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어_ 복사뼈, 횡경막, 갈매기살
여러분은 공이나 돌 같은 것에 발을 맞아 보신 적이 없으신지요? 뼈에 정통으로 맞으면 정말 아프지요. 그런데 발목을 맞았을 때 여러분은 ‘복숭아뼈’를 맞았다고 하시나요? 아니면 ‘복사뼈’를 맞았다고 하시나요?
우리 몸 중에서 발목 부근에 둥글게 나온 뼈가 있는데, 이걸 가리켜서 ‘복숭아뼈’라고 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아마 그 둥근 뼈의 모양이 복숭아 같다고 해서 ‘복숭아뼈’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복숭아뼈’는 표준어가 아니고 ‘복사뼈’가 표준어입니다.
어렸을 때 자주 부르던 동요 가운데 ‘나의 고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노래 가사에 보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 ‘복숭아꽃’이라는 말은 과연 맞는 표현인지 궁금해집니다. 복숭아나무에서 피는 꽃은 ‘복숭아꽃’이라고 하고, 이것을 줄여서 ‘복사꽃’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를 줄여서 ‘복사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 발목 부근에 있는 이 뼈는 ‘복숭아뼈’가 아니라 ‘복사뼈’가 맞습니다.
목련·진달래·개나리·벚꽃에 이어 복숭아꽃이 만개해 봄꽃들의 향연을 이어 가고 있다. 중국 진(晋)나라 때의 고사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배경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계곡이었다. 유비·관우·장비가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도원결의(桃園結義)도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밭에서 이루어졌다.
복숭아꽃의 한자어는 도화(桃花)다. 순 우리말인 ‘복숭아’의 준말은 ‘복사’이며, ‘복숭아꽃’의 준말은 ‘복사꽃’이다. 따라서 ‘복숭아꽃=복사꽃’ ‘복숭아나무=복사나무’다. 그렇다면 ‘복숭아뼈=복사뼈’도 성립할까. ‘복숭아뼈’ 또는 ‘복사뼈’는 발목 부근에 안팎으로 둥글게 나온 뼈를 이른다. 불행히도 ‘복숭아뼈=복사뼈’는 성립하지 않는다. ‘복사뼈’만이 표준어다.
‘복사’가 ‘복숭아’의 준말이므로 ‘복사뼈’와 ‘복숭아뼈’가 같은 말이어야 함에도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복사뼈’는 일종의 의학 용어, 즉 전문 용어다. 둘 다 써도 되겠지만 전문 용어로 ‘복사뼈’만 사용하고 있어 ‘복사뼈’를 표준어로 선택하고 ‘복숭아뼈’를 버렸다. 표준어 선택의 문제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 용어와 관련해서는 ‘두려움증’도 ‘두렴증’, ‘어지러움증’도 ‘어지럼증’이 표준어다.
그곳에 가면 복숭아 축제를 볼 수 있다. 그곳은 1970년대 중반까지 나주 배, 대구 사과와 함께 전국 3대 명물 과일 산지로 손꼽혔다. 지금은 도시화로 인해 복숭아 과수원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명성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곳은 바로 부천이다. 부천의 옛 이름은 '소사'인데 그보다는 오히려 '복사골'이란 말로 더 유명하다. 복사골은 복숭아가 줄어진 '복사'와 마을을 뜻하는 '골'이 어우러진 말이다. 부천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복사골 예술제'가 개최된다.
