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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안녕_어휘 자료

by noksan2023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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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_어휘 자료

 

 

 

안녕, 2025

 

 

 

요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익히는 말이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이 인사가 보편화됐다는 말일 것이다. 강연을 하는 연사가 청중들에게 맨 먼저 하는 인사가 바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다. 연사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청중들도 이를 받아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이게 우리의 인사로서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자주 사용했던 인사말인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 먹었니?"

"별고 없으셨습니까?"

"가내 평안하십니까?"

"잘 있었니?"

 

같은 인사에 비해서도 월등히 유용한 인사가 바로 '안녕하세요.'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대신에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하기도 한다. '안녕하십니까'는 '안녕하세요.'보다 더 정중한 인사법이다. '-십니까'가 격식을 갖춘 최상의 높임 표현(하십시오체)인 데 비해 '하세요'는 비격식체로 두루 높임 표현이다. 따라서 아무에게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은 다소 교양을 의심받을 수 있으니 유념해서 사용해야 한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자리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야 할 자리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걸 구별하여 쓰려면 화자와 청자 사이에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상하 관계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가 교양인으로서 정중한 어법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손윗사람이나 다수의 청중에게는 '안녕하십니까'를 쓰는 것이 좋고, 편안 어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녕하세요.'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는 주로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의 인사말로 볼 수 있다. 비격식체라는 것이 원래 이들과 어울리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이나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 '안녕하세요'를 썼다고 해서 크게 나무라지 않은 것이 좋겠다. 

 

두메 산촌에 의료 봉사를 하러 간 의대생이 거동이 심히 불편해 누워 있는 80대의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라고 인사를 했더니 이 할아버지가 

 

"아니, 난 안녕하지 못해요. 젊은이"

 

라고 하더란다. 할아버지 자신이 지금 몹시 아픈 상황이므로 그런 식의 인사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경우에나 쓸 수 있는 인사말이 되려면 '안녕하세요'는 조금 더 다듬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안녕하세요'와 '안녕하십니까'는 인사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대로 쓰이기도 한다. 대개 제삼자의 건강을 묻거나 서술하는 경우가 그렇다. 

 

"사모님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안녕하시니?"

"예, 안녕하세요."

"그래, 할아버지께서도 안녕하시다."

 

처럼 다양한 활용을 통해서 높임법을 실현하게 된다. 일반적인 서술 형태와 인사 형태가 같다는 것은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앞에서 말한 할아버지처럼 곧이곧대로 인사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녕'만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어린이나 절은이들끼리 서로에게 인사할 때에 쓰이는데 어른이 손아랫사람에게 쓰기도 한다. 

 

"친구야, 안녕."

"여러분, 안녕."

 

처럼 쓰인다. 이 인사는 '안녕하세요'보다도 품격이 낮은 표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두루 사용하기는 퍽 조심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기능면을 따져 본다면 '안녕하세요'보다 쓰임의 폭이 훨씬 넓다. '안녕하세요'는 안녕한지 묻는 인사말이기 때문에 안녕하지 않은 사람은 대답하기 곤란해진다. 이에 비해서 '안녕'은 묻는 의미도 있고, 권하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만날 때나 헤어질 때나 두루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만일 어른들이 양해해 준다면 '안녕'이 '안녕하십니까'나 '안녕히 계십시오' 또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같은 인사말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인사말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안녕하십니까'나 '안녕하세요'를 쓰더라도 헤어질 때에는 '안녕'으로 쓸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말 속에 담긴 인사의 참 의미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사는 모든 예절의 기본이다. '인사(人事)'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람 사이의 일’을 뜻한다. 사람을 만나 가장 먼저 하는 것으로, 인사를 함으로써 서로를 인지하고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하여, 서로에게 예의와 존경을 갖춘 생활을 삶 속에서 실천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인사란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과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우리말의 기원을 찾아보면, 선조들이 인사말을 통해 어떻게 상대방을 귀하게 대하고 존중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신은 하늘 같이 밝고 큰 존재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말이 ‘안녕하십니까’ 이다. 안녕하십니까 의 ‘안녕(安寧)’은 편안한 안(安), 편안할 영(寧)으로, '당신은 편안하십니까, 걱정없이 무탈한가, 건강한가'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르게, '안녕'은 편안할 안(安) 영혼 영(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은 다른 말로 영혼, 정신을 나타난다. 그래서 ‘당신의 영혼은 편안하십니까. 정신차리고 있습니까’를 묻는 말이다. 이럴 때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본래 정신을 차리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말이다. 이는 인간 안에 고귀한 영혼을 바라보고 이를 존중하는 표현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흔히 쓰는 인사말 중에 ‘반갑습니다’ 와 고맙습니다‘ 가 있다. 

