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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철들다_사리를 분별해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by noksan2023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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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다

 

 

"빛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필요하고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럼 시간을 느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그건 마음이야. 마음이란 것이 없어 시간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 시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이것은 미카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단 한마디로 줄여놓은 것이 우리말의 '철'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많은 외국 말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서이겠지만 아직 나는 이 세상에 '철'이란 말처럼 아름답고 철학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철'을 굳이 영어로 번역하면 계절(season)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말의 '철'은 단순히 봄철, 여름철의 그 계절만 뜻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칭찬이나 꾸중을 듣게 되면 '철'이라는 말을 들었을 법하다. "이제 철이 들었구나" 착한 일을 하면 어른들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리고 말썽을 피우거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는 "이 녀석,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라고 말하면서 머리에 꿀밤을 하나 먹이신다. 

 

철은 어디에 있을까? 철은 꽃피는 동산이나 흐르는 냇물 그리고 눈 내리는 골짜기 안에도 있다. 얼음이 풀리면 한 철이 지나가고 꽃이 피면 서서히 한 철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철이 가고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머릿속에 모세혈관과도 같은 핏줄 속으로 철이 가고 철이 들어오곤 한다. 

 

속에서 과일들이 익듯이 사람의 마음도 생각도 무르익는다. 말하자면 철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철이 와도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일 줄 모르면 철이 들 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영원히 철이 들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것 같다. 시간은 우리 밖으로 흐르다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강물이 아닌 것이다. 마치 향기로운 과일을 먹듯이 우리는 시간을, 나이를 먹는 것 같다. 그러면 시간은 나의 살과 피 속으로 들어가 마음이 되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이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없으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 나이 헛먹었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두 개의 몸무게를 갖고 살아간다고 하겠다. 저울로 달 수 있는 무게 마음으로 다는 시간의 무게가 바로 그 두 개다. 그래서 마음이 풍부하고 인격이 있는 사람을 보고 무게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한국말 가운데도 '철'이란 말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寤寐不忘(오매불망), 선진 대열에 끼기 위해 뛰어온 우리도 이제는 이른바 No 3S(no style, no sex, no season)의 현대 문명의 양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정한 틀(style)도 없고 남녀의 성차(sex)도 없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철(season)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현대 문명인의 생활, 더 정확히 하자면 미국식 생활이라는 것이다. 특히 'no season'의 그 철없는 생활이 바로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환경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부아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것은 시간과 공간의 차별을 없애고 그것을 모두 균일화한 데 있다. 말하자면 이곳과 저곳을, 현재와 과거의 차이를 없애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의 독자성은 바로 독자성을 없애버리는 그 능력이 되어버렸다. 다른 나라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개인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환경의 민주주의라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평등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국을 통해서 시간과 장소의 평등화라는 지금 보지 못한 세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 때는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 그리고 계절에 따라서 음식의 독특한 맛이나 색채가 생활의 맛을 돋우어 주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의 차이를 없애버린 미국적 민주주의는 장소나 물건을 인간 밑에 예속시킴으로써 그것들을 모두 엇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역사의 시간 차와 지역 차라는 두 개의 차이성마저도 하나의 제도로 흡수해 버렸다. 그런 힘이 바로 미국 문명의 본질이다"

 

아주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말로 고치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믹구의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그 문명의 본질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철없는 문명'이고 시도 때도 없이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과실들은 '철이 안 든 과실'이고,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철 모르는 사람들'이다. 미국식 환경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철이 못 들거나 안 다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미국식 생활방식이 전 세계로 번져가면서 전 인류가 철없이 살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보고 느끼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귀머거리처럼 계절이 가고 새 계절이 와도 우리는 그 빛의 변화도 보지 못하고 그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눈이 멀듯이 마음이 멀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철'이라는 우리 토박이말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철들다라는 말은 '사리를 분별해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라는 뜻이다. '그 녀석 군대 갔다 오더니만 철들었네', '아직 철이 없어 그러하니 어떠하겠나' 원래 '철'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현상에 따라서 일 년을 구분하는 계절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봄철, 가을철 등등 말이다.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를 일컫기도 한다. '씨앗 파종의 제 철은 봄이다'. '철들다'는 '제 철에 들어섰거나 농사지을 계절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것이 원래 의미다. 그러니까 '철들다'는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최적의 때가 됐음을 말한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서 혹은 삶의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성숙해짐을 비유한다.

철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을 '철부지'라 한다. 씨앗을 뿌리는 등 농사를 지을 제 때를 모르니까(不知) 어리석다는 의미다.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는 것을 '철없다'고 한다. '철딱서니, 철따구니'는 '철'의 속어다. '철나자 망령난다'란 속담이 있다. 어리석게 굴던 사람이 사리분별 있게 일을 잘 할만하니까 늙음에 따른 망령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에 대한 비난조다. 제 철(때)을 놓치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다.

 

이처럼 '철'은 순수 우리말이지만 한자어 '哲(철)'로 써보자. '哲學(철학)'할 때 '哲' 말이다. '哲'은 '밝다, 슬기롭다, 알다, 결단하다' 등의 뜻이다. '哲들다' 억지춘향식이지만 '슬기와 결단성이 있다'로 해석해보자. '슬기와 결단성이 있음'은 사리 분별에 따른 판단이 올바르다. 그러니까 '哲들다'라고 써도 되지 않을까? 우리글의 70% 정도가 한자어이니 이런 생각도 해볼 만한 하지 않겠는가.

