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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_불교의 법명을 가진 남자 신도

by noksan2023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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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_불교의 법명을 가진 남자 신도

 

 

거사

 

 

참  뜻 : 걸사(乞士)는 본래 비구(比丘)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위로는 부처에게 법(法)을 구걸하고 아래로는 시주에게 밥을 구걸한다고해서 나온 말이 바로 이 걸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칭 거사라고 하는데, 거사라는 호칭은 이미 중국에서 생겨난 호칭으로서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말이다.

 

바뀐뜻 : 오늘날 거사(居士)는 머리 깎고 출기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의 법명(法名)을 가진 남자 신도를 일컫는말로 쓰인다.

 

예를 들어, 

 

- 법운 거사께서 먼 길을 오셨는데 주지스님께서 행적이 묘연하시니 일이 참으로 난처하게 됐습니다.

 

 

 

 

처사, 거사, 보살

 

 

처사 거사 보살

 

 

 

거사는 승려가 아니라 재가에서 불도를 닦는 사람이다. 범어 꿀라빠띠(kulapati), 그르하빠띠(G?hapati)를 옮긴 것이다. 장자(長者)로 번역한다. 재가자란 세속의 가정을 떠나지 않고 붓다의 법을 믿고 따르는 신행자이다. 중국 혜원의 『유마경의기』에 자산을 널리 쌓아두고 재산과 함께 사는 선비, 도를 닦으며 집안에 사는 도사를 거사라고 하였다. 후세에는 남자가 죽은 뒤 그의 법명 아래 붙이는 칭호로도 쓰고 있다. 송대 이후 일반 사대부들도 썼으며 현재는 일반인도 쓴다.

 

범어 꿀라빠띠(kulapati), 그르하빠띠(Gŗhapati)를 옮긴 것이다. 빨리어는 가하빠띠(gaha-pati)이다. 음역으로는 가라월(迦羅越, 伽羅越), 의역으로는 장자(長者) · 가주(家主) · 가장(家長) 등으로 번역한다. 장자는 인도 사성계급 중 폐사(吠舍, 바이샤 vaiśya) 종족의 부호를 가리켰고, 불교의 경장과 율전에서는 이들 바이샤 종족의 부호를 거사라고 일컬었다. 더러는 재가에 있지만 도가 있는 선비를 가리키기도 했다.

 

초기 불전의 거사

 

재가자는 ‘집에 사는 이’(gŗhastha), ‘집을 소유하고 사는 이’(gŗhin), ‘집을 돌보는 이’(agārika, āgārika)를 뜻한다. 그는 세속적인 가정을 떠나지 않고 붓다의 법을 믿고 따르는 신행자이다. 재가 남자는 우파사카(Upāsakā, 優婆塞), 즉 청신사(淸信士) 혹은 선남자(kulaputra), 근사남(近事男)으로 호칭되었다. 재가 여자는 우파시카(Upāsika, 優婆夷), 즉 청신녀(淸信女) 혹은 선여인(kuladuhitŗ), 근사녀(近事女)로 호명되었다. 또 좋은 집안의 남성 불자를 족성자(族姓子), 여성 불자를 족성녀(族姓女)라고도 불렀다.

 

『잡아함경』에는 재가불자란 “집에 머물며 청정한 삶을 살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이에 저를 증명하고 알아주십시오”라고 다짐한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증일아함경』에서 우바새들 가운데 지혜 제일인 질다 장자, 신묘한 덕이 뛰어난 건제아람, 외도를 항복받는 굴다 장자, 깊은 법을 잘 설명하는 우파굴 장자, 늘 앉아 참선하는 하타카 알라바카, 이론으로 이길 수 없는 비구(毘俱) 바라문, 게송을 잘 짓는 우팔리 장자 등을 거명하고 있다. 우바새뿐만 아니라 우바이의 경우도 성인에 올랐다. 처음으로 도를 깨달은 난타바라, 지혜 제일의 구수다라, 언제나 좌선하기를 좋아하는 수비야, 설법을 잘 하는 앙갈사, 외도를 항복받는 바수타, 여러 가지로 의론하는 바라타, 항상 욕됨을 참는 무우(無憂),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시리(尸利) 부인 등의 우바이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 불교를 믿는 재가자는 농촌보다는 도시에 거주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전에서 거론되는 재가자의 유형은 왕과 왕족, 대신과 귀족, 지방 관리, 촌장, 장군, 바라문, 사제, 교리학자, 수학자, 의사, 지주, 거상(巨商), 대상(隊商), 고리대금업자, 고급 유녀(遊女) 등과 같이 다양했다. 이들은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이다. 한편 이들 중에는 금속 세공업자, 이발사, 농부, 코끼리 조련사, 거지, 범죄인 등과 같이 하층의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중 무역업에 종사하는 거상 · 대상 등의 상인 계층들은 당시의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불교 교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은 경제적 · 사회적 안정에 더해 정신적인 충만과 심리적인 안녕을 갈망하였다. 이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승한 청신사와 청신녀로서 불교의 신행과 증득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이 때문에 대승불교가 일어나자 이들은 불탑신앙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장자와 거사

