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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르신네 _ 어원 자료

by noksan2023 202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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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네 _ 어원 자료

 

 

우리 시대 진정한 어르신 _ 문익환 목사님

 

 

 

언어는 역사성을 띤다. 어떤 말이든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모습과 의미가 변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긍정적이었던 단어 뜻이 강산이 변하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기도 한다. 언어가 변화하는 탓에 우리말은 유독 헷갈리는 표현이 많다. 자칫 대화 도중 단어 선택을 잘못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기억이 있진 않은가. 

 

집밖에 나서서 사람을 만나면 간혹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특정 노인을 가리킬 때 혹은 특정 노인에게 말을 걸 때 ‘어르신’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노인’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은데, 어르신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나이 많다고 차별하는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시니어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 어르신이라는 단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현대에 사용하는 ‘어르신’의 시초는 ‘얼우신’으로 파악된다. 얼우신이라는 단어는 1510년대 문헌인 《번박 58ㄴ》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문헌에는 ‘얼우신하 허믈 마쇼셔’라고 쓰여 있어 얼으신이라는 단어가 당시에도 사용되던 단어임을 추측할 수 있다. 16세기의 ‘얼우신’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가 결합한 ‘얼우-’에 선어말어미 ‘-시-’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결합한 것이 명사로 굳어진 표현으로 확인된다. 얼우신은 ‘얼우’는 옛말 ‘얼다’에 사동접미사가 붙은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얼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얼다’는 당시 △교집하다 △교합하다 △교미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얼다’에 ‘-우-’가 붙은 동사인 ‘얼우다’ 역시 그와 비슷한 의미로 혼인하다, 결혼하다 등의 의미로 쓰였다. 즉, 얼우신은 혼인을 한 사람을 빗대어 만들어진 단어인 셈이다. 

 

다만, 얼우신이라는 단어를 ‘혼인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홍윤표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회 위원장(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은 새국어소식 을 통해 “(현대 국어와는 달리)원래 얼우신의 뜻은 매우 다양했다.”고 설명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리한 ‘어르신’의 의미는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혹은 ‘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홍 위원장은 “과거에는 신분이나 관직이 높은 ‘대인’의 의미로 얼우신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가문 어르신네, 일가 어르신네, 싀어르신네, 밧갓 어르신네, 백부장의 어르신네 등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 일가친척 중의 웃어른도 ‘어르신네’라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다만, 1인칭을 높이지 않는 국어의 특징상 자신의 부친은 절대 어르신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겪어온 역사 변화를 따라오다 보면 문득 의문이 드는 현대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어른’이다. 생각해보면 어른과 어르신,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 어감에서 오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굳이 높고 낮음을 따지자면, 어른은 그냥 ‘평어’ 같다면 어르신은 ‘높임 표현’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현대 국어에서 느껴지는 ‘어른’과 ‘어르신’의 차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홍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에 ‘어르신’은 주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할 때에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어른’은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범칭의 성인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현대어에서 ‘어른’과 ‘어르신’의 뉘앙스 차이는 이미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현상인 셈이다.

 

신분이나 관직이 높은 어른을 지칭하는 ‘얼우신’이라는 말은 이후 몇 차례의 변화를 맞이한다. 16세기에 ‘ㄹ’ 뒤에 오는 유성후두마찰음 ‘ㅇ’이 완전히 탈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얼우신’ 또한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여 18세기에 지금의 ‘어르신’과 유사한 표기인 ‘어루신’이 됐다. 

