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한 벌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초도패총에서 출토된 골제품(骨製品)이다. 중국에서는 서기전 10∼6세기경의 가요를 모은 ≪시경≫에 처음 기록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서기전 3세기경의 유적지에서 출토되었다. 젓가락은 우리 나라에서는 공주무녕왕릉에서 출토되었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서기전 403∼221년)에 비로소 기록이 나온다. 그러므로 젓가락은 숟가락에 비하여 늦게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서 수저를 병용한 것은 삼국시대였다. 중국·일본에서도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저를 병용하였다. 그러다가 중국·일본에서는 점차 숟가락의 이용이 줄어들고 젓가락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하는 관습은 우리 나라의 독특한 관습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하면서 식사하는 관습이 전통을 이루게 된 것은 우리 일상식의 내용이 국물음식과 국물이 없는 음식을 항상 병용하게끔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수저는 상고시대에는 주로 청동제품이었다. 이어서 놋쇠제품·백통제품·은제품으로 변천되었다. 형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고려 초기의 것은 숟가락의 자루가 크게 휘어졌다. 중기의 것은 자루 끝이 제비꼬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들어서면서 숟가락자루의 제비꼬리가 없어지고 자루의 휨이 적어진다. 숟가락 면은 나뭇잎과 같은 타원형을 이룬다. 수저는 고려 중기 이후에는 숟가락자루가 길어지고 두꺼워지며 곧아진다. 숟가락 면은 둥글어진다. 젓가락은 한쪽이 점차 가늘어져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된다. 수저의 윗부분에는 장식으로 길한 의미의 글자나 꽃을 칠보로 입히는 경우가 많다.
수저의 사용은 숟가락이 주가 된다. 국물뿐만 아니라 밥도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정식이다. 숟가락을 손에 쥐면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밥상에 놓지 말아야 한다. 젓가락을 쓸 때에는 숟가락을 밥그릇이나 국그릇에 걸쳐둔다. 젓가락을 쓰지 않을 때는 밥상에 눕혀두어도 좋다. 젓가락의 용도는 반찬을 집는 데에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이의 첫돌날에 아기의 개인용 수저를 준비하여 주는 풍습이 있다. 성장하면 연령에 맞추어 큰 것으로 바꾸어 주고 혼인할 때에 신부가 신랑·신부 두 사람의 수저를 밥그릇·대접과 함께 준비하여 거의 평생을 쓴다. 따라서 각기 개인용 수저가 있으며 접객용 수저는 따로 준비한다. 이와 같이 수저는 우리 식문화의 저변적 특성을 형성하는 한 요소이며,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 깊은 뜻의 식사용구이다.
숟가락이 맞나요? 숫가락이 맞나요?
현행 한글 맞춤법에 의하면 '숟가락'과 '숫가락', '젓가락'과 '젇가락' 중에서 맞는 표기는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숟가락'과 '젇가락', '숫가락'과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이 짝을 이루는 점이 특이하여 관심을 끈다. 이러한 의심은 '숟가락'의 어원을 통해 맞춤법 규정을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해결이 된다.
숟가락의 문헌상 분포
'숟가락'과 관련된 단어는 이른 시기의 문헌에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말 문헌에서야 '슐가락, 슈가락, 수가락, 숟가락, 슉갈' 등으로 다양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숟가락'이 19세기 이후부터 쓰인 단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 가운데 '슐가락'이 그 원형에 가장 가까워 보이며, 이는 음성적으로 '술가락'과 같은 것이다.
숟가락 숫가락 술가락
'술가락'을 형태소 분석해 보면 '술'과 '가락'이 결합된 형태로 파악된다. '술'은 15세기 이래 오랫동안 '숟가락'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는 '젓가락'을 뜻하는 '져'와 15세기 이래 줄곧 대립해 왔다. 그러다가 '숟가락'을 뜻하는 '술'은 '밥술(밥을 먹는 데 쓰는 숟가락)', '첫술(음식을 먹을 때에, 처음으로 드는 숟갈)'의 '술', '수저'의 '수'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현대국어에서 '술'은 '숟가락'이라는 의미를 잃고 "밥 두어 술"에서 보듯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떠 그 분량을 세는 단위'라는 의존명사로 쓰이고 있다. '가락'은 '길고 가는 물건'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술가락'은 '술(숟가락)'을 이용하되 숟가락의 긴 모양에 초점을 맞추어 만든 단어로 보인다.
