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연리지(連理枝)'의 뜻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스무 명 되는 학생 모두 꿀 먹은 벙어리 모양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조금은 장난스럽게
"저기요, 예식장 이름이던데요?"
하는 것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은 잘 알지만 당(唐)나라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를 알 리 없는 요즘 학생들이 '연리지'를 예식장 이름이나 어느 호텔의 고급 음식점에서 선보이는 궁중 요리의 코스 이름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연리지'는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거나 남녀 사이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백거이(白居易)가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悲戀)을 애절하게 읊은 것으로 유명한 '장한가(長恨歌)'에서 유래한 말이다. 두 사람의 언약 부분인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에서 유명해진 말이다. 그런데 본래 '연리지'는 하늘에 사무치는 효성이 나무로 화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후한서(後漢書)"의 '채옹전(蔡邕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효성이 지극한 채옹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운 모친을 삼 년 동안 온갖 정성으로 간호하였고 돌아가신 후에도 시묘(侍墓)하는 것을 예(禮)에 맞게 하였다. 그 후 채옹의 집 앞에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를 맞대었고,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많이들 와서 구경하였다.(其室傍又木生連理, 遠近奇之多往觀焉)
'연리지'와 같은 남녀 사이의 지극한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여 병이 되는 것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한다. '상사병' 역시 유래가 잊힌 채 사용되는 고사 성어인데, '상사(相思)'라는 어근에 '병(病)'이 결합된 복합어이다. '연리지'가 두 남녀의 결합을 상징하는 말이라면 '상사병'은 결합하지 못하고 끝없이 그리워해야만 하는 처지를 상징하는 말이다.
(1) 송(宋)나라의 송주라는 청년이 평안이라는 이름의 공주를 사모했다. 상사병에 걸려 결국 목숨을 잃은 청년은 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일간스포츠, 2002. 9. 16.>
(2) 중학교 시절, 광주에서 최승희 공연을 보고 상사병에 걸렸다는 정 교수는 지금도 최승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조선일보, 2002. 7. 24.>
'상사병'은 중국 동진(東晋)의 역사가 간보(干寶)가 편찬한 설화집 "수신기(搜神記)"에 유래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강왕(康王)은 성격이 포악하였고 여자를 무척 밝혔다. 그의 신하 중에 한빙(韓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 하 씨가 절세미인이었다. 강왕은 한빙의 아내를 탐내어 강제로 후궁으로 삼았고 한빙을 변방으로 보내어 낮에는 군역(軍役)을 하고, 밤에는 성을 쌓는 성단(城旦)의 형을 살게 하였다.
얼마 후 한빙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자살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아내 하 씨도 성 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죽으면서
"임금은 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제 남편과 합장해 주십시오."
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에 화가 난 강왕은 의도적으로 한빙과 하 씨를 떨어뜨린 채 묻었다.
그러자 그날 밤부터 나무 두 그루가 자라기 시작하더니 10일 후에는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는 원앙새 한 쌍이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원앙새를 죽은 부부의 넋이라고 보았고,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불렀으며, 이때부터 '상사(相思)'라는 말이 생겨났다.(宋人哀之 遂號其木曰相思樹 相思之名起於此也)
다른 날 다른 때에 태어났으나 죽기는 한 날에 죽는다. 연리지(連理枝) 이야기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읊은 '장한가(長恨歌)'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있다.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 원하네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시다. 여기 나오는 비익(比翼)은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새 한 쌍이다. 함께 날아야 온전히 나는 새다. 연리지(連理枝)는 뿌리는 둘이면서 가지가 서로 얽혀 붙은 나무다.
모두 애정이 깊은 부부를 뜻하는 전설상의 존재다. 이 가운데 '연리지'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두 나무줄기에 상처가 나고, 서로 붙은 채 상처가 아물면 내부 조직이 붙어서 한 그루처럼 성장하는 나무다.
