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이 최고 다음이 닭, 그리고 오리
- 꿩 대신 닭
-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
꿩
꿩은 꿩과에 속하는 새이다. 수컷을 장끼, 암컷을 까투리라 한다. 세계적으로 182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4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토와 제주도를 비롯하여 육지와 4㎞ 이상 떨어지지 않은 큰 섬에는 두루 분포되어 있으나, 울릉도 및 원격 도서지방에는 없다. 농어촌·산간초지·도시공원 등에서 서식하는 대표적인 텃새이자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식용으로 사냥해온 야생조류이다. 꿩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기 때문에 사냥법이 다양하며, 다양한 요리의 재료와 약재로 사랑받아 왔다. 속담·설화·판소리·연극에서 주역으로 등장할 정도로 우리 민족에게는 친숙한 새이다.
꿩은 한자어로 치(雉)라고 하나, 화충(華蟲) · 개조(介鳥) · 야계(野鷄)라고도 하였으며, 우리말로는 수컷을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 한다. 학명은 Phasianus colchicus이다. 꿩과에는 세계적으로 182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4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토와 제주도를 비롯하여 육지와 4㎞ 이상 떨어지지 않은 큰 섬에는 두루 분포되어 있으나, 울릉도 및 원격 도서지방에는 없다.
농어촌 · 산간초지 · 도시공원 등에서 서식하는 대표적인 사냥새인 동시에 텃새이다. 꿩무리는 지상을 걷기 때문에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수컷의 꼬리는 매우 길며 18매의 깃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의 한 쌍이 특히 길다. 눈 주위에 붉은 피부가 노출되어 있으며, 번식기인 봄에는 이 부분이 크게 팽창한다. 머리 양쪽 뒤에는 긴 우각(羽角)이 있으며, 머리는 어두운 갈색이다. 목에는 흰 띠가 있고 그 윗부분은 남록색, 아래는 황색 · 적색 · 자색이며, 허리는 회흑색, 온몸은 아름다운 황등색이다. 암컷은 흑갈색과 모래빛 황색의 무늬가 온몸을 덮고 있으며, 흰 점이 뚜렷하다.
산란기는 4월 하순에서 6월까지이며 산란 수는 6∼10(때로는 12∼18)개이다. 포란기간은 21일이며, 육추(育雛: 알에서 깬 새끼)는 알에서 깨어 나오면 곧 활동하고 스스로 먹이를 찾는 조숙성(早熟性) 조류이다. 평지 및 1,000m 이하의 산지에서 살며, 800m 이상에서는 보기 어렵다. 먹이는 찔레열매를 비롯하여 수십 종의 나무열매, 풀씨 · 곡물과 거미류 · 다족류 · 갑각류 · 복족류 등의 각종 동물을 먹는 잡식성이나 식물성 먹이를 많이 먹는 편이다.
꿩은 밤이면 나무 위에 앉아서 천적의 침해를 피한다. 또 지진에 예민하며, 이때의 날개소리와 울음소리가 대단히 커서 지진을 예고해 준다. 또 암꿩은 천적의 침입을 받으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일부러 부상당한 체하여 위험을 면하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행위는 꿩 · 종다리 · 물떼새 등 지상에 알을 낳는 조류에 발달되어 있다. 자연생태계에서는 번식기에 수컷 한 마리에 암컷 몇 마리가 작은 무리를 지으나 겨울에는 암수가 따로 무리를 만든다. 번식기에는 가장 힘세고 나이 든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꿩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기 때문에 잡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며, 외형적 특성에 따라 보통 바탕에 다섯 가지 빛깔이 있는 것을 휘(翬), 청색 바탕에 다섯 가지 빛깔이 있는 것을 요(鷂), 흰 것을 한(鶾), 검은 것을 해치(海雉), 꼬리의 길이가 3, 4척 되는 것을 적치(鸐雉)라고 분류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매사냥이 일찍부터 있었는데, 그 주요 대상은 꿩이었다.
『전어지』에는 사치법(射雉法: 꿩을 잡는 방법)이 있는데, 그 한 구절에 “우리나라에서는 꿩 잡는 사람이 늦은 봄 풀이 무성할 때 총이나 활을 가지고 나무숲이나 풀숲에 숨어서 뼈나 뿔로 만든 피리로 장끼의 울음소리를 내면, 장끼가 이것을 듣고 아주 가까이 날아오는데, 이 때 쏘면 백발백중이다.”라고 하였다.
『규합총서』에 따르면 꿩고기는 어육장 · 완자탕 · 쇠곱창찜 · 화채 · 전유어 · 죽순나물 등의 요리재료로 쓰이며, 강원도 정선의 꿩꼬치 산적이 유명하고, 지네와 거미를 꿩깃과 함께 태우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또 꿩고기 굽는 법도 소개되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맛이 시고 무독, 혹은 미독하여 몸에 좋으며, 설사를 그치게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꿩은 귀한 음식이나 미독이 있어 상식하여서는 안 되며, 9∼12월 사이에 먹으면 괜찮다고 하였다. 또 누창(漏瘡: 잔고름이 나는 병)을 고친다고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꿩고기를 회로 먹으면 담벽(痰癖: 몸의 분비액이 큰 열을 받아 생기는 병)을 고치고, 어린아이의 회충에 꿩을 구워 먹으면 즉효라고 하였다.
꿩은 문헌기록 및 구비전승에도 자주 등장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흰 꿩을 왕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타난다. 496년(소지마립간 18) 2월에 가야국에서 흰 꿩을 보내왔는데, 꼬리의 길이가 다섯 자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753년(경덕왕 12) 무진주(武珍州)에서, 793년(원성왕 9) 나마(奈麻) 김뇌(金惱)가, 801년(애장왕 2) 우두주(牛頭州)에서, 810년(헌덕왕 2) 서원경(西原京)에서 흰 꿩을 바쳤다고 되어 있다. 흰 꿩을 왕에게 바쳤다는 것은 그것이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삼국유사』 태종춘추공조(太宗春秋公條)에는 김춘추가 하루에 쌀 서 말의 밥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고, 백제를 멸한 뒤에는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꿩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식용으로 사냥했던 야생조류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꿩사냥과 관련된 속담이 많이 생겼다. 쉬운 일을 제쳐놓고 힘든 일을 하려고 할 때 ‘잡은 꿩 놓아주고 나는 꿩 잡자 한다.’고 하며, 과정은 어떻든 결과가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꿩 잡는 것이 매’라는 말을 쓴다. 또한 너무 한꺼번에 이익을 바라다가 오히려 소득이 별로 없을 때 ‘떼 꿩에 매 놓기’라고 한다. 이처럼 꿩사냥은 우리 민족의 생활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잡은 꿩 놓아주고 나는 꿩 잡자 한다.’
‘잡은 꿩 놓아주고 나는 꿩 잡자 한다.’