 

‘반갑습니다’에서 반은 ‘신’ ‘하느님’과 같은 뜻으로 ‘반갑다’는 ‘반과 같다’ 즉 ‘당신은 신과 같다’는 의미다.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은 ‘당신은 하늘의 신과 같이 크고 밝은 존재입니다’ 라는 찬사를 보내는 셈이다. 

 

‘고맙습니다’도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고맙다’의 ‘고’는 높은 산을 가리킨다. ‘고’에 여성을 뜻하는 ‘마’가 붙으면서 ‘고마’는 여신, 풍요를 상징하는 땅의 신(지모地母신)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서로 도움을 받으면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데, 이는 ‘고마와 같습니다’  ‘당신은 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라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인도나 네팔 지역에서는 상대방과 인사를 나눌 때 ‘나마스테 Namaste'라고 하면서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나마스테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인사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고귀한 인사라며 탄복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사말은 더 깊은 존중과 축복을 담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말의 핵심은 인간 안에 고귀한 영혼이 있고 이를 ‘신’과 같이 대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일컫는 ‘나’라는 말도 태양을 뜻하는 고대어 ‘라’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을 태양같이 밝은 신성을 지닌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일컬어 ‘나(태양)’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름없는 존재로서 존중한 것이다. 

 

혙통과 민족을 넘어 모든 사람이 ‘반’과 같고 ‘고마’와 같다는 의식이 우리 정신문화를 관통하고 있다. 남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의식, 사람을 신과 같이 여기는 마음이 우리말 속에 담겨 있다. 

 

요즘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바르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찾기가 어렵다. 직장에서도 예의상의 인사만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러나 인사말의 소중한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말 한마디에 정중함과 예의, 감사한 마음을 담게 된다. 사람을 만날 때 이런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나누어 보자. 말의 인격이 높아짐에 따라 서로의 인격이 높아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안녕(安寧)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安寧)하세요

왜! ‘안녕’이란 말로 인사를 할까? 그 뜻이 무엇인지, 꼭 ‘안녕’이란 말을 써야 되는지, 다른 말은 없는지, 의문점을 풀어 본다. ‘안녕’(安寧)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찾아보았더니 한자에서 왔다. 그 뜻을 풀어보자.

‘安’(안)자는 ‘宀’(집 면)자와 ‘女’(계집 녀)자가 합쳐서 ‘安’(편안할 안)자로 읽고 쓰는 회의문자다. 편안, 편안하다, 편안하게하다, 안존하다, 즐거움에 빠지다, 어찌, 이에, 어디에, 등으로 직역한다. 따라서 ‘집’(宀)안에 ‘여자’(女)가 있어야 편안하다로 해석한다. 고로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행복 하다는 말이다.