한 그루가 죽으면 나머지도 죽는다. 줄기가 아니라 몸통이 붙어 자라는 나무도 있다. 연리목(連理木)이라 불린다. 연리지는 H자, 연리목은 거꾸로 된 Y자 형태다. 그 신기한 외형 덕분에 연리지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한국도 연리지가 발견되면 어김없이 화제가 됐고 2006년에는 최지우와 조한선이 주연한 영화 '연리지'가 나왔다. 연리지와 연리목이 발견된 곳에는 '사랑을 약속하세요'라는 안내판이 붙고 주변은 관광지가 됐다. 그런데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4쌍의 연리지가 발견됐다. 2003년 5월 청천면 송면리에서 소나무 연리지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사리면·칠성면·연풍면 등에서 연리목과 연리지가 발견됐다.
가장 유명한 연리지는 선유동 계곡이 있는 송면의 연리지다. 지난 세기 말에 발견된 후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표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수종 및 본수:소나무 1본'. 두 그루가 아니라 한 그루라는 말이다. 수령은 100살에 높이는 15m 정도다. 곁에는 '연리지가든'이라는 팬션도 생겼고 이정표도 '연리지'다. 그런데 2008년 초 한 그루가 솔잎을 떨어뜨리고 껍질도 갈라지더니 그해 8월에 죽어버렸다. 몇 달 뒤 다른 나무도 죽었다.
막걸리를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보호수 지정도 해제됐다. 연리지가든은 "나무들이 죽고 나서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청천면 사기막리 용추폭포 옆에도 연리목 한 쌍이 있다.
역Y자형으로 자란 이 소나무 역시 보호수다. 이 소나무가 자라는 산 이름은 '사랑산'이다. 지난해 말에도 산길 미화작업 중이던 공공근로자가 칠성면에서 참나무 연리지를 발견했다. 수령은 50년 정도다. 괴산군은 "연리가 된 시점과 수령이 거의 일치한다"며 "평생을 함께 산 부부"라고 했다. 군청 관계자는 "괴산이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산악지대이고 노거수가 많다 보니 희귀목도 타지역보다 자주 발견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라생태숲에 가면 연리목(連理木)이 있는데, 두 그루의 나무가 뿌리에서 이어지면 연리근(連理根),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 뻗어가던 가지가 교차점에서 만나 같은 나무처럼 되면 연리지(連理枝)라 부른다. 특히 연리지는 남녀 간의 사랑과 부부애를 나타내는 비유로 쓰인다.
다들 알다시피 연리지를 언급한 대표적인 예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다룬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 ‘장한가(長恨歌)’일 것이다. 양귀비를 그리는 현종을 위해 한 도사가 선계로 양귀비를 찾아가 만나고, 그녀가 현종을 향한 사랑을 말하는 끝 부분에 나온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한다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백거이는 양귀비가 죽은 지 거의 20년 쯤 후, 현종이 죽은 지는 10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사람이다. 안녹산의 난으로 곤경에 처한 현종이 피난길에서 부하들의 강요를 못 이겨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했다. 이런 역사에 시인은 그들의 한을 유추하면서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뿐인 새이며, 짝을 만나서 두 날개가 되어야 날 수 있는 전설의 새이다. 연리지와 비익조의 개념은 대부분 사람들 꿈의 뿌리를 이루는 것 같다. 부모의 눈으로 보면 자녀들이야말로 연리지, 연리근, 연리목일 것이다. 애국지사들은 이런 개념을 확산시켜 고향 친지와 온 나라 백성까지 적용시키는 탁월한 능력과 안목을 지녔던 위인들일 것 같다.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는 배경도 연리의 개념에 이끌린 소치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지극한 애정으로 이어져서 한 몸을 이루어 새 삶을 시작한다고 결혼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혼자 살면 완전한 존재가 되지 못한 듯이 항상 막연한 그리움과 외로움에 휩싸이는 경향이 있다. 마치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비익조처럼 느끼는 것이다. 짝을 만나면 완성되어 무한히 비상하면서 자유와 희열을 누리게 되리라는 기대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네 것 내 것 없이 연리지처럼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했지만 바람 불 때마다 맞닿은 가지는 쓰라리고 아프다. 오랜 세월 유지하기 쉬운 상황이 아니다. 해결할 방법을 모른 채 생나무 줄기를 서로 싹둑 잘라내는 식의 선택도 한다. 연리지의 꿈이 잘려서 사라지면 한 때의 희망은 피 흘리며 죽어간 과거가 된다,
꿈이 실현되어 제대로 짝을 찾았다고 믿는 비익조들도 환희에 들떠서 날아오르려고 하면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가 서로 맞지 않는다. 연습을 거듭해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인간의 심성과 육신은 믿고 의지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변하기 쉽다. 거기에 극단적 개인위주가 겹치면서 삶의 뿌리가 더욱 약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북미대륙의 원주민들은 사람이 각자 혼자인 듯해도 실제로는 거미줄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의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 흔들리면 전체 존재들의 망이 흔들리고 손상되므로, 연결선 상에 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돌봐야 한다. 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이런 노력을 실천하려고 애쓰던 그들을 말살하려고 시도했다.