‘꿩 잡는 것이 매’
‘떼 꿩에 매 놓기’
꿩 잡는 행위 못지않게 꿩 먹는 행위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아무 소식이 없을 때 ‘꿩 구워먹은 소식’이라 하고, 두 가지의 이익을 모두 취할 경우 ‘꿩 먹고 알 먹는다.’라고 하며, 자기가 쓰려고 했던 것이 없을 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는 말로 ‘꿩 대신 닭’이라고 한다. 또한 꿩은 순하면서도 약삭빠른 동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행동이 민첩한 사람을 ‘꿩의 병아리’라고 하며, 사교적으로 세련된 여자를 ‘서울까투리’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꿩의 약삭빠른 행동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속담도 있다. ‘봄 꿩이 스스로 운다[春雉自鳴].’라는 말은 제 허물을 제 자신이 드러낼 때 쓰이는 말이고, ‘꿩은 머리만 풀 속에 감춘다.’는 속담은 당황하여 일을 그르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꿩에 대한 속신도 많다. 임신 중에 꿩고기를 먹으면 아이가 단명(短命)하고 피풍(皮風)이 생긴다고 하며, 꿩이 몹시 울면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반면 길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원에 꿩이 날아들면 재수가 있다고 하고, 보리밭에서 꿩알을 주우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꿩에 관련된 설화도 많이 있다.
함경북도 경성(鏡城)에는 김경서(金景瑞)가 눈 위에 나타난 꿩의 발자국을 따라 쌓았다는 치성(雉城)이라는 성이 있다. 죽게 된 꿩을 살려주고 꿩의 보답으로 생명을 구하거나 과거에 급제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꿩의 보은담도 많이 있다. 어느 여인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꿩을 구해 주었는데 후일 그 꿩이 여인에게 좋은 묘 터를 일러주어 그 후손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꿩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뱀에게 죽게 된 꿩을 살려준 한 사람이 이번에는 뱀에게 죽게 되었을 때 꿩이 머리로 종을 쳐서 그 사람을 구출하였다는 이야기도 널리 전승된다. 이러한 설화에 나타나는 꿩은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아는 의리 있는 동물이다.
꿩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으로 「장끼전」이 있다. 겨울철에 장끼 · 까투리 부부가 아홉 아들, 열두 딸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나갔다가 장끼가 덫에 걸려 죽고, 까투리는 장끼의 장례를 치르고 다른 장끼의 구혼을 받아 개가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판소리로 불려 널리 알려졌으며, 이 같은 내용이 민요로 되어 「꿩타령」 · 「까투리타령」 등이 구전된다.
그 밖에 민요에도 꿩노래가 많이 있는데, 호남 일대에서 전승되는 동요에 “꿩꿩 장서방 뭐 먹고 산가/아들 낳고 딸 낳고 뭐 먹고 산가/아들네 집서 콩 한 섬 딸네 집서 팥 한 섬/그작 저작 사네.”와 같은 것이 있다. 이 밖에도 꿩은 꼭두각시극에 등장하며, 평안감사 꿩사냥거리 등 문학의 다양한 소재가 되고 있다. 이처럼 꿩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는 매우 친근한 동물로서 인식되었고, 설화 · 소설 · 판소리 · 연극 등의 주역으로도 등장하였다.
닭
닭은 꿩과에 속하는 중형 조류이다. 가장 많이 사육되는 가금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야생종을 가축화한 새이다. 기원전 6, 7세기경부터 사육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하여 소화·흡수가 잘 되어 유아나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단백질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는 종류는 이탈리아 원산인 난육겸종의 백색 레그혼이다. 닭은 신라의 시조 설화에 등장할 만큼 사람과 친밀한 관계이다. 관련 설화, 민요, 속담, 길조어, 금기어도 많아 전통문화 속에서 닭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닭은 현재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야생종(Gallus gallus)을 가축화한 새이며, 기원전 6, 7세기경부터 사육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닭은 이미 신라의 시조설화와 관련되어 등장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알지(金斡智)의 탄생담에 의하면,
“신라왕이 어느 날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호공(瓠公)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 궤를 가져와 열어보니 안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이 아이가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가 되었다.”
고 하였다. 그 뒤 그 숲의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하였으며 신라의 국호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화에서 닭이 이미 사람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에서는 한(韓)나라에 꼬리가 긴 세미계(細尾鷄)가 있다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에서도 마한의 장미계(長尾鷄)는 꼬리가 5척이나 된다고 하였다.
『수서(隋書)』에도 백제에서 닭을 기른다는 기사가 있으며, 중국의 의학서인 『초본류(草本類)』에서는 한결같이 약용으로는 우리나라의 닭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도 “닭은 그 종류가 매우 많아서 그 산지에 따라 크기와 형태 · 색깔에 차이가 있는데, 조선의 장미계는 꼬리가 3, 4척에 이르고 여러 닭 가운데서 맛이 가장 좋고 기름지다.”고 하였다.
이러한 닭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천장벽화인 주작도(朱雀圖) 중에서 긴 꼬리를 가진 닭을 연상할 수 있다. 현재는 장미계 등 토종닭이라고 할 수 있는 품종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보기 어렵다. 그 대신 알과 고기를 얻기 위하여 다양한 외국 품종의 닭이 사육되고 있다.
닭은 그 용도에 따라서 난용종 · 육용종 · 난육겸종 · 애완종 · 투계용이 있으며, 때로는 성립된 지역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는 종류는 이탈리아 원산인 난육겸종의 백색 레그혼이다.
그 밖에 난육겸종인 프리마스록 · 로드아일랜드록 · 뉴햄프셔를 비롯하여 난용종인 미노르카 · 안달루시안 등이 사육되고 있다. 닭고기는 흰색 내지 회홍색이며, 육질이 섬세하고 연하다.
소나 돼지에 비하여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하여 소화 · 흡수가 잘 된다. 따라서, 유아나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단백질원이 될 수 있다. 특히, 닭고기는 가열하면 소화율이 한결 높아진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소 · 돼지 다음으로 널리 식용되고 있으며, 백숙 · 찜 · 불고기 · 회 등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었으며, 창자 · 간 · 모래주머니 · 발도 요리하여 먹는다.
『동의보감』에서는 붉은수탉[丹雄鷄] · 흰수탉[白雄鷄] · 검은수탉[烏雄鷄] · 오골계(烏骨鷄)로 나누어 각각 효험을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붉은수탉의 고기는 그 성질이 미온(미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자의 대하(帶下) 등을 다스리며, 몸이 허한 것을 보하고 독을 없애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고 하였다.
