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641

고려 태조 두문자 : 사 기 역 결 사 고려 태조 : 사 기 역 결 사 사 : 사심관 제도 기 : 기인제도 역 : 역분전 결 : 결혼정책 사 : 사성정책 1. 사심관 제도 사심관은 고려시대 지방에 연고가 있는 고관에게 자기의 고장을 다스리도록 임명한 특수관직이다. 935년(태조 18)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항복해 오자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고, 또 공신들을 각각 출신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해 부호장 이하의 향직을 다스리게 한 데서 비롯하였다. 아직 지방관 파견이 여의치 않던 때여서 사심관은 기인제도와 함께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통제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행정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면서 사심관이 민호와 노비를 가로채 사욕을 채우는 등 폐단이 심하여 1318년(충숙왕 5)에 폐지되었다. 태조 때 설치된 사심관은 .. 2023. 8. 13.
남북국 통일과정 두문자 : 백 구 려 발 신 백 남북국 통일과정 : 백 구 려 발 신 백 백 : 후백제 건국(900 견훤 완산주) 구 : 후고구려 건국(901 궁예 송악) 려 : 고려 건국(918 왕건 철원) 발 : 발해 멸망(926 거란족 침입) 신 : 신라 경순왕 고려에 귀부(935) 백 : 후백제 멸망(936) 1. 후백제 건국(900 견훤 완산주) 후백제는 후삼국 시대에 견훤이 세운 나라이다. 견훤이 892년에 무진주에서 자립하였다가 900년에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후삼국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나라이다. 견훤이 신라 왕경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시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하였으며, 공산동수에서 고려 태조에게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백제는 고창전투와 운주성전투에서 패하면서 고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견훤은 아들 신검.. 2023. 8. 13.
발해 기록 역사서 두문자 : 제 발 동 강 해 조 발해 역사서 : 제 발 동 강 해 조 제 : 이승휴의 제왕운기 발 : 유득공의 발해고 동 : 이종휘의 동사 강 :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해 : 한치윤의 해동역사 조 :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1. 이승휴의 제왕운기 : 남북국 용어 최초 사용 이승휴는 『제왕운기』의 저술 동기를 고려, 즉 당대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조군왕세계연대」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생존기간은 무신의 난과 30여 년간에 걸친 몽고와의 항쟁으로 왕권이 약화되어가고 있었고, 정치기강마저 해이해지던 때였다. 그리고 몽고와의 강화로 인해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되면서 자주국으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태였고, 원나라의 세력에 편승한 부원세력가의 반사회적인 책동에 의하여 국내외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2023. 8. 13.
발해 교통로 두문자 : 서 압 조 동 용 일 남 해 신 발해 교통로 : 서 압 조 동 용 일 남 해 신 서 : 서경 압 : 압록부 조 : 조공도 동 : 동경 용 : 용원부 일 : 일본도 남 : 남경 해 : 남해부 신 : 신라도 1. 서경압록부 조공도 『신당서(新唐書)』 발해전(渤海傳)에는 국도(國都)인 상경(上京)을 중심으로 하여 각 방면에 이르는 교통로를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는 조공하는 길(朝貢道也)’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교통로는 초기부터 빈번하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당나라에서 안사(安史)의 난(亂)이 있은 뒤부터 종래 사용하던 영주도(營州道)가 거란에 막힘으로써, 발해 사신들은 장령부(長嶺府)를 거치는 육로를 버리고 압록부(鴨綠府)의 수로를 택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경로는『신당서』지리지에 인용된 가탐(賈耽).. 2023. 8. 13.
반응형