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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원리, 원칙_어휘 자료

by noksan2023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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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 원칙_어휘 자료

 

 

원리 원칙

 

 

 

 

아이들이 싸우면, 엄마는 무조건 야단을 친다. 동생에겐 “형 말 잘 들어야지.”하고, 형에겐 “동생을 늘 구박만 하냐. 이웃 집 애들은 서로 잘 위해 주더라.” 한다. 그런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형은 엄마에게 대든다. “저 애가 잘못 했는데, 왜 엄마는 늘 동생편만 들어요?” 심지어는 “왜 엄마는 나만 미워해요?” 한다. 옆방에 있던 아빠가 개입한다. “아니 이 녀석이!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엄마한테도 화살을 돌린다. “애들을 어떻게 교육하길래 맨날 이렇게 싸워?” 이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엄마도 없다. “아니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이제 애들 싸움은 부부싸움으로 확전된다.

 

이런 싸움의 사례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본다. 동생, 형, 엄마,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은 당시의 상황만이 원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이미 간직하고 있던 감정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형은 동생이 늘 자기를 무시하고, 형이 생각하는 규칙을 어기면서 행동하는 동생에게 평소 불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 때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이유다. 동생의 마음속에도 평소 형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동생도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기대의 기준들을 갖고 있다. 그 기준들은 원칙과 같은 것이다. 상대가 이 원칙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때, 불만이 쌓이고 어느 단계에서 화를 내게 된다. ‘화’라는 분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숨겨져 있으나, 자기에 대한 모멸이나 좌절을 느낄 때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런 감정의 발로가 상대적으로 자신을 밝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왜냐면, 원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도 원리에 의해서 작동된다. 자연의 원리나 세상사의 원리와 같다. 원리는 근본이 되는 이치다. 이치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을 뜻한다. 사물과 존재의 근거, 사유와 인식의 근거, 행위와 규범의 근거가 되는 이치다. 일은 결국 이 원리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원리는 자연적인 것이고, 종교에서는 신의 영역이라 하겠다. 우리가 이와 유사하게 쓰는 말에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원칙은 현실에서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말한다. 원칙은 이 글에서는 원리와 더 명확히 구별하기 위하여 현실이나 이론체계에서 ‘사람’이 정하는 것으로 한다.

형의 감정은 동생은 이래야 한다는 자신의 일방적 ‘원칙’에 따른 분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생의 감정의 흐름, 자신과의 관계의 쌍방적 ‘원리’에 의해서 순리로 풀어야 해결된다. 엄마도 관계적 ‘원리’에 입각해서 형과 소통해야 일을 해결할 수 있고, 아빠도 마찬가지다. 형제들간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만을 강요해서 분쟁을 근본 해결할 수 없다. 옛 조상들도 윤리나 관혼상제 등 예식의 방식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다투는 진짜 이유는 지적하는 쟁점에 있지 않고, 다른 숨은 의도가 많았다. 조선조에서 숙종이 돌아가셨을 때, 왕의 계모가 상복을 1년만 입어야 한다는 설과 3년을 입어야 한다는 설로 갈려서 논쟁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이 싸움의 진짜 이유는 집권한 서인과 야당들의 권력다툼이었다. 이로 시작된 극렬한 당파 싸움이 망국의 길로 가는 단초가 되었다. 이런 문제는 원칙으로 풀 수 없다. 원리로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화를 잘 내기도 하고, 잘 참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우리의 홧병(Hwa byung)이라는 단어가 등재되고,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등재해 특유한 정신의학적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감성이 더 강한 사회이다. 최근에는 자살과 우발적 범죄가 늘고, 분노조절장애라든가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갑질 논란과 적폐청산이라는 사회적 갈등이 들불처럼 휩쓸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은 원칙을 만들 때, 권력의 힘보다는 원리에 따라야 한다. 어릴 때부터 ‘원리’에 입각한 교육을 하고, 화를 초기단계에서 분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가 발전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4대 국정원리

 

 

 

청와대 누리집(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참여정부의 국정원리'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설명과 함께 국정 원리 4가지가 차례로 설명되어 있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은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이자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원리이다. 이러한 4대 국정 원리는 국가 운영의 모든 분야와 모든 과정에서 관철되어야 한다. 

 

쉽게 얘기한다면 참여정부는 위의 네 가지 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에는 모두가 따라야 할 여러 법규가 있는데 그 법규의 테두리 안에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대통령과 집권 세력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철학을 제시한 것이바로 위에서 든 네 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이를 국정 원리라고 한 것이 문제이다. 집권 세력이 갈릴 때마다 그 세력 나름의 국정 원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 '원리'란 '근본이 되는 이치' 곧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를 모르면 자동차를 운전할 수가 없다. 이 원리는 그가 자동차를 타기 전부터 결정되어 있다.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그 원리를 습득한 뒤에 자신의 운전 철학에 따라서 자기 나름의 규칙을 정해서 자동차를 운전한다. 예를 들어 급가속을 하지 않을 것, 끼어들기를 하지 않을 것 등등. 이때 이 사람이 정한 원칙은 '그의 운전 원칙'이 된다. 그런데 이를 '나의 운전 원리'라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 사람들이 원리와 원칙을 혼동한 것은 마치 국가와 정부를 혼동한 것과 같다. 하나의 낱말을 혼동하는 것은 낱말에 대한 무지에 그치지 않고 그 낱말이 표상하는 대상 사이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언어가 혼동되면 사회가 혼동에 휩싸이게 되는 법이다. 공자가 말을 바로 세워야 사회가 바로 선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원리는 따르는 것이고, 원칙은 지키는 것이다. 원리는 창조의 섭리이고 원칙은 인간의 작품이다. 우리가 '원칙적으로'와 '예외적으로'를 구별하는 이유는 원칙이 완전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칙이 훌륭하여도 원리를 충실히 반영해 내기 어렵다. 원칙은 세우는 것이고, 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바꿀 수 있는 것이고,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단은 없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예외를 두거나 초법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당사자 간에 합의를 위한 협상을 하여 원칙적으로 합의를 이루었더라도 세부적인 합의가 안 되면 합의 자체가 파기될 수 있다. 원칙이란 이런 것이고, 이것이 협상의 원리이다. 

 

앞에서 예를 든 참여정부의 국정 원리는 그것을 원리로 보는 한 정권 담당자들이 거기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국정 원칙으로 본다면 상황에 따라서 이를 가변적으로 운영하여 더 큰 가치에 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자신이 만든 원칙을 원리로 인식하여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원칙의 탄력성 안에서 융통성 있는 정치를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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