만일 우리가 인식의 울타리를 확산시켜서 연리지와 비익조의 꿈을 적용한다면 삶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이 자국에 부족한 날개를 옆 나라에서 빌려오고, 또 보유하고 있는 날개를 빌려주기도 한다면 비생산적인 일로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또 인류 전체가 같은 살을 지닌 한 몸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되면,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과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남는 것과 부족한 것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지구를 알뜰하게 운영하면서 공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현대 의학은 이제 더 이상 못하는 일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시간 문제일 뿐 조만간 백신이 개발된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는데요. 인간의 평균 수명은 현대 의학의 발달로 계속 연장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못 고치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연인들의 축제였던 발렌타인데이도 지나갔습니다만, 그건 바로 상사병입니다.
상사병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병, 짝사랑을 하다가 얻게 된 병이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사실 상사병은 짝사랑이 아니라 홀사랑을 하는 병입니다. 상사라고 할 때 한자가 서로 상자에 생각할 사자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서로가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병이 상사병입니다.
이야기는 중국 춘추시대로 올라갑니다. 춘추시대에 송나라가 있었는데요, 이 나라의 강왕이라는 임금이 어찌나 술과 여자를 좋아했던지요, 한빙이라는 자기 부하의 아내 하씨를 빼앗아 후궁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한빙은 아예 감옥에 처넣게 되는데요. 한빙은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자신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괴로워하던 아내 하씨도 얼마 되지 않아 누각에서 몸을 던지고 맙니다. 그런데 하씨의 유서를 보니 분골이라도 남편과 합장을 해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강왕은 너무 화가 나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의 무덤을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멀찍이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두 무덤에서 각각 한 줄기씩 나무가 자라나오더니 뿌리가 서로 엉키고 줄기가 서로 설키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나뭇가지에는 원앙 한 쌍이 날아와서 구슬픈 울음을 울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이 나무에 ‘상사수’, 서로 그리워하는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상사병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이건 어느 한쪽의 짝사랑이 아니라 서로 그리워하는 병입니다. 짝사랑이라면 단사병이라고 해야 맞겠죠. 상사나무는 실제로 중국 남부에서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라고 합니다. 또 보통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이어지는 현상을 연리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의술이 더 발달한다면 상사병도 거뜬하게 고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상사병(相思病)은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한 나머지 생겨난 마음의 병이다. 상사병은 의학사전에 있는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상사병을 겪고,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세상에 나만 남겨진 듯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든다. 상사병은 시간만이 답이라는데… 과연 진짜일까?