 

그런데 불교에서 거사는 늘 예부터 장자라고 일컬어온 존재와 혼동하여 왔다. 중국 혜원의 『유마경의기』 권1 말에 보면, 거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산을 널리 쌓아두고 재산과 함께 사는 선비를 거사라고 하였다. 둘째는 재가에서 도를 닦으며 집안에 사는 도사를 거사라고 하였다. 후자는 곧 불교의 거사로서 인도의 아난타핀디카[급고독(給孤獨)]장자, 욱가(郁伽)장자, 유마(維摩) · 현호(賢護)거사 등 늘 불도를 닦는 재가 보살거사가 대표적이다. 중국 양나라 시대의 부대사(傅大士), 주옹(周翁)거사, 북위의 유겸지(劉謙之), 당대의 이통현(李通玄), 방온(龐蘊)거사, 왕유(王維)거사, 청대민국초의 양문회(楊文會), 구양경무(歐陽境無)거사, 한국 고구려의 왕고덕(王高德)거사, 신라시대의 소성거사:元曉, 부설거사 [陳光世], 고려시대의 청평거사:李資玄, 백운거사:李奎報, 동안거사:李承休, 조선시대의 효령대군:李補, 월창거사:金大鉉, 보월거사[劉聖鍾], 침산(枕山)거사:이동환, 근대의 상현거사:李能和, 백봉거사:金基秋, 종달거사[李喜益], 효성거사:趙明基, 불화거사[이재병], 이한상거사, 불연거사:李箕泳, 병고거사:高翊晉, 법기거사[姜丁鎭] 등도 불도에 능통한 재가 거사였다. 대개 집에 머물며 도를 닦는 남자를 거사라고 하고, 또한 집에 머물며 도를 닦는 여자도 거사(居士)라고 하였다.

하지만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부인(勝鬘夫人) 이래 여성 재가 불자는 승만부인(僧滿夫人, 진평왕 후비), 덕만부인(德曼夫人, 선덕여왕), 승만부인(勝鬘夫人, 진덕여왕), 육영수부인, 법련화부인(법련사 시주자), 길상화부인(길상사 시주자), 김미희부인 등과 같이 ‘부인’(夫人)이라고 불렀다. ‘부인’은 남자의 정인 혹은 남의 아내의 높임말이라는 뜻만이 아니었다. 관음보살의 경우처럼 여성 불자들을 흔히 보살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보살은 여성성을 머금은 주체로서 자주 나타날 뿐이다. 또한 보살은 ‘보살이 되라’는 권유 또는 ‘보살이 되겠다’는 다짐의 의미에서 일컬었을 뿐 여성 불자들만 보살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남성 불자들도 얼마든지 보살이 될 수 있었다.

 

중국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서는 “도와 예가 있는 처사를 거사라 하였다.” 오나라 증능개의 『재만록(齋漫錄)』에서는 “거사라는 이름은 상나라와 주나라 때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한비자』에서는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졌을 때 동해 가에 거사 임율(任矞)과 화사(華士)가 있었는데 이들은 ”천자의 신하 노릇하지 않고 제후와 벗하지 않고 밭을 갈아 먹고 땅을 파서 마신다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자못 도와 예가 있었지만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은 처사들”이었다고 일렀다. 그 뒤 중국과 일본에서는 대부분 경장과 율전에서 설한 본의에 의거하지 않고 널리 일컫기를 도가 있는 처사를 거사라고 하였다.