또한, 목을 매어 혼절한 것과 벌레가 귀에 들어가 생긴 병, 연주창 등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흰닭의 발톱과 뇌는 난산을 치료하고, 검은닭의 쓸개는 눈이 어두운 것과 피부병을 치료하며, 염통은 오사(五邪)를 다스리고, 볏의 피는 젖을 나게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검은암탉의 날개는 어린아이가 밤에 우는 것을 고치고, 날개죽지는 하혈을 막고 대머리와 부스럼을 고치며, 똥은 중풍으로 말을 못 하는 증상을 치유한다고 하였다. 닭은 이처럼 민간처방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어서,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에서 닭에 관한 기록을 보면, 『삼국유사』 권3 금관성파사석탑조(金官城婆娑石塔條)에는 수로왕비인 허황옥(許黃玉)이 서역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에는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닭의 볏의 피를 찍은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선도성모수희불사조(仙桃聖母隨喜佛事條)에는 혁거세(赫居世)와 알영(閼英)이 모두 중국 제실(帝室)의 딸인 선도신모(仙桃神母)의 소생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 증거로 계룡(鷄龍) · 계림(鷄林) 등 명칭에 모두 닭이 들어가는데, 닭은 서방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십이지(十二支) 중에 닭[酉]이 있는바, 오방과 십이지를 연결시키면 서방은 신유방(申酉方)이 되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원일(正月元日)에 항간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닭은 액을 막는 수호초복의 기능이 있는 동물로 나타난다. 또한, 상원일(上元日) 풍속에 새벽에 우는 닭의 울음이 열 번이 넘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정월 들어 첫 유일(酉日)을 ‘닭의 날’이라고 한다. 이 날은 부녀자의 바느질을 금한다. 만약, 바느질이나 길쌈을 하면 손이 닭의 발처럼 흉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이 날 모임을 가지지 않으며, 닭을 잡지도 않고 지붕 손질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이 날 모임을 가지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고 닭을 잡으면 일 년 동안 닭이 잘 되지 않으며, 지붕을 이으면 닭이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닭의 울음소리는 귀신을 쫓는 벽사의 기능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닭이 제때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다고 하고 밤중에 울면 불길하다고 하며 수탉이 해진 뒤에 울면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한다.
또한, 닭에 대한 금기사항도 많다. 호남지역에서는 며느리가 닭의 머리를 먹으면 시어머니 눈 밖에 난다고 하며, 경기도지방에서는 여자가 닭의 목이나 발을 먹으면 그릇을 깬다고 한다. 대체로 임신중인 여자는 닭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닭고기를 먹으면 태어나는 아기의 피부가 닭살처럼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닭에 관한 속담도 매우 많다. 여자들이 주장을 내세우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또한, 남을 해치려고 한 일이 결국 자기에게 손해를 끼칠 때 ‘소경 제 닭 잡아 먹기’라는 말을 쓴다. 닭과 소는 적은 것과 큰 것으로 대비되기도 하였다.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속담은 크고 훌륭한 자의 휘하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작고 보잘것없는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닭은 가축이기에 소나 개 등과의 관계에서 나온 속담도 있다. 서로 무관심한 태도를 가리켜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이라고 한다. 또한, 하려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서 희망이 없을 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한다. 그 밖에 산닭 · 촌닭 등에 관한 속담도 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다잡아 가르치기 어렵다는 뜻으로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고 한다.
한편,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 번화한 곳에서 어리둥절하는 모습을 보고 ‘촌닭 관청에 간 것 같다.’고 한다. 이처럼 닭에 관련된 속담은 닭의 보편적 속성과 관련된 것뿐 아니라, 암탉 · 수탉 · 산닭 · 촌닭 등으로 세분화되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닭과 관련된 길조어도 매우 많다. 닭의 목을 먹으면 목청이 좋아진다고 하며, 닭이 감나무에 올라가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또한, 닭이 쌍알을 낳으면 집안이 흥한다고 하고, 닭이 항상 나무 밑에 있으면 그 집안에서 벼슬할 사람이 나온다고 한다.
닭은 지네와 천적관계에 있다. 그래서 지네의 화를 모면하기 위하여 닭을 이용하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황해도 장연군 소재 계림사(鷄林寺)에는 지네의 변괴로 승려들이 하나씩 없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날 백발노인의 지시로 흰 닭을 키우면서 이와 같은 변괴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즉, 닭들이 지네와 싸워 지네를 죽였으므로 이 절에서는 늘 많은 닭을 키웠다고 한다.
또한, 민담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날개옷을 찾아입은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자, 나무꾼은 수탉이 되어 하늘을 향하여 운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에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아내가 공연한 트집을 잡아 괴롭힐 때 수탉이 암탉을 다루는 말을 듣고 아내의 버릇을 고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닭은 민요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닭아닭아 우지마라 네가울면 날이새고 날이새면 나죽는다”는 「심청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또한, 황천에 간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민요에 “병풍에 그린 닭이 울면은 오시려나. ”라는 구절이 있다. 경상남도 의령 · 김해 등지에서는 「닭노래」 또는 「닭타령」이 채록되었다. “초록비단 접저고리/자지옥자 짓을달아/수만년 대문밖에/수없이다 흐튼곡석/낱낱이다 주어먹고/그럭저럭 컸건마는/손님오면 대접하고/병이나면 소복하고.”(김해). 이러한 민요는 닭의 언어로 닭의 신세를 가사체로 노래한 것으로서, 닭을 기르면서 느꼈던 인간의 정감이 함축되어 있다.
오리
전세계에서 오리과와 기러기과에 속하는 조류는 146종이 알려져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38종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서 기러기류 14종 중 7종, 혹부리오리류 7종 중 3종, 담수오리류 12종, 바다오리류 9종, 비오리류 3종 등 모두 38종이 우리 나라에 도래하며, 단 한 종 원앙사촌은 절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오리류만은 27종이 우리 나라에 도래하며 그 중에서 우리 나라에서 번식하는 오리류는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원앙의 2종뿐이다.
흰뺨검둥오리는 아시아의 온대와 열대에서 번식하며, 우리 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전장 수컷 63㎝, 암컷 53㎝의 흔한 오리이다. 하천·못·호소·논 등 물가의 습지와 초지 또는 해안의 무인도서의 풀밭 등 어디에서나 번식하며 겨울에는 남쪽으로 이동해 온 월동군과 함께 대집단을 이룬다. 4∼7월에 한배에 10∼12개의 알을 산란하여 26일간 포란하면 부화된다.
온몸이 어두운 갈색이며 배는 흑갈색이다. 발은 주황색, 부리는 흑색이며 부리끝은 황색이다. 겨울새로서 대표적인 종은 청둥오리인데, 이것은 집오리의 선조이기도 하다. 고방오리·쇠오리 등 4종은 우리 나라에 도래하는 가장 흔한 종들이며 담수에 사는 오리들이다. 좁은 의미로는 집오리를 뜻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우리말로 오리·올이·올히로 불렸으며, 한자로 압(鴨)이라 하였다. 압은 집오리, 부(鳧)는 물오리라고도 하였다. 압은 서부(舒鳧)·가부(家鳧)·말필(0x9635鴄)·목(鶩)이라고도 하였고, 부는 야압(野鴨)·야목(野鶩)·침부(沈鳧)라고도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속의 아압변증설(鵝鴨辨證說)에는 “오리[鴨]에도 역시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집에서 기르는 것도 있고, 야생인 것도 있다.”고 하였으니 오리를 넓은 의미로 쓴 예이다.