술 + 가락
한편 19세기 문헌에 '슐가락'과 함께 나타나는 '숫가락'은 '술가락'에 사이시옷이 개재된 '숤가락'에서 'ㅅ' 앞의 'ㄹ'이 탈락한 어형이다. 20세기 초 문헌에는 '숫가락, 술가락'과 더불어 '숟가락'도 보이는데 빈도가 조금 적다. '숟가락'은 '숫가락'과 비교하면 제1음절의 종성 표기에서만 차이가 있다.
숤가락에서 ㄹ탈락으로 숫가락이 된다
이렇게 보면 '숫가락'과 '숟가락' 가운데 역사적으로 맞는 표기는 '숫가락'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숟가락'을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숫가락'이 '술가락'에 사이시옷이 개재된 '숤가락'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숫가락'의 제1음절 받침에서 나는 [ㄷ]음이 '술'의 [ㄹ]음에서 아무 까닭 없이 그렇게 변한 음이 아니라 사이시옷의 현실이므로 이와 같은 규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심짌날 이틄날 숤가락에서 ㄹ탈락으로 삼짓날, 이틋날, 숫가락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삼짌날'에서 온 '삼짓날'도 '삼짇날'로 '이틄날'에서 온 '이틋날'도 '이튿날'로 표기하고 있다. 사이시옷이 개재된 어형에서 변한 것이라는 역사적 정보를 놓치고 엉뚱한 규정을 만들어 그에 따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진짜 문제는 일부 국어학자들도 이러한 규정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한 채 '숟가락, 삼짇날, 이틀날' 등의 어원을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논란을 회피하기보다는 논란을 학술연구의 핵심과제로 삼아 서로 협력하여 그 결과물들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숟가락’과 ‘젓가락’은 어떻게 다를까? 이 질문을 친구에게 했더니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생김새부터가 아주 다른데 무슨 소리냐는 말이었다. 몇 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다시 보았다. 그 영화를 기억하는 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왜 숟가락은 받침이 ‘ㄷ’인데 젓가락은 ‘ㅅ’이야?”
이 문제에 관한 설명은 ‘한글 맞춤법’에 나온다. ‘한글 맞춤법 제29 항’에서는 ‘ㄹ’ 소리였던 말이 다른 말과 결합하면서 ‘ㄷ’ 소리로 바뀌어 나는 경우 ‘ㄷ’으로 적는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숟가락’, ‘사흗날’, ‘이튿날’ 등을 들고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숟가락’, ‘사흗날’, ‘이튿날’은 ‘술’, ‘사흘’, ‘이틀’에 ‘가락’, ‘날’이 결합하면서 ‘ㄷ’으로 소리가 바뀐 말들이다.
그렇지만 이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술’과 ‘가락’이 결합하면서 ‘ㄹ’이 ‘ㄷ’으로 소리가 바뀌어 [숟까락]이라는 소리가 되었다고 해도 받침에서 [ㄷ]으로 소리가 나는 말은 ‘ㄷ’ 하나만이 아니다. 받침에서는 ‘ㄷ’뿐만 아니라 ‘ㅊ, ㅅ, ㅈ, ㅌ, ㅎ’ 등도 [ㄷ]으로 소리가 난다. 예를 들어 ‘꽃, 꼳, 꼿, 꽂, 꽅, 꽇’은 모두 [꼳]으로 소리가 난다. 따라서 [숟까락]으로 소리가 난다고 해서 반드시 ‘숟가락’으로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숟가락’에 비하면 ‘젓가락’은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젓가락’은 ‘저(箸)+ㅅ+가락’의 구조로 된 말이다. ‘젓가락’을 뜻하는 ‘저(箸)’와 ‘가락’이 합성어가 되면서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이다.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은 합성어가 되면서 후행 요소 ‘가락’이 [까-]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옛말에서는 ‘숟가락’, ‘젓가락’ 대신에 ‘술’과 ‘저’가 명사로 쓰였다.(1) 能히 술 자며 져 녿니 (能拈匙放筯니) <금강경삼가해, 15세기 자료>그런데 ‘숟가락’이 ‘술’과 ‘가락’이 결합한 말이라면 어떻게 ‘숟’으로 소리가 나게 된 것일까?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간행된 국어사전에서 ‘숟가락’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2) | 《조선 총독부 사전 1920》 |
수ㅅ가락: 匙 | |
(3) | 《증보 조선어 사전, 문세영 1939/1946》 |
술가락[-까-] ‘숟가락’의 동의어 | |
(4) | 《큰사전, 한글학회 1957》 |
술가락[-까-] ‘숟가락’의 잘못 |
사전을 보면 ‘숟가락’은 ‘숫가락’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술가락’으로 표기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숫가락’과 ‘술가락’이 모두 나타나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국어사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다음 예는 ‘물고기’의 옛말 표기인데 ‘숫가락/술가락’의 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5) 믌고기/믓고기 <구급방언해, 15세기 자료> 위의 예를 보면 지금의 ‘물고기’는 원래는 ‘물+ㅅ+고기’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다. ‘믌고기’에서 ‘ㅅ’이 표기에 나타나지 않으면 ‘물고기’가 되고 ‘ㄹ’이 나타나지 않으면 ‘뭇고기’가 된다.