 

정리해 보면 거사는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자 집에 머무르면서 불도에 뜻을 둔 이를 가리켰다.

 

① 인도의 네 가지 계급 중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바이샤 종족의 부자를 일컬었다.

② 중국에서는 학식과 도덕이 높지만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켰다.

③ 출가하지 않고 가정에 있으면서 불문에 귀의한 남자를 가리키며, 여자는 여거사(如居士)라고 하였다.

④ 후세에는 남자가 죽은 뒤 그의 법명 아래 붙이는 칭호로도 쓰고 있다. 장군(將軍)이나 귀인(貴人)은 대거사(大居士), 사인(士人)은 거사(居士)라고 하였으며, 송대 이후에는 일반 사대부들도 자칭해서 썼으며 현재는 일반인도 쓴다.

 

한편 유교에서 일컫는 산림처사(山林處士)와 달리 불교에서는 출가했다 환속한 이를 ‘처사’라고 부른다. 이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거사와 처사는 다르나 일부에서는 처사와 거사를 함께 쓰기도 한다. 하지만 부호를 장자라고 하는 것처럼 재가불자는 거사라 해야 옳다.

 

 

 

처사 vs 거사

 

 

처사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많은 사찰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몇몇 스님들과 부녀자들에 의하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시대에 남자들이 절에 간다는 것은 뜻이 있어 출가를 결심한 사람을 제외 하고는, 그야말로 할 일 없고 호구지책으로 절을 찾아간다거나, 아니면 떠돌이 신세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고자 찾아든 자들이 많았다. 그러니 그 시절 절에 가는 남자들을 자연스럽게 무능력한 ‘처사’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불교가 대중화 되고 각종 법회와 수련회, 템플스테이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을 배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중에 특히 사회적으로 기반을 닦고 생활에 여유를 갖는 40대 이후 중년 남자 신도들이 절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재가신도 특히 남자 신도들에게 부르는 호칭에 문제가 있다.

 

출가 스님들은 같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스님을 ‘도반(道伴)’이라 하고, 일반 재가불자들이 법회에 참석하여 부처님 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자들은 ‘법우(法友)’라 하여 상호 존중으로 이름 뒤에 붙여 사용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분이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면 스님들은 법명 뒤에 ‘○○스님’ ‘큰스님’ 또는 직책에 따라 ‘주지스님’ ‘총무스님’등 하면 무난할 것이다. 그러나 재가불자 특히 남자신도를 부르는 데는 통일되지 않고 있다. 여자신도님은 이름 뒤에 ‘보살님’으로 통칭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남자신도를 부를 때 일부 스님이나 여자보살님들이 유교문화의 잔존인 ‘처사’라고 불러지고 있어 매우 잘못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금강경」에 무엇 무엇 때문에 단지 이름이라 한다. 라는 말이 곳곳에 나온다. 한 예로 제9분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에 부처님의 제자 중 성문승의 수행 단계별로 각기 이름이 있으니, 「색성향미촉법을 잘 다스려 밖의 경계에 물들지 않고, 성인의 무리에 들어갔다(入流)하여 이름을 수다원(須陀洹)이라 부르며, 일반중생은 수많은 윤회를 거듭하지만 성인의 두 번째 단계인 사다함의 경지에서는 한번만 갔다 오므로(一往來) 이름을 사다함(斯陀含)이라 부르며, 성인의 세 번째 단계인 아나함의 경지에서는 다시는 윤회를 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 자(不來)라 하여 이름을 아나함(阿那含)이라 부르며,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하여(實無有法) 이름을 아라한(阿羅漢)이라 부른다.」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은 이름을 갖게 된다. 사람도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이름을 지어준다. 그 이름에는 소망이 담겨있다. 이름처럼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름으로 인하여 잘되기도 하는가 하면, 이름으로 인하여 그 이름에 구속을 받는 경우도 있다.