집오리는 원래 야생인 청둥오리를 중국에서 가금화(家禽化: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으로 바꿈)한 것인데,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신라와 고려에도 오리가 있었고, 일본에는 3세기에 오리가 전래된 것 같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오리를 기르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또한 고려의 싸움오리[高麗鬪鴨]이야기도 있다. ≪재물보≫에는 집오리의 수컷은 머리가 녹색이고 날개에는 무늬가 있으며 암컷은 누렇고 얼룩진 색이라 하고, 물오리는 집오리와 비슷하나 이보다 작고, 청(靑)과 백이 섞인 색이고, 부리는 짧고, 다리는 작다고 하였다. ≪재물보≫와 ≪물명고≫에는 집오리와 물오리 이외에 계칙(鸂鷘:비오리)·벽제(鷿鵜:되강오리)·원앙(鴛鴦, 元央)도 기록되어 있다.
≪지봉유설≫에는 닭과 오리는 가축이어서 잘 날 수 없고, 그 밖에 들에서 사는 새들은 모두 잘 날 수 있다는 송나라 왕규(王逵)의 말이 인용되어 있고, “내가 집오리를 보건대, 이것을 들의 물에서 오래 놓아 기르면 멀리 잘 날 수 있다. 아마도 가축이 잘 날 수 없는 것은 마시고 쪼아 먹는 것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라 하였다.
≪전어지≫에는 여러 가지 문헌을 인용하여 집오리를 기르는 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규합총서≫의 산가락(山家樂)에는 집오리의 알 안기와 새끼를 기를 때의 주의해야 할 일이, 청낭결(靑囊訣)에는 “오리고기와 알을 먹으면 아기를 거꾸로 낳고 심한(心寒)하고, 오리알 삶을 제 귤 뿌리를 넣으면 붉어진다. 달걀과 오리알에 쇠똥물로 그림을 그려 삶으면 푸른 것이 속까지 박힌다.” 등의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집오리의 기름·피·머리·알·흰오리고기·흰오리똥·검은오리고기의 성질과 약효를 적었다. 또 들오리의 고기는 “성이 양(凉)하고 독이 없다. 보중(補中) 익기(益氣)하고 위기(胃氣)를 화(和)하고 열·독·풍 및 악창절(惡瘡節)을 다스리며 배 내장의 모든 충(虫)을 죽인다. 9월 후 입춘 전까지 잡은 것은 크게 보익하며 집오리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조그마한 종류가 있는데 이것을 도압(刀鴨)이라 하며 맛이 가장 좋고 이것을 먹으면 보허(補虛)한다.”고 하였다.
꿩 대신 닭
‘꿩 대신 닭’. 말 그대로 값비싼 ‘꿩’ 대신에 값싼 ‘닭’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새해 첫날인 설날.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먹는 떡국이 ‘꿩 대신 닭’의 유래예요. 바로 떡국의 맛과 영양을 결정하는 핵심인 국물, 그리고 음식 위에 뿌리거나 얹는 고명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로부터 만들어진 말이죠. 자세히 알아볼까요?
예로부터 떡국의 국물을 내고 고명으로 얹기 위해 사용하는 값비싼 식자재가 바로 꿩고기였답니다. 궁궐이나 양반집에서는 꿩고기로 만든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를 맞이했죠. 꿩고기는 맛도 좋고 ‘하늘 닭’이라며 좋은 일을 가져오는 동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꿩고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야생 새다 보니 기를 수도 없고,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숨거나 도망칩니다. 알도 적게 낳다 보니 꿩은 아주 귀한 날짐승이었어요.
이렇게 귀한 꿩. 일반인들은 당연히 먹기 어려웠습니다. 꿩을 대신할 새로운 재료를 찾아야 했는데, 바로 꿩과 생김새가 비슷한 닭입니다. 영양과 맛에서 꿩에 크게 뒤지지 않고,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아 번식도 잘하니 금상첨화(錦上添花,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짐)지요. 그래서 새해를 기념하는 떡국의 주요 재료가 닭으로 바뀌었고, ‘꿩 대신 닭’이란 말이 탄생하게 됐어요.
정리하면, 이 속담은 ‘쓰려는 것이 없으면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한다’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다시 읽어보면 주인공은 꿩이고, 닭은 꿩이 없을 때나 존재를 확인시킬 수 있는 조연이라고 말하고 있죠. 기껏 꿩의 자리를 대신했는데, 이유가 뭘까요?
사실 맛과 희소성(수와 양이 적어 가치가 높은 것)뿐 아니라 겉모습의 차이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외모에 관해서는 꿩이 닭보다 몇 수 위니까요. 특히 수컷인 장끼의 잘생긴 외모는 웬만한 동물 중에서도 미스터트롯 ‘진’ 감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닭이 훨씬 뛰어나요.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먹거리에, 한국을 대표하는 메뉴로 ‘치킨’, 즉 닭요리가 꼽히기도 하죠. 그러니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을 들으면 닭이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싶네요.
꿩 대신 닭
고홍림
까마득한 옛날 긴긴 겨울밤 / 빡빡머리 또래 친구들
우리 집 사랑채에 모여 앉았다
토끼 서리 화투판 벌어졌었지 / 승자는 망보고
폐자는 행동대 전투 작전조다
윗동네 친구네 집 / 살금살금 토끼장 기습 작전
잽싸게 낚아챈 두 마리 토끼
쾌재 콧노래 발걸음 가볍다 / 작전본부 사립문 문 앞에
먼저 와 기다리시는 어머니
얘들아~
올봄에 새끼 낳을 놈들이야
닭 한 마리 줄 테니
얼른 제자리에 갖다 놓거라~
부엉이 우는 밤 호롱불 가물가물 / 소록소록 반짝반짝 하얀 눈꽃송이
어머니의 사랑 솜사탕 끝이 없어라
앨범 속 흑백 사진 한 장
천봉산 자락 초가마을 가문 리
2023 계묘년 새해 봄날
어머니 서 계시던 그 자리에
연분홍 살구꽃 또 피고 지겠지.
민족 대명절 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떡국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설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가래떡이다. 요즘에는 마트나 떡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40여년 전 만해도 설 하루 이틀 전부터 동네 떡방앗간에는 긴 줄이 서곤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집에 가져와 조청이나 설탕을 찍어 먹는 일은 설날 즈음에나 누리는 호사 중의 호사였다.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에는 코웃음이 절로 날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가래떡만 한 주전부리도 없었다.
가래떡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가래떡의 ‘가래’가 밭을 가는 농기구 가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늘려서 길고 둥글게 만드는 떡이나 엿”을 ‘가래’라고 불렀고, 이것이 가래떡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더 유력한 설이다.