'복사'는 어원적으로 복숭아의 옛 형태인 '복셩화'에서 '복숑와 > 복쇼아 > 복사'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복사꽃'은 당연히 '복숭아꽃'의 준말이다. 한자어로는 '도화(桃花)'다. 현대 국어에서 복사는 복숭아에 밀려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복사골이나 복사꽃같이 합성어 형태로 많이 쓰인다. 이 말이 또 하나의 근사한 합성어를 이룬 게 '복사뼈'이다. '발목 부근에 안팎으로 둥글게 나온 뼈'를 가리키는 이 말 역시 원래는 '복숭아뼈'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사뼈보다는 복숭아뼈를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말에서의 대접은 오히려 그 반대다. '복숭아뼈'는 '복사뼈의 잘못'이라 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복사뼈'가 이미 의학 용어로 널리 쓰여 복숭아뼈를 버리고 복사뼈만을 표준어로 인정해 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우리 몸에서 '복숭아뼈'란 곳은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안상순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은
"복사는 복숭아의 준말인데도, 기이하게 '복숭아뼈'는 그동안 규범으로인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복사'는 자립적인 말로는 거의 쓰이지 못하고 합성어로나 겨우 쓰이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복사뼈' 보다 '복숭아뼈'를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고 설명한다. 우리 몸의 특정 부위를 나타내는 말 중에 '횡경막'은 아예 틀린 표기를 맞는 것으로 알기 십상인 경우다. '횡경막의 수축과 이완 작용', 생물시간에 호흡에 관해 배울 때 많이 나오는 이 단어의 바른 표기는 '횡경막(橫經膜)'이다. '횡경막'은 아마도 한자 의식이 흐려진 데다 '횡격막'의 발음이 [횡경막]으로 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것 같다. '횡경막'은 우리 고유어로 하면 '가로막'이다. 배 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전적 풀이는 '포유류의 배와 가슴 사이에 있는 막'이다.
고깃집에 가면 차림표 중에 '갈매기살'이란 게 있는데 이 '갈매기살'의 어원도 실은 여기에 있다. 돼지의 가슴과 배를 가로막고 있는 막에 붙어 있는 살이 바로 '가로막살'이다. 이 부위는 분량은 적지만 기름기가 없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을 내 예전부터 귀한 육질로 쳤다. 이 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접미사 '-이'가 붙어 '가로마기살'로 바뀌고 다시 '이'모음역행동화에 의해 '가로매기살'이 됐다가 글자가 축약돼 '갈매기살'로 굳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니 갈매기살은 바다의 갈매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돼지고기의 일종인 것이다.
'팔의 위아래 마디가 붙은 관절의 바깥쪽'을 나타내는 말은 '팔꿈치'일까 '팔굽'일까? 둘 다 맞은 것 같지만 사전에서는 '팔굽'은 '팔꿈치'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다. '뒤꿈치(0)'와 '뒷굽(X), 발굽(X)'의 관계도 비슷하다. '발의 뒤쪽 발바닥과 발목 사이의 불록한 부분'은 '뒤꿈치'라고 한다. '발꿈치'도 같은 말이며 '발뒤축'도 비슷하게 쓰인다. 그러나 이를 '뒷굽' 또는 '발굽'이라 하지는 않는다. '발굽' 또는 '굽'은 '초식 동물의 발끝에 있는 크고 단단한 발톱'을 이르는데, 이는 다른 말이므로 구별해야 한다. '말밥굽'과 같이 쓰인다. '굽'은 도 '구두 밑바닥의 ㅟ축에 붙어 있는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다'와 같이 쓸 때의 '굽'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로 쓰인 '뒷굽(뒷굽을 갈았다)'에서 '뒷'은 불필요한 군더더기란 점이 드러난다. '굽' 자체가 의미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단단한 물질이 필요하다. 다름 아닌 뼈다. 부드러운 살이 감싸고 있다. 신체 부위에 따라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중 과일의 명칭을 딴 뼈가 있다. 복숭아 뼈다. 복사뼈라고도 한다. 발목 위에 안팎으로 둥글고 도도록하게 튀어나온 뼈 말이다. 발목이 두 개인데다 안팎으로 있으니 우리 몸에는 모두 4개의 복숭아뼈가 있다. 왜 하필 복숭아 명칭을 붙였을까? 살구 등 복숭아씨와 비슷한 과일이 많은데도 말이다. 그 뼈가 복숭아씨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사실 만져보면 복숭아씨처럼 생겼지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게다. 무엇 때문일까? 과학적 근거 없이 그냥 대대로 믿어온 습속(習俗)에 답이 있다. 복숭아, 즐겨 먹지만 다른 과일과 달리 금기(taboo)시 될 때가 많다.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중국 하나라 때 한 지역의 제후가 있었다. 