 

국립국어원은 어원과 관련해 “18세기까지 ‘얼우신’과 ‘어루신’이 공존하다가 19세기에 제2음절 모음 ‘ㅜ’가 ‘ㅡ’로 바뀌면서 현대 국어와 같은 ‘어르신’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어르신의 역사를 보면, 어르신은 높임 표현으로 사용하던 것이 맞다. 하지만 현대에는 어르신이라는 단어 사용의 뉘앙스로 인해 당사자인 청자가 체감하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지 못하는 고령자를 보고 차에서 경적을 울리며 ‘어르신들은 밖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문맥을 아무리 고려해도 이 경우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결코 좋게 들리지 않는다. 화자가 높임 표현을 가장하여 차별을 위한 단어로 어르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다. 해당 속담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 표현한 단어는 청자와 화자 모두에게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르신이라는 단어의 본뜻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면 화자의 입장에서 평소 자신이 어떤 의미로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했는지 떠올려보자. 어쩌면 당신이 내뱉던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500년 전 그날에는 존경의 의미를 가득 담은 한 마디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어르신 _ 백기완

 

 

 

요즈음 ‘어르신'이나 ‘어르신네'란 단어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 ‘어르신, 어르신네'가 연세에 무관하게 지칭할 수 있고, ‘할아버지'에 비해 더 친근감이 드는 것으로 생각하나 보다. 어르신'은 원래 남자 노인들께만 썼던 명칭인데, 여자 노인께도 쓰는 것을 보면, 의미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어르신네'는 ‘어르신'에 ‘여편네, 남정네, 복동이네' 등에 보이는 접미사 ‘-네'가 붙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15세기 국어에서 ‘네(원래는 ‘내'였다)' 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였는데, 오늘날 ‘친근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화하였지만; ‘어르신네'에서는 아직도 존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르신'도 ‘어른'을 높이기 위해 존칭의 ‘-시-'가 붙은 것처럼 이해는 되는데, ‘어른'에 ‘시'가 연결되면 ‘*어른시'가 안 되고, 어떻게 ‘어르신'이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며, 어째서 동사가 아닌 명사에 존칭의 ‘-시-'가 붙었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른'의 형성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르'와 ‘ㄴ' 사이에 어떻게 해서 존칭의 '시'가 들어기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얼다(뜻은 ‘교합하다'였지만 사람에게는 ‘혼인하다'란 뜻이다)'의 어간 ‘얼-'에 관형형 어미 ‘-ㄴ'이 붙어 ‘얼운'이 되었는데, 19세기 말에 이 ‘얼운'이 변화하여 ‘어른'이 된 것이다. 여기에 ‘-우-'가 들어간 것은 동명사를 만들 때 ‘-오 /-우'가 개입하던 규칙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관형형의 통사구성이 이렇게 명사로 어휘화되는 예는 흔하지 않은데, 15세기에는 몇 예들이 보이기도 한다.

 

‘얼다'는 원래 ‘혼인하다'란 뜻이었으니, ‘얼운'이란 결국 혼인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얼다‘의 관형형 ‘얼운'이 존칭형이 되면 ‘-시-'가 연결되어 자연히 ‘얼우신'이 되는데, 이 ‘얼우신'도 괸형형 ‘얼운'이 명사가 된 것처럼 명사로 된 것이다.

 

즉 ‘얼우다'의 ‘얼우'에 존칭의 ‘-시-'가 붙어 ‘얼우시-'가 되고 여기에 '-ㄴ'이 연결되어 ‘얼우신'이 된 것이다. ‘-ㄴ'을 명사형 접미사라고 하면 쉽게 해석될 것 같지만, '-ㄴ'이 명사형 접미사로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이렇게 복잡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5세기 문헌에서 ‘얼우신'은 주로 ‘얼우신'으로 표기되지 ‘어루신'으로 표기되는 일이 흔하지 않다. 소위 연철표기를 중심으로 하던 때에 이렇게 어간을 구별하여 표기하였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얼우신은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쓰이고, 18세기에는 ‘어루신'이 나타난다. 그리고 20세기에 와서야 ‘어르신'이란 오늘날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어른'은 19세기에 나타난다).