색이 하얗고 긴 가래떡은 국수처럼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으로 민속 의식에서도 두루 쓰인다. 예를 들어 가래떡을 똬리 틀듯이 둘둘 말아서 놓으면 ‘용떡’이 된다. 만복이 깃들길 기원하는 혼례상이나 용왕님이 뱃길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십사 하고 비는 고사상에 이 떡을 올린다. 가래떡은 썰어 놓은 둥근 모양이 엽전을 닮아 부귀를 뜻하기도 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이 여기서 유래했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식구들이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떡국을 끓였다. 이런 떡국에 꼭 들어가던 것이 꿩고기다. 맛있기도 하거니와 꿩을 상서로운 새로 여겼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꿩을 ‘하늘 닭’이라 해서 길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 백성이 꿩고기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소고기는 너무 귀해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형편에 맞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닭고기뿐이었다. 그래서 떡국에 닭고기를 넣게 됐고,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대신’이라면 보통 ‘어떤 것을 갈음함, 없거나 부족한 것을 다른 것으로 메움’이란 뜻으로 쓰인다. “회장 대신 총무가 참석했다, 꿩 대신 닭을 잡다” 하는 식이다. 또 낱말 대 낱말 대응에서 번져 매김꼴 ‘-ㄴ, -은, -는’이 붙은 움직씨 뒤에서 앞말이 보이는 행동이나 상태와 다르거나 반대임을 나타내는 쓰임도 자주 본다. 문제는 그 쓰임이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하고 의미가 순하게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①엘지텔레콤은 (기본료를 올리는 대신)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골든타임제를 설정해 할인요금을 적용하는 방식 등으로 가입자들에게 보상해주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②저는 일요일 오후에 남편과 딸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대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 문장에서 ‘-는 대신’이 달리 쓰였다. ①은 ‘기본료를 올린다’는 게 전제고, ②는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았다’는 게 전제다. 뒤엣것은 문장을 다 읽고서도 좀더 더듬어야 제뜻을 짐작게 하는 짜임새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구체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매김마디를 ‘대신’으로 받으면 이미 그 움직임이 이뤄진 것으로 읽히는 까닭에 뒤에 딴 일이나 반대되는 내용이 와서는 쉽게 이어지지 않게 된다. 곧, ‘대신’ 뒤는 앞의 행동을 바탕삼는 또다른 행동·조건·요구를 하는 말이 와야 걸맞게 된다는 말이다.
△분노를 함께하는 대신, 꿈을 나누는 운동이 더 아름답고 강하다 → 분노를 함께하기보다 꿈을 나누는 운동이 더 아름답고 강하다.
△우수한 성과에 얼굴을 찌푸리는 대신, 축하를 해주는 성과주의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 우수한 성과에 얼굴을 찌푸릴 게 아니라 우수한 성과를 거둔 쪽에 축하를 해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의미있는 삶을 누리는 대신에 한심하게도 소비로 빈 자리를 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 의미있는 삶을 누리는 게 아니라 한심하게도 소비로 빈자리를 메웠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하는 대신’은 마디 사이에서 역접 관계로 쓰기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꼭 ‘대신’을 써먹자고 한다면 “~지 않는 대신”처럼 매김마디를 부정문으로 바꾸거나 문맥에 따라 “~ 하느니, -보다, ~이 아니라, ~지 않고” 등으로 바꿔 쓰는 게 적절하다. 상투적으로 굳어진 ‘~ 하는 대신에’라는 표현을 번역문투(instead of, in place of 따위)로 보는 이들이 많다.
'꿩 대신 닭' 속담의 기원···고급음식 대접 받는 '스페셜 떡국'
설 명절이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떡국이나 만둣국을 끓여 먹는다. 과거 떡국엔 꿩고기를 넣어 국물을 끓인 것을 으뜸으로 쳤다.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 중 꿩고기가 단연 맛과 식감이 좋아서다.
꿩고기는 맛은 좋은데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닭을 잡아 닭고기를 떡국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여기서 유래됐다.
떡국 만드는 주재료 ‘꿩고기’가 으뜸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 평창군에는 여전히 꿩고기를 넣어 만둣국을 끓이는 식당이 있다. 지난 24일 찾은 대관령면 횡계리 N식당은 꿩만둣국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30여 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은 뀡고기를 다져 만두 속에 넣고 꿩만둣국을 끓인다. 마침 식당을 찾은 날 많은 눈이 내려 식당 안 대형 창으로 설경을 감상하며 꿩만둣국을 맛볼 수 있었다. 김치와 다진 꿩고기가 들어가 부드러운 육질과 함께 야간의 매콤한 맛이 느껴졌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은 꿩을 넣어 만든 만두의 특징이라고 한다. 단골손님 이모(76·여·경기 의정부시)씨는 “야생화 촬영을 위해 평창을 찾을 때마다 꼭 들르는 집”이라며 “구수한 강원도의 맛을 느낄 수 있어 10년 넘게 이 식당을 찾는다”고 했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 꿩만두 특징
N식당은 개업 초기엔 인근 산에서 ‘꿩 몰이 사냥’으로 꿩을 직접 잡아 요리에 썼다. 눈이 많이 오고 추운 날 여러 명이 꿩 몰이 사냥에 나선다. 꿩이 나타날 만한 구역에 여러 명이 군데군데 서 있다가 꿩을 발견하면 한 사람이 꿩을 쫓아 날아가도록 몰이를 한다. 날아간 꿩은 얼마 가지 못하고 내려앉는다. 꿩은 원래 멀리 날지 못하고 높이 날지도 못한다고 한다. 이때를 기다려 인근에 있던 사람이 릴레이 하듯 다시 꿩 몰이를 한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다 보면 꿩은 지쳐서 더는 날지 못하고 눈밭에 머리를 처박게 된다. 꿩 몰이에 나선 이들은 쓰러진 꿩을 줍기만 하면 된다.
평창에서는 매를 먹이고 꿩을 사냥하는 매사냥꾼을 ‘수알치’라고도 불렀다. 매사냥은 요즘으로 치면 승마나 요트와 같은 귀족 스포츠였다. 이 때문에 매사냥으로 잡은 꿩으로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은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1982년 11월 매가 천연기념물 제323-7호로 지정될 정도로 희귀해지면서 매를 부리는 사람도 점점 자취를 감췄다.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봉래(57)씨는 “농사짓기가 힘들어지면서 어머니께서 오래전부터 집에서 끓여 먹던 꿩만둣국으로 식당을 냈다”며 “초기엔 아버지가 직접 잡은 꿩으로 요리했는데 지금은 꿩 농장에서 꿩고기를 가져와 만두를 만든다”고 했다.
식당 초기엔 ‘꿩 몰이 사냥’으로 꿩 잡아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전라도 ‘닭장떡국’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유력하다. 닭장떡국은 재래 간장에 닭을 졸여서 닭장을 만들고 국물 재료로 쓰는 떡국이다. 닭장떡국의 베이스인 닭장은 이틀 전쯤 미리 만들어두면 좋다. 미리 만들어두면 숙성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맛이 우러난다. 닭고기의 진한 육수와 간장이 어우러지면서 구수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조린 고기 역시 숙성 과정을 거치면 탄력이 생겨 식감도 좋다고 한다.
날떡국 먹으면 한해 농사 ‘풍년’
충청도에서는 날떡국을 주로 먹는다. 날떡국은 쌀가루 반죽을 수제비처럼 떼서 장국에 넣어 만든다. 이 반죽을 생떡이라고 부른다. 육수에 다슬기를 넣어 먹기도 하는데 다슬기 특유의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충청도에선 날떡국을 먹으면 한해 농사가 잘된다는 말도 있다. 경상도는 지역에 따라 굴과 물메기 등 해산물을 넣은 독특한 떡국이 많다. 굴떡국과 물메기떡국은 경남 거제·통영 등 해안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멸치·다시마·무로 끓인 육수에 해산물을 넣어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일부 지역에선 떡을 동그랗게 썰어 넣은 태양떡국도 먹는다. 제주도에선 최근 몸떡국이 인기다. ‘몸’은 톳과 비슷한 해초인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에선 모자반 외에도 취향에 따라 옥돔이나 미역을 떡국에 넣기도 한다.