‘寧’(녕)자는 ‘宀’(집 면)자와 ‘心’(마음 심)과 ‘皿’(그릇 명)과 ‘丁’(무성할 정/ 고무래 정/ 장정 정)자가 합쳐서 ‘寧’(편안/편안할 녕, (영) 편안/편안할 령)자로 읽고 쓰는 형성문자다. 편안 (령), 편안하다 (령), 편안히 하다 (령), 문안하다 (령), 친정가다 (령), 차라리 (령), 어찌 (령) 등으로 직역한다. 따라서 집안의 그릇에 음식물이 많이(무성하게)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고로 부부는 서로를 섬기고 음식을 나누어야 몸이 살고 마음의 영이 살아나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안녕’(安寧)이란 인사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다. ‘人’(사람 인)자와 같이 남녀가 하나로 반듯하게 가정을 이루어 사람의 도리를 깨우치라는 말이다. 집안에는 아내가 있어야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안녕’은 가정의 기본 구성을 표현하고 강조하는 인사말이다. 개인이나 시간이나 때를 가르치는 서양의 인사말보다는 차원이 높고 우주의 조화가 녹여 있는 진리의 인사말이기도 하다. 사람의 도리나 이치의 배려를 저버리고 자신의 권익을 앞세우다 보니 독신가정이 대세를 이루어가는 21세기의 인사말로는 철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할 것 이다. 고로 편안할 ‘安’(안)자의 속 깊은 뜻을 바로 이해하여 가정의 가치와 이치가 무엇인지, 사람의 도리와 참 본질을 알았으면 한다.

‘寧’(녕)자 역시 집안에는 항상 아내가 있어 맛 나는 음식이 풍족하게 만들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영이 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의 속도에 따라 바쁘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손맛의 정성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다는 뜻이다. 그래서 음식으로 가풍을 자랑하고 전통을 이어오면서 편안하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열어 왔다. 그리하여 한때는 인사말이 진지 드셨습니까? 라는 말로 우리 생활의 리듬을 주도하며 위로하며 힘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나 심금을 울리고 다정함을 체감 했던 말인가 일부에서 일제의 통치와 전쟁의 폐허로 인한 배고픔에서 나온 인사말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인사말의 근원은 ‘寧‘(녕)자에서 나온 것 같다.

이상하게도 ‘安寧‘(안녕)이란 인사말은 만날 때 반가운 마음이나 헤어질 때 아쉬운 마음을 같은 말로 전 할 수 있으니 조상님들의 지혜에 감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것도 세계에서 유일게 차원 높은 철학적 인사말을 쓰는 민족은 우리 밖에 없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말인가. 시간에 제약을 많이 받는 요즈음 일분일초가 아쉬워 인스턴트식품으로 쉼을 얻고자 하나 마음의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시간의 공간만 얻을 뿐이다.
오르지 진정한 쉼은 엄마가 나누는 음식만이 가족들과 소통하여 편안한 쉼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정의 아름다운 힘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스트레스를 씻어 내고, 포근한 맛으로 안마하여 고달픈 아빠의 피곤을 풀기에 ‘寧’(녕)자에다 편안함의 폭넓은 깊은 뜻을 담은 것 같다. 그래서 흐트러지고 깨어지기 쉬운 가정을 사랑으로 매일매일 다독거리고 자신을 항상 점검하고 살펴 바르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안녕‘(安寧)이란 인사말을 만들어 되새김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만날 때나 헤어질 때도 같은 말로 인사를 하여도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고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느닷없이 안녕하십니까? 에 능통한 화술과 예리한 문장력으로 보이지 않는 의도를 심어 상상하게 하니 민족사전에도 없는 현기증을 유발시켜 안녕이란 본연의 참 뜻을 훼손하는 것 같아 훈훈하고 따끈따끈한 인사말이 변질 될까 걱정이 된다. 아무쪼록 이름답고 사려 깊은 ‘안녕‘이란 뜻을 되새겨 서로의 마음을 아낌없이 주고받아 관계를 돈독하게 했으면 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상징적 의례

 

 

안녕하세요

 

 

 

우리는 인사를 나눌 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안녕을 묻는다. 안녕(安寧)의 安(안)과 寧(녕)은 모두 ‘평안함’을 뜻하기에, 누군가에게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상대방이 평안한지 여부를 묻는, 다시 말해 안부(安否)를 묻는 제스처이다. 그러나 인사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안녕하세요?”와 같은 발화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인사는 하나의 형식적 관습이며 패턴화된 상례(常禮)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형식적인 인사를 왜 주고받는 것일까? 라캉(Jacques Lacan)이 언급한 ‘텅 빈 제스처’라는 개념을 경유하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텅 빈 제스처는 알맹이가 없는 상징적 제안과 거절의 양식이다. 예를 들어, 입사 동기인 A와 B라는 사람이 있는데, A만 승진을 하고 B는 승진을 하지 못한 상황이 있다고 하자. 만약 A가 B에게 “이번에 네가 승진을 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승진을 양보하려고 한다면, B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B는 A를 질투하거나 자신만 승진하지 못한 상황에 분개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맞아, 네가 아니라 내가 승진하는 게 맞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B는 보통 “무슨 소리야, 네가 승진하는 게 맞지.”라고 답할 것이다.