성격이 포악하기로 악명 높은 이 제후는 칼로 천자 자리를 빼앗아 온갖 비행을 자행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한 젊은이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제후를 그만 몽둥이로 때려 단번에 죽여 버렸다. 이때 사용했던 몽둥이의 재질이 복숭아나무였다. 그 제후가 죽은 뒤 귀신이 되어 이 사실을 다른 귀신들에게 알렸다. 이때부터 귀신들은 복숭아나무만 들어도 치를 떨며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복숭아의 한자를 보면 축신(逐神)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자로 '桃(도)'다. '木'과 '兆(조)'가 합쳐졌다. '兆'는 '점괘 또는 점치다'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미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하려는 안간힘과 조바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퇴마(退魔)심리가 늘 존재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점을 쳤다. 가장 원시적 방법으로 거북 등딱지를 불에 그슬려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 등이 갈라진 모습이 '兆' 로 형상화 됐다. 점 칠 때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선신(善神)은 도움을 주지만 악신(惡神)은 늘 방해했다. 악신 때문에 길복보다 흉화의 점괘가 많았다. 이런 악신을 쫓기 위해 방법이 필요했다. 악신이 제거되면 흉화보다 길복의 점괘를 얻을 수 있다는 점과 귀신이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한다는 점이 맞아 떨어져 복숭아 '桃'자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역할을 복숭아나무는 최첨단과학시대인 요즘에도 충실히 하고 있다. 제사상에 복숭아는 올리지 않는다. 뜰 안에 심지도 않는다.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제사 때 조상신들이 올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무당도 복숭아나무가지를 사용한다. 부적도장 역시 복숭아나무로 만든다. 귀신에 씌었다는 병자에게 복숭아나무가 사용된다. 가지로 몸을 두드리거나 쓸어내렸다. 몸속 귀신이나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첫돌 때 아이에게 복숭아 모양을 새긴 반지를 끼워 잡귀 접근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특히 복숭아는 양(陽)인 반면 귀신은 음(陰)이다. 양이 음을 물리치니 결국 복숭아가 귀신을 물리친다는 얘기다.
어떤 일에 꽉 잡혀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남에게 어떤 약점이나 단서(端緖)를 잡힐 때, 우리는 '발목 잡히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 왜 하필 발목인가? 더 잡기 쉬운 손목도 있고, 머리채도 있는데 말이다. 귀신(특히 물귀신)이 인간을 잡을 경우 주로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럼 귀신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불문가지. 발목 부위의 복숭아나무를 붙여 놓으면 된다. 하지만 번거롭고 불편하다. 귀신을 속이면 된다. 발목 부위의 뼈를 복숭아뼈라고 이름붙이면 된다. 그래서 발목 부위의 튀어나온 뼈가 본의 아니게 복숭아뼈가 된 것이다.
방귀께나 뀌는 인간들이 자주 딴 짓을 하다 발목 잡힌다. 특히 정치인이 많다. 그들의 복숭아뼈는 축귀(逐鬼)적 기능이 없어서 일까? 아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지나치게 복숭아뼈의 기능을 맹신하지만 귀신들은 절대 그들의 발목잡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귀신들은 정치인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신들은 다 안다. 큰 것 해 먹고도 끝까지 오리발 내미는 정치인들, 명심해라! 오리발에는 복숭아뼈가 없다. 그래서 귀신들은 더 쉽게 발목을 잡는다.
<신체 어휘>
관자놀이 : 귀와 눈 사이의 맥박이 뛰는 곳, 그곳에서 맥박이 뛸 때 관자가 움직인다는 데서 나온 말
귓바퀴 : 걸귀의 드러난 가장자리 부분
꼭뒤 : 뒤통수 한가운데
눈두덩 : 눈언저리의 두두룩한 곳
눈시울 : 눈언저리의 속눈썹이 난 곳
눈초리 : 눈의 귀 쪽으로 째진 부분
단전 : 배꼽 아래로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
덜미 : 목의 뒤쪽 부분과 그 아래 근처
명치 : 사람의 가슴뼈 아래 한가운데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
살쩍 :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
오금 : 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
장딴지 : 종아리 뒤쪽의 살이 불룩한 부분
정강이 : 종아리의 앞면 뼈 부분
콧방울 : 코끝 양쪽으로 둥글게 방울처럼 내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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