해산물 떡국은 깔끔한 맛이 ‘일품’
예로부터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첫날인 설에 떡국을 먹는 풍습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로 여겨지면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설을 앞두고 농민들의 근심은 깊어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가족·친지들의 만남이 줄면서 떡국을 비롯한 농축산물 소비가 위축돼서다. 김동구 농협중앙교육원 교수는 “떡은 곡식 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빚어서 찌는 음식으로 설날과 추석 등 주요 명절을 비롯해 일생의례 (백일·돌·혼례·장례·제례)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라고 말했다.
인류 최초의 치킨은 ‘닭 대신 꿩’?
닭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척추동물 중 하나다. 전 세계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닭은 인류 수보다 정확히 3배 더 많은 230억 마리다. 이렇게 많이 사육되고 있는 까닭은 닭과 계란이 인류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닭의 야생 원종은 붉은야생닭(적색야계)이다. 또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닭의 가축화에 대한 최초 증거로 중국 북부의 8000년 된 신석기 다디완 유적지에서 돼지 및 개의 뼈와 함께 발견된 조류 뼈를 가장 많이 꼽고 있다. 다디완 유적지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 정착지이자 건조한 북서부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붉은야생닭의 서식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동부, 중국 남부 등의 열대우림이다. 그럼 따뜻한 동남아시아를 서식지로 둔 붉은야생닭이 어떻게 갑자기 1600㎞ 이상 떨어진 중국 북부에서 최초로 인간의 손에 길들여질 수 있었을까. 이를 둘러싼 닭의 기원설 논쟁은 지난 30년간 이어져온 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즉, 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가축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닭의 기원설은 여전히 논쟁 중
그런데 이전에 닭으로 확인됐던 다디완 유적지의 조류 뼈가 닭이 아니라 꿩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환경컨설팅 회사 듀덱(Dudek)의 고고학자 루카스 바톤(Loukas Barton)과 오클라호마대학 분자인류학 및 마이크로바이옴연구소의 브리타니 빙엄 연구원 등의 공동 연구진은 다디완 유적지에서 발견된 조류 8마리의 뼈를 미토콘드리아 게놈 염기서열법을 포함한 두 가지 방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그 조류 뼈들은 닭이 아니라 꿩으로 밝혀진 것. 그 꿩들은 당시 신석기인들이 재배한 작물인 기장을 먹으며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년 내내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됐다. 루카스 바톤은 이것이 닭의 초기 사육화 과정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꿩들은 인간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지속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가축화는 인위적인 인간 선택에 의해 야기되는 물리적 혹은 유전적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진에 의해 밝혀진 고대 꿩의 게놈은 현대 야생 꿩의 게놈과 일치했다. 즉, 그 꿩들은 가축화가 된 것이 아닌 여전히 야생이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 산둥대학의 유전학자 유동은 이번 연구 결과가 닭의 기원에 대해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동은 당시의 신석기인들이 과연 꿩을 환영했을지 궁금하다고 주장했다. 요즘도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새들이 농작물을 먹어치우지 못하도록 밭에 그물을 쳐놓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 가축화된 까닭
이에 대해 이번 연구의 주 저자인 루카스 바톤 역시 “신석기인들이 야생 꿩을 가축으로 기른 것은 마치 사냥꾼과 함께 살고 있는 사슴처럼 드문 사례”라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인류는 꿩을 좋은 육류 공급원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루카스 바톤은 바로 거기에 꿩들이 가축화되지 않고 결국 닭이 가축화된 비밀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꿩들은 간헐적으로 알을 낳지만 닭들은 그보다 알을 훨씬 더 자주 낳으므로 결국 꿩 대신 닭이 가축화되었다는 의미다. 한편, 일각에서는 인더스 문명에서 닭싸움을 위해 처음 닭을 길렀던 것이 닭 가축화의 기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설날에 떡국을 끓일 때 꿩고기로 국물을 내곤 했다. 하지만 일반 서민은 구하기 어려워 대신 마당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서 사용해야 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할 때 자주 쓰는 속담인 ‘꿩 대신 닭’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가 닭의 기원에 대한 정설로 굳어진다면 이 속담의 의미도 약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꿩 대신 닭을 가축화하게 된 것은 차선이 아니라 단백질 공급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의 야생 꿩들이 닭처럼 알을 자주 낳도록 유전적 변화를 일으켰다면 어쩌면 우리는 주말마다 치킨이 아니라 꿩 튀김을 배달시켜서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꿩 대신 닭의 유래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떡국에서 유래했다는 낭설이 수 십년째 떠돌고 있다.
과거 떡국엔 꿩고기를 넣어 국물을 끓인 것을 으뜸으로 쳤다.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 중 꿩고기가 단연 맛과 식감이 좋아서다. 꿩고기는 맛은 좋은데 사냥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닭을 잡아 닭고기를 떡국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여기서 유래됐다.
- 중앙일보 2022. 1. 30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떡국에서 나온 말이라는 주장은 6.25 동란 때 월남한 여성에게서 처음 나왔다.
흰 떡국은 쇠고기 또는 닭고기 국물에 끓이지만 원래는 꿩고기 국에 끓이는 것. 그러나 꿩은 갑자기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일반적으로 닭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꿩대신 닭을 쓰고 닭이 없을 때는 쇠고기를 사용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최여사가 설명한다.
- 경향신문, 1976. 6. 17
설날 떡국에는 원래에는 꿩고기를 넣어서 끓였다. 그러나 꿩 대신 집에서 사육하는 닭으로 대치하게 되면서부터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 민속학 임동권, 경향신문 1981. 1. 1
이러한 주장은 과거 떡국에서 꿩고기 활용법과 전혀 다르다. 개인이 막연하게 상상했던 내용을 사실로 믿고 주장하였을 뿐이다. 떡국 조리법의 변천을 보면 이 모든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떡국에서 기원하지 않았다.
1818년 조운종(趙雲從)은 세시기속(歲時記俗)에 "餠湯 以打白餠 細截作湯(떡국은 흰떡을 치고 나서 잘게 끊어서 끓인다)"이라고 떡국 조리법을 최초로 소개하였다.
1819년 김매순(金邁淳)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好稻米作末細篩, 淸水拌勻蒸熟, 置木板上 用杵爛搗, 分作小段 摩轉作餠體團而長如八梢魚股, 名曰拳模. 先作醬湯候沸 將餠細切如錢形投之以不粘不碎爲佳. 或和以豬牛雉鷄等肉(좋은 멥쌀을 가루 내어 체로 걸러서, 맑은 물을 골고루 뒤섞어서 쪄서 익히고, 목판 위에 놓고 공이로 곱게 치고 나서, 작은 덩어리로 나누어 문지르고 굴려서 문어발처럼 길고 둥근 모양으로 떡을 만든다. 이르기를 가래떡이라고 한다. 미리 준비한 장국을 끓이면서, 무릇 떡을 엽전 모양으로 가늘게 썰어서 넣으면 붙지 않고, 부서지지 않아서 좋다. 간혹 돼지, 소, 꿩, 닭 등의 고기를 넣기도 한다)"이라고 하였다.
