‘여덟과 여들’ ‘아홉과 아흘’ ‘열과 열’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봐도 대부분 쉽게 연결이 가능합니다. 모습으로는 ‘둘과 읻’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읻’의 경우는 ‘이듬해’와 관련성이 보입니다. 다음, 두 번째 정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셋과 사’, ‘넷과 나’는 달라 보이지만 ‘사나흘’과 ‘서너 개’를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와 서, 나와 너가 모음이 교체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음이 교체되어 새로운 어휘를 만드는 예는 우리말에 아주 많습니다.
‘사’가 3의 의미로 쓰이는 재미있는 예는 동물의 나이를 셀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동물의 세 살을 의미하는 말이 사릅입니다. 한 살은 하릅, 두 살은 두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의 ‘하룻’이 사실은 하루가 아니라, 하릅이라는 연구도 재미있습니다. 즉, 한 살 먹은 강아지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젊으면 용감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사흘에서 시작한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우리말 수사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일본어의 수사는 지금의 우리말과는 닮지 않았지만, 고구려의 수사와는 매우 닮아있다는 점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신기하게 생각하는 수사는 바로 ‘마흔과 쉰’입니다. 다른 단어와 연관성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수사에도 수수께끼가 한 가득입니다.
1)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기다려도 소식이 없구나”
2) “작업을 마치는데 꼬박 사흘이 걸렸어요”
3) “사흘 만에 책 한권을 겨우 다 읽었지요 ”
4) “집 떠난지 사흗날에 전화가 왔다”
5) “이달 초사흗날 김장을 했지요”
6) “매달 초사흘날 우리 만나기로 합시다”
7) “섣달 초사흣날은 내 생일인데”
위에 여섯가지의 예문을 들었는데 모두 큰 오류는 없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사흘] 과 [사흗날]의 뜻을 좀더 명확히 구분하여 알고 써야 하겠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위 6)번과 7)번 처럼 적고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흘]은 ‘그달의 셋째 날’ 을 뜻하여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처럼 날짜의 순서를 나타내는 명사이기도 하며 또한 ‘세날’ 처럼 날의 수를 나타내기도 함으로서 ‘사흘 동안’ 을 의미하기도한다.
[사흗날]은 역시 ‘그달의 셋째 날’ 을 말하며 초하룻날. 초이튿날. 초사흗날. 초나흗날...
처럼 날짜의 순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사흘]과 다름이 없지만, 이때 [사흘날] 혹은 [초사흣날] 하지 않고 [사흗날]이라고 해야 맞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글 맞춤법 제3절 ‘끝소리’ 제6항 ‘이름씨나 풀이씨 줄기의 받침이 ㄹ인 것이 ㄷ으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 라고 하는 규정이 있다. 예로서 이튿날. 반짇고리. 삼짇날. 섣달. 숟가락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위 6) 7)번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6) “매달 초사흗날 우리 만나기로 합시다”
7) “섣달 초사흗날은 내 생일인데”
다만 [사흗날] 을 [사흘날] 로 말하는 것은 강원도와 충청도 일부의 사투리인 것으로 <우리말 큰사전>이 밝히고 있음을 참고로 한다.
우리말에 사흘이나 나흘을 뜻하는 낱말이 '사날'입니다. 사흘+나흘에서 겹치는 흘자를 한 번만 써서 '사나흘'이고 이를 줄여 '사날'이라고 합니다. 나흘이나 닷새는 '나달'이라고 합니다. '나닷'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소리내기 쉽게 '나달'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애들을 본 게 3~4일 전이다'
'애들을 본 게 사날 전이다.'
라고 써도 됩니다.
우리는 평소 ‘셋째 날’을 이르는 명사로 ‘사흗날’을 자주 사용하는데 ‘사흗날’을 ‘사흘날’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한글 맞춤법 제29항은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ㄹ’ 받침을 가진 단어나 접미사와 결합할 때 ‘ㄹ’이 [ㄷ]으로 바뀌어 발음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합성어나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결합하여 된 파생어는 실질 형태소의 본 모양을 밝히어 적는다는 원칙에 벗어나는 규정이지만, 역사적 현상으로서 ‘ㄹ’이 ‘ㄷ’으로 바뀌어 굳어져 있는 단어는 어원적인 형태를 밝히어 적지 않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버지는 사흗날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뒤로 하고 떠났다.’와 같이 표기해야 한다. 이와 같은 예로 ‘설부르다’는 ‘섣부르다’로, ‘삼질날’은 ‘삼짇날’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찌든(O)
찌들은(X)
많은 사람들이 ‘물건이나 공기 따위에 때나 기름이 들러붙어 몹시 더러워지다.’의 의미로 흔히 ‘작업복이 기름에 찌들다.’와 같이 표현한다.