요즘 우리나라가 한 마디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태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말자. 우리 모두가 철이 없기 때문이다. 사리분별의 기준이 무너지고 그 기준을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배철수

 

 

 

어느 모임에 갔더니 사회자가 회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넌센스 퀴즈를 냈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가 언제냐는 물음. 이런저런 답들이 모두 ‘땡’ 처리가 되고 정답이 ‘철이 들었을 때’라고 했다. ‘철이 들다’의 철을 무쇠를 말하는 철(鐵)자와 연결시킨 퀴즈였다. 그럴듯한 퀴즈라고 생각했다.

‘철이 나다’, ‘철들다’의 ‘철’은 순우리말로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힘, 판단력, 분별력, 자각(知覺)을 의미하며 ‘철들다’함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지각들다, 철에 알맞다, 계절(때)에 맞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철의 원래 어원은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겨울철, 봄철, 등)이었다. 이것이 주역의 영향을 입어 지혜를 나타내는 말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철들었다 하면 지혜와 사리 분별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말이 되며, 흔히 어른스럽지 못하던 사람의 행동거지가 의젓해지면 철들었다고 말들을 한다.

나는 철이 너무 늦게 들었던 것 같다. 일곱 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름철엔 날마다 마당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라 하지만 양식을 늘려서 먹기 위해 호박이나 부추를 많이 넣고 국수는 별로 없는 멀건 국이다. 당시 쓰던 말로는 ‘늘엉국’이었다. 아마 양식을 늘려서 먹기 위한 음식에서 나온 명칭인 것 같다.

뜻밖의 손님이 오면 물 한 바가지 더 부으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어머니께서는 열세 식구의 그릇에 칼국수를 다 담아주시고 당신의 것을 긁어모아 담으려 할 때 “좀 더 주세요” 내가 그릇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당신의 몫을 한 국자 덜어 주셨다. 얼마나 철이 없었던가?

그 후로 자주 그때의 일이 부끄러움으로 떠오른다. 나이를 제법 먹은 지금도 얼굴이 후끈거린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흉년에 어른은 굶어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는 말도 나같이 철없는 아이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어머니 배고플 것은 생각지 않고 제 생각만 한 철부지.

철이 남보다 일찍 든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 중에 조선조에 정순왕후가 있다. 영조의 나이 66세에 왕비가 죽고 새 왕비를 간택하는 자리. 오색이 찬란한 비단옷으로 몸을 감은 여러 재상가의 따님들이 황홀하게 치장을 하고 즐비하게 수놓은 방석 위에 앉아서 영조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김한구의 딸만 서 있었다. 왕이 까닭을 물으니 아비의 함자가 적힌 방석에 감히 앉을 수 없어서 서 있다고 답했다 한다. 그 외에도 세상에 가장 깊은 것은 사람의 마음,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백성들의 의복을 만드는 면화(목화)라고 사려 깊은, 철이 든 대답을 하여 왕비에 간택되었다고 한다.

일찍 철이 들어 왕비가 되었지만 행복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66세의 왕과 결혼한 15세 왕비의 일찍 든 철이 오히려 노론과 소론의 당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인성교육이라 함은, 나이에 맞게, 상황에 맞게 철이 들어가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철이 너무 없어도 모자라는 사람, 망나니 같은 사람이지만 너무 일찍 들어도 애 늙은이가 된다. 철들자 죽는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죽을 때까지 수양하고 지혜를 받아들여 자기완성을 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철든 죽음이 한 인생의 완성이기에 평생교육이 갈수록 강조되는 것이리라.

우리는 흔히 '철들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철 들었다'라거나 '철 좀 들어라' 같은 말들입니다. '철들다'라는 말은 "사리를 분별해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라는 의미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철'은 제 계절을 말하고, 철드는 행동은 제철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에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 여름에는 꽃이 피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이, 겨울에는 다음 해 봄을 준비하는 것이 제철에 맞는 행동, 즉 철드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 추수를 하면 조숙한 것이고, 가을에 꽃이 피는 것은 미숙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농경사회에서 조숙하거나 미숙한 것, 즉 철들지 못하는 것은 최고의 소출을 내지 못하는 것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철든다는 것은 '지혜로워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철든다'는 말은 철학적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그런데 '철든다'는 말이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될까요? 사람이 철드는 것은 뇌의 '전전두엽(前前頭葉, Prefrontal cortex)'의 성장과 연결됩니다. 전전두엽은 전두엽의 앞부분으로 이마 앞부분에 위치합니다. 추론하고 계획하며 감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판단과 대인관계 능력, 실행 능력을 담당합니다. 뇌과학자들은 흔히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며, 바로 인간의 '자아' 형성에 가장 기초가 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전두엽 피질 뉴런의 연결망은 보통 20대 중반은 돼야 완성된다고 합니다. 신체의 성장이 완성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전두엽의 피질 뉴런의 연결망의 완성이 곧, 철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철들지 않은 시기를 흔히 '사춘기'라고 합니다. 대부분 10대 전후반에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감정과 본능에 민감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는데 그 이유가 전전두엽 피질 뉴런이 충분히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콧 휴텔 미국 듀크대 박사의 '부자와 범죄자의 전전두엽 MRI 비교' 실험에 따르면, 부자들은 사건이나 사물에 규칙을 부여하거나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똑같은 문제를 풀 때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두뇌 사용 습관이 전전두엽의 피질을 더 많이 활용해 효율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도둑이나 범죄자의 경우 전전두엽의 활동이 상당히 약했습니다. 이는 도덕성과 판단력에 문제가 되는 원인임이 확인된 것입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로 전전두엽 피질이 손상되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철없는 어른'이 많습니다. 이들은 전전두엽의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철이 없는 것일까요? 영어로 '철들다'를 'Adulting'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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