떡국을 육수에 끓이는 것이 아니라, 장으로 간을 해가며 물에 끓였다. 떡국에 꼭 고기를 넣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떡국에 고기를 넣더라도 반드시 꿩고기가 아니라, 형편에 따라 돼지고기, 소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 가리지 않고 아무 고기나 고명으로 넣었다.
이 기록을 끝으로 닭고기는 완전히 떡국에서 사라졌다. 즉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떡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849년 홍석모(洪錫謨)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蒸粳米粉 置大板上 以木杵有棅者無數擣打引 作長股餠. 名曰白餠. 因細切薄如錢 和醬水湯熟, 調牛雉肉番椒屑. 名曰餠湯(멥쌀 가루를 쪄서 목판 위에 놓고 자루가 있는 나무 공이로 무수히 치고 나서, 늘여서 긴 가닥의 떡을 만든다. 이를 흰떡이라고 한다. 연이어 엽전처럼 얇고 잘게 썰어서 장국에 넣어 끓여서 익히고, 소고기와 꿩고기로 꾸미고 후추가루를 갈마들인다. 이를 떡국이라고 한다)"이라고 하였다.
여전히 장으로 간을 하며 물에 떡국을 끓이고, 냉면처럼 소고기와 꿩고기를 고명으로 올렸으며, 후추가루를 뿌렸다.
1924년 이인수(李寅洙)는 풍속조사(風俗調査)에서 "설날 접대에 빈부에 의해 차등이 있지만, 떡국(雜煮) 같은 것을 상하 공히 모두 한 모양으로 낸다. 즉 멥쌀(粳米)을 쪄서 그 것을 찧어 양초(西洋蠟燭)처럼 길게 뽑아 늘여, 비스듬히 옆으로 둥글고 얇게 썰어 이 것을 쇠고기국(牛肉汁)에 넣어 끓이는데, 이를 흰떡국(白餠汁)이라고 한다. 여기에 꿩 고기 및 야채를 넣고 후추 가루를 흔들어 넣어 섞는다"라고 하였다.
이 무렵부터 떡국을 소고기와 함께 끓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부차적으로 꿩고기를 고명으로 얹었다.
1935년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꿩의 고기로 맨드는 요리라면 첫재로 천리찬을 만들어야 하겟습니다. 천리찬은 꿩의 살을 아조 곱게 다져서 복가 가지고 정월 초하로날 떡국 위에 언저 먹는 것이랍니다"라고 하였다.
천리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꿩고기를 육수를 내는데 사용하지 않고 고명으로만 썼다.
한편 1930년대에 꿩고기 요리가 다양해졌다. 서울에서는 꿩고기 만두가 유행하여 퍼져 나갔고, 평양에서는 꿩고기 냉면이 등장했다. 궁중 꿩고기 요리인 관전자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30년대에 서울에서 꿩고기 요리 열풍이 분 것은 꿩이 시장에 넘쳐 나서였다. 북만주에서 대량으로 꿩을 수입해서 시장에 공급하면서 꿩을 쉽게 살 수 있었다. 여기에 1933년에 서울 공원화를 추진하여 한강 이북 서울 시내와 경기도 접경 지역을 금렵구로 설정해서 허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새를 사냥할 수 없게 하였던 여파도 심리적으로 평소보다 꿩고기를 더 찾게 하였다.
설날 물가를 보면 북만주에서 꿩을 수입하기 이전에도 꿩은 닭과 비교해서 비싸지 않았다. 1925년에는 떡국에 들어가는 재료로 소고기 1근(600g) 50전, 꿩 한쌍 2원, 달걀 10개 47전, 움파 1동(東묶음) 70전, 마늘 1접 70전, 후추가루 1홉 25전, 깨소금 1홉 10전이었다. 이 중에서 꿩 한 쌍이 2원인데, 닭 중간 크기 1마리가 1원 10전인 점에 비추어 전혀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서 떡국에 꿩 대신 닭을 넣을 이유가 없었다.
1958년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재래의 떡국을 조금 변경해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보았읍니다. 떡국= 재료: 흰떡 두 가락, 표고 세 조각, 우육 반 근, 파 한 뿌리, 당근 한 개, 메추리알 네 개, 쑥갓 너 덧 잎, 고명 약간씩(깨소금, 후추가루, 기름, 간장, 마늘, 맛나니(미원) 등)"이라고 하였다. 1950년대에 떡국에서 꿩고기가 사라졌다. 이후 떡국은 소고기 떡국으로 통합을 이루었다.
1950년 설날만해도 계속해서 동대문 시장을 비롯하여 각 시장에서는 점포 입구에 꿩을 매달아 놓고 팔았으나, 이후에는 전란으로 인해서 시장에서 꿩이 사라졌다. 하지만 꿩 대신 닭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에 꿩고기를 빼버리고서 소고기로만 떡국을 끓여서 차리는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대문 시장 할 것 없이 양력설에 보지 못 한 설 채림의 물건으로 저자는 풍성댄다. 일년중 한 번 점두에 걸리는 꿩이 달린 것이나, 유과 등속으로 울긋불긋한 제과도 대목장을 보려는 저자 다웁다. 그리고 장 보러 온 손님들로 장은 대혼잡이다. 저자에서 본 음력 과세는 틀림 없다.
- 동아일보 1950. 2. 13
1950년 설날까지만 해도 흔하게 시장에서 꿩을 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한글 문장으로는 1951년보다 훨씬 이전인 1923년에 신문 기사에 등장하였다.
동대문 경찰서에서는 폭탄 범인을 수색하다가 뜻밧게 시국에 관계 잇는 중대범인 몃 명을 잡앗는대 동 서에서는 꿩 대신에 닭도 관계치 안타고 매우 활긔잇게 방금 그들을 취조중이며
- 동아일보 1923. 1. 17
이 또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떡국에서 유래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꿩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기 수 십년전부터, 즉 꿩이 흔했던 때에 이미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을 흔하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꿩 대신 닭의 유래는 조선 고종의 고사에서다.
옛 사람들도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하였나 하고 궁금해 하였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의 기원에 대한 언급은 1954년에 처음 나왔다.