◇ 일종의 불안장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수도
상사병의 증상은 한 달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사병이 오랜 시간 지속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병일 수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상사병은 '불안장애'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립고, 그를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빠져 초조해지는 것이 불안장애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국 심리치료사 셀리 베이커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불안과 흥분 상태가 혼재돼 나타난다"며 "상사병은 불안장애와 증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만약, 상대와 이별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모멸감과 분노 등을 느껴 사회적으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할 만큼 심리적 고통이 크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상사병으로 인한 극심한 우울감, 불안감 등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때, 상사병의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지 여부가 상사병을 병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 유독 상사병에 취약한 사람 따로 있어
누구나 다 상사병에 걸릴 수 있지만, 유독 상사병을 세게 앓는 사람들이 있다. ▲첫사랑과 이별한 경우 ▲어릴 때 애착 문제가 있었던 경우 ▲강박적 성격인 경우 ▲SNS에 집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첫사랑과 이별했거나,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지나치게 이상화 하는 경향이 있다. 한림대 춘천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대영 교수는 "이상화가 심해질수록 현실 감각이 떨어져, 이별 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하게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또한, 어릴 때 애착 문제가 있었던 사람은 상사병에 취약하다. 어릴 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생긴 애착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 매우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거나, 의존성이 강했던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전문가들은 본래 강박적 성격을 가진 경우 또한 상사병에 취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융통성, 유연성이 없고, 적응력이 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상사병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노대영 교수는 SNS에 집착하는 사람들 또한 상사병을 심하게 앓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SNS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므로 현실감각 없는 일종의 판타지와 같다"며 "SNS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모든 것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어 상사병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 비슷한 경험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조언 구해야
상사병에서 슬기롭게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말하는 과정과 상대의 조언을 듣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대한 객관화를 하게 돼 상사병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서 주의를 돌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운동, 취미, 일 등 자신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으로 시각을 돌리고, 일상을 규칙적으로 바꾸면 상사병으로 인한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이 했던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빠져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계속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했던 말과 행동, 변화한 일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상사병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노대영 교수는 "적절한 수준의 상사병은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으나, 한 달 이상 증상이 계속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병원을 방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대인관계 패턴 검사하고, 심한 경우 약물치료 병행해
상사병으로 병원을 찾으면 가장 먼저 상담치료를 받게 된다. 상담치료를 통해 자신의 증상이 자연스러운 정도인지 아닌지를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대영 교수는 "보통 상사병이 심한 환자들은 계속 상대를 생각하며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것이 문제임을 정확히 인식시키는 상담치료를 우선으로 실시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대인관계 패턴을 파악하는 검사를 받는다. 상사병을 병적으로 심하게 앓는 사람들은 연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있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대인관계 패턴을 파악하는 검사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치료를 진행한다. 만약, 상사병 증상이 우울증 증상으로까지 이어져 잠을 못 자고, 식이 패턴에 문제가 오는 등 신체적인 증상까지 동반돼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면, 약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하루는 50대 초반의 중소기업 사장이 진료실을 방문했다. 보통 키와 적당한 체격에 착한 인상이다. 그는 부드럽지만 약간 어눌한 말투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한 달 전부터 밥을 못 먹어요. 잠도 거의 못 자고, 숨 돌릴 틈만 생겨도 가슴이 콱콱 막혀오는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는 세 살 연상의 아내와 스물여섯의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잘 챙겨주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사업에만 올인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5년 전, 갑자기 아내에게 폐암 진단이 내려졌다. 그녀는 1년도 못 채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배우자, 그것도 모든 것을 의지했던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과 비통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더구나 사춘기 소녀 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어서 그로 인한 문제도 불거졌다.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얼마 지나 주위 사람들이 재혼을 권유했지만, 그는 아내 외에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한동안 그는 상사병을 겪었다.
그러던 중 1년 전, 이혼해 아들 하나를 둔 미모의 여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인 듯한 야릇한 감정,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에 그는 푹 빠졌다. 1년 정도 달달한 사랑을 했다. 고통의 세월을 보상받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데, 아마도 다른 남자가 생긴 듯하다. 그 때부터 그는 지독한 상사병에 시달리고 있다.
상사병은 이성(異性)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병이다. 강박증이나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겪는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온종일 보고 싶어 한다. 함께 있는 걸 상상하고, 행여 연락이 올까 기다린다. 상사병은 사랑병(lovesickness)이다. 이별, 사별, 실연, 짝사랑에서 나타난다. 심장이 터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밥도 안 먹히고, 잠도 안 온다. 함께 앓기도 하지만, 보통 한 쪽에 나타난다. 상사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몸이 쇠약해지고, 숨을 끊기도 한다. 베르테르는 친구 부인에 대한 연정으로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자살했다. 황진이는 이웃집 총각이 연모하여 죽자 기녀의 길을 선택했다.
사별 후 찾아온 사랑도…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3분도 채 안 된다. 순식간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사랑에 미치고,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사랑에 눈먼다. 도파민은 열정의 호르몬이고, 옥시토신은 신뢰의 호르몬이다. 그런 사랑도 유효기간이 있다. 3년이 채 못돼 호르몬의 약발이 떨어지면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진다. 남녀가 헤어지게 되면 불타던 사랑을 그리워한다. 천천히 세로토닌이 고갈되어 사랑에 목멘다. 세로토닌은 행복의 호르몬이다. ‘사랑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30년이 지나도 사랑을 못 잊는 경우도 있다.