 

「금강경」 곳곳에 다만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름은 단지 이름뿐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할 수 있지만 이름 또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교단을 구성하는 요소를 사부대중이라 한다. 「금강경」 제32분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에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설하여 마치시니 장로수보리(長老須菩提)와 비구(比丘) ․ 비구니(比丘尼) ․ 우바새(優婆塞) ․ 우바이(優婆夷)와 일체세계 천인아수라들이 모두 기뻐하고 받들어 봉행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를 사부대중이라 하여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교단을 형성하고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즉 남자스님을 비구(Bhiksu), 여자스님을 비구니(Bhiksuni), 남자신도를 우바새(Upasaka), 여자신도를 우바이(Upasika)라고 한다. 출가 스님인 비구, 비구니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재가 신도인 우바새, 우바이는 불교를 믿고 착한 일을 행하며, 삼귀(三歸), 오계(五戒)를 지키는 재가신도들이다. 오늘날 출가스님을 비구, 비구니라 부르는 것은 귀에 익숙하게 들리지만 재가신도를 우바새, 우바이로 부르는 종단이나 사찰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불교 종단이 출가 스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또한 재가신도는 남자신도 보다는 보살이라 칭하는 여자신도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살(菩薩)이란 범어 보리살타(Bodhisattva ; 菩提薩埵)의 준말로 보리(Bodhi)는 진리, 깨달음[覺]이고, 살타(sattva)는 중생(衆生), 유정(有情)이니 「깨달음 속에 있는 중생」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보살은 깨달음의 마음을 내며[上求菩提], 중생을 제도하는 것[下化衆生]을 최상의 과제로 삼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란 부처보다 한 단계 낮은 경지에 있는 수행이 깊고 원력이 높은 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가 보살이 되어야 하며, 보살운동을 전개하여야 마땅하다. 이렇게 훌륭한 이름을 여자 신도를 부를 때만 사용한다.

 

거사(居士)란 말은 부처님당시 재가남자신도로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유마힐(維摩詰)거사 이름에서 유래한다. 거사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삼귀(三歸) ․ 오계(五戒)를 지키며 불교신행(信行)을 하는 재가 남자신도를 ‘거사’라 부르다. 유마거사의 「유마경」에는 ‘부처는 한 가지 소리로 설법하지만 중생은 이를 여러 가지로 듣는다.’고 하는 유명한 가르침이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유마거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얼마나 견고하고 수행과 덕이 높은가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남자 신도를 ‘거사’라 불러져야 하고, 또한 남자 신도역시 유마거사와 같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업을 쌓고 삼귀(三歸), 오계(五戒)를 지키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반면 처사(處士)란 유교사상을 이념으로 한 조선조 시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골에 낙향하여 은둔과 도피, 세상을 부정과 원망으로 할 일없이 세월을 보낸 무능한 남자들을 처사라 하였다. 이렇게 좋지 못한 이름을 일부 스님이나 여자 신도님들이 재가불자 남자 신도를 부를 때 ‘처사’라고 부르는 것은 불자로서 매우 유감이다. 이러한 배경은 아마도 조선조 500년을 지내 오면서 여자신도들의 역할보다 남자신도들의 역할이 전무하다시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되며 또한 남자신도 스스로가 반성하여야 할 부분이다.

 

타 종교에서 신분계급을 나타내는 말 중 장로(長老)와 집사(執事)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본래 불교용어이다. 장로(Ayusmart ; 長老)는 범어 ‘아유솔만’이라 하여 음역하면 존자(尊者), 구수(具壽)라고 번역한다. 장로란 덕(德)이 높고 수행을 많이 하여 지혜와 도덕이 뛰어나고 나이가 많은 분을 일컫는다. 「금강경」 제2분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에 「장로수보리존자(長老須菩提尊者)가 대중가운데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장면이 나오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32분에서 장로수보리가 나온다. 이미 부처님당시부터 장로라는 말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집사(執事)란 절집에서 온갖 살림을 맡아 꾸려가는 사람을 집사라 하였다. 즉 오늘날 원주소임 역할을 하는 스님을 집사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장로와, 집사는 불교집안에서 사용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로 빼앗기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처사’라는 이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일부 잘못된 소견을 갖고 계신분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한 남자신도를 거사라 하고, 그렇지 못한 일반 남자신도를 처사라 한다.”라는 그릇된 소견을 갖고 계신분이 있다. 그런가 하면 불교가 암울한 조선시대에는 일부 스님 네들이 자기 자신을 낮추기 위하여 스스로를 ‘처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야말로 아무런 근거가 없고, 그릇되게 이해하고 잘못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불교가 대중화 생활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존중과 남을 높여 줄 때만이 나의 존재 가치도 올라간다. 여자신도는 ‘보살’이라 대단히 높은 칭호를 사용하는데 왜 남자신도는 천박하고 무능력의 상징인 ‘처사’라고 불려야만 하는가?