 

얼우신하 허믈 마라쇼셔 <1517번역박통사, 상, 58b>

랄마다 모로매 冠帶하야 얼우시늘 뫼사오며 샹해 비록 가장 더운 저기라도 부모와 얼우신의 겯틔 이셔난 곳갈와 보션과 행뎐을 밧디 아니하야 <1517번역소학, 9, 2b>

어루신네 자셰히 혜여 보소 <1776염불보권문, 33a>

이 뜻을 어르신께 전달해 주지요<1933영원의미소, 316>

내가 자네의 어르신네와 동창이네 <1929소나타, 134>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어르신'을

 

①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②  아버지와 벗이 되는어른이나 그이상되는어른을높여 이르는 말

 

로 풀이하고 있는데, 원래 이 ‘얼우신'은 그 뜻이 매우 다양하였다. ‘어르신네'에 대한 동일한 한문 원문의 다른 번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도록 한다. <삼강행실도>의 원간본에는 ‘얼우신'이라고 표현한 것을 후대의 중간본에서는 ‘대인(大人)'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한문 원문에 견인된 것이리라. 이때에 ‘얼우신'이라고 부른 ‘합졀'이라는 사람은 그 집의 종이었다.

 

합졀이 닐오대 얼우시니 나랄 하야 아기늘 뫼사와 도라가 부신 마사말 위로하라 하더시니 <1471삼강행실도, 충, 31b>

합졀이 가로대 대인이 날로 하여곰 아랑을 뫼셔 지븨 도라가 써 부인을 위로하라 하시니 <1617 삼강행실도, 충, 2b>

합졀이 갈오대 대인이 날로 하여곰 낭군을 보젼하여 도라가 부인을 위로하라 하여시니<1797오륜행실도, 충, 75a>

 

'대인'이 신분이나 관직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던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어르신네'는 신분이나 관직과는 상관없이 ‘존경할 만한 윗사람'을 일컫는 말로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일찍이 17세기에 그러한 변화를 겪었는데, ‘어르신네'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가 오는 현상으로 알 수 있다. 즉 ‘가문 어르신네, 일가 어르신네, 싀어르신네, 밧갓 어르신네, 백부장의 어르신네' 등등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 일가친척 중의 웃어른도 ‘어르신네'라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직접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그 앞에 붙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가、문 얼-유신내 뎌러흐시니 규이업시 놀랍다<1636병자일기, 446>

리판 셔가 그 편지를 넓어 들니며 통긔는 누가 흐얏슬듯 흐냐 네 쇠어루신 네가 흐셧지<1911치악산, 하, 刃>

그 날붓터 부모겨오셔 말슴을 곳치 서고 일가 어루신니 공경흐여 되졉흐시니 <18bK한중록, 22>

나보다 년 아리군 밧갓 어루신네는 어디 가셧소<1908빈상셜, 87>

xx경찰서 경제계 주임이던 백부장의 어르신네 이 백주入仁卜아닌가<19妬미스터 빙\ 292>

(박) 너 셔울 교동 사는 한참봉이라고 그젼에 남촌 집에 가죠 오시든 이를 성각흐겟늬 (계) 경갑이 어루신네요 (박) 올라 그 사람 말 이다<1였名송뢰금, 20>

 

그런데 자신의 부친은 절대로 ‘어르신'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1인칭을 높이지 않는 국어의 특징으로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면 ‘어른'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르신'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할 때에만 사용되었지만, ‘어른'은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범칭의 성인을 말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어른'에는 높임의 의미가 거의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주격 조사 '-께서'와 '-이 /-가'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다음 예문의 ‘어른'에서는 높임의 뜻을 찾기 어렵다.