이러한 ‘찌들다’를 활용하여 사용할 때 ‘찌들은 옷’과 같이 표현하는 데, 이때 ‘찌들은 옷’은 ‘찌든 옷’으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한글맞춤법 제18항에서 ‘ㄹ’ 변칙 용언이란 ‘ㄹ’ 받침으로 끝나는 어간에 어미가 연결될 때 ‘ㄹ’받침이 줄어져 발음되지 않는 경우로 ‘ㄹ’ 받침이 줄어지는 어미는 ‘-ㄴ, -ㄹ, -ㅂ, -시, -오’ 등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찌들다’는 ‘ㄹ’ 받침으로 끝나는 어간을 활용하므로 다른 어미가 연결될 때에는 ‘ㄹ’ 받침이 줄어져 표기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예로 ‘시들은’, ‘거칠은’ 등은 ‘시든’, ‘거친’ 등으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사흘’이라는 말이 낯설기 때문이었겠지만, 표현의 수위는 걱정스런 정도였다. ‘15일부터 17일이면 3일인데, 왜 기사가 죄다 4일이래’ ‘15일부터 17일이 사흘이냐? 나라 잘 돌아간다~’ ‘3일간의 연휴를 4일간의 연휴처럼 들리게 하느라 쓰레기 같은 기자들이 ‘사흘간의 연휴’라고 표현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댓글들에는 비난과 조롱이 양념처럼 섞여 있다. 급기야 일부 언론사는 사흘은 4일이 아닌 3일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라고 안내하는 후속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도 원인(遠因)의 하나를 제공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 ‘1도’(하나도)가 어느덧 방송자막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이는 공용어가 됐고(‘하루’ 대신에 ‘1루’가 조만간 방송 자막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일부 언론에서는 ‘개봉 4흘만에 누적 관객수~’ ‘국내 이용자는 4흘만에 무려~’ ‘4흘만에 해임’ 등 사흘을 4흘로 잘못 써온 이력이 적지 않다. ‘사흘이 아니라 3흘’이라는 어느 댓글러의 주장은 오히려 애교스럽기조차 하다.
‘사흘’의 뜻을 모르는 자체가 크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언론은 제외하고) 자신의 잘못 가능성에 대해 아예 문을 닫아걸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손쉬운 검색조차 끝내 외면하고, 자신의 목소리만 당당하게 내세우는 youniverse(you+universe)들. 이들의 태도에는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이고, 자신이 대세라고 믿는 과도한 자신감이 폭넓게 깔려 있다. 그러다보니 검색을 통해 ‘사흘’의 뜻을 알고 난 뒤에도 ‘사흘이 3일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헷갈려 죽겠다. 사흘(을) 4일로 바꾸거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영어 one과 first는 똑 부러지게 구분하면서 일, 이, 삼, 사와 하나, 둘, 셋, 넷의 차이는 몰라도 되고, 사흘=3일이라는 것은 굳이 알 필요 없다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 민낯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와 책임을 생각하기 보다는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들, 뻔뻔하게 악다구니 쓰고 헐뜯고 공격해야만 박수 받는 사회, 이런 세상에서 사실(fact)과 객관은 뒷전으로 밀린 채 주장과 외침만이 넘친다. 가짜 뉴스일수록 인기가 높고 힘이 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을 유인해서 자신의 침대에 눕혀놓고 침대 길이에 맞춰 큰 사람은 사지를 잘라내고 작은 사람은 늘여서 죽인 노상강도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횡포나 독단을 뜻한다. 그러나 프로크루스테스 자신도 결국은 테세우스에 의해 그 침대에 묶인 채 머리와 다리가 잘려 죽었다.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는 타인은 물론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시장에 간 사이, 할아버지가 와서 "에미는 어디 갔니?" 하고 묻는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① 어머니께서는 시장에 가셨습니다.
② 어머니는 시장에 가셨습니다.
③ 어머니는 시장에 갔습니다.
④ 에미는 시장에 갔습니다.
정답은 ④번이다. 우리말 높임법에는 '압존법'이 있어서 말 속 주인공보다 듣는 상대가 더 높으면 높임말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를 '에미'라고 하는 것도 현실과 잘 맞지 않으니 이 법을 느슨하게 해 ②번이나 ③번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야기책 '옛이야기 보따리' 등을 써온 아동문학가 서정오(65)씨가 새 책 '누구나 쉽게 쓰는 우리말'(보리)을 펴냈다. 복잡하고 까다로워 보이지만, 배워서 제대로 쓰면 상대를 배려하고 말하는 이의 진심도 담을 수 있는 우리말 표현법을 소복하게 담았다.
그가 보기에 '미망인'은 여자를 차별하는 고약한 말이다. 남의 아내를 점잖게 이른다는 '부인'도 풀어 보면 '지아비의 사람', 다시 말해 남편한테 매인 사람이란 뜻이다. '부인'이란 말 자체가 '정경부인, 정부인, 숙부인'처럼 벼슬하는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백성과 차별화하려고 만든 데에서 나왔다.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영부인'도 '합부인'과 함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떤 사람한테든 쓸 수 있다. 다만 '어부인'은 일본말이니 안 쓰는 것이 좋겠다.
아내나 남편이 서로를 '여보'라 부르는 건 점잖다. '여기 보오'를 줄인 말이니 상대를 어지간히 높여 준다. 부부가 서로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내 자리가 아니라 상대 자리에서 봐 준다는 점에서 꽤나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기'는 본디 말하는 이가 스스로 부르고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날을 세는 우리말 '하루, 이틀, 사흘…'은 '일일, 이일, 삼일…'보다 예쁘고 감칠맛이 난다. "어제 그 사람을 우연찮게 만났지 뭐니"에서 '우연찮게'는 엄격히 따지면 '우연하지 않다'는 뜻이니, "우연히 만났지 뭐니"라고 해야 한다. "우리 할아버진 참 주책이셔"는 어떨까? '주책(주인 된 이로서 자리 잡음)없다'가 맞는 말이니, "참 주책없으셔"로 쓰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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