A와 B 사이의 대화에서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A가 진심으로 승진을 양보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며, B 또한 진심을 담아 거절한 것도 아니다. 그 누구도 진실하지 않지만 이 대화의 맥락 안에서 A가 보여준 승진 양보의 제스처에 대해 B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의미 없는 텅 빈 제스처를 통해 A와 B의 우정은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B가 “맞아, 네가 아니라 내가 승진하는 게 맞다.”라고 답하는 순간 A와 B의 관계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미리 정해진 각본처럼 A와 B는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을 뿐이지만, 승진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서 텅 빈 제스처는 관계를 회복하는 상징적인 힘을 부여한다.

인사도 텅 빈 제스처와 같은 상징적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의 제스처는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한 관습인 것이다. 사실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실용적인 담화 방식과 상징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의례적인 담화 방식은 확실하게 구분된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사실적인 정보를 묻는 발화로 생각하고, “네, 저는 안녕합니다.” 또는 “아니요, 저는 안녕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안녕하세요?”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안녕하세요?”라는 또 다른 물음으로 답하는 것이다. 알맹이가 없어 보이는 “안녕하세요?”의 교환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성의 실존을 표현한다. 인사를 주고받는 쌍방이 서로 동등하든 아니면 어느 한 편이 우월하고 다른 한 편이 열등하든 간에, 인사를 매개로 너와 나가 하나의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변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어색해질 때가 있다. 인사를 하면 “네.”라고 대답만 하거나, 쭈뼛거리면서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인사가 하나의 상징적 의례이며 서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확인하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인사를 무심하게 받는 태도는 인사를 건넨 사람과의 관계를 거절하는 제스처로 비쳐질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인사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받지 못했을 경우, 이유모를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불쾌감의 근원에는 상대방에게 기대했던 상호 작용에 대한 거절이 놓여있다. 너와 나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라는 공동체는 성립할 수 없으며,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상적인 제스처라 깜빡 잊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상징적 의례가 가지는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상대방과 제대로 된 인사를 주고받아보는 것은 어떠할까? “안녕하세요?”라고.


안녕하세요?

 

 

안녕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말이다. 평안, 안전, 무사와 비슷한 말이고, 위험, 불안의 반대말이다. ‘안녕, 평안, 행복’과 같은 말은 쉽고도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느낄 평안이란 어쩌면 동생과 늘 하던 방 다툼에서 잠시 해방된 날이거나, 보고서나 시험이 끝난 한가로운 저녁을 뜻한다. 그렇지만 전쟁 중에 평안은 오늘 밤 지붕 위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고서 무사히 아침을 맞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무서운 밤도 전제에 따라 ‘평안’이 되다니, 가히 모순적이다.

 

전 세계에 7,000개 이상의 언어가 있다는데, 그중에는 극한 상황에서야 알게 되는 평안이나 행복을 이르는 말이 적지 않다. 일 년 내내 혹한을 견디는 북극해 연안 지역에는 ‘아요르나맛(ayurnamat, 이누이트어)’이 있다. 어쩔 수 없거나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평안을 뜻한다. 또한 연평균 3도에다가 햇빛조차 보기 힘든 어떤 지역에서는 ‘그저 날씨가 좋아서 쉬는 날’이라는 ‘솔라르프리(solarfri, 아이슬란드어)’가 있다. ‘마른 땅 위의 비 냄새’라는 ‘페트리커(petrichor, 영어)’는 흙냄새만을 뜻하지 않는다. 완전히 메마른 땅에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건기를 견딘 이들에게 평안을 준다. 전쟁을 치르고서 일상을 되찾은 이들도 그러하다. 덴마크는 19세기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영토와 인구의 3분의 1을 잃었다. 밖에서 많은 것을 잃은 덴마크는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이라는 ‘휘게’(hygge)를 찾아냈고, 이 문화는 덴마크가 서로를 지켜주며 복지 국가가 되는 데 기여했다.