 

보ㅅ짐 지고 가시난 어룬 거긔 잠깐 계십시오<1911화세계, 86>

 

국어에서 사람을 지칭하는 어휘들이 높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상을 보고 그 시대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고령사회란 걸 직감합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죠. 그런 탓에 경로석 앞에도 서 계신 어르신들이 적지 않습니다. 간혹 연세가 비슷해보이는데도 자리에 앉아있던 어르신이 벌떡 일어나 앞에 서있는 어르신에게 자리양보하는 경우가 눈에 띕니다.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어르신이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젊은 사람 눈에야 ‘연세가 거기서 거기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나이드신 분들은 딱 보면 “아! 나보다 나이 많으시다!” 느낌 확 옴에 틀림없습니다. 어쨌거나 훈훈한 모습이죠.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 인성이 메말랐다’ ‘어른 못알아본다’ 등등 말 많은 시절인데 어르신들끼리라도 예를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 공경과 효가 우리사회 명제지만 현실은 정반대죠. 지적이라도 하면 꼰대소리 듣기 십상이고, 젊은이들 눈치살펴야 하는 세상이니까요. 물론 비논리와 불합리로 무장한 성마른 노인들도 있습니다. 세대간 이해와 양보의 미덕이 필요한 이유죠. ‘어쩌다 어른’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나 ‘반드시 어른’이 됩니다.

어르신은 어른의 존칭어.  ‘얼다’란 동사에서 왔다는 게 통설입니다. ‘얼은’의 존칭어인 ‘얼으신’이란 관형어가 ‘어르신’이란 명사로 굳어진 것으로  ‘어르신 네’의 줄임말이라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어르다’ ‘얼다’는 무슨 뜻일까? 


신라 진평왕때 백제무왕이 지었다는 향가 ‘서동요’가 있습니다. 서동이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꾀어내어 아내로 삼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얽힌 노래죠. “서동요에 나오는 ‘얼어두고’란 표현이 ‘교혼하여 두고’란 뜻이다. ‘얼다’라는 말은 오늘날까지 얼싸안다, 어울다(섞다), 어울리다라는 말로 파생되어 왔다”(우리말어원연구/최창렬) ‘얼다’는 남녀의 ‘교혼’과 관련된 행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시쳇말로 ‘남녀가 사랑하는 행위’죠.

‘얼다’는 ‘얼싸다’ ‘얼싸안다’ ‘어울다’ ‘어울리다’로 발전합니다. 이로 미뤄 ‘얼씨구 절씨구’란 후렴구나 각설이타령의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어쩔씨구 옹해야~’ ‘얼싸~ 좋네~풍년이요’ 할 때의 ‘얼’ 역시 계열어로 보입니다.

‘얼’이 교혼, 교미의 뜻이란 점에서 각설이타령 등에 보이는 ‘얼씨구’ 등의 후렴구가 ‘얼다’에 풍자적 의미를 담아 진화한 게 아닌가. 한편으론 ‘어우르다’ ‘어울리다’ ‘아우르다’로 확장되고... 서로 감싸안고, 좋아하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 나아가 좋은 의미, 재미있다는 뜻까지 아우른 게 아닌가 합니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심상정-안철수-홍준표 구도로 치러질 것이다. 나로서는 바라는 구도다. 좌파 두사람, 얼치기 좌파 한사람, 우파 한사람이 경쟁하는 장미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선후보때 언급한 내용입니다. ‘좌파 두사람’은 문재인 심상정 후보를, ‘얼치기 좌파’는 안철수 후보를 지칭했던 겁니다. 얼치기 좌파는 이도 저도 아닌 좌파란 뜻이죠. ‘얼치기’에 대한 석연한 말뿌리 분석은 없습니다. 동이는 가능성의 하나로 식물이 자라면서 가지치기를 하는 분얼과 연관된 게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벼과 식물은 종족보존을 위해 커가면서 가지치기를 합니다. 모가 자라면서 곁가지들이 많이 나오는 분얼기라는 게 있습니다. 분얼이 잘 이뤄져야 벼이삭이 많이 달리죠. 즉 얼치기란 본류가 아닌 아류, 곁가지,새끼가지를 뜻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얼이라는 말이 남녀의 교혼을 뜻하나 나아가 후세를 만드는 일, 벼과식물의 새끼치기인 분얼과도 공교롭게 의미가 통함을 보여줍니다.