따라서 ‘숟가락’도 다음과 같은 구조에서 온 말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6) 술+ㅅ+가락 ‘*숤가락’에서 ‘숟가락’이 나왔다고 가정하면 국어사전에 나타나는 ‘술가락’과 ‘숫가락’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위에서 국어사전을 보면 ‘술가락’의 발음이 [술까락]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ㄹ’ 받침 뒤는 무조건 된소리가 되는 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술가락’만으로는 [술까락]으로 소리 나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중간에 사이시옷이 끼어들어 있는 ‘*숤가락’을 가정하면 [술까락]으로 소리가 나는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사이시옷은 뒤에 오는 자음을 된소리로 바꾸기 때문이다.(나뭇가지[--까-], 햇볕[-뼏])‘ 에서 비롯한 ‘물고기’가 [물꼬기]로 소리 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숫가락’처럼 ‘ㅅ’ 받침으로 적은 말이 나타나는 것은 ‘믌고기’와 ‘믓고기’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숤가락’에서 ‘ㄹ’이 탈락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숟가락’은 ‘*숤가락’에서 온 말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숟까락]을 ‘숟가락’으로 적도록 한 이유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사실, 이 문제는 ‘깨끗하다’의 받침을 ‘ㄷ’으로 적지 않고 ‘ㅅ’으로 적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만큼 대답하기 어렵다. 근거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걷고/걸어, 깨닫고/깨달아’처럼 ‘ㄷ’이 ‘ㄹ’로 바뀌어 활용하는 현상에 이끌려 ‘ㄹ’과의 관련성을 ‘ㄷ’ 표기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이 상상 또한 재미없고 따분한 설명일 수밖에 없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숟가락은 밥을 뜨는 부분이 ‘ㄷ’처럼 생겼고 젓가락은 위를 잡고 아래를 벌리면 ‘ㅅ’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재치있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한글 맞춤법이 얼마나 멋져 보일까?
숟가락과 젓가락은 우리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다. ‘죽다’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로 “숟가락을 놓다”라는 말이 쓰일 정도다. 그런데 ‘숟가락’과 ‘젓가락’의 표기가 참 묘하다. 같이 일컫는 말로는 ‘수저’라고 하는데, 따로 부르는 말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받침이 달라진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도 여자 주인공이 국문과 학생인 남자 주인공에게 “나,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젓가락은 ‘시옷(ㅅ)’ 받침이잖아. 그런데 숟가락은 왜 ‘디귿(ㄷ)’ 받침이야?”라고 궁금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정말 왜 그런 걸까. 숟가락은 퍼 먹기 좋으라고 ‘ㄷ’ 받침을 쓰고, 젓가락은 집기 편하라고 ‘ㅅ’ 받침을 쓰는 걸까?
아니다. ‘수저’는 한 말이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은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구조로 이뤄져 있다. 우선 ‘젓가락’은 한자말 ‘저(箸)’에 순우리말 ‘가락’이 더해진 말로, 그 발음이 ‘저까락 /젇까락’으로 나는 까닭에 사이시옷 규정에 따라 사이시옷을 첨가한 사례다.
하지만 ‘숟가락’은 다르다. 그것은 ‘수’의 원말이 ‘술’이기 때문이다. “한 술 뜨고 나가거라” 할 때의 ‘술’ 말이다. ‘솔’이 ‘솔방울’ ‘솔가지’ 등에서는 ‘솔’로 쓰이지만 ‘소나무’에서는 ‘리을(ㄹ)’이 탈락하듯이 ‘술’도 ‘저’와 만나 ㄹ이 탈락한 말이 ‘수저’다.