 

오늘날 절을 찾는 남자 신도 분들 이야말로 가족을 봉양하고 사회생활에 충실하면서 참 나를 찾고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보살’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보살들을 ‘거사’라 불러야 마땅함에도 유교문화의 잔재, 그것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능력의 상징인 ‘처사’라 불러서야 되겠는가. 불교는 현실 도피가 아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삶을 초월하여 살아야 한다. 남자신도들도 반성하여야 한다. 할 일 없이 그저 절에만 왔다가 기웃거리고 돌아가는 ‘처사’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적극적으로 사찰행사에 참여하고 사회생활하면서 삼귀(三歸), 오계(五戒)를 지키고 수행을 더불어 실시하는 ‘거사’가 될 때 참된 대중불교, 생활불교가 되리라 생각한다. 일부 스님들이나, 여자 보살님들께서도 자각을 하셔서 남자신도를 당당하게 ‘거사’라 불려주기를 바랍니다.

 

 

 

거사란 누구인가?

 

 

▲ 불교사에는 무수히 많은 거사들이 존재했고 그들에 의해 불교가 오늘날까지 전해올 수 있었다. 사진은 올해로 창립된지 29주년을 맞은 거제불교 거사림회 정기법회 모습.

 

 

 

봄볕 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꽃들이 피어 법계를 장엄한다. 그처럼 유구한 불교사의 전개 과정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사들이 출현하여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자 했다. 거사들은 부처님을 만나 삶의 지표를 바꾸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의 꽃이나 향기로 피어나게 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의 평화가 완성되길 희구했다.


불교의 역사적 등장과 교단의 성립에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호혜의 상보적 관계가 필요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 법륜을 굴리고 세상을 깨우기 위해 법고를 울리는 위대한 여정에 올랐을 때는 비구승 밖에 없었다. 때가 이르러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하여 비구니가 교단에 등장하며, 이후 차례대로 우바이 우바새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온전한 교단을 구성하게 된다.

많은 경전이나 불교사상가들이 상가를 화합중(和合衆)으로 표현한 것은 4부대중의 화합 속에서 교단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출가와 재가라는 상보적 관계 속에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화합이 불교의 교단에 필요했던 것이다. 잠자는 세상을 깨우는 법고의 울림을 ‘법화경’에선 기침[謦咳]이나 손가락의 튕김[彈指] 등으로 표현하지만, ‘유마경’에선 불이(不二)의 침묵으로 표현한다. 교단의 존재의의는 잠자는 세상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세상과 인천의 이익과 안락을 위한 일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가하기 전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했다는 소문을 듣고, 빔비사라왕이 찾아와 “깨달아 부처가 되거든 가장 먼저 교화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불교교단의 발전에서 빔비사라왕은 훌륭한 재가신도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죽림정사를 지어 보시했을 뿐만 아니라 초기 불교교단의 초석을 다지는데 다양하게 기여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학문과 덕망을 갖추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거사라 부르기도 했다. 혹은 처사란 단어와 혼용하면서 거사란 단어가 지닌 본질을 호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사란 불교의 독자적인 용어이다. 산스크리트어인 그라파티(grha-pati)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특히 교단의 구성원을 사부대중이라 할 때 이들 중에서 남자신도를 우바새라 부르는데, 거사는 교단의 구성원 중에서 남자 신도인 우바새에 속한다. 우바새이긴 하지만 단순한 우바새가 아니라 학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그러면서도 신심과 수행이 굳건하고 교단의 운영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후원하는 사람들을 거사라 존칭했다.

필자의 견해로는 거사를 좀 더 고상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록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적 신심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물론이며, 불교라는 종교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유지하면서도 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거사인 것이다. 이유는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중생이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중생이 병들면 그들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보살의 근본이라는 유마거사의 설법은 거사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라 본다.