 

 

우리 시대 ‘임계장’, 경비원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주민의 괴롭힘을 호소하며 세상을 등진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쓴 근무일지

 

 

 

“주민께 친절봉사, 인사 철저히, 순찰 강화.”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희석(59)씨가 빼곡히 적은 근무일지입니다. 최씨는 일지에 차량점검 한 시각을 초 단위까지 적어놓을 정도로 성실하고 꼼꼼했습니다. 주민들은 최씨를 ‘맑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를 2년 가까이 봐온 한 주민은 “주차된 차가 움직일 걸 방지하려 받침대까지 손수 만들 정도로 성실했다. 강아지에게 인사할 정도로 착해서 불평 한마디 하질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평 남짓한 경비실 구석에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씨는 지난 3일을 마지막으로 근무일지를 더 적지 못했습니다. 대신 격의 없이 지냈던 입주민에게 지난 10일 새벽 삐뚤빼뚤하게 적은 글을 보냈습니다. “저 너무 억울해요.” 최씨는 결국 그날 세상을 등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경비원 최희석씨의 비극과 우울증을 앓아온 김한성(가명·71)씨의 사연을 취재한 사회부 사건팀 배지현입니다. 최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한 입주민의 ‘갑질’이었습니다. 유족과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최씨는 지난 4월부터 주차 문제로 입주민 심아무개씨에게 지속적인 협박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최씨는 생전에 도 넘은 괴롭힘을 알리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친형인 최광석씨는 “입주민이 ‘경비 주제에 사장이 나가라고 하면 머슴이 나가야지’라며 관리사무소로 동생을 끌고 가기도 했다고 들었다. 동생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죽도 넘기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입주민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경찰에 심씨를 고소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툭하면 심씨는 그만둘 것을 요구하며 강도 높은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는 결국 최씨가 목숨을 끊고 나서야 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됐습니다.

 

갑질로 인한 고통은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에게 따라붙는 그림자입니다.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하고 고령에 임시직 일자리를 경험하며 써 내려간 노동일기 <임계장 이야기> 저자인 조정진(63)씨는 빌딩 경비원 등 여러 계약직 노동 가운데 아파트 경비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한 입주민은 음식물 잔반통을 씻던 조씨에게 “수압을 세게 해 수돗물을 낭비한다”며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마스크나 방한복을 부탁하면 “얼마나 더 살고 싶어서 그러느냐”며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선임 경비원은 조씨에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 일을 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조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마주하는 일상은 인격이 말살당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임계장의 제보도 있었습니다. 11년 가까이 경비원이었던 71살 김한성씨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습니다. 한 주민은 수시로 경비실을 들여다보며 김씨가 쉬고 있지 않는지 5년 동안 감시했다고 합니다. 또 목이 말라 찬물을 마시러 관리사무소에 가면 바로 민원을 넣어 김씨가 정수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협력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를 당한 김씨는 한동안 부인이 그 주민으로 보이는 등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김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맺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같은 인간인데….”

 

임계장들에게는 ‘작은 방패’조차 없습니다. 특정 주민의 일방적인 갑질이 시작되면 오로지 혼자 견뎌내야 합니다. 일자리를 소개해준 협력업체도, 아파트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소도 방어막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이들을 보호할 법적 근거도 부족합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자 등이 경비원에게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이를 처벌할 조항은 마련해두지 않았습니다. 용역업체를 통해 단기계약으로 일하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입주민과 개인 문제로 해결하라는 건 이미 갑을관계가 형성된 아파트 공간에서 부당한 해결책입니다.

 

최씨의 죽음 이후 경비원 보호장치 마련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행 경비업법에 경비원들의 복지나 피해방지 조항을 넣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경비원들도 최소 근로시간과 주휴일 등을 보장받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또 경기도 고양시는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나 폭행 등이 발생했을 때 관리사무소와 그 입주민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경비원 인권지원 조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경비원 갑질행위 관련 특별 신고 기간을 기한 없이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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