그러나 ‘술’이 ‘가락’과 만나서는 ㄹ이 탈락하지 않는다. ‘딸내미’와 ‘따님’에서 보듯이 ㄹ 받침은 살아 있기도 하고 탈락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저’의 한쪽이 ‘술가락’이 되는데, 우리말 중에는 ㄹ 받침이 어느 말과 결합하면서 ㄹ이 ㄷ으로 변하는 것이 있다.
음력 12월을 뜻하는 ‘섣달’이 그렇고, 내일을 의미하는 ‘이튿날’ 역시 그러한 말이다. ‘설날’과 이어지는 음력 12월은 원래 ‘설달’로 써야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섣달[섣딸]’로 발음해 이제는 ‘섣달’을 바른말로 삼고 있다. ‘이튿날’ 역시 ‘이틀+날’이 변한 것이고, “여름에 생풀만 먹고 사는 소”를 뜻하는 ‘푿소’도 ‘풀+소’가 변한 말이다.
“젓가락은 시옷 받침인데 숟가락은 왜 디귿 받침이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등산을 갔다가 비빔밥을 먹으러 들어간 태희가 국문과 학생인 인우에게 묻습니다. “4학년 때 배우는 거라 잘 모른다”는 답변으로 얼버무리는 이 대사는 이후 중요한 복선으로도 작용하죠.
헷갈리면 숟가락은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ㄷ’을 닮았고 젓가락은 놓인 모습이 ‘ㅅ’을 같다고 생각하면 좀 쉬울까요. 사실 받침이 다른 것은 두 단어의 구성요소가 달라서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 교수가 쓴 《우리말 교실》은 그 이유를 쉽게 풀어 설명해줍니다. 숟가락은 한 술, 두 술 하는 ‘술’이라는 단위와 가락이 결합돼 리을이 디귿 받침으로 바뀐 것입니다. 바느질과 고리가 합쳐진 반짇고리도 디귿 받침이죠. 반면 젓가락의 경우는 한자어 ‘저(著)’에 가락이 붙었습니다. 한자어와 순우리말 사이에서 뒷말이 된소리가 되면 사이시옷을 씁니다. 숟가락과는 단어가 만들어진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금새’와 ‘금세’도 많이들 혼란스러워 하는 단어입니다. ‘금사이’를 줄여 ‘금새’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서죠. 하지만 ‘금세’가 맞습니다. 금사이가 아니라 ‘금시에’가 줄어든 말이어서죠. 금시(今時)는 사투리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금시 뒤에 조사 ‘에’를 붙인 거죠. 조사가 어휘 속에 포함돼 새 단어가 된 경우 입니다.
그렇다면 ‘아니요’라 해야 할까요 ‘아니오’가 맞을까요. 정답은 “둘다 맞다”입니다. 다만 때에 따라 달리 써야 합니다. ‘예’의 반대말로 쓸 때는 아니요를 써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한 문장의 서술어로 쓸 때는 아니오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같은 시대 상황도 아니고 요즘 일상에서 하오체인 ‘아니오’를 쓸 일은 거의 없죠. 예사높임인 하오체는 예사낮춤인 하게체와 함께 오늘날엔 거의 쓰지 않는 높임법이니까요. 그러니 ‘아니요’로 알아두는 것이 간단하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가 아니라 “아니요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가 맞는 거죠.
이렇게 설명하면 ‘아니요’나 ‘아니오’나 알아 들으면 되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합니다. “올바른 우리말을 알아야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즐거운 생각으로 가득하고 대화가 즐겁습니다. 즐거운 생각, 즐거운 대화로 가득하다면 그게 바로 ‘즐거운 우리말 세상’입니다. 우리말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 우리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니 《언어의 줄다리기》라는 책을 내고 기자와 통화했던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말도 떠올랐습니다. 신 교수는 요즘 애들이 쓰는 극단적인 줄임말이나 일명 ‘급식체’(학교 급식을 먹는 연령대인 10대의 말투)를 무조건 부정하고 못 쓰게 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과 상대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요. 신 교수는 언어를 옷에 빗대 설명했습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시간과 때, 상황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옷을 입어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태가 안 나죠. 말도 상대가 누군지 어떤 상황인지에 맞춰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선 제대로 알아야겠죠.
매일 별 생각 없이 쓰고 읽는 말과 글이지만 그 탄생과 이면을 들여다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말을 그렇게 쓰게 된 원리와 나름의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책은 수수께끼를 풀 듯 그 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단어의 사연을 들려줍니다.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맞춤법뿐 아니라 우리말의 문법과 비유법, 표준어와 사투리에 대한 것까지 흥미롭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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