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 버금 _ 어휘 자료
지난 주말 야구 경기를 봤다. 경기 중 잡기 힘든 타구를 유격수가 멋지게 처리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러자 해설위원이 그를 칭찬하며 한마디 했다.
“앞으로 한국 야구의 전설, ○○○에 버금가는 선수가 될 것이다.”
무슨 뜻일까? 이 유격수가 ○○○와 어깨를 견줄 만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는 말일까? 아마 해설위원은 이 선수가 ○○○만큼 좋은 선수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의미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잘못 표현했다.
‘버금가다’를 ‘지위, 수준 등에서 상대방과 대등한 상태에 이르다’ 또는 ‘(수준을) 뛰어넘다’란 뜻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버금가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버금가다’는 “으뜸의 바로 아래가 되다”란 뜻이다. ‘으뜸’은 ‘많은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즉 ‘첫째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누구에 버금가다’라고 하면 언제나 그 누구보다 실력이 한 수 아래인 ‘제2인자’나 ‘둘째가는 것’을 말한다.
‘힘, 지위, 수준 등에서 상대방과 대등한 상태에 이르다’란 의미의 말은 ‘맞먹다’ ‘필적하다’ ‘못지않다’이다. “옷 한 벌 값이 내 월급과 맞먹는다” “그 못지않은 선수가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처럼 써야 상대와 대등하다는 의미가 된다.
으뜸
'으뜸'은 맨 위, 첫째 또는 가장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두머리'의 '우두'와 관련이 있고, '우듬지'의 '우듬'과도 관련이 있다. 이들은 모두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나 맨 위를 가리킨다.
"한국의 아이티 산업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의 '으뜸'은 '제일(第一)'의 의미를 가지다. 음악에서 '도'를 '으뜸음'이라고 하는 것은 음계의 첫째 음을 의미한다. '으뜸'은 '가장 중요한 기본 또는 근본'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사람에게 가장 으뜸이 되는 덕은 사랑이다.'
버금
'버금'은 으뜸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나 지위 또는 그런 물건을 가리킨다. '제이(第二)'가 버금에 해당한다. 드물게 '버금'이 둘째를 가리키기도 하지만("선거에서 버금은 무의미하다, 마라톤에서 그가 버금으로 도착했다.") 대개 '무엇에 버금가다' 또는 '무엇과 버금하다'의 형태로 쓰여(고어에서는 버근으로도 쓰여 버근며느리라고 하면 둘째며느리를 뜻했다.) 으뜸보다는 못하지만 다른 것보다는 월등함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때 반드시 '무엇에' 또는 '무엇과'라는 부사어를 붙이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영의정은 임금에 버금가는 권한을 가졌다."
는 임금이 으뜸이고 영의정이 임금 다음임을 의미한다.
"그는 임방울에 버금가는 명창이다."
는 임방울이 으뜸이고 그가 임방울 다음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버금가다'가 꼭 기계적으로 으뜸 다음 자리 곧 이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으뜸을 내세워 그것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주어를 돋보이게 하는 데 이용된다.
"그는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고 있다."
는 '그'를 대통령에 비교함으로써 그의 권력의 막강함을 나타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버금하다'도 이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그는 이미 천하장사와 버금하는 힘을 갖추었다."
라고 하면 천하장사와 맞먹을 정도의 힘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버금가다'는 '무엇에' 형태의 부사어를 취하고, '버금하다'는 '무엇에'나 '무엇과' 형태의 부사어를 두루 취한다.
'버금가다'를 남용하여 오히려 뜻을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부탁가스가 폭발할 때에 옆에서 받는 충격은 태풍 루사의 위력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하다."
라고 하면 부탄가스의 폭발 위력이 태풍 루사의 위력 다음으로 강력하다는 뜻이 된다. 태풍 루사의 위력을 으뜸 위력으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태풍과 가스 폭발을 동일 선상에서 으뜸과 버금으로 비교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순위를 정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엇에' 버금가다'라는 표현보다는 '무엇과 비슷하다' 또는 '무엇과 맞먹다'를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으뜸가다'는 '첫째가다', '제일가다'로도 스인다.
"그는 서울에서 첫째가는 부자다."
"금강산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명산이다."
처럼 쓰인다. '버금가다'는 '둘째가다, 다음가다'로도 쓰인다.
"한국에서는 서울이 첫째가는 도시이고, 부산이 둘째가는 도시이다."
"부산은 서울에 다음가는 도시이다."
처럼 쓰인다. '다음가다'는 반드시 '무엇에' 형태의 필수적 부사어를 취하지만 '둘째가다'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우리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자다."
라고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또는 서러워할)'의 형태를 익혀 두는 것도 좋겠다.
버금2
‘선비들의 심사는 되려 시절에 따라 조석지변이나 근본이 상된 것들은 축생에 버금가서 한 번 작정한 터를 좀처럼 고쳐먹지 모하는 병통이 있습니다’. (김주영의 ‘객주’ 중에서)
우리는 첫째 다음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 ‘버금’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으뜸의 다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버금’을 찾으면 한자 ‘副’(부)나 ‘次’(차)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할 뿐 더 이상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어문학자들에 따르면 버금은 ‘벅’+‘음’으로 분해된다. 이중 뒷말 ‘음’은 명사형 접미어이다. 그러나 앞말 ‘벅’이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의외지만 우리 몸과 관련이 있다.
이를 증명하려면 ‘벅차다’라는 단어를 먼저 예습해야 한다. 우리는 ‘정도에 넘쳐 감당하기 어렵거나’, ‘넘칠듯이 가득할 때’ ‘벅차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가령 ‘하루에 끝내기는 좀 벅차다’, 또는 ‘가슴 벅찬 감격’ 정도가 된다. ‘벅’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어문학자들은 이때의 ‘벅’을 우리 몸 ‘가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벅차다’는 힘이 들어 호홉이 가빠지면서 가슴이 차오르는 것이 된다.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버겁다’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된다. 가령 ‘짐이 너무 무거워 나르기에 버겁다’ 정도가 된다. 어문학자들은 이것 역시 ‘벅’이 변한 단어로 보고 있다.
우리 몸중 ‘머리’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즉 으뜸이다. 이에비해 ‘가슴’은 머리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앞서 ‘버금’은 가슴을 의미하는 말인 ‘벅’에서 파생한 단어라고 말했다. 그런 가슴은 머리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버금이 ‘두번째’라는 뜻을 지니게 됐다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치질 _ 어원 자료 (0) | 2025.01.29 |
---|---|
어르신네 _ 어원 자료 (0) | 2025.01.29 |
장만 vs 마련 _ 어휘 자료 (0) | 2025.01.29 |
원리, 원칙_어휘 자료 (0) | 2025.01.27 |
욕에 담긴 문화 코드 (1) | 2025.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