祝賀(축하)나 慰問(위문)을 위하여 무엇을 선물할 경우에 술을 꼭 보내어야 할 일에 肉類(육류)를 보내든지, 옷감(衣類)을 보내어야 할 일에 器具(기구)로 대신하는 수도 있다. 이러할 경우에 「이만하면 꿩 대신 닭은 되겠지」하는 傳來(전래)의 流行語(유행어)를 쓰는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는 것은 보내는 편에서는 보내어야 할 實物(실물)만은 못 하여도 큰 失禮(실례)는 아니 되고, 情(정)의 表示(표시)도 넉넉히 된다는 것이요 또 받는 사람편에서도 이 것이 本物(본물)만은 못 하나 情(정)답기는 對等(대등)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出處(출처)는 어떤 것인가? 예전에는 남을 처음 交際(교제)할 경우에 반드시 幣帛(폐백)을 한다. 臣下(신하)가 임금에게도 폐백을 獻納(헌납)한 뒤라야 벼슬을 하게 되고, 임금이 賢士(현사)를 招聘(초빙)하는데도 폐백이 있은 뒤라야 나와서 出仕(출사)하고, 弟子(제자)가 先生(선생)에게도 폐백을 올린 뒤라야 敎導(교도)를 받게 되고, 친구도 서로 폐백이 있은 뒤라야 벗(友)이 되는 것이다. 고사에 「委質爲臣(위지위신)」이라는 것은 폐백을 바치고 신하가 되었다는 말이요, 「卑辭厚幣(비사후폐) 以迎賢士(이영현사)」라는 것은 임금이 폐백 하였다는 말이요, 「執質爲第子(집지위제자)」라는 것은 선생에게 폐백하였다는 말이요, 「傳質爲友(전지위우)」라는 것은 폐백 주고 벗을 하였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폐백의 限度(한도)가 없더니 그 것을 制限(제한)하는 準則(준칙)으로 儀禮(의례)하는 글이 나왔다. 儀禮(의례)에 天子(천자)의 폐백은 最少(최소)로 牛(소)로 하였고, 諸侯(제후)는 羊(양)이라 하였고, 大夫((대부)高官級(고관급))은 雁(기러기)라 하였고, 士(사)·庶人((서인)(低官級(저관급)·平民(평민))은 치(꿩)라고 限定(한정)하였다. 이것이 몇 千年(천년)을 내려오며 風俗化(풍속화) 하여 지금에도 무슨 일에 선물 보내는 것은 폐백의 遺習(유습)이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士(사) · 庶人(서인)의 경우와 같은 最低級(최저급)의 폐백도 못 되어 남 부끄럽다는 뜻도 있지만, 닭은 꿩과 비슷하여 꿩 대신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處變(처변)은 얼숭덜숭 精誼(정의)나 表(표)하고 失禮(실례)나 免(면)할 수 있다 할 것이다.
- 김화진, 고속금어15, 경향신문 1954. 12. 19
위지위신(委質爲臣)이 꿩과 관련이 있다. 위지는 몸을 바친다는 말로, 스스로 엎드려 절을 하여 공경을 표한다는 뜻이다. 또한 위지는 예물을 바친다는 뜻이다. 위소(韋昭)는 위지위신에 대해 설명하기를 "質 贄也. 士贄以稚 委質而退(지는 폐백이다. 선비는 폐백을 꿩으로 하여 폐백을 바치고 물러난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선비가 출세를 하려면 예물로 꿩을 바치는 것이 의례이고, 여기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기에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천자에서 제후, 대부를 거쳐 선비까지 각각 신분의 차등에 맞추어 지정한 예물을 보면, 신분이 낮아 질수록 소, 돼지, 기러기, 꿩 순으로 점차 구하기 쉬운 산물로 폐백을 정하였다. 가장 낮은 선비가 바치는 꿩이 예물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저비용으로 구하기 쉽다. 꿩의 가치가 가장 떨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구입하기 쉬운 꿩마저 구하지 못 해서 닭으로 대신 주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고종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1788년 5월 정조는 공인들이 모든 전궁에 매일 납품하기에는 꿩의 수효가 부족하다고 하자 모자라는 꿩의 마리수만큼 닭으로 대신 납품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사옹원은 최대한 꿩으로 납품 받고자 하여 꿩 대신 닭으로 바치면 꿩 1마리당 닭 3마리로 납품하도록 요구하였다. 납품하는 공인들은 지속적으로 손실을 입자 1800년에 궁에 민원을 제기하였다. 이에 정조는 꿩 1마리당 닭 1마리로 대신 납품하도록 하고 법규로 명문화하게 하였다.
꿩 1마리의 가치는 닭 1마리의 가치로 서로 동일 했다. 그만큼 꿩은 흔했다. 매일 사옹원에 꿩을 공급하는 응사계 공인들이 공급물량을 채우지 못한 이유는 산에 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납품을 해야 하는 시기가 이른 절기라서 숲이 우거져 꿩사냥이 어려운 탓이었다. 그래서 꿩을 겨울철 고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1867년 사옹원에 꿩을 공급하는 응사계 공인들이 10월 1일부터 매일 산 꿩을 바쳐야 하였지만, 미처 겨울이 되지 않아서 여전히 수목이 울창하다 보니 매가 날며 사냥하기 힘 들어서 꿩을 쉽게 잡지 못하였다. 이에 공인들은 낙엽이 더 져서 사냥이 가능해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꿩 대신에 닭을 납품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고종의 윤허가 있어서 꿩 대신 닭으로 바칠 수 있게 되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바로 이 옛 일들에서 생겨났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을 흔히 쓰기 시작한 때와의 시간 차이를 보면, 고종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命各殿宮日供生雉, 以活鷄隨乏代捧, 仍著爲式.
각 전궁에 매일 바치는 산 꿩을 모자라는대로 산 닭으로 대신 바치라 명하시니, 그대로 따라 법도로 정하였다.
- 정조실록 1788.5.1(양력 1788. 6. 4)
傳曰, 近始聞之知其日供雉鮮之代鷄捧三倍云, 此後雉鮮代捧, 易以一鷄事定式, 該堂登筵稟處.
전교하시기를, "그 날 산 꿩을 대신하여 닭으로 올리도록 하자 세 배로 바치도록 했음을 근래 처음 듣고 알았으니, 이후로는 산 꿩 대신에 올리게 되면 (꿩 한 마리 당) 닭 한 마리로 바꾸도록 하는 일을 법도로 정하도록 해당 당상관이 등연하여 아뢰고 처리하라"고 하시었다.
- 비변사등록 1800. 5. 22 (양력 1800. 7. 13), (정조 24)
司饔院啓曰, 卽者鷹師契貢人等所訴內, 今十月初一日爲始, 所封日下生雉, 以節序差早, 草樹尙密, 鷹獵無路, 萬無本色封進之望, 限捉得間, 願以活鷄, 仍爲代封矣, 莫重供上, 自下不敢擅便, 惶恐, 敢啓. 傳曰, 知道代封.
사옹원에서 아뢰기를, "얼마 전에 응사계 공인들이 안으로 하소연 하는 바, '이 번 10월 1일에 시작하는 매일 하사 하시려는 산 꿩을 바치는 것이 절기가 약간 일러 풀과 나무가 여전히 빽빽하여 매가 사냥할 길이 없어 본색대로 바칠 가망이 만무하니 잡을 수 있을 때까지로 한하여 산 닭으로 이에 대신 바치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하였기에 막중한 진상을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사온지라 황공함으로 감히 아룁니다"라고 하였다. 전교하시기를 "알았으니 대신 바치라"고 하시었다.
- 승정원 일기 1867. 9. 29 (양력 1867. 10. 26). (고종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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