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으뜸 뜻
다홍치마는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은 처녀를 의미하는 말이다. 흔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말을 "같은값이면 좋은 물건을 선택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이 말의 원래 뜻은 '같은 값이면 과부나 유부녀가 아닌 처녀가 좋다는 뜻이다.
홍상(紅裳)의 반대말인 ‘청상(靑孀)'은 '젊은 과부'를 일컫는 말이고, '청상(靑裳)'으로 쓸때는 '기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버금 뜻
같은 값이면 여럿 중에서도 모양 좋고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동가홍상(同價紅裳)
‘동가홍상(同價紅裳)’은 ‘같은 값이면 붉은 치마’라는 뜻으로 같은 값이라면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말이다. 그럼 ‘붉은 치마’가 왜 더 나은 쪽이라는 것일까?
여기에서 홍상(紅裳)은 녹의홍상(綠衣紅裳)과 관련이 있다. ‘녹의홍상’은 ‘녹색 저고리’와 ‘홍색 치마’라는 뜻으로, 젊은 여인의 고운 옷차림을 비유한 말이다. ‘녹의홍상’은 혼례복으로 두 부부가 백년해로(百年偕老) 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또 ‘노랑 저고리’에 ‘다홍색 치마’를 기본으로 하여 첫날밤을 치르기 전 미혼 여성들이 예복으로 입기도 했다. 이것은 오늘날 함을 받는 예비 신부가 ‘노랑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를 입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훗날 자손을 보게 되면 ‘남색 치마’를 입게 되었다.
이처럼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는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일상복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홍상(紅裳)은 ‘유부녀(有夫女)’가 아닌 ‘처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홍상(紅裳)에 대립되는 말로 청상(靑裳)이 있는데 이는 ‘푸른 치마’로 기생(妓生)들이 입는 옷이었다. 동음어(同音語)로 ‘젊은 과부’를 나타내는 청상(靑孀)도 함께 반대되는 말로 표현된다.
이 역시 ‘동가홍상’이 과부(寡婦)나 기생보다 처녀를 고른다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페미니즘(Feminism)이니 양성평등(兩性平等)이니 하며 시국(時局)이 예민할 때에 이렇게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 gender sensitivity)이 떨어지는 말이 또 있을까 한다. 문제는 ‘동가홍상’에서 나온 속담을 우리는 무분별하게 쓴다는 것이다.
바로 ‘이왕(已往)이면 다홍치마’ 또는 ‘기왕(旣往)이면 다홍치마’로 동일한 조건이라면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말이다. ‘다홍치마’가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안다면 얼굴이 화끈거려서 쉽게 쓸 수 없는 속담이다. 속담이라고 표현해 주기도 부끄럽다. 속담은 오랜 세월을 거쳐 삶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나 어떠한 가치에 대한 견해이기 때문이다.
같은 새경이면 과부집 살이
같은 값이면 과부집 머슴살이
같은 값이면 처녀
같은 값이면 검정소를 잡아먹는다
이왕이면 창덕궁
‘이왕이면 다홍치마’는 위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전해 내려왔다. 그러니 이들 중에서 ‘같은 값이면 처녀’라는 것보다 ‘같은 값이면 검정소를 잡아먹는다.’나 ‘이왕이면 창덕궁’이라고 표현하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이왕이면 창덕궁’은 그 의미가 예쁘기도 하다.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즉 여러 궁궐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값이 같거나 같은 품이 든다면 이왕이면 더 나은 것을 고르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입니다. 여기서 다홍치마는 그 치마를 입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미혼 여성은 다홍치마에 노래 ‘개나리 처녀’처럼 노랑저고리를, 신부와 새색시는 다홍치마에 녹의홍상(綠衣紅裳) 연두저고리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다홍치마 속담을 풀어보면 ‘이왕이면 어린 여자’라는 뜻이 됩니다. 게다가 과부와 기생은 청색 치마를 입었으니 ‘이왕이면 순진하고 어린 여자’에 가깝겠지요. 이걸 대놓고 표현한 속담이 ‘같은 값이면 처녀’입니다. 부인과 사별했거나 늦장가 가는 남자가 (돈 주고) 신붓감 데려오며 보인 모습들에서 이런 속담이 만들어졌으리라 충분히 짐작 가고도 남습니다.
나아가, 어린 여자가 어림없으면 ‘같은 과부면 젊은 과부 얻는다’ ‘같은 과부면 애 없는 과부 고른다’며 어떻게든 더 젊은 여자를 찾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쩜 그리 한결같은지, 자기 나이나 처지는 생각 않고 어린 여자만 찾는 비양심 심보가 이 속담들로 꼬집힙니다.
요즘 ‘영포티(Young forty)’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습니다. 백세인생 고령화 사회에서 나이에 비해 가치관이나 감각, 취향, 소비 트렌드 등이 상대적으로 젊은 중년층을 이르는 말이 영포티인데, 기성세대의 관성을 거부하고 형식과 허울보다는 자유분방함과 실속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에 편승해, 생각과 감각은 고루한 채 허울 좋게 말만 가져다 쓰는 ‘나이든 오빠’들도 보입니다. 그들이 영포티를 쓰는 것은 어쩌면 연애가 목적이고, 연애의 목표 또한 ‘다홍치마’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양심이 있다면, 여자들의 ‘돈 많고 명 짧은 남자’ 선택권도 인정해야겠지요. 그래야 진정 동가홍상(同價紅裳)에 비길 공평한 동가(同價)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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