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후기 : 동 빌 수 만 두 창
동 : 종성 동관진
빌 : 제주 빌레못 동굴
수 : 단양 수양개
만 : 평양 만달리 동굴
두 : 청원 두루봉 동굴
창 : 제천 창내
1. 종성 동관진
북한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동물화석·석기·골각기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이다. 1933년에 실시된 철도공사로 대지가 절단된 곳에서 쥐의 이[齒]가 발견되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1934년 일본인 모리[森爲三]에 의해 발굴되어 여러 종의 포유류 화석과 고인류(古人類)의 유물 2점이 출토되었다. 이듬 해에 다시 모리와 도쿠나가[德永重康]에 의해 발굴되어 다량의 포유류 화석과 고인류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소개된 구석기시대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종성 동관진 : 1933년 한반도 최초 발굴 구석기 유적지(일본 부정 : 식민사관)
2. 제주 빌레못 동굴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은 어음리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굴 주위에 두 개의 연못이 있어서, 평평한 암반을 뜻하는 빌레라는 제주도 말과 연못의 못이 합쳐져 ‘빌레못’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굴의 총길이는 11,749m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미로가 매우 많으며. 화산활동에 의해 7∼8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 안에는 높이 28㎝의 규산주(규소와 산소·수소의 화합물로 이루어진 기둥)와 길이 7m·높이 2.5m의 공모양으로 굳은 용암이 있다. 땅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높이 68㎝의 용암석순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것이다. 또한 동굴 벽면에는 용암이 냉각되면서 밑으로 밀려내려 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빌레못동굴은 세계적인 용암동굴로서 동굴이 만들어질 때의 흔적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고, 대륙에서 서식하는 황금곰의 화석이 발견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현재 빌레못동굴은 동굴 생성물 등의 보호를 위해 공개제한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관리 및 학술 목적 등으로 출입하고자 할때에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출입할 수 있다.
제주 빌레못 동굴 : 동물 화석, 집터 발견
3. 단양 수양개
단양 적성면 수양개에 있는 후기구석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이다. 남한강가 충적대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을 끼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발견된 석기들은 다양하고 당시 만들었던 기술도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볼 수 있는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지방, 일본 열도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구석기시대 유적 주변에서 초기철기시대 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집터의 생김새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중원지역 철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수양개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와 동아시아 선사문화의 교류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단양 수양개 : 석기 제작지 출토(동아시아 최초 눈금 새김돌 발견)
4. 평양 만달리 동굴
평양에서 동쪽으로 약 40㎞ 떨어진 승호구역 만달리에 있다. 만달리 유적의 남쪽에는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거의 동서로 흐르고 있다. 이 동굴은 남강에서 약 100m 떨어져 있다. 제2단구에 해당되는 이 유적은 1979년 10월과 1980년 5∼8월에 발굴되었다.
석기와 사람뼈가 나온 층은 가운데층으로 그 아래층 (Ⅰ∼Ⅳ층)의 짐승화석들과는 층위를 달리하고 있다. 아래의 짐승화석 중에서 동굴하이에나와 옛소는 후기 홍적세 후기로 보인다. 이처럼 사람뼈화석과 함께 훌륭한 배모양·쐐기모양 좀돌날몸돌석기가 출토된 것을 볼 때, 이 유적은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의 후기 구석기시대 연구에 크게 주목되는 유적이다.
평양 만달리 동굴 : 20~30세 가량의 남자 유골(아래턱 뼈) 발견
5. 청원 두루봉 동굴
두루봉은 옥천계 암석 중 백봉리층떼의 운교리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근처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배사구조의 날개 부분에 해당된다. 단층선을 따라 지하수에 의한 석회암 용해작용이 일어나 신생대 제4기 초에 만들어진 여러 자연동굴이 있다. 이 지역은 1960년대부터 한흥 문의광산에서 석회암 채취를 위한 발파작업이 계속되어, 두루뭉실하게 생긴 원래의 생김새는 이미 거의 다 파괴되어 없어졌다. 이에 유적현장 보존문제와 석회암 발파로 인해 일어날 유적의 파괴문제가 생겨, 제2굴이 1976년 8월 7일부터 13일까지 충북대학교박물관과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긴급 발굴되었다. 그 뒤 1983년까지 11차에 걸쳐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새굴·처녀굴·제15굴·제16굴·큰용굴이 발굴되었다. 제9굴은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흥수굴은 1982년 12월부터 1983년 1월까지 발굴되었다. 이곳에서는 완전한 사람뼈와 석기·동물화석들이 모두 발굴된 이상적인 구석기 유적의 문화성격을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다. 사람뼈는 두 사람의 모든 뼈가 발굴되었다. 이 중 한 사람의 머리뼈(흥수굴 2호사람)는 석회석 광산작업으로 없어졌으나,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사람뼈가 완전한 상태로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청원 두루봉 동굴 : 흥수아이(장례의식 확인)
6. 제천 창내
사기리 창내 유적은 남한강 본류와 ‘창내’ 또는 ‘제천천’이라 부르는 남한강 지류가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하며, 유적 둘레에는 월악산[1,097m]과 같은 줄기인 산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동남쪽으로 남한강을 바라보는 사기리 창내 유적은 해발 88m 지점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충주댐[만수위 해발 145m] 건설로 현재는 물속에 잠기었다.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서 확인된 막집 터의 구조는 기둥구멍 자리, 화덕 자리, 당김돌로 이루어졌다. 막집을 복원해 본 결과 외형은 원추형 모습이고, 바닥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집의 규모는 약 10㎡로, 3~4명이 생활하기에 알맞은 공간으로 보인다. 막집 동쪽으로 난 출입문 밖에 타원 형태의 화덕을 마련하여 참나뭇과의 나무로 불을 피웠으며, 밖의 남서쪽에 당김돌과 당김줄을 이용하여 집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과 막집의 규모로 볼 때, 사기리 창내 집터의 성격은 강가에 자리를 잡아 계절적으로 이용한 사냥용 집터로 여겨진다. 이 집터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공주 석장리 제1지구 제1호 집터, 화순 대전 집터와 형태·구조·성격 등에서 서로 비교된다.
사기리 창내 유적은 남한강가에 위치한 후기 구석기 시대의 한데유적으로 독특한 둥근 밀개가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 한데유적에서는 드물게 막집 터가 찾아져 당시 사람들의 석기 제작 행태와 주거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제천 창내 : 막집 유적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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