유마거사가 볼 때 중생의 아픔이란, 이분법적인 대립과 갈등 때문에 생긴 것이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과 절대적 사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런 현실을 통찰한 유마거사의 법문 속에는 출가와 재가라는 분별의식도 없으며, 재가와 출가가 상보적 관계라는 의식도 없다. 어느 위치에 있든 불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중심에 거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뿐이다. 유마거사의 상징성은 대승불교운동의 전개와 함께 거사라는 개념이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실천적으로 심화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불교의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은 거사들이 존재했다. 이름을 남긴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중국 청나라 때 팽제청(1740~1796)이 편집한 ‘거사전’에는 역대 중국의 유명한 거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동북아불교가 발전하는데 안팎으로 공헌한 인물들이다. 예컨대 모융을 필두로 양나라의 소명태자, 당나라 때 시불(詩佛)로 평가받은 왕유, 그리고 방거사로 알려진 방온, 원나라의 정치적 기반을 닦은 야율초재, 청나라 거사불교의 대표자인 팽제청, 근대 중국불교의 중흥을 도모한 양인산 등이 있다. 이들이 중국불교의 토착화와 발전에 기여한 공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인도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초기불교의 교단이 정착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아나타핀디카 장자나 빔비사라왕, 그리고 정법대관을 파견해 법의 정신과 불교적 가치를 세계화 하는데 기여한 아쇼카대왕, 엄격한 카스트제도의 한계와 모순을 타파하고 인권의 평등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불교교단을 후원했던 그리스계의 수많은 무역상들도 있다.

무수히 많은 거사들이 있지만 불교의 역사에서 최초의 재가거사, 즉 최초의 우바새는 아그리 장자이다. 그의 방탕한 아들인 야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된다. 탕아가 정신적 방황을 끝내고 청정한 수행자의 길을 가는 것을 보면서 아그리 장자는 부처님을 존경하게 된다. 결국 부처님을 찾아온 아그리 장자는 재가신도가 되어 열심히 수행할 것을 다짐했다. ‘우바새오계상경’에 의하면 아그리 장자는 삼귀계와 오계를 받은 최초의 우바새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바새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역잡아함경’ 제8의 152경이나 ‘잡아함경’ 제33의 927경에는 우바새의 역할과 개념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즉 부처님께서 카필라바스트의 니그로다 숲에 계실 때, 사촌동생인 마하나마가 찾아와 우바새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세속에서 가정생활을 하면서 붓다에게 귀의하고,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하며, 붓다를 따라 출가한 이들에게 귀의하는 사람을 우바새라 하느니라”고 대답한다. 이어 오계를 지키는 것이 우바새의 기본이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어떤 것을 우바새의 믿음이라 하나이까?”라는 질문에 “나의 가르침을 깊이 믿고, 믿음에 편히 머무르며, 외도나 마군들에게 현혹되어 믿는 마음이 파괴당하지 않는 것이니라”라고 대답한다.

또 “어떤 것이 우바새의 보시행이라 하나이까?”라는 질문에는 “우바새는 재물에 인색하지 않고 탐욕의 마음을 버려야 할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되 손수 베풀어야 하며, 베풀고 난 뒤에 후회하지 않아야 하느니라”라 대답한다. “어떤 것이 우바새의 지혜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인생을 전체적으로 꿰뚫어 보아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알고, 무엇이 괴로움을 초래하는가를 알아야 하며, 괴로움을 벗어난 해탈을 알아야 하고,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분명하게 알아서 실천하는 것을 우바새가 지혜를 갖추는 것이라 말한다”라 대답한다.

경전의 내용을 정리하면 우바새는 가정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삼귀의계와 오계를 수지하고, 믿음에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재가 남자신도를 지칭한다. 이들은 보시바라밀을 실천하면서도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기에 수행과 해탈의 완성이라는 불교적 가치가 집약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문답에서 우바새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존재의 근원적 성찰과 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수행하는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사란 단순한 남자신도의 개념을 넘어 지혜를 실천하는 우바새를 말한다. 우바새이지만 평신도의 역할을 넘어 인간의 이성을 확장하고, 인류의 평등과 인류애의 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는 남자신도이다. 세상을 깨우는 일의 중심에 승가가 있다면, 그 승가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거사들이다. 경제적 후원을 통해 승가의 유지와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될 수 있도록 외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승가가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는 승가를 대신해 불교의 중심이 되었다. 몸은 비록 세속에 있더라도 정신만은 불교의 가치를 구현하는데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근대중국불교의 중흥에 팽제청과 양인산이 있다면, 근현대 한국불교의 발전과 안정에는 장경호나 이한상 등의 거사가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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