‘행복은 착각이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과거를 회상할 때 마음대로 편집하고, 미래를 상상할 때 임의대로 구성한다. 과거는 보다 아름답게 기억되고, 미래는 보다 완벽하게 설계된다. 헤어진 사랑은 더욱 애달프고, 못 이룬 사랑은 더욱 아쉽다. 인간의 뇌는 바보스럽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기쁠 땐 과거가 행복하게 보이고, 슬픈 땐 미래가 불행하게 보인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면 상대가 그립고, 나쁜 추억을 떠올리면 상대가 싫다. 상상을 통해 그려진 과거와 미래는 모두 착각이다. 우리는 자주 착각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착각이 클수록 실망은 더욱 커진다.
‘사랑은 지옥이다’. 남달리 상사병을 심하게 앓는 사람이 있다. 어릴적, 사랑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다. 사랑(愛)은 마음(心)을 주고받는(受) 것이다. 세 가지 경우가 있다. ①주기만 하고 받지 못한 경우 ②받기만하고 주지 않은 경우 ③아예 주지도 받지도 못한 경우. 나이 들어, 잘못된 사랑을 찾아 방황한다. ‘현재는 잃어버린 과거를 욕망한다’. 사랑에 목마르고, 애정에 굶주린다. 누군가에 의지하고, 뭔가에 매달린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고독감, 공허감에 시달린다. 결국, 미움, 원망, 적대감, 죄의식, 우울에 떨어진다.
자, 이제 그에게로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그만 사랑하자.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간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다. 이제 멈출 때다. 사랑의 욕망은 끝이 없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죽음에 이른다’.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자. 사별과 실연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이별은 어떻게 헤어날까? 멈추어 서서, 주위를 살펴보자. 그동안 못 돌본 가족을 챙기자. 그동안 외면한 친구를 만나자. 멈추어 서서, 자연에 눈 맞추자. 그리움을 품고 낙엽 진 길을 홀로 걸어보자. 애달픔을 안고 어딘가로 혼자 떠나보자.
둘째, 다시 사랑하자.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똑같은 사랑에 새롭게 도전하고, 색다른 사랑을 새로이 꿈꾸자. 어쨌든 과거 사랑은 이미 가고 없는 것이다. 사랑의 아픔은 잊혀지고, 사랑의 상처는 아문다. 상처를 일으킨 건 어리석음이지만, 아픔을 아는 건 여린 마음에서다. 상처와 아픔을 씻고 나면 견고한 기초가 마련된다.
이제, 뜨겁게 사랑하자. 좌우 진폭이 극대로 진행되는 삶을 살아보자. 사랑할 때 너와 나를 잊고 사랑 자체의 신비에 빠져들고, 미워할 때 연민의 정이 솟도록 미워하자. 욕망에 밀릴 때 우물 밑바닥까지 가 보고, 용서할 때 상대가 용서를 거부하는 것조차 용서하자. 맥베스는 이렇게 외친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한 걸음 한 걸음 소리 없이 다가온다.”
내일이 한 걸음 한 걸음 소리 없이 다가온다
셋째, 더 큰 사랑을 하자. 세상에는 세 가지 사랑이 있다. 나사랑, 임사랑, 남사랑이다. 나사랑은 사랑의 기초고, 임사랑은 진짜 사랑을 위한 입문이고, 남사랑은 인간의 소명이다. 진정으로 나사랑을 이룬 자라야 임사랑이 가능하고, 임사랑을 해본 자라야 비로소 남사랑이 가능하다. 한 청년이 절간 문을 두드렸다. “부처님을 사랑하기 위해 왔습니다.” “여인과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감히 그런 상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오직 부처님만 흠모합니다.” 스승은 화를 내며 청년을 내쫓았다. “여인을 한 번도 사랑해보지 못했는데 어찌 부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장자에 이런 말이 있다. ‘나사랑은 달이 중천에 떠 있는 모습이고, 임사랑은 하늘의 달과 강물에 비친 달이 어우러진 모습이고, 남사랑은 달이 모든 강에 비추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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