 

한국말에는 ‘안녕’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안녕’도 실은 견뎌야 할 위험이나 불안한 상황이 전제된 무시무시한 말이다. 얼마 전 코스타리카 국영방송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송출했다. 진행자는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말 ‘안녕하세요?’가 혼돈의 역사와 전쟁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인이 서로를 챙긴 말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는 시간대나 친밀도를 막론하는 인사말이라 외국인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고, 습관적으로 쓰는 한국인에게는 이미 무덤덤한 말이다. 이 ‘안녕’이 어제를 잘 살아내고 오늘을 맞은 것을 서로 격려하는 말임을 먼 나라의 시선에서 배운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긴 7월, 지금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안녕’의 의미를 담아 인사를 건네 보자.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안녕(安寧)

 

 

 

안녕

 

 

 

安寧(안녕)하십니까? 혹은 康寧(강녕)하십니까? 하는 人事(인사)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國語辭典(국어사전)을 찾아보면 安寧 아무 탈 없이 便安(편안)으로 나오며, 康寧 몸이 健康(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漢字(한자) 意味(의미)로 살펴보면 確然(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은 모두 편안하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편안함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편안하다의 뜻으로 쓰는 한자는 많이 있습니다만 이 세 가지 글자만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漢字 辭典(한자 사전)에서 은 편안하다, 安存(안존)하다, 즐기다, 어찌 등의 뜻으로 쓰이며 으로 읽습니다.

 

(집 면) (계집 녀)를 합친 글자로, 婚姻(혼인)하여 女子(여자)를 맞아들이면 男子(남자) 立場(입장)에서는 몸이 편하다는 의미가 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집에 들어오게 되면 잔치를 벌인다는 글자는 (잔치 연)입니다. 이 글자는 (날 일) (편안할 안)을 합친 것으로, 여자가 날을 잡아 집에 들어오면 많은 사람을 招請(초빙)하고 불러 모아서 잔치를 벌인다는 말입니다.

 

은 편안하다, 問安(문안)가다, 차라리, 어찌 등의 뜻으로 쓰이며 이나 으로 읽습니다. (집 면) (마음 심) (그릇 명) (넷째 천간 정)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며, 사당()의 제단()에 음식을 차린 그릇()을 올리고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조상()을 섬기고 의지하니 마음이 편하다는 의미가 입니다. 따라서 매일 매일 사당에 모신 조상을 살아계신 듯이 섬겼던 것입니다. 같은 同字(동자)로는 ()이며, 古字(고자) ()으로 씁니다.

 

은 편안하다, 온화해지다, 즐겁다, 성하다, (풍년이) 들다, 크다 등의 뜻으로 쓰이며, ‘으로 읽습니다. 이 글자의 모양은 广(집 엄) (미칠 이, 미칠 대)가 합쳐진 것이지만, 원래의 모양은 (바뀔 경) (쌀 미)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胛骨(갑골)이나 金文(금문)에서  古代(고대) 脫穀(탈곡)할 때 쓰는 農器具(농기구) 模樣(모양)이라 하였고, 탈곡 할 때에 떨어지는 나락이 입니다. 따라서  (겨 강), (겨 강) () 글자라 했습니다.

 

따라서 은 집에 穀食(곡식)을 많이 거둬들여 먹을 것을 貯藏(저장)하고 있으므로 먹을 걱정이 없는 편안함입니다. 결론적으로, 은 몸이 편안한 것을 말하며, 은 마음이 편안한 것을 말하고, 은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편안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는 (편안할 일), (편안할 정), (편안할 온),  (편안할 일), (편안할 담), (편안할 념), (편안할 수), (편안할 개)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말로는 다 같이 편안하다의 뜻이지만 漢字 意味 仔細(자세)히 보면 의미가 모두 다른 편안함입니다. 이런 글자의 의미를 